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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주

 

 

본 연재는

 

일본에서 대학교수로 살고 있는

 

이헌모 교수가 

 

약 35년간 일본에 살며

 

체득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일본 조직 사회를 분석한 글이다.

 

 

 

 

‘공평’과 ‘평등’의 도그마, 요코나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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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서울신문>

 

만장일치 문화와 함께 일본 사회 속에 깊게 스며들어 있는 아비투스로는 ‘요코나라비’ 의식이 있다.

 

‘요코나라비’란 원래 옆으로 나란히 줄 선다는 뜻으로 ‘차등을 두지 않고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누구나가 ‘공평’ ‘평등’해야 한다는 기본 전제하에 성립되는 개념이다. 이런 개념이 일본 사회의 의사결정에 알게 모르게 작용된다. 

 

평등과 공평은 본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대 사회에서 사회질서나 조직 규율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바람직한 원리이며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공평과 평등을 방패로 삼아 다분히 자의적이고 억지스러운 요코나라비 개념이 개입하게 되면 얘기가 복잡하게 꼬이고 본말이 전도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코로나 사태 당시 일어났던 사례로 예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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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코로나 사태 당시 일본 정부(아베 정부)는 긴급사태를 발령하여 스포츠 대회도 금지하라는 ‘요청’을 했다. 그런데 학교나 지역사회의 반응은 단순 ‘요청’에 반응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정부와 지자체의 자숙 요청임에도 불구하고, 학교나 지역사회의 대응은 (조금 과장해서) 과거 군사독재 시절 한국의 계엄령 같은 분위기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요청받은 곳들은 정부에서 원하는 수준 이상의 엄격한 자제와 대응 방안을 자발적으로 논의했다. 나는 이런 점이 매우 의문이었는데, 일본인 동료들에게는 당연히 그리해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건 아무리 좋게 보아도 준법정신이나 성숙한 시민의식과는 결이 달라 보였다. 위화감을 느낄 정도다. 

 

한국에서 1980년대 당시 정부에 대한 불신과 권력에 대한 저항을 당연시하던 젊은 시절을 보낸 나의 사회적 성정이 이곳(일본) 사람들과 다른 탓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점을 감안해서 보더라도, 주위의 이런 알아서 기는 분위기는 30년을 함께 하면서도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일본 정부의 행정 관료들만이 정권에 손타쿠(촌탁)하는 게 아니라, 마치 사회가 권력과 정부에 촌탁하는 것 같은 현상이 전개되니 말이다. 

 

그 결과 어떤 경우가 발생했냐.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실제 사례

 

학교에서 성적 우수자 학생에겐 장학금을 지급하여 학업 성취에 대한 포상과 격려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학교 운동부의 경우도 당연하다. 

 

학교 운동부로는 축구, 야구, 배구, 골프, 육상 등 많은 스포츠 특기자들이 있다. 이들은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며 각종 대회에 출전하여 자신과 학교의 명예를 걸고 승부를 펼친다. 거기에는 당연히 전국적인 레벨에 달하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학생과 단체가 있는 반면, 지역 예선조차도 한번 통과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품고 비지땀을 흘리는 학생과 단체도 있다. 

 

당시 하수상한 분위기에서 내가 근무하는 대학의 육상부는 학교 측에 운동장에서 훈련하겠다고 신청했다. 전국 규모의 대회에 매년 단골로 출전하여 학교 발전과 홍보에 크게 기여해 온 육상부였고, 가을 예선을 앞두고 연습을 마냥 쉴 수는 없던지라 운동장 사용 허가 신청을 한 것이다. 

 

당시는 아베 정부의 긴급사태 선언으로 학교 시설이 셧아웃된 상황이었다. 학생도 외부 인사도 일절 출입 금지 상태였다. 

 

학교로선 입장이 곤란해졌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자숙은 어디까지나 요청 단계이고, 육상은 과격한 몸싸움을 동반하는 격투기 종목 운동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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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나는 이렇게 제안했다.

 

“주로 혼자 트랙을 뛰는 건데 한 달간 일절 연습을 못 하게 하는 건 너무 가혹하니 가을 예선을 생각해 특별히 허가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그때부터 특유의 ‘요코나라비’ 논리를 앞세운 의견이 봇물 터지듯 나왔다. 사실 내심 놀랐다. 

 

주요 의견은 다음의 두 가지였다.

 

“육상부를 허용하면 축구, 야구 등 다른 운동부의 신청이 이어지면 어떻게 하느냐. 공평성에 어긋난다!” 

