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에 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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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작가의 ABC론을 비판하기에 앞서 유시민 작가에 대한 나의 개인적 생각을 밝힙니다. 나는 유시민 작가를 우리 사회의 부표와 같은 존재라고 여깁니다. 지난 윤석열 내란과 같은 폭풍 속에서 앞을 보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물 위에 떠 있는지 가라앉고 있는지조차 분간하기 힘들 때 그는 거친 파도 위에 떠 있는 부표였습니다. 우리는 그를 보며 아, 우리가 수면 위에서 숨을 쉬고 있구나, 코에 물이 들이쳐 숨 쉬는 게 어려운 것뿐 견딜 만하구나 하며 불안한 안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국민 신경 안정제라고 부릅니다.
일면식도 없는 유시민 작가를 동지라 여깁니다. 방법론이 다르고 지향하는 목표의 위치는 조금 다르지만 시선은 늘 같은 곳을 향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이 나가야 하는 곳, 세계가 나가야 하는 곳을 거의 같은 방향에서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달리는 속도가 달라 어깨를 맞대고 함께 나가지는 못해도 나는 유시민 작가를 같은 편으로 생각합니다.
이 글은 같은 편인 유시민 작가의 ABC론을 비판하는 글입니다. 같은 편을 비판하는 글을 쓰는 이유는 천박하기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힘든 함량 미달의 비평가들과 정치인들이 유시민 작가에게 퍼붓는 힐난과 비판이 얼마나 쓰레기 같은 것인지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이와 함께 품격 있고 들을 만한 비판의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우리 민주시민의 건강하고 지적인 숙의도 도모하고자 합니다.
참고 기사: 본격 유시민 ABC론 비판 1 : 깔려면 알고 좀 까라(링크)
§ 4. 개념의 할당과 대응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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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작가의 벤 다이어그램에는 집합 A와 집합 B에 고유의 이름표, 개념이 붙어 있습니다. 집합 A에는 ‘가치’라는 개념이 붙었고 집합 B에는 ‘이익’이라는 개념이 붙었습니다. 유시민 작가는 ‘가치’라는 개념을 ‘이념’ 혹은 ‘대의’를 뜻한다고 설명했고 ‘이익’은 ‘자기 생존’ 또는 ‘자기 이익’이라고 설명했습니다.
A라는 기호에 구체적 개념인 ‘가치’를 할당하는 것은 수학적으로나 인식론적으로 특별한 과정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A’가 가치 중립적 기호인 데다 내용이 없기 때문에 수학적으로 그냥 구체적 값인 ‘가치’를 할당하면 됩니다. 우리도 할당된 결과를 보고 A가 ‘가치’구나 하고 인식하면 됩니다.
하지만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유시민 작가가 동원한 다른 개념인 ‘이념’이나 ‘대의’를 대응시킬 때는 생각보다 복잡한 인식 작용과 더 많은 정보 처리가 필요한 의미론적 해석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단어들은 저마다의 뜻과 영향을 미치는 고유의 인식 영역을 갖고 있어 일대일 대응으로 할당해서 막 쓸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이 단어들은 도덕적 판단, 호불호의 판단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치’에서 ‘이념’이나 ‘대의’로 넘어오는 것은 x, y 같은 변수에 특정 숫자를 집어 넣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당연히 ‘이익’과 ‘자기 생존’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시민 작가는 근래 자연과학에 천착하여 인간의 물질적 존재 방식과 인문학적 존재 방식의 접점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유시민 작가는 인간 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부정적 사건, 예를 들면 윤석열이나 트럼프의 등장처럼 자기나 공동체 생존의 위협이 되는 사건을 언제든지 발생 가능한 확률적 사건으로 설명합니다. 진화론에 입각해서 긴 안목으로 보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너무 안달복달할 필요 없다고 설명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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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관점에서는 ‘자기 생존’은 인간이 갖고 있는 매 순간 발현되는 본능이 되고 가치 판단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유시민 작가는 생존을 설명할 때 인간의 뇌가 생존을 위한 기계라는 ‘생물학적 진술’을 빌려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죽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는 생물학적 의미의 ‘생존’을 ‘이익’이라는 경제학적 개념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려면 인식 과정에서 상당한 논리적 도약이 필요합니다. ‘이익’을 ‘생물학적 생존’으로 간단하게 일대일 대응시켜 인식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매불쇼 대화 과정에서 1절에서 설명했던 논리적 우주가 계속 변하는 데다 집합 A와 B에 할당된 ‘가치’와 ‘이익’이라는 이름표는 여러 다른 개념들을 동원하여 1차, 2차, 3차의 연쇄적 인식 과정을 거쳐 설명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시민 작가의 주장뿐만 아니라 진행자와 패널의 주장까지 뒤섞였습니다.
