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무이야 추천47 비추천0

 

1986년 3월

 

fsdfd.JPG

 

대학 첫 등교, 백양나무 늘어선 길을 나처럼 두 볼 볼그스레한 또래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르고 있었다. 목이 말랐다.

 

그 길의 첫 건물, 학생회관. 휴게실을 찾던 분주한 시선이 학생회관 정문으로 이어진 낮은 계단을 올랐다. 아침 햇살에 밀린 어둠이 성성하게 기웃거리던 로비 한쪽, 작은 브라운관이 있었다.

 

얼마나 많이 복사하고 재생했을까? 당장 꺼져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작은 브라운관이 흐리고 헤진 화면을 죽을힘을 다해 토해내고 있었다. 내 두 눈은 갈증을 씻어 내듯 쏟아지는 희뿌연 주사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1980년 5월

 

나는 검은 학생모를 반듯하고 봉긋하게 눌러쓴 까까머리 14살 중학생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대문 사이 삐딱하게 꽂힌 조선일보를 빼 마루 안에 던져 넣으려던 참이었다.

 

han_249045_1[361144].jpg

출처 - <조선일보>

 

1980년 5월의 어느 날이라고만 기억하는 그날, 조선일보 1면에는 光州의 이름이 금남로와 함께 불타고 있었다. 얼마지 않아 불타던 광주는 반란의 도시가 되고, 또 얼마지 않아 북한의 사주를 받은 빨갱이 도시가 되었다. 광주 시민은 그렇게, 속절없이 죽어서도 벗지 못하는 빨갱이 탈을 뒤집어썼다.

 

반공 포스터와 반공 표어로 작은 상이라도 받고 싶어 하던 내게, 박정희 정권이 공들여 만든 반공키드였던 내게, 1980년 봄이 사라진 서울에 살던 내게도 빛고을 광주는 학살자 전두환이 광주 시민 숨통을 조이며 씌운 빨갱이 탈들이 춤추는 반란의 도시였다.

 

1986년 3월

 

학생회관 로비. 작은 브라운관 안, 곤봉으로 머리를 깨고 군홧발로 쓰러진 사람을 짓이기던 이들은 낯익은 군복을 입고 있었다.

 

형이 입고 삼촌이 입던 낯설지 않은 군복. 6.25마다 틀어대던 포연 자욱한 전쟁영화에서 인민군과 싸우다 산화했던 대한민국 군인들이 입던 군복이었다. 같은 군복을 입은 대한민국 군인들이 1980년 광주에서, 1986년 작은 브라운관 안에서, 나와 같은 대한국민, 광주 시민을 도륙하고 있었다.

 

캡처6.png

출처 - 영화 <란12.3>

 

미친개들처럼 눈이 뒤집힌 군인들은 마주치는 모든 순하고 여린 생명의 숨통을 갈기갈기 물어뜯으며 금남로를 뛰어다녔다.

 

기척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눈물은 예리한 조각도가 되어 금남로 검붉은 아스팔트 위 무수한 샛별이 된 광주 시민의 눈빛을 내 망막에 깊고 선명하게 새겼다.

 

1987년 5월

 

어김없는 5월의 신록과 파란 하늘을 어김없이 최루 가루가 뒤덮었다.

 

빵 빵 빵 빠바빠빵 빵. 멈추지 않는 굉음.

 

29428_56959_0231.jpg

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하얀 연무가 5월 모란처럼 머리 위에서 눈부시게 터지고, 바늘처럼 쏟아지는 하얀 가루에 눈알이 터져 마그마처럼 두 볼을 찢으며 흘러내렸다. 숨 쉴 수 없는 코 대신 벌린 입은 구역질을 뿜고,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끈적한 숨을 꺼억꺼억 마지막처럼 몰아쉬면서도 나는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주먹만 한 내 심장이 쉬지 않고 뿜어대던 예수의 사랑은 돌도, 화염병도, 쇠 파이프도 들지 못하는 무기력이 되었다. 그 하찮은 무기력은 나만 한 것들이 서로 죽일 듯 쫓고 쫓기는 전장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중력이 되었다. 스스로 설 수 있는 최전선에서 자책과 비겁의 총탄에 벌집이 된 내 몸뚱어리는 무덤 같은 컴컴한 참호 속으로 매번 굴러떨어졌다.

 

L20170601.22002220207i1.jpg

1987년 6월, 이태춘 열사의 영정 사진을 들고 행진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

출처 -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살덩이가 터져나간 자리에 하얀 최루 가루가 지혈제가 되어 소복이 내려앉았다. 새살이 돋았다. 새살이 돋은 몸뚱어리는 기어코 참호를 기어 나와 하릴없이 언저리를 맴돌았다.

