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리는 어디서 시작되었나?

최근 홍콩 콘텐츠 비평에서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 있다. 이홍콩(異香港). 나의 기억 속 홍콩과 현재의 홍콩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를 뜻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떠올리는 '기억 속 홍콩'이라 하면, 1970~90년대 홍콩 영화의 전성기, 스크린을 통해 마주한 그 시절의 홍콩일 것이다. 지금과는 약 30~50년의 시간 차가 생긴다. 십 년이면 김건희 턱도 돌려 깎는다는데 서른 해 동안 그대로라면 그게 더 기이한 법이다.
겉으로 보이는 홍콩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아시아 금융 허브다. 빅토리아 하버를 중심으로 홍콩섬과 반도 곳곳에 빼곡히 들어선 건물은 건재하다. 밤이 되면 불빛과 레이저 쇼가 뒤섞여 화려한 야경을 만들어 낸다. 마치 90년대의 홍콩을 그대로 재현하는 듯하다.
중국인이 대거 유입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식당에선 광둥어가 주로 쓰인다. 오히려 보통어를 사용하면 반감을 살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말도 들린다. 홍콩의 괴리는 과연 어디에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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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한 초등학교를 떠올려 보자. 학교 건물도, 교사도, 학생의 교복도 예전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최근 들어 달라진 점이 있다. 국기 게양과 국가 제창, 그리고 중국 역사와 국가안보 관련 활동이 눈에 띄게 강화되었다. 이와 관련된 교육은 다른 교과목보다 더 체계적으로, 자주 이루어진다.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 강력한 통제와 확실한 변화가 있다.
홍콩의 한 식당에서 건설 노동자들이 네온사인을 철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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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비해 꽤 드러나는 변화도 있다. 한때 12만 개가 넘는 네온사인이 건물을 휘감고 있는 모습은 홍콩의 상징이었다. 그것이, 사라지고 있다. 대부분 철거되고 지금은 약 500개만 남았다. 철거 명분은 무허가 설치와 규격 위반.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도시의 상징물이 하루아침에 행정 처분 대상이 된 건 어딘가 대단히 석연치 않다. 석연치 않음에는 반드시 숨겨진 의도가 있는 법. 예를 들면 누군가는 과거의 홍콩을 지우고 싶다거나.
아무튼 지금 홍콩 거리는 LED 광고판이 네온사인이 떨어져 나간 자리를 채우고 있다. 에너지 효율이 높고 유지비가 저렴한 LED로 교체하라는 당국의 압박 때문이다.
홍콩에 애국자는 없다
지난해 10월, 홍콩에서 한 대작이 개봉했다. 한국어 제목은 <풍림화산(風林火山)>, 원제는 <Sons of neon night>. 네온사인이 비춘 밤거리를 떠도는 사람들, 그 속에서도 범죄에 휘말린 인물을 뜻한다. 영화의 감독 주노 막은 현대판 강시 영화 <강시 : 리거모티스>를 제작한 이후, 두터운 마니아층을 얻은 차세대 홍콩 감독이다. 금성무, 고천락, 유청운, 양가휘 등 1980~90년대 탑배우들이 출연했다.
거대 마약 밀매 조직의 보스(금성무 아버지)가 사망한 뒤, 후계를 둘러싸고 두 형제와 비리 경찰(유청운), 킬러(고천락), 권력(양가휘)이 뒤엉키며 벌어지는 느와르 범죄 스릴러물. 2017년에 크랭크인, 2019년에 개봉 예정이었다. 하지만 한 해씩 개봉이 미뤄지다 결국 제작 8년 차인 2025년이 되어서야 대중에 공개되었다.
이렇게까지 개봉이 밀린 이유는 중국 당국의 강도 높은 검열 때문이다. 2020년 6월, 홍콩 입법회를 거치지 않은 '홍콩 국가보안법(NSL)'이 중국 본토에서 직접 도입되었다. 이를 근거로 한 '영화검사 조례' 개정안은 2021년 10월, 홍콩 입법회에서 통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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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홍콩 입법회는 친중 성향의 인사로 채워져 있다. 민주 진영의 정치인, 야당 의원들 상당수가 수사의 대상이 되거나 사실상 무력화되면서 정계 은퇴를 선언한 상태다. 2021년 선거제 개편 이후, 홍콩의 정치 다양성은 파괴되었다. 가장 중요한 문구는 '애국자만'이다. 정치 출마자의 자격에 '애국자'를 삽입하면서 홍콩엔 친중 성향의 여당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입법회의 90석 중 40석은 친중 진영이 장악한 선거위원회가 선출한다. 30석은 친중 성향 단체가 주도하는 직능 선거구 몫이며, 나머지 20석만이 일반 유권자가 직접 뽑는 지역구 의석이다. 다만, 이마저도 '애국자만' 공직에 출마 가능하기 때문에 친중·친정부 후보만이 선거에 나갈 수 있다. 입법회뿐만 아니라 노조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영화 검열 개정안이 통과되던 날, 일부 의원들은 영화뿐만 아니라 온라인 영상물 전체를 대상으로 검열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때 홍콩 최대 노조 연합(공회연합회)은 이를 지지하는 성명서를 낸다.
"할리우드에도 레드라인은 있으며, 누구도 오사마 빈라덴 같은 테러리스트를 미화하는 영화를 제작하지 않는다."
