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진공을 허락하지 않는 것일까.
최근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일본과 한국을 잇달아 방문했다. 이 순방을 통해 현재 프랑스의 역량(capability)과는 별개로 국제사회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공백을 메우고자 하는 마크롱의 기대(expectation)를 확인할 수 있었다.
출처-<일본 총리 관저 홈페이지>
출처-<뉴시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프랑스는 일본과 한국을 차례로 방문하며 무엇을 하려 했던 것일까. 그리고 이런 마크롱의 행보를 맞아 이재명 대통령은 어떤 전략으로 대응했을까.
그 구체적 속사정을 들여다보려 한다.
다소 밋밋한 한국-프랑스 정상회담?
이번 정상회담 이후 강유정 대변인의 브리핑을 보면, 수사가 화려하다.
예를 들면,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국빈으로 대한민국을 방한한 첫 유럽 정상’
‘11년 만에 성사된 프랑스 대통령의 방한’
‘수교 140주년을 맞아 2004년 체결한 ‘21세기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
실질적인 결과물도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과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3건의 협정을 개정하고 11건의 양해각서 및 협력의향서를 체결했다. 이를 통해 양국은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 이행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말이다....
청와대가 발표한 한국-프랑스 공동언론발표문을 보면, 11년 만에 방문한 프랑스와의 정상회담치고는... 흠, 무언가 임팩트가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읽어 내려간 한-프 정상회담의 구체적인 성과는 아래 4가지였다.

첫째, 양국 간 경제 협력을 강화하여, 교역 및 투자를 더욱 확대해 가기로 하였습니다.
둘째, 첨단과학과 미래산업 분야에서의 공동 성장을 도모하고, 함께 혁신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환경을 적극 조성하기로 하였습니다.
셋째, 양국 우호 관계의 핵심인 문화 협력을 강화하고, ‘인적교류 100만 명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 노력하기로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양국은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로서 글로벌 과제에 대한 공동 대응을 한층 더 강화하기로 하였습니다.
위 4가지 내용이 국가 간 협력에서 중요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솔직히 프랑스 대통령이 굳이 11년 만에 한국을 찾은 이유라고 하기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리고 첫 번째로 말한 경제 협력 분야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양국 간 경제 협력을 강화하여 교역 및 투자를 더욱 확대해 가기로 하였습니다. 지난해 양국 교역액이 150억 불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여기서 만족할 수 없습니다. 2030년 200억 불 달성을 목표로 양국이 힘을 모아가겠습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정상회담 결과를 보고하는 것 치고 이건 마치 ‘밥 먹으면 배부르다’ 정도의 당연한 이야기다. 그냥 앞으로 교류하며 사이좋게 잘 지내겠다 정도의 의미다.
심지어 양국의 교역액 확대를 이야기하면서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새롭게 발생한 변화가 아니라 지난해 프랑스의 에어리퀴드사가 한국에 투자한 사례(약 35억 불 규모)를 제시했다. 11년 만에 국빈 방한한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치고는 무언가 밋밋하다.
여기까지만 보면, 마크롱 대통령이 왜 한국을 방문했는지, 그리고 왜 이재명 대통령이 이 정도로 대응했는지 무언가 갸우뚱하게 된다. 우리가 아는 이재명 대통령의 모습이 아니다.
왜 그런지, 그 안에는 어떤 수싸움이 있는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우선 한국-프랑스 정상회담보다 앞서 진행됐던 일본-프랑스 정상회담을 봐야 한다.
일본-프랑스 정상회담

지난 1일, 도쿄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가 ‘에너지파’을 쏘고 있다.
출처-<서울신문>
주로 경제와 문화 분야의 협력이 주를 이루었던 한국과 달리 일본-프랑스 정상회담은 안보 분야 협력이 눈에 띈다. 특히, 일본과 프랑스는 2010년대 이후 미국의 외교 전략으로 잘 알려진 ‘인도-태평양 전략’을 소생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트럼프 2기 이후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미국으로 인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힘의 공백을 일본과 프랑스가 서로 힘을 합쳐 메우려고 하는 모양새다.

출처-<일본 외교부 홈페이지>
일본 외교부는 홈페이지에 보도자료 형식으로 이번 정상회담의 결과를 정리해 두었다. 이에 따르면, 양국은 ‘모두 발언-양자관계-역내 이슈’ 순서로 합의했는데, 정치·군사 분야가 핵심을 이뤘다. 실제 다카이치 총리는 모두 발언(Opening Remarks)을 모두 안보 이슈로 채웠다.

