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후보 경선이 진행된 한 주였습니다. 선거의 윤곽이 잡히면서 관련 여론조사도 진행됐죠. 그간 각종 미디어와 정치평론가들이 각자의 주장을 쏟아냈지만 경선 결과와 여론조사 결과가 하나하나 공개되면서 자연스레 옥석이 가려질 차례입니다.
드러난 결과를 보며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얼마 전 미디어와 커뮤니티에서 눈에 띄던 ‘뉴이재명’이라는 키워드는 과연 어떤 흐름을 보였을까. 경선 결과나 여론조사 수치상으로는, 그 키워드를 근거로 판세를 예측하던 이들의 주장과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는 결과가 드러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그 키워드가 이슈이긴 했는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먼저 네이버 검색어 트렌드를 살펴봤습니다. 비교를 위한 기준점이 될 키워드는 ‘민주당’으로 잡았습니다.

지난 2월 즈음 등장한 이 키워드는 3월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뉴이재명을 논하다’ 토론회 직후 검색량이 정점을 찍고 급격히 사그라들었습니다. 피크 시점을 제외하면, 생각보다 큰 이슈는 아니었던 셈입니다.
저는 IT업계 종사자다 보니, 이럴 때 구글 트렌드를 함께 비교해 보는 편입니다. 일단 결과를 먼저 보고 이야기해 볼까요.

구글 트렌드에서 ‘뉴이재명’ 키워드의 흐름은 아주 미미합니다. 대중의 관심이 자연스레 형성된 경우, 즉 업계 용어로 그 트렌드가 ‘오가닉(organic)’한 경우에는 네이버와 구글 사이에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반면 두 플랫폼 간 데이터 차이가 이렇게까지 크게 벌어질 때, 저는 해당 키워드에 대한 관심이 미디어의 의도에 의해 인위적으로 형성된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국내 미디어는 네이버 같은 국내 포털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지만, 구글 같은 글로벌 서비스에는 그런 영향력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죠.
지난 두어 달 동안 레거시 미디어를 중심으로 ‘뉴이재명’ 키워드를 활용해 다양한 주장이 있었습니다. 누가 어느 계파에 속하는지, 누가 힘을 얻고 누가 밀리는지, 그 결과 어떤 문제나 현상이 벌어질 것인지 등등. 이런 주장들은 커뮤니티 게시판과 소셜미디어, 수많은 단톡방에서 키보드 배틀을 일으키기도 했죠. 하지만 하나둘 드러나는 경선 결과와 여론조사는 전혀 다른 맥락으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링크)
결과적으로 그 주장들은 현실을 예측하지도, 설명하지도 못했습니다. 데이터상으로도 실제 대중의 관심을 크게 끌었다고 보기 어렵죠. 그럼에도 당시엔 꽤 그럴싸했습니다. 선거 시즌 동안에 이런 식의 그럴싸한 주장들이 더 많이 등장할 것입니다.
그럴싸한 주장과 사실을 구분하는 일은 유용합니다. 다만 ‘사실’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 구분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아주 자명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여러 접근법 중에서, 마음챙김의 관점에 따라 ‘사실’을 정의하고 구분하는 방식은 특히 간단하고 실용적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이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가장 확고한 사실
많은 학자들이 ‘가장 근본적인 사실’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 왔습니다. 아마도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데카르트의 이 말일 것입니다.

(리히트 책방, 링크)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서양이 논리와 사유를 중심으로 이 물음에 답하려 했다면, 동양의 불교철학은 다른 방향을 가리킵니다. 모든 존재에는 독자적인 실체가 없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가 바로 그것입니다.