 

“자숙 기간에 인적이 드문 한적한 운동장이라고 해도 트랙을 달리며 연습하는 학생들을 보고, 산책하던 주민들이 컴플레인을 걸어오면 어떡하냐!”

 

다른 운동부 운운은 앞서 얘기한 평등과 공평을 방패로 한 요코나라비 로직이고, 인근 주민의 컴플레인 운운은 일본 사회의 ‘공기의 지배’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경우다. 

 

물론 국민이나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정책이라면 기본적으로 이런 ‘요코나라비’라는 다테마에는 결코 잘못된 생각이 아니며, 오히려 권장되고 실행되어야 할 이상적 덕목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생존경쟁이란 룰이 작용하는 무대에서 평등과 공평이란 개념은 이상적일지는 몰라도 현실적이지 않다. 무엇이든 공평이라는 가치가 우선이 되면 모두가 함께하는 안도감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더는 성장이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평등과 공평이라는 개념이 요코나라비와 접목되어 ‘둔갑’이라는 화학반응을 일으키게 되면 모두가 평등해야 하니까, 모두 같아야 한다는 당위를 만들어낸다. 모두가 같은 생각이고 같은 행동이어야지 나 혼자만 튀어도 안 되고 뒤처져도 안 된다는 도그마가 똬리를 틀고 들어앉는다. 

 

일본 사회의 집단주의를 만들어내는 요소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出る杭は打たれる)’의 일본 버전이라 하겠다.

 

 

사회 전반에 작용하는 요코나라비 

 

전전의 일본을 되돌아보면 패전이 임박해 왔음을 직감적으로 알면서도, 국민들은 대본영의 새빨간 거짓말을 믿고(믿는 척하고?) 따르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까. 있었다면 과연 반정부 집단행동이 가능했을까? 

 

여러 상상을 해보지만, 일본 국민은 결국 일억옥쇄(1億玉砕 : 부서져 옥이 된다는 뜻으로, 명예나 충절을 위하여 깨끗이 죽음을 이르는 말)를 선택했다. 결국 국토는 초토화되고 패전을 맞아야 했다. 

 

전후는 또 어떠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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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패전 직후,

일본 수상이 국민에게

1억총참회를 호소했다는 내용의

2015년 아사히 신문 기사 

 

천황, 군부, 관료에게만 전쟁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용인하고 추종한 국민에게도 모두 같은 책임이 있다는 일억총참회(1億総懺悔)는 그 저의를 떠나 일본 국민 모두에게 똑같이 책임을 묻는다. 이는 단지 70여 년 전에 있었던 역사의 해프닝에 불과한가? 

 

모두가 평등하고 공평해야 한다는 이런 요코나라비 의식은 그 후에도 호송 선단 방식(護送船団方式)이라는 일본 특유의 국가 경영 방식으로 금융 및 산업정책 무대에서 1990년대 초까지 경제성장을 견인하며 기능하여 왔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의식은 전전, 전후를 거치고 고도성장 과정을 통하여 형태는 바뀌었을지 모르나, 아직도 이 사회의 저변에 가치관으로서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호송 선단 방식이란,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일본 금융 당국이 부실 금융기관을 포함한 모든 금융기관을 가장 약한 곳에 맞춰 보호하고 규제하던 방식을 뜻한다. 우량 은행과 부실 은행을 한데 묶어 관리하며 파산을 막는 보호주의적 정책으로, 약 35년 전부터 장기 불황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계속>

 

 

 

 

이헌모 교수가 신간을 출간했다. 

 

본 기사는
신간 <갈림길의 일본>에 실린 내용 중 일부다.

 

<갈림길의 일본>은

정치, 경제는 물론 사회, 문화까지

'지금의 일본'이 된 이유를 추적한다. 

 

3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본에서

'경계인'의 시각을 유지해 온 저자는 

무엇을 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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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아래 2개의 연재 역시 이헌모 교수의 신간에 담긴 내용이다.

 

 

 

일본 문화·예술이 쇠퇴한 이유

    

1. 조화 과잉 사회의 역설

 

2. 오만의 정치에 억눌린 문화 대국

 

 

 

 

 

재일한국인 대학교수의 회고록

    

1. 일본으로 유학 떠난 26세 청년 이야기

 

2. 지난 30년의 일본

 

3. 일본이 다시 떠오르지 못한 이유

 

4. 녹록지 않은 일본 샐러리맨의 생활

 

5. 일본 직장인이 가난할 수밖에 없는 이유

 

6. 일본이 신용 사회라고요?

 

7.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이 지배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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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임권산

마빡 디자인 : 꾸물

기사 : 이헌모

(일본 중앙학원대학 법학부 교수,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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