“점점 더 심각해지는 국제 안보 환경 속에서 유럽-대서양과 인도-태평양의 안보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the security of the Euro-Atlantic and the Indo-Pacific is closely interconnected), ··· (일본은) 프랑스를 인도-태평양 지역에 영토를 보유한 국가로 인식하고(recognizing France as an Indo-Pacific nation with territories in the region), 안보, 국방, 경제 안보 등의 분야에서 프랑스와의 전략적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과 프랑스를 ‘유럽-대서양(Euro-Atlantic)과 인도-태평양(Indo-Pacific)의 안보’로 연결하고 있다.
원래 트럼프의 미국 이전에는 ‘유럽-대서양’은 나토와 미국이 중심, ‘인도-태평양’은 미국과 일본이 중심이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은 두 지역에서 발을 빼는 모양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미국의 영향력이 급격하게 줄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카이치 총리와 마크롱 대통령은 아시아의 일본, 유럽의 프랑스가 힘을 합쳐 미국의 공백을 메우자고 대놓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일본은 프랑스가 남태평양 지역에 보유하고 있는 몇 개의 섬을 근거로 ‘프랑스가 인도-태평양 지역의 국가’라고 인정한다고 밝힌 것이다. 이렇게 해야 프랑스가 이 지역에 영향력을 미치는데 명분이 생기기 때문에 일본이 이를 인정해 준 셈이다.
프랑스 영토
출처-<GIS by macpixxel>
그리고 일본은 마지막 역내 이슈(Regional issues) 파트에서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양 정상은 중국과 중국이 북한을 향한 정책 등 인도-태평양 지역 정세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The two leaders exchanged views on the situation in the Indo-Pacific, such as China and their policies toward North Korea.)
일본은 북한과 중국을 거론하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프랑스와의 안보 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북한을 거론할 때는 ‘북한에 영향을 미치는 중국의 정책’(their policies toward North Korea)이라고 표현한다. 결국 중국 견제를 위해 인도-태평양 전략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시인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의 공백으로 차질이 생겼던 이 전략을 지금 프랑스와 함께 살리고자 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의도 1 : 일본-프랑스 정상회담
그렇다면 프랑스 정부는 일본 그리고 한국과의 정상회담을 어떻게 전하고 있을까? 프랑스 대통령실(ELYSEE)이 홈페이지에 게시한 내용을 토대로 살펴보자.

지난 1일, 프랑스 대통령실이
일본-프랑스 정상회담 관련 공동성명을
게시하고 있다.
출처-<프랑스 대통령실 홈페이지>
먼저, 프랑스 대통령실이 발표한 일본과의 정상회담 공동성명(Joint Statement)은 일본 외교부가 발표한 내용과 거의 비슷하다. 전체 내용은 비슷하지만, 양은 일본 외교부 보도자료보다 상당히 길다. 한국과의 공동성명보다도 2배 이상 길다.
이 공동성명에서 프랑스는 제일 첫 번째 항을
1.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협력
(Cooperation in the Indo-Pacific region)
으로 제시한다.
핵심 내용은 바이든 행정부 당시 매일같이 언론에 도배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ree and Open Indo-Pacific)을 강조하며, 양국은 모두 인도-태평양 국가로서 이 지역에서 각자의 전략을 이행하는 데 협력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힌다.
이후 공동성명 순서는 이랬다.
2. 양자 협력
(Bilateral cooperation)
3. 국제적 이슈
(Global challenges)
4. 지역별 현안
(Regional situations)
5. 결론
사실상 두 번째 양자 협력을 제외하고 모두 군사, 안보 현안이 주를 이룬다. 즉, 전술했듯 프랑스는 트럼프의 외교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생긴 힘의 공백을 일본과 함께 메우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 것이다.
20세기 초반 미국의 등장으로 태평양 지역에서 자신의 자리를 내줘야 했던 프랑스는 트럼프로 인해 생긴 힘의 공백을 기회로 보고 일본과 손을 잡고 조금이라도 회복하고 싶은 것이다.
프랑스의 의도 2 : 한국-프랑스 정상회담
다음으로 프랑스 정부는 한국-프랑스 정상회담과 관련해 마크롱 대통령의 공동언론발표문이 아닌 공동성명(Joint Statement)을 게시했다.