시청자들이 다양한 갈래로 ABC론을 인식하게 된 이유입니다. 유시민 작가의 논지를 파악한 시청자들과 파악하지 못한 시청자들의 이해 간극은 매우 컸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 5. 속성의 서열 문제
집합 A와 B에 이름표로 붙인 구체적인 값인 ‘가치’나 ‘이익’을 보통 집합론1에서는 ‘범주(또는 속성)’라고 합니다. 범주에는 서열이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 그랬습니다. 상위 범주는 하위 범주를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수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𝜔를 특별한 범주의 집합이라고 하면, 상위 범주의 집합은 𝜔+1, 𝜔+2, 𝜔+3, ……, 𝜔+𝜔로 표시할 수 있습니다. 1을 더해 이전 범주보다 상위에 있다는 것을 표시합니다. 이렇게 𝜔, 𝜔+1 식으로 표현하면 서열이 분명하게 보이고 𝜔와 𝜔+1을 동일시할 수 없다는 것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변수에 ‘가치’나 ‘이익’처럼 구체적 내용을 가진 값(개념)을 할당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유시민 작가가 집합 A와 집합 B를 대표한다고 제시한 개념 ‘가치’와 ‘이익’은 그의 설명에 따르면 대립항2입니다. ‘가치’와 ‘이익’이 대립항이 되려면 이 두 범주는 같은 서열에 있어야 합니다.

같은 서열이라는 의미는 사과나 배의 관계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됩니다. 사과나 배는 과일이라는 범주 바로 밑, 같은 서열에 있는 하위 범주입니다. ‘가치’와 ‘이익’이 ‘사과’와 ‘배’처럼 같은 서열에 있는 범주인지는 여전히 불확실합니다. 다만 ‘가치’를 윤리, 신념, 대의라는 개념과 결부하고 ‘이익’이라는 개념에서 이기적 의미를 소환하면 유시민 작가가 규정한 대로 ‘가치’와 ‘이익’은 대립항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두 개념을 관용적으로 혼용하여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유시민 작가의 규정을 잠시라도 놓치면 ‘이익’이라는 개념은 ‘가치’에 포함되는 하위 범주로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현재 매불쇼 채널에 올려진 영상은 혼돈을 일으킬 수 있는 부분은 거의 편집이 된 상태라 확인이 어렵지만 제 기억에 이익을 말 그대로 ‘경제적 이익’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의 발언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익’은 ‘가치’와 같은 서열에 있기보다 오히려 ‘가치’에 포섭되는 하위 범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당연히 벤 다이어그램도 아래처럼 바뀌게 됩니다. 그러면 집합 B는 집합 A의 완벽한 부분집합이 됩니다. 더 이상 ‘가치’와 ‘이익’은 대립항이 아닙니다. ‘이익’이라는 집합에 속한 원소는 동시에 ‘가치’라는 집합 A에도 속할 수 있습니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가치’라는 집합 A에 속한 원소라고 꼭 ‘이익’이라는 집합 B에 속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림 4]
§ 6. 갈 데 없는 원소
하지만 유시민 작가의 주장에서 ‘가치’와 ‘이익’은 대립항입니다(사실 유시민 작가는 ‘이익’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제가 보기에는 ‘이기적’이라는 단어가 더 적합해 보입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가치’와 ‘이익’은 이율배반적 개념이고 그 집합들은 서로소인 대립항입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유시민 작가가 겹쳐지지 않는 대립항을 겹쳐 놓는 바람에 새로운 집합 ‘C’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되면 각 집합에 속하는 원소 입장에서도 매우 난감해집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나 어디에든 속해야 하는 원소의 비극이 시작됩니다. 논리적으로 ‘가치’와 ‘이익’이라는 이율배반적 속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어떤 원소가 있는 것은 알지만 어떤 원소가 집합 ‘C’에 속하는지는 판별할 수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원소 자체로도 판별이 안 되고 집합 차원에서도 판별이 안 됩니다.
