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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 번, 수천만 원짜리 도박

 

인생에서 딱 한 번, 혹은 그 이하로만 겪게 되는 일회성 고비용 비즈니스가 있다. 결혼식이 그렇고, 장례식이 그렇다. 소비자들에겐 살면서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비교 경험이 없고 감정적 부담이 커서 주로 공급자가 갑이 되는 시장이다. 비용이 어느 정도 드는지, 어떤 선택이 좋은 선택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만들어낸 시장이다. 선거 출마도 정확히 그 구조다.

 

기초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를 예로 들면, 최소 5,000만 원 이상의 비용을 각오해야 한다. 선관위가 못 박아둔 선거비용 제한액이 그렇다. 법적으로 정해진 금액이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로는 추가적인 경제적 부담을 더 떠안아야 한다. 선관위가 못박아둔 5,000만 원은 당선과 낙선, 두 가지 가능성밖에 없는 도박판에 참여하기 위한 최소 판돈인 셈이다.

 

후보자들은 선거 기간 내내 현수막, 선거공보, 명함, 유세 차량, 사무실 임대, 인건비 등에 비용을 써야 한다. 처음 도전하는 정치인에게는 막막하고 까마득한 일들의 연속이다. 무엇이 합법이고 무엇이 불법인지조차 불분명하다. 그러면서도 선거일은 다가온다.

 

이 구조 속에서 정치 컨설턴트 시장이 탄생했다. 합법적인 컨설턴트도 있고, 불법적인 브로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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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링크)

 

 

합법적 컨설턴트: 패키지 서비스를 팝니다

 

먼저 구분이 필요하다. 정치 컨설턴트는 그 자체로 합법적인 직업이다. 헤드헌터도, 공인중개사도, 로비스트도 모두 넓은 의미의 브로커 범주에 들어가듯, 정치인에게 당선을 위해 조언하는 정치 컨설턴트의 존재는 선거 시장에서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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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링크)

 

이들이 정치 신인의 출마를 기획하는 방식은 체계적이다. 지역구 선정부터 시작해 급조한 자서전 출판, 출판기념회 기획, 홍보 문자 발송, 유세차·현수막 제작, SNS 대리 관리까지 선거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일괄 대행한다. 돈을 더 내면 회원 수가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후보자 정보를 반복 게시하고,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홍보용 여론조사’도 권유한다. 여기까지는 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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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링크)

 

여의도 곳곳의 정치 컨설팅 업체들은 대부분 출판·인쇄업 간판을 내걸고 있다. 의정보고서와 선거공보물 제작이 꾸준한 수요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들의 서비스에는 ‘기획비’라는 항목이 있는데, 부르는 게 값이다. 패키지라는 이유로 개별 업체보다 높은 비용을 요구하지만, 이것 역시 불법은 아니다.

 

합법적 컨설턴트에게도 구조적 문제는 있다.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후보가 당선되면 성과를 공유하지만, 낙선해도 컨설팅 명목을 받은 수천만 원을 돌려주지는 않는다. 후보자는 모든 리스크를 혼자 떠안는다. 컨설턴트는 다음 선거철에 또다른 후보를 찾아가면 그만이다.

 

 

불법 브로커: 합법의 경계를 넘는 순간

 

진짜 문제는 합법적 컨설팅이 불법 영역으로 넘어가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그 경계는 생각보다 흐릿하다.

 

상대 후보에게 불리한 정보를 짜깁기해 유포하거나 여론조사를 조작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대다수 컨설팅 업체는 거절한다고 말하지만, 출마자가 원하면 이를 전문적으로 하는 브로커를 연결해 준다. 합법 컨설팅에서 불법 브로커로 연결되는 고리가 여기에 있다.

