출처-<연합뉴스>
트럼프의 4월 1일 대국민 담화는 겉으로는 승전 연설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의 목소리에는 승자의 여유나 확신이 잘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힘이 빠진 채 대본을 읽어 내려가는 듯했고, 문장 내용만 유난히 강경했다.
적은 거의 무너졌고, 미국의 목표는 달성 단계에 들어섰다고 말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 전체에서는 승리의 완결감보다 서둘러 의미를 봉합하려는 조급함이 더 짙게 묻어났다.
그 말을 조금만 뜯어보면, 그것은 승리 선언이 아니라 미국의 자기 고백이었다.
“우리는 아직도 때릴 수는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뒤를 책임질 수는 없다.”
트럼프가 직접 이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그는 사실상 그 말을 하고 있었다.
‘팍스 아메리카나’였던 이유

팍스 아메리카나는 미국이 착해서 생긴 질서가 아니었다. 미국이 무서워서만 유지된 질서도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미국이 전쟁을 벌이면 그 뒤의 바다도 열고, 동맹도 안심시키고, 전후 질서도 결국 자기 손으로 정리할 것이라는 믿음 위에 서 있던 질서였다.
사람들은 미국을 사랑해서 따른 것이 아니다. 미국이 움직이면 세상이 결국 정리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따랐다. 그게 팍스 아메리카나였다.
트럼프의 현실 고백
그런데 트럼프의 담화는 그 오래된 믿음을 정면에서 깨뜨렸다. 그는 거의 이겼다고 말하면서도 2주에서 3주 더 강하게 때리겠다고 했다.
목표가 이미 달성 단계라면 왜 추가 폭격이 먼저 나올까.
진짜 승자는 더 때릴 계획부터 말하지 않는다. 무엇을 달성했는지, 언제 끝낼 것인지, 끝난 뒤 무엇이 안정될 것인지를 말한다. 그런데 트럼프의 담화에는 그 셋이 없었다. 승리의 설명은 없고 승리의 선언만 있었다. 바로 그 점이 중요하다. 이겼기 때문에 승리를 말한 것이 아니라, 승리라고 먼저 말해야만 하는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여기서 트럼프는 의도치 않게 미국의 현실을 고백했다. 미국은 이제 전쟁의 의미를 전황으로 증명하지 못하고, 말로 먼저 덮어야 하는 나라가 됐다. 다시 말해, 예전처럼 결과로 질서를 입증하는 나라가 아니라, 말로 패배를 봉합해야 하는 나라가 됐다는 뜻이다. 승리 선언이 강할수록 오히려 미국의 불안이 더 크게 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트럼프의 두 번째 고백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나왔다. 그는 그 불안을 미국이 끝까지 책임질 국제 질서의 문제로 말하지 않았다. 석유가 필요한 나라들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으로 넘겼다. 이건 거친 발언이 아니라 치명적인 실토다.
패권국은 원래 자기가 연 전쟁이 만든 혼란까지 책임지고 정리하는 나라다. 그런데 트럼프는 그 책임을 다른 나라들에게 넘겼다. 세계를 관리하던 나라가 세계에 계산서를 돌리는 나라(삥뜯는 나라)가 됐다는 뜻이다.
이 대목에서 트럼프는 사실상 이렇게 말한 셈이다.
“미국은 전쟁을 시작할 힘은 있지만, 그 전쟁이 만든 세계적 비용까지 떠안을 의지와 힘은 없다.”
이건 단순한 태도 변화가 아니다. 팍스 아메리카나를 지탱하던 핵심 기능 하나가 무너졌다는 뜻이다.
미국은 오랫동안 비싼 나라였지만, 그래도 마지막 책임은 진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보험료는 가장 많이 받아 가면서, 사고가 나면 보상 대신 약관부터 들이미는 보험회사처럼 보인다. 힘은 여전히 과시하지만, 책임은 계산서와 함께 남에게 넘긴다.
동맹국의 인식 변화
동맹 문제는 이 고백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 프랑스는 호르무즈 공격 임무가 나토의 본령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스페인은 공역을 닫았고, 이탈리아는 기지 사용을 거부했다.
