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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주
본 연재는
일본에서 대학교수로 살고 있는
이헌모 교수가
약 35년간 일본에 살며
체득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일본 조직 사회를 분석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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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가 수상이었을 때의 일이다.
아베 수상의 ‘긴급사태 선언’이 임박했다는 뉴스가 돌자, 내가 근무하는 대학에서는 그에 따른 대응을 논의하기 위해 긴급히 ‘위기 대책 본부 회의’가 개최되었다.

그런데....
회의 방향이 이상했다. 의제에 관한 핵심과 중점을 논하기보다는 지엽적인 문제와 사례를 반복하여 검토하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이런 현상은 비교적 완만한 경영으로도 존립할 수 있는 대학 조직뿐 아니라 민간기업, 공무원 조직 등 수많은 일본 내 조직에서 비슷하게 나타난다.
일본에 잠깐이라도 살아본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특히 관공서, 은행 등에서 이런 현상을 목격한 바 있을 것이다. 무얼 하더라도 매뉴얼에 따라 번잡한 서류 작성과 반드시 찍어야 하는 도장들. 21세기 정보화 시대를 사는 지금도 여전히 일본에선 인감도장과 막도장이 필수품이다. 지금도 초등학교 졸업할 때 학교에서 도장을 새겨 졸업 선물로 주기도 한다.
일본 조직 사회가 기능부전을 일으키는 요인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책임 회피의 사회 : 비생산적인 장시간 회의
첫 번째로, 책임 소재의 불분명이 가져오는 혼란과 지체를 들 수 있다.
가령 톱 다운의 원맨 체제의 경우라면, 위에서 하달된 지시 사항을 수행하기 위해 관련 부서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책임 소재가 애매모호한 경우는 뒤탈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모두가 책임을 분산하여 걸머지는 형태를 띠게 된다. 책임을 모두에게 분산하여 나누어 갖는 형태를 띠지만 최종적으로는 모두가 책임이라는 일련탁생一蓮托生의 로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세부적인 사항 하나하나를 두고도 꼼꼼하게 검토하게 되며, 각종 시뮬레이션을 돌려가며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의 대응책과 그런 일의 발생을 억제하기 위한 회피책을 모색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연히 사안의 본질을 가다듬기보다는 지엽적인 사안의 검토와 논의에 무한정의 시간이 투자된다. 당연히 회의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흔히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넌다는 말이 있는데, 일본 조직은 돌다리를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고 강력한 다이슨 진공청소기로 깨끗이 미세먼지까지 제거한 후에야 비로소 발걸음을 떼는 식이다. 당연히 시간이 걸린다.

일본 회사의 흔한 사무실 모습
출처-<콘텐타 M>
물론, 이런 과정이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작부터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통한 검토와 보완을 반복하고 체크하므로 의사결정이 늦어지는 큰 단점이 있긴 하지만, 한번 결정된 사안에 대해서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될 수 있으며, 그 과정에 부실 공사라든가 적당주의가 자리하기 힘든 장점도 있다.
따라서 완제품이나 완성된 사안은 거의 퍼펙트에 가깝게 보이고 느껴져야 한다. 다만 주의가 필요한 것은 퍼펙트를 보장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렇게 보이게끔 연출이 된다는 의미이다. 또한 한번 이루어진 결정 사항은 그 후 금과옥조가 되어 ‘전례 답습 주의’에 의해 조직의 새로운 전통으로 켜켜이 쌓여가게 된다. 이로 인해, 새로운 도전 및 혁신이 쉽지 않게 된다.
짬봉된 결론만 살아남는 사회
두 번째로,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이나 견해는 금기시된다.
이런 주장이든 저런 주장이든 온전히 그 주장 자체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이 주장과 저 주장의 내용이 타협된, 즉 짬뽕된 주장이 결론으로 정해지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도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부터 의도했다기보다 ‘모두’가 합의할 때까지 서로 다른 주장을 섞는 과정을 지난하게 거치며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어쩌다가(?) 얻어걸리게 된 아이디어에 가깝다. 높은 확률로 좋은 아이디어를 얻는 방식이 아니다.
일본 조직에서는 기발한 착상으로 인한 아이디어가 나오더라도
“그거 좋네, 엑설런트!”
라며 바로 결정되지 않는다.
전술했듯, 각종 시뮬레이션 검증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애초의 아이디어는 날카로운 조각칼로 깎이고 다듬어지게 되며, 종국에는 그에 관계되는 모든 구성원 또는 부서의 작품으로 승화된다.
왜 특정 주장이 온전히 살아남을 수는 없을까?
일본 조직 문화에서는 팀워크가 최고의 선이며, 특별히 튀는 존재는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오베야주의(大部屋主義)’를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일본의 조직을 보면 보통 과課 단위의 규모가 기본이 된다. 또한 같은 공간의 오피스에는 이런 과가 몇 개씩 들어가 있는 경우도 흔하다. 이런 일본의 조직 형태를 오베야주의大部屋主義라 부른다.