 

공천을 미끼로 금품을 요구하는 것도 불법이다. 정치권에서 공천 헌금 시세표는 새롭지 않지만, 여전히 충격적인 이야기다. 구의원은 5,000만 원, 시의원은 1억 원을 써야 한다고 한다. 불법 브로커는 이 돈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거나 누구에게 돈을 줘야 하는지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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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링크)

 

불법 브로커에도 등급이 있다. 정치 컨설팅 업체를 운영하며 여론조사까지 직접 설계하면 A급, 지역에서 조직을 동원하거나 컨설팅 정도를 할 수 있으면 B급, 별다른 역량이 없으면 C급으로 분류된다. C급은 선거철만 되면 여기저기 선거캠프를 떠돌아다닌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명태균이다. 1차 여론조사로 후보자 이름을 각인시키고, 2차 조사에서 높은 인지도를 끌어내는 방식을 썼다. 컨설팅을 넘어 공천 과정에 직접 개입했고, 그것도 여의치 않을 때는 대통령·영부인과 통화해 공천을 따냈다. 그 정도로 공을 들였으니, 당선된 김영선 전 의원의 세비 절반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유명한 ‘세비 반띵’ 사건이다. 그런데 최근 1심에서 돈을 준 사람, 받은 사람 모두 무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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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링크)

 

불법에 손을 댔다가 의원직을 상실한 사례도 있는데, 이상직 전 의원은 당내 경선에서 권리당원들에게 일반 시민인 것처럼 여론조사에 참여하도록 유도했다가 징역형이 확정되며 의원직을 잃었다. 신영대 의원 역시 유사한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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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링크)

 

 

승자독식이 만드는 절박함

 

정치판에는 이런 말이 있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정치인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다.”

 

선거는 승자독식이다. 2등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 구조가 후보자의 심리를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당선되면 4년간의 의정 활동비와 각종 활동 기반을 얻지만, 낙선하면 커다란 경제적 부담과 감정적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이 구조에서 “조금 더 쓰면 당선될 수 있다”라는 말은 강력한 유혹이 될 수밖에 없다.

 

후보자 관점에서 불법 브로커에게 건네는 돈은 일종의 투자금이다.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혹은 당선무효형만 안 받으면 된다는 판단이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런 식으로 당선된 정치인이 임기 내내 본전 회수에 혈안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정치인들이 이권 사업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여기서 만들어진다.

 

 

브로커의 명함을 읽는 법

 

불법 브로커를 식별하는 방법이 있다. 명함이 단서다.

 

100%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선거를 앞두고 ‘특보’, ‘특별보좌관’을 달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를 모르는 이들은 보좌관보다 높은 지위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무급 명예직이다. 정치인들이 조직을 동원하기 위해 붙여주는 허울 좋은 직함일 뿐이다. 직업 정치인이나 당 관계자가 아님에도 정당 관련 내용이 명함에 들어있다면 조심하는 것이 좋다.

 

불법 브로커의 가장 큰 무기는 인맥이다. 학연·지연·혈연을 동원하고, 정치인과의 사진을 증거로 제시한다. 실력 없는 브로커일수록 더 확신에 차서 말한다. “무조건 공천 받을 수 있다”라는 식이다. 이들에게 선거는 4년마다 돌아오는 사업 시즌이다.

 

 

정보가 방패다

 

현실적으로 브로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정치인은 자기 자본과 재산이 많고 정치력이 있는 사람이다. 정치판에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

 

인간의 욕망과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한, 정치 브로커 시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선거가 있는 한 후보자는 생겨나고, 후보자가 생겨나는 한 브로커도 생겨난다. 제도적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공직선거법이 아무리 촘촘해도,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이의 정보 격차는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장의 존재를 아는 것 자체가 브로커의 설 자리를 줄인다. 웨딩 시장에서 플래너의 마진 구조가 공개되자, 다이렉트 웨딩이 늘어났다. 장례 시장에서 불합리한 관행이 알려지자 표준 절차를 요구하는 유족이 늘어났다. 선거판도 마찬가지다.

 

브로커들은 후보자의 무지와 절박함 위에서 산다. 그 토양을 걷어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이러한 시장의 존재를 널리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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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보좌관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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