지난 3일, 프랑스 대통령실이
한국-프랑스 정상회담 관련 공동성명을
게시하고 있다.
출처-<프랑스 대통령실 홈페이지>
공동성명은 공동언론발표문과 달리 양국이 문구를 합의한 것으로 양국 간 내용이 동일하다. 이번 공동성명은 양국이 5가지 공동의 우선순위(common priorities)에 합의했다고 밝힌다.
그런데 그 내용을 살펴보니, 이재명 대통령이 공동언론발표문에서 발표한 것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특히, 발표 내용의 순서가 달랐다. (공동언론발표문은 양국이 합의한 공동성명의 내용을 각국이 자유롭게 발표한다. 특정 내용을 생략할 수도 있고, 순서에 변화를 줄 수도 있다. 그래서 양국이 발표하는 내용의 순서나 내용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1. 정치, 국방, 그리고 안보 분야의 협력
2. 교역, 혁신 등 경제 분야의 협력
3. 기후변화 등 다자적 협력
4. 문화교류 협력
5. 국제협력
주로 경제와 문화 분야의 협력이 주를 이루었던 이재명 대통령의 공동언론발표문과 달리 양국의 공동성명은 첫 번째와 마지막 항이 정치 분야의 협력을 다루고 있다.
이중 마지막 5번째 국제협력 분야가 프랑스의 방한 의도를 잘 드러낸다. 이 부분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프랑스와 대한민국은 유엔이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다자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유엔 헌장에 대한 공동의 의지를 재확인하였다.”
(The French Republic and the Republic of Korea underline the essential role of multilateralism in which the United Nations occupies a central place and reaffirm their commitment to the Charter of the United Nations,)
“프랑스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프랑스가 주최하는 차기 G7 정상회의에 초청하고, 글로벌 거시경제 불균형을 시정하고 새로운 국제 파트너십과 연대 모델을 수립하기 위한 논의와 준비 과정에 대한민국이 적극 참여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The President of the French Republic invited his counterpart to take part in the forthcoming G7 summit, ··· work on correcting global macroeconomic imbalances and defining a new model of international partnerships and solidarity.)
프랑스가 트럼프로 인해 발생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일본에 손을 내밀었다면, 트럼프가 붕괴시키고 있는 국제 질서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한국에 손을 내밀고 있다는 내용이다.
프랑스는 유엔을 중심으로 한 다자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고, 나아가 2026년 프랑스에서 개최하는 G7 정상회의에 한국을 공식적으로 초청했다. 그러면서 이번 G7 정상회의는 글로벌 거시경제 불균형을 시정하고 새로운 국제 파트너십과 연대 모델을 수립하는 장이라고 말하고 있다.
근데 잘 보면 이는 트럼프의 미국이 무너뜨린 것이다. 즉. 프랑스는 국제 사회에서 미국이 무너뜨린 국제 질서, 미국과 유럽이 중심이 되어 구축해 온 이 질서에 발생하고 있는 힘의 공백을 자신이 채우고자 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국제적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는) 새로운 강자 ‘한국’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랑 같이 할 거 맞죠?
이재명의 실용 외교
여기서 생각해 볼 점은, 프랑스가 자신의 계산 속에서 한 제안이라고는 하나, 한국 입장에서 이 제안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대대적으로 홍보할 만한 지점이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은 공동언론발표문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G7 정상회의에 초청했다는 점을 드라이하게 언급하는 수준에서 넘어갔다.
일본의 다카이치 총리는 프랑스와의 정치, 안보 협력을 여러모로 강조했었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AI, 원자력 협력 등 프랑스와의 산업 협력을 주로 언급했다.
그 이유는 한국-프랑스 공동성명 말미에 있다.
“프랑스와 대한민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을 자유롭고 안전하며 개방된 지역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The French Republic and the Republic of Korea will exert efforts to contribute to making the Indo-Pacific a free, safe and open region,)
이재명 대통령의 공동언론발표문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이 대목이 공동성명 말미에 살짝 삽입되어 있다. 이 내용은 일본과의 순방에서 알 수 있듯이 프랑스의 의중이 반영된 대목이다.
프랑스는 이 대목을 더 강조하고 싶었겠지만, 한국 정부로서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앞서 살펴봤듯이, 프랑스가 일본과 강조하는 ‘인도-태평양’이란 기본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적대적 내용이 기저에 깔려 있다. 이를 한국이 그대로 수용할 경우, 한국은 독자적 외교가 아닌 자유주의 진영에 편입되는 외교로 전락하게 된다. 즉, 외교에서 변수가 아닌 상수로 전락하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외교가 아닌, 트럼프에겐 ‘피스 메이커’의 자리를 만들어주면서, 동시에 시진핑에겐 ‘통신보안’ 농담을 던지며 냉랭했던 한중 관계를 회복하는 외교를 보였다.

지난해 8월, 트럼프 대통령에게
피스메이커가 되어 달라고
요청하는 이재명 대통령
출처-<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시진핑 주석이 준
스마트폰 선물을 받으며
"통신보안은 잘 됩니까?"라며
농담하는 이재명 대통령
이번 프랑스와의 외교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프랑스가 원하는 다자주의와 G7 정상회의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최소한의 합의 정도를 공동성명 말미에 넣었고, 실제 공동언론발표문에서는 경제 분야의 실질적인 협력만을 내세우는 외교를 보였다. 이는 중국과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면서도 프랑스를 통해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전략이다. 이 전략으로 인해, 한국은 어느 국가도 적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이익은 챙기는 외교를 선보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11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그 이유는 전술한 공동성명에서 알 수 있었다. 자칫하면 프랑스가 원하는 대로 끌려갈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가 지금처럼만 해준다면, 이런 상황은 오히려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편집: 임권산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kuy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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