마음챙김의 관점은 무엇보다 ‘지금, 여기에서 의식하는 나의 마음’을 중심에 놓는 시각입니다. 많은 철학 사상이 인간이나 우주의 원리 같은 거대한 물음을 파고든다면, 마음챙김은 그런 거창한 탐구보다 바로 이 순간 내 마음에서 의식하는 것들을 고요히 바라보는 데 집중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철학 사상 중에서도 ‘지금 이 순간 나의 마음’에 유달리 집중했던 불교철학과 가장 긴밀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이 관점은 ‘없다’라고 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이 연재에서 거듭 언급했듯, 모든 분별은 망상이라 하고, 자아가 없다느니,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느니, 이쯤 되면 사실이라 부를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마음챙김의 관점에서도 확고하게 사실이라 할만한 것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어떤 소리가 들렸다는 것, 서 있다면, 발바닥에 어떤 감촉이 느껴졌다는 것, 휴대폰을 손에 들고 있다면 그 무게감이 손을 통해 전해진다는 것. 바로 ‘그 감각을 느낀 그 점’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The Times, 링크)
하지만 이것을 말로 옮기는 순간 전혀 다른 성격이 됩니다. ‘나는 어떤 차 소리를 들었다’라고 하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수없이 생겨납니다. 차가 아닌 기계의 소리일 수도 있고, 녹음된 소리일 수도, 환청이었을 수도 있죠. 하지만 어느 경우라도, 내가 어떤 소리를 감지했다는 그 점만큼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사실’이란 객관적이고 절대적이어야 한다고 여기기 쉽지만, 불교에서는 그런 객관적이고 절대적 실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가장 확고한 사실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경험적인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지금 이 순간, 냄새든 촉각이든 미각이든 후각이든 청각이든 시각이든, 그것을 말로 표현하기 전에 그 감각을 느낀 바로 그 순간의 그 상태. 바로 그것이 마음챙김의 관점에서 가장 확고한 사실입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오차
지극히 개인적이고 경험적인 그 확고한 사실은 그저 그 자체로만 사실입니다. 그것을 말로 표현하거나, 글로 쓰거나, 머릿속으로 다시 떠올리는 순간, 그 사실과는 다른 행동이 이어진 것이죠. 흔히 쓰이는 달과 손가락으로 비유한다면, 말과 글과 생각은 모두 손가락이지 달이 아닙니다.

(게티이미지)
‘말, 글, 생각은 달이 아니라 손가락’이라는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면, 이 세상의 모든 말과 글은 사실일 수 없게 됩니다. 인간의 모든 대화와 기록이 사실이 아니게 되면서 극단적 허무주의나 해체주의의 세계로 빠지게 되죠. 하지만 그러한 극단을 피할 방법이 있습니다. 모든 말과 글과 생각이 손가락이더라도, 각각이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 따져볼 수 있으니까요.
배가 아파 병원에 가면, 의사가 배 여기저기를 눌러보며 묻습니다. 아프세요? 여기는요? 이때 환자의 “아파요”라는 답은 감각적 경험을 직접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실 그 자체가 아니더라도 사실에 가장 가까이 닿아 있죠. 반면 어떤 환자는 대뜸 “선생님, 저 장염이에요”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는 확고한 사실이라기보다, 환자 스스로가 몇 단계의 사고 과정을 거쳐 도달한 추측 내지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실’이라는 단어를 쓸 때의 기준과 달라 조금 낯설게 느껴집니다. 영어로 ‘fact’에 해당하는 기준에서는, 어떤 사건이나 상태를 정확히 기술한 말을 사실이라 받아들입니다. ‘나는 어제 오후 1시에 순댓국을 먹었다’라고 할 때, 실제로 그랬다면 일상에서는 저 말을 사실로 여기죠.
하지만 말이라는 건 늘 오차 범위를 지닙니다. 꼬투리 잡기 시작하면 끝도 없죠. ‘오후 1시’는 한국 표준시 기준 13시 00분 00초를 의미하는 걸까요? 그 시각에 식당에 들어간 건지, 주문을 한 건지, 첫술을 입에 넣은 건지도 불분명합니다. 제가 순댓국이라 부른 음식은 정말 순댓국일까요? 혹시 ‘고기만’ 옵션으로 주문했다는 걸 안 누군가가 ‘그건 순댓국이 아니지”라고 한다면, 그 말은 거짓이 되는 걸까요?
이처럼 말의 오차를 고려하면, 말에 말이 이어질수록 오차는 누적됩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또 다른 손가락이 가리키고, 그것을 또 다른 손가락이 가리키는 꼴이 되는 것이죠. 같은 손가락이라도 서 있는 위치에 따라 그 끝이 향하는 곳은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단어도 사람마다 정의와 이해의 범위가 다른 만큼, 그 오차는 필연적입니다.
아주 길고 복잡한 말들이 이어져 만들어진 개념일수록 확고한 사실과는 멀어집니다. 말에 말이 쌓일수록 듣는 사람마다 서로 다르게 이해할 가능성이 커지고, 반대로 순간의 감각적 경험을 표현한 말일수록 확고한 사실에 가까우며, 해석의 오차 범위도 작아집니다. 이 단순한 원리에서 판단 기준이 나옵니다.
사실에 가까운 말, 사실처럼 보이려는 말
마음챙김의 관점에서 어떤 말이 사실에 얼마나 가까운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표현 대상: 지금 이 순간 스스로 경험한 감각을 직접적으로 표현할수록 사실에 가깝습니다.
2. 언어적 개념의 사용 정도: 언어적 개념이 꼬리를 물고 연쇄적으로 사용될수록 오차의 범위가 커집니다.