큰 사무실 안에
각종 과 단위의 부서들이
같이 있다.
이런 형태를 ‘오베야주의’라 한다.
출처-<monoist>
오베야주의는 과 단위로 일을 하며 구성원은 ‘팀워크를 최고선으로 여기는 업무 방식’이다. 혼자 튀거나 처지지도 않는 것이 특징이며, 업무 성과에 대한 평가는 팀원 전체에 대한 평가가 된다. 만일 구성원 하나가 부재중이더라도 다른 팀원이 그 일을 커버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직장인들은 알 것이다. 장기간 해외 출장을 가게 될 때 혹시라도 내가 없는 동안 업무에 지장이 생기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하지만, 출장 끝나고 복귀해 보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회사는 평소처럼 잘 굴러가고 있다는 것을. 그렇다면 바로 위의 경우에 해당된다. 이런 조직은 개인의 능력보다는 팀플레이가 우선시되기에 고과 평가 등의 논공행상이 어렵다. 그런 모순을 극복하는 것이 ‘연공서열주의’이다.
비록 자신의 노력과 결실이 바로 인정받고 평가되지 못하더라도, 서열에 따라 순차적으로 승진을 하고 호봉과 연봉도 그에 맞추어 상승하므로, 처음에는 다소 불만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런 조직의 관행에 적응하면서 오히려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이런 조직 형태는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을 이끌어내기보다는 팀에 동조하고 화합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게 되므로 조직의 능률에 한계가 있다.
특별히 잘하지도 못하지만 그렇다고 못하지도 않는 존재가 되며, 그런 포지셔닝이 무난한 조직 생활을 보장한다. 특별히 튀는 존재가 되어봐야 별 메리트가 없다. 또한 이런 조직은 팀 단위의 업무 수행 형태를 띠므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며 창의적인 업무 수행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하... 회사 생활 적당히 중간만 가자...
출처-<Pakutaso>
이런 조직은 의사결정 시 만장일치를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이는 일본 사회 특유의 와(和, 화합)를 중시하는 에토스와 결을 같이한다. 어떤 사안을 두고 대립하는 의견과 그러한 부서가 있으면 시간을 들여 서로의 의견과 이해를 조절하며 다듬어간다. 이런 과정을 흔히 네마와시根回し(사전 조정) 또는 스리아와세摺り合わせ(의견 조율)라 표현한다.
서로가 가진 정보나 주장을 내고 스리아와세라는 조율 과정을 거치면서 협상을 한다. 우리가 이걸 양보하는 대신 무얼 얻을 것인가가 관심사가 되며 이런 과정을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당사자나 부서와 하나하나 조율 과정을 거치는데, 이를 통상적으로 네마와시라 한다. 당연히 타인 또는 타 부서와 상충되는 주장이나 이해를 잘 조정하며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 업무능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높은 평가를 받게 되며 출세하게 되는 것이 상식이다.

우리 이번 사안은 이렇게 타협봅시다~
마무리는 만장일치
스리아와세(의견 조율)와 네마와시(사전 조정)와 같은 지난한 과정을 거치게 되면, 궁극적으로는 반대나 이의 제기가 없는 만장일치로 마무리된다. 모두가 해피해야 된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 치고 가재까지 잡는 것이다. 그러나 사안의 입안부터 시작하여 보스의 최종 결재를 받기까지 품의 과정은 당연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결재를 받는 과정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하니 도장 하나하나에 얽힌 애환사가 끊이질 않는다.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의식 중의 하나로 마츠리, 연회, 망년회, 신년회, 결혼식 피로연 등의 모임이나 행사를 마무리할 때 행하는 ‘잇뽕지메一本締め’ 또는 ‘삼봉지메三本締め’라는 독특한 박수 문화가 있다. 이는 주최 측이 행사를 마무리하면서 참석해 준 하객에게 감사하는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 이 의식은 단순한 박수가 아니라 단결력과 감사를 표하는 중요한 의식이다.

잇뽕지메
사회자의 지시에 따라 참석자는 모두 손바닥을 벌리고 ‘짝 짝짝 짝짝짝 짝짝짝짝~’ 같은 리듬으로 서로 맞추어 박수를 친다. 마지막에 다함께 박수를 ‘짝’ 치며 마무리를 하는데, ‘잇뽕지메’라는 것은 일본어로 ‘하나로 묶는다’는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단체 활동이나 모임을 마무리하며 모든 사람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마무리를 하는 중요한 의식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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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모 교수가 신간을 출간했다.
본 기사는
<갈림길의 일본>은 정치, 경제는 물론 사회, 문화까지 '지금의 일본'이 된 이유를 추적한다.
3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본에서 '경계인'의 시각을 유지해 온 저자는 무엇을 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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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아래 2개의 연재 역시 이헌모 교수의 신간에 담긴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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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화·예술이 쇠퇴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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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한국인 대학교수의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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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임권산
마빡 디자인 : 꾸물
기사 : 이헌모
(일본 중앙학원대학 법학부 교수,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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