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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

 

삶의 목적이 행복에만 있지 않다고, 지난 글에서 강순희 할머니의 회고록을 소개하며 말했었다. 며칠 후 말로만 듣던 악뮤의 신곡을 처음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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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MU -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 (Joy, Sorrow, A Beautiful Heart) M/V(링크)

 

‘기쁨 뒤에 슬픔이 오는 건/아름다운 마음이야/쫓아내지 말고 품어주어라/아주 예쁜 돌이 된단다/햇빛 뒤에 그늘이 있는 건 사랑스러운 모습이야/밝은 미소를 짓지 않아도/사랑할 이유가 많단다/너의 웃음과 조화로운 너의 눈물/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어/흐린 날도 화창한 날도 시린 날도/끼우고 나면 다 퍼즐이 될 거야/기쁨 뒤에 슬픔이 오는 건 아름다운 마음이야/겁내지 말고 마주 앉아라/찬란한 그림이 된단다’

 

어떻게 이런 가사를 쓸 수 있을까 감탄하며 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뻐하기만을 바라며 살 수는 없고 기쁨 뒤에 슬픔은 존재 자체로 앞서 있던 기쁨의 증명이기에. 나의 웃음과 눈물은 조화롭고, 그래서 함께 모아 놓고 봐야 더 아름답다. 마치 불교의 연기론을 떠올리게 하는 인과와 상호 의존이다. 그래서 하루하루의 행복을 추구하기보다는 그렇지 않은 날도 내 삶의 일부로 안고 가야 한다. 고통스러웠던 어떤 하루를 행복에 실패한 날로 규정할 게 아니다. 악뮤의 가사에 빗대어 말하자면 그건 내 삶의 퍼즐 가운데 하나이고, 그런 날도 얼마든지 찬란한 그림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찬란한 그림이 꼭 행복한 그림을 의미하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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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링크)

 

 

아들을 잃은 두 아버지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은 딴지일보 기자로 일하던 시절이었다. 세월호에 대한 첫 보도를 접한 것도 ‘대학로 벙커’의 딴지일보 사무실에서였다. 당시 세월호 참사 관련 취재를 몇 차례 나갔었는데 전문가 인터뷰를 따러 촬영 요원과 여수에 내려가기도 했다. 안산에는 딱 한 번 갔다.

 

그날 저녁 안산에서 세월호 유가족 두 분을 만났다. 두 분 모두 세월호 참사로 단원고에 다니고 있던 아들을 잃은 아버지였다. 그 학생들의 이름을 지금도 기억하지만, 굳이 여기에 밝히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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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 링크)

 

사고가 일어난 해와 같은 2014년이었지만 시간이 흘러 실종자 수색 작업도 사실상 종료된 지 한참이 지난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피해보상에 대한 정부와 유가족협의회 간의 대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던 시기였다. 준비해 간 질문과 두 분의 답변 내용은 열두 해가 지나 많이 희미해졌다. 그래도 두 분의 모습과 그 자리의 분위기만큼은 생생하다. 이제는 더 이상 흥분할 기력도 남아 있지 않은 듯 시종일관 담담하게 말씀을 이어갔지만 그럼에도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이 입에서 나오는 모든 단어와 표정에 짙게 배어있었다. 처자식 없는 미혼의 30대 초반 남성이었던 내가 취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에서 느꼈던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담함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참담함 속에는 얼마나 비통한 심정일지 자식을 키워본 경험도 없는 입장에서 그저 상상 밖에 할 수 없는 데에서 오는 미지의 공포도 있었다.

 

 

자식 잃은 슬픔도 예쁜 돌이 될 수 있나

 

매년 4월 16일이 다가올 때마다 그날의 취재가 떠올랐던 것은 아니다. 세월호 10주기 때에도 새삼 너무나 흘러버린 시간에 놀라고 만약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어느덧 30대를 바라보고 있었을 학생들의 나이를 헤아려보니 또 아깝고 안타까웠을 뿐이다. 더 이상 딴지 기자가 아니게 된 지 너무 오래되어 버려서 12년 전 안산에서 두 아버지를 만난 사실조차 잊고 살았다.

 

그분들의 지난 12년은 어땠을까. 2014년 그날 이후 몇 년 동안은 가끔 카카오톡에서 그분들의 프로필 사진을 확인하기도 했었다. 한 분은 최소 5~6년 이상 프로필 사진과 메시지가 그대로였다.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과 ‘OO아 보고 싶다’는 메시지. 지금도 ‘OO아버지’로 카카오톡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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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MU -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 (Joy, Sorrow, A Beautiful Heart) M/V(링크)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좋고 나쁜 일들이, 모든 기쁨과 슬픔이 조화로운 하나의 그림이 될 수 있다고 믿지만 자식 잃은 슬픔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예쁜 돌이 될 수 있나?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다. 그건 매일 도착하는 슬픔이겠다. 그 어떤 새로운 기쁨을 남은 삶의 어떤 날 몇 번이고 만난다 해도 그 슬픔만큼은 어느 한 곳에 콕 박혀 절대로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게 아닐까. 세상에 단 하나, 아름다움으로 남을 수 없는 슬픔이 있다는 그게 아닐까. 

 

 

12년 만에 감히 드리는 위로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려는 오랜 싸움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유가족들은 진실을 은폐하려는 정부와 싸우면서 또 한편으로는 ‘언제까지 그 얘기냐’라는 일부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과도 싸워야 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자식을 잃은 원통함에 억울함까지 짊어지워졌다. 

 

남편 잃은 아내, 아내 잃은 남편, 부모 잃은 자식을 부르는 말은 있어도 자식 잃은 부모를 부르는 말이 없다는 걸 알만한 사람은 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말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음이다. 한국어는 참척(慘慽)이라는 말로 그 슬픔을 설명했다. ‘참혹할 참’에 ‘슬플 척’. 차마 그런 사람을 일컫는 말을 만들지 못하고 고통에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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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MU -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 (Joy, Sorrow, A Beautiful Heart) M/V(링크)

 

아무리 기억을 헤집어봐도 12년 전 그날 두 분의 아버지와 헤어지며 무슨 말씀을 드렸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감히 어떤 위로를 드릴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 같기는 하다. 열두 해가 흘렀지만 여전히 그분들께 감히 어떤 위로의 말씀도 드리기 어렵다. 그 사이 나 또한 아들을 둔 아버지가 되었지만 2014년 4월 16일 이후 그분들이 보낸 하루, 하루를 나로서는 도저히 가늠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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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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