로스트 인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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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본토 영화 산업은 국영화되었다. 검열이 심해지면서 중국 영화 산업의 자유와 다양성은 크게 위축된다. 상하이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던 영화 인력, 자본, 노하우가 홍콩으로 대거 이동했다. 자유로운 창작을 위해 실험의 장으로서 홍콩을 선택한 영화인들 덕분에, 홍콩은 아시아 권역 상업 영화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그로부터 70년 뒤, 홍콩에 축적된 인프라는 다시 갈 곳을 잃었다. 1990년대 홍콩 영화의 전성기를 끌어낸 왕가위 감독은 최근, 1990년대 개혁 이후 상해의 호황기를 다룬 드라마 <번화>를 제작했으며, <패왕별희>의 천카이거 감독은 2019년 중국 정부가 기획한 선전 영화 <나와 나의 조국>의 연출을 맡더니 2021년에는 영화 <장진호>를 제작하며 지금은 완연한 애국주의 전문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의 부패를 다룬 주성치의 <007 북경특급> 역시 검열 선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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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문화 콘텐츠를 겨냥한 검열은 날로 엄격해지고 있다. 이미 상영 허가를 받은 영화조차 허가 취소되거나 금지되었다. 과거에 개봉한 영화도 검열의 대상이 되었으며, 위 검열을 통과하지 못하면 극장에 걸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디비디, 블루레이 제작 같은 상영 이후의 상업 활동도 크게 제약받는다. <풍림화산>도 그중 하나였다.
2021년까지만 해도 영화 개봉이 지연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감독과 배우들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거나, 열악한 촬영 환경에 불만을 가진 배우들이 재촬영을 거부했다는 익명의 관계자 전언만 들릴 뿐이었다.
당초 첫 편집본 분량은 7시간, 이후 디렉터스 컷은 3시간, 배우 고천락이 확인한 버전은 4~5시간이었다. 검열을 통과할 때까지 제작진은 여러 버전을 오가며 편집을 반복한다. 만약 무명 배우들이 출연하는 저예산 영화거나 가족물 같은 안전한 장르였다면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감독은 전작 인터뷰에서 홍콩인의 정체성을 지키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그만큼 이번 작품의 캐스팅에도 그가 보여주고 싶은 홍콩을 불러내려는 분명한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본다. 홍콩 영화사의 전성기에 활동한 배우들의 출연은 '기억 속 홍콩'을 떠올리기에 최적의 캐스팅이니까. 배우들의 이름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홍콩 영화의 부활"이라는 타이틀의 보도가 꽤 있었다.
1994년으로 되돌린, 디스토피아 홍콩
![[풍림화산] 메인 예고편ㅣ금성무 X 양가휘 X 고천락 주연, 홍콩 느와르의 전설적 부활 0-25 screenshot.png](https://img-cdn.ddanzi.com/files/attach/images/977701/185/127/878/20b386eb7bb106176cfa89e016bafa81.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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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나리오상 시간 설정은 현재 혹은 가까운 미래였다. 하지만 검열 이후, 시대 배경은 1994년으로 이동한다. 영화 속 사건이 홍콩 반환 이전에 벌어진 일로 재설정되었다. 하나의 중국 체제 아래 놓인 지금의 홍콩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어야 했다. <풍림화산>에서 묘사하는 세계는 두 가지다. 마약 유통 기업 하나도 통제하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함. 범죄에 연루된 권력층의 비리로 인해 드러나는 국가의 부재. 즉, 영화가 조명하는 건 안정된 홍콩이 아닌 무너져 가는 통치 체계였다. 디스토피아 홍콩.
대중의 평가는 확연히 갈린다. 7시간 분량의 초기 편집본을 2시간 안팎으로 압축하면서 인물의 서사가 급작스럽게 생략되었다. 그 탓에 관객들은 직관적으로 스토리와 감정선을 따라가기 힘들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희소성은 대단하다. 앞으로도 홍콩의 한 시대를 상징하는 대배우들이 이처럼 한 작품에서 다시 모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하나의 중국 아래 편입된 홍콩은 이제 안정을 찾았다는 것. 그 서사의 마침표가 바로 영화의 개봉일이다.
2003년 홍콩판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
2003년 7월 1일, 50만 명의 홍콩 시민이 거리로 나섰다. 홍콩 정부의 '기본법 23조' 입법을 반대하기 위해서다. 위 조항이 통과되면 정부는 국가 전복, 반란 선동, 국가 안전을 해치는 조직을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긴다. 사실상 자유를 침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한, 홍콩판 국가보안법이다. 자치를 위해 처음 대규모 시위에 나선 홍콩 시민들 사이에서 여론이 폭발한다. 그해 9월, 홍콩 정부는 해당 안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관객의 이목을 끄는 홍콩 대작이 7월 1일에 맞춰 개봉한다면 어떨까. 7월 1일은 홍콩 반환 기념일이자, 매년 민주화 집회가 열리던 날이기도 하다. 어렵게 덮어둔 불씨를 다시 꺼내 드는 한 방이 될 거다. 2025년 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린 섹션에서 처음 영화를 선보인 뒤, 공식 극장 개봉일이 정해진다. 10월 1일, 중국의 국경절이다.
표면적으로는 수익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려는 상업적 전략이다. 그 속엔 정치적 전략이 숨어 있었다. 홍콩의 포지셔닝을 전 세계에 확실히 각인 시키는 기회로 삼은 것이다. 카메라가 꺼지고 난 뒤 시작된 두 번째 연출에서 무엇이 지워져야 하고 허용되지 않는지 또렷해졌다. 이홍콩의 괴리, 끝내 수정되고 잘려 나간 흔적 위에 있었다.

기사 : 금성무스케잌
공지혜 기자 / jihyegong8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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