이를 조합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되겠죠.
● 자신의 경험적 감각을 아주 간결하게 표현했다면, 사실에 가까우면서 오차의 범위도 작습니다.
● 자신의 경험적 감각을 표현했더라도 많은 개념이 사용될수록, 사실과 멀어지면서 오차의 범위도 커집니다.
● 가상의 개념에 대해 간결하게 표현했다면, 사실이 아닌 주장에 가깝지만, 오차의 범위는 작습니다.
● 가상의 개념에 대해 장황하게 표현했다면, 사실이 아닌 주장이면서 오차의 범위도 커집니다.
이러한 기준으로 말과 글을 바라보는 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일상적인 차원에서 사실 여부를 따지는 것과는 조금 달라서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는 어떤 주장이 만약 드러난 결과와 맞으면 사실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고, 사실은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통념 때문에 주관적 내용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위의 기준은 오히려 경험적 감각을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개념적 명제는 주장으로 판단합니다.
그 차이를 드러내는 예시를 볼까요.
“나는 서울시장 후보 경선 결과가 마음에 들어.”
이 말은 지극히 주관적인 표현입니다. 일상적 기준으로는 사실보다 의견에 가깝게 분류되겠죠. 하지만 마음챙김의 관점에서는 역설적으로 사실에 가깝습니다. 경선 결과를 확인한 순간 경험한 개인적 감각을 감정의 형태로 표현한 것으로, 오차 범위도 작고 본인이 경험한 사실을 비교적 직접적으로 담아낸 말입니다.
반면 이런 문장을 볼까요.
“대중 인지도가 떨어졌던 정 후보가 서울시장 후보로 결정된 데에는 ‘명픽’이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조선일보, 링크)
ㅈ일보 4월 10일 기사의 한 대목입니다. 일상적 기준으로는 객관적 사실을 서술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문장이 가리키는 바는 감각적 경험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개념적 판단입니다. ‘대중 인지도가 떨어졌다’라거나 ‘명픽이 주효했다’라는 표현은, 대중 인지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 주효했다는 것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느냐에 따라 오차의 범위가 커질 뿐입니다.
이처럼 ‘사실’에 대한 관점을 조금 달리하면 사실과 주장의 구분이 간명해집니다. 그리고 말의 구성에 따라 오차 범위의 크고 작음도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가 선호하는 정치적 문장들은 대체로 이렇게 구성됩니다. 사실에 대해 표현할 때는 본인이 경험한 감각을 간결하게 서술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감각적 경험을 수치 자료로 제시합니다. 그 외의 개념이나 명제에 대해서는 말 그대로 주장을 펼칩니다. 그 주장에서도 오차 범위가 커지지 않도록 모호한 개념을 줄이고 되도록 직접적인 표현을 이어가죠.
반면 제가 불편하게 여기는 것은 많은 레거시 미디어와 정치인들이 사실인 것처럼 보이도록 문장을 구성하지만 실제로는 사실과 거리가 먼 말들입니다. ‘무엇은 어떠했고, 그 원인은 이것이다’라는 형태의 문장은 겉으로는 현상과 원인에 대해 사실을 쓴 것처럼 보입니다. 일상적 차원에서는 그 말이 맞다면 사실로 받아들이겠죠. 하지만 마음챙김의 관점에서는 그런 말에서 감각적 경험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저 개념 위에 개념이 쌓일 뿐이죠. 이는 결국 주장입니다. 그런데 이런 형태의 문장은 사실인 척 위장하기 때문에, 주장이라면 마땅히 따라야 할 근거도, 그에 대한 책임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마음챙김의 관점에서 ‘사실’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그리고 그 기준으로 정치적 발언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 이야기해 봤습니다. 다소 낯선 시각이었을 수 있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다만 이 관점은 여기서 멈추기엔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마음챙김의 관점에서 ‘사실’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 자아와 의식의 세계로 이어가 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춘심애비
제보 및 연재 문의
ddanzi.master@gmail.com
검색어 제한 안내
입력하신 검색어에 대한 검색결과는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딴지 내 게시판은 아래 법령 및 내부 규정에 따라 검색기능을 제한하고 있어 양해 부탁드립니다.
1. 전기통신사업법 제 22조의 5제1항에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삭제, 접속차단 등 유통 방지에 필요한 조치가 취해집니다.
2.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청소년성처벌법 제11조에 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을 제작·배포 소지한 자는 법적인 처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4.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에 따라 청소년 보호 조치를 취합니다.
5. 저작권법 제103조에 따라 권리주장자의 요구가 있을 시 복제·전송의 중단 조치가 취해집니다.
6. 내부 규정에 따라 제한 조치를 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