겹쳐 놓은 C에 속하는 원소를 특정할 수 없으므로 그런 원소가 있다고 주장하려면 집합 A와 집합 B에 속하는 모든 원소가 ‘가치’와 ‘이익’이라는 속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 집합 A와 집합 B는 아래 그림처럼 완벽하게 겹치게 됩니다.

[그림 5]
이 도표는 집합 A와 집합 B, 그리고 두 집합에 속한 원소 사이의 위계 구분 없이 논증을 진행하면 자기이면서 동시에 자기가 될 수 없는 러셀의 역설을 극명하게 보여 줍니다. 유시민 작가의 ABC론은 이런 러셀의 역설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 7. 나가는 글
지금까지 유시민 작가의 ABC론을 현대 수학의 집합론이 가진 공리3 체계 위에서 다루어보고 문제점을 규명하고자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가치'와 '이익'처럼 이율배반적 속성을 동시에 가진 사회 집단이나 현상을 다룰 때는 기존의 집합론보다 하나의 집합에서 여러 개의 속성이 차지하는 비중을 표시할 수 있는 퍼지 이론과 같은 다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입니다.
더 나아가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처럼 역동적인 정치 세력의 분석에는 단순한 집합론보다 집단의 구조와 세력 간 관계의 역동성을 더 잘 드러내는 군론(Group Theory)4을 사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거로 생각합니다. 군론 혹은 환론(Ring Theory)5 같은 고도의 수학 이론으로 사회 현상이나 집단을 분석하는 틀을 만드는 것은 사실 정치학도나 사회학도의 과제이지 시시때때로 현장의 언어로 정치 비평을 하는 유시민 작가나 필자의 몫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말머리에 붙인 글에서도 밝혔듯이 이 글은 유시민 작가를 공격하거나 그의 주장을 학문적으로 비판하려고 쓴 글이 아닙니다. 갈라치기를 한다며 유시민 작가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던 말류의 비평가와 정치인들이 했던 것은 비판이 아니라 쓰레기 같은 배설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쓴 글입니다.
본문에서 지적한 문제들은 집합론이나 인식론적 견지에서 이론의 정합성에 타격을 주는 제법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전문적인 이론 분석에서는 문제가 된다고 일반 독자를 상대로 정치 현상을 설명하는 비평의 차원에서도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론적으로 더 정교하고 완성도가 높다면 정치 현상을 더 세밀하고 근원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할 수 있겠지만, 대중을 상대로 하는 비평에서 중요한 것은 학문적 엄밀성이 아니라 큰 구도와 방향성을 읽어주는 것입니다. 유시민 작가가 ABC론을 제기한 목적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필자는 유시민 작가의 ABC론을 이전 기사(B가 만드는 가상 세계 : 누가 함돈균을 캐스팅했나?)에서 장비의 장팔사모와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유시민 작가 ABC론 덕분에 이재명 대통령 근처에서 이재명 명찰 팔이를 하는 인간 군상의 진면목이 더욱 선명하게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필자는 그것만으로도 유시민 작가는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빌어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주.
1) 집합론: 추상적 대상들의 모임인 집합을 연구하는 수학 이론
2) 대립항: 서로 반대되거나 모순되는 두 가지 개념
3) 공리(Axiom): 수학 등 이론 체계에서 증명 없이 참으로 받아들이는 가장 기초적인 근거
4) 군론: 특정 연산에 대해 대칭성을 가진 집합을 연구하는 학문
5) 환론: 환이란, 덧셈과 곱셈 두 연산이 정의된 구조로, 이런 환의 성질을 연구하는 추상대수학의 한 분야

편집 : 금성무스케잌
마빡 디자인 : 꾸물
기사 : 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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