 

그렇게 힘겹게 참호를 기어오른 그날, 깍지 낀 친구의 품에서 초점을 잃은 또 다른 친구의 눈빛이 동백꽃처럼 툭!

 

길 위로 떨어졌다.

 

2024년 12월

 

국회의 앞마당이 사선(死線)이 된 날.

 

47ff53c4-e0eb-4ae7-ac50-7bc984523daa.png

 

1980년 5월 광주 금남로 하늘을 가르며 M-60을 난사했던 헬기가 어둠을 잊은 서울 여의도 밤하늘에 다시 돌아왔다. 1980년 5월 광주 시민을 학살했던 부대의 군인들을 쏟아냈다.

 

스크린샷_2026_04_13_오후_4_14_29.png

출처 - 영화 <란12.3>

 

잠옷 바람, 슬리퍼가 벗겨진 맨발로 12월 여의도 찬 아스팔트에 선 서울 시민들이 맞섰다. 총부리를 작은 가슴에 당겨 안고 낯설지 않은 군복을 입은 군인들을 온몸으로 막아섰다. 시커멓고 육중한 바퀴를 굴리며 질주하는 장갑차를 실낱 매듭 같은 팔짱으로 막았다.

 

1986년 3월 작은 브라운관 속 광주에서, 1980년 5월 광주에서 서로를 지키던 같은 눈빛이, 2024년 12월 4일 새벽 여의도 칠흑 같은 아스팔트 위에 무수한 샛별이 되어 빛나고 있었다.

 

그냥 막 살 걸 그랬어

 

우리는 어떻게 12.3 내란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

 

4f3e015c-d2db-49fb-9531-cbbdc44d09d5.png

 

707부대를 실은 헬기가 1980년 광주에서처럼 제시간에 도착했다면? 수도방위 사령부 부대원을 실은 군용차가 제시간에 서강대교를 넘었다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가정이 하나라도 이루어졌다면 윤석열의 내란은 성공했을까? 운이 좋아서, 정말 운이 좋아 우리는 12.3 내란을 이겨낸 것일까?

 

캡처5.png

출처 - 영화 <란12.3>

 

왜 707부대는 시민에게 발포하지 않았을까? 윤석열 내란 세력의 지휘를 받던 군은 광주 때와 달리 왜 매 순간 멈칫했을까?

 

대한민국의 법치를 깡그리 무시했던 윤석열 내란 세력의 기세라면, 설사 국회가 계엄 무효를 의결했어도 국회 본회의장에 난입해 국회의원들을 끌어내고 몰살하며 국회의 의결을 무력화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까?

 

이 질문의 답은 영화에서 잠깐 비췄던 민주당 보좌관의 독백 같은 메시지에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막 살 걸!"

 

캡처9.png

출처 - 영화 <란12.3>

 

이 독백이 윤석열과 김건희의 발악에도 군과 경찰이 머뭇거렸던 이유, 드러누운 시민을 향해 장갑차를 몰지 않은 이유, 부여잡은 총구가 불을 뿜지 않은 이유, 군인들과 시민들 누구도 피를 흘리지 않았던 이유이다.

 

하루하루 작은 일상을 막 살지 않아, 광주의 시민처럼 우리도 외면하고 막 살지 않아 무도한 내란, 친위 쿠데타는 성공할 수 없었다.

 

이 독백은 노무현 대통령과 노회찬 의원의 사멸의 결단과도 맥을 같이 한다.

 

1767686_10.jpg

p1065584693846398_461_thum.jpg

 

노무현 대통령과 노회찬 의원이 보여주었던, 강고한 윤리적 절개와 사멸(死滅)의 결단에 이르는 자기 성찰. 하루하루 막 살지 않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 하루하루를 막 살지 않아서 우리는 12월 3일 밤 여의도에서 수만 명의 노무현이 되고, 수십만 명의 노회찬이 되어 사멸의 결단과 마주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막 살지 않은 나의 동지, 우리 모두에게 깊은 사의와 존경을 표한다. 그날 그 모습을 울며 웃으며 다시 볼 수 있게 해준 이명세 감독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hq720.jpg

 

 

한 줄 영화평.

<란 12.3>에서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이명세를 재회하다.

 

비정기 무이야.jpg

 

 

편집 : 금성무스케잌

마빡 디자인 : 꾸물

기사 : 무이야

 

제보 및 연재 문의 

 

ddanzi.mast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