이건 단순히 미국 말 안 들은 나라 몇 개가 생겼다는 뜻이 아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제 미국 동맹국들조차 미국의 전쟁을 자기 안전의 연장선으로 자동 계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이 움직이면 나도 안전해진다’가 아니라, ‘미국이 움직이면 내가 더 위험해지는 것 아닌가’를 따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트럼프의 담화는 이 현실도 숨기지 못했다. 그는 동맹이 따라오지 않는 데 대한 불만을 내비쳤지만, 바로 그 불만 자체가 미국 쇠퇴의 증거다. 제국은 원래 동맹이 안 따라온다고 하소연하지 않는다.
따라오게 만들거나, 따라오지 않아도 정리할 수 있어야 제국이다. 그런데 이제 미국 대통령은 왜 우리를 안 도와주느냐는 투정을 부린다. 이건 예전 같은 강자가 아니라는 자기 노출이다.
걸프 국가들 입장에서 더 무서운 장면은 미군기지가 더 이상 안심의 표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때 미군기지는 방패였다. 그런데 이제는 표적처럼 보인다. ‘미군이 있으니 안전하다’가 아니라, ‘미군이 있으니 보복당할 수도 있다’로 바뀌고 있다.
이 장면이 섬뜩한 이유는, 그것이 걸프만의 예외가 아니라 미군기지를 둔 다른 지역에도 번질 수 있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역시 그 질문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트럼프 담화가 이 불안을 잠재우지 못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미국 대통령이 나서서 세계를 안심시킨 것이 아니라, 미국이 시작한 전쟁의 위험을 남도 같이 떠안으라고 말한 셈이 됐기 때문이다. 보호의 언어가 아니라 위험 분산의 언어였다.
패권국의 역할을 하기 시작한 다른 나라들
사후 질서의 문장을 다른 나라들이 쓰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과 파키스탄이 평화 구상을 내고, 영국이 별도 협력을 말하고, 일본과 프랑스가 따로 조율에 나선 장면은 하나의 공통된 사실을 말해준다.
전쟁은 미국이 시작했는데, 전쟁 뒤의 질서는 미국 밖에서 먼저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총은 미국이 쐈는데, 휴전의 문장과 평화의 문법은 남이 쓰기 시작했다. 이 역시 트럼프가 말로는 감추려 했지만, 담화 전체가 오히려 더 크게 드러낸 현실이었다.
결국 트럼프의 담화는 세 가지를 한꺼번에 자백했다.
1. 미국은 이제 바다를 열지 못한다.
2. 미국은 이제 동맹을 자동으로 묶지 못한다.
3. 미국은 이제 전쟁 뒤의 문장도 독점하지 못한다.
이것이야말로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언이다. 미국이 내일 당장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다. 미국이 움직이면 세계가 결국 정리된다는 믿음, 바로 그 믿음이 끝나고 있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은 제국의 종말을 너무 영화처럼 상상한다. 깃발이 내려오고, 궁전이 불타고, 누가 봐도 끝났다는 장면을 떠올린다. 현실의 제국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더 큰 목소리로 승리를 외치는데, 이상하게 아무도 그 말을 완전히 믿지 않는 순간부터 끝난다.
말은 더 요란해지는데 질서는 더 흔들리고, 폭격은 계속되는데 동맹은 물러서고, 대통령은 이겼다고 하는데 시장은 아직 안 끝났다고 반응하는 순간부터 끝난다. 제국은 그렇게 늙는다.
그래서 트럼프의 4월 1일 담화는 단순한 전시 연설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국의 힘을 자랑하는 연설처럼 보였지만, 실은 미국의 한계를 낭독하는 연설이었다. 이란을 얼마나 더 때릴 수 있느냐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제 미국이 그 폭력을 질서로 바꾸지 못한다는 점이다.

출처-<로이터>
트럼프는 승리를 선언하러 나왔지만, 결과적으로는 미국이 더는 예전과 같은 패권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기 입으로 실토하고 내려갔다. 그 담화는 승전사가 아니라 부고장이었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부고는 트럼프의 입을 통해 세상에 낭독됐다.

편집: 임권산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임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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