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전쟁은 걸프 국가의 세계관을 바꿨다
이번 중동 사태는 걸프 국가들이 믿어온 두 개의 안전장치가 동시에 흔들린 사건이다. 걸프 국가들은 이란을 막기 위해 미국, 이스라엘 축에 접근했고, 이란과 마찰을 피하고자 테헤란과도 대화해왔다. 그런데 전쟁은 두 길 모두 충분한 안전을 주지 못한다는 걸 보여줬다.

출처-<헤럴드경제>
걸프 국가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위험은 이들의 공항, 항구, 유전, 담수화 시설, 호르무즈 해협으로 흘러들었다. 전쟁을 결정하지 않은 국가들이 전쟁의 비용을 먼저 계산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여기서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걸프가 친미냐 반미냐, 친이스라엘이냐 반이스라엘이냐를 묻는 방식으로는 이 사태가 보이지 않는다. 더 정확한 질문은 이것이다.
“왜 걸프 국가들은 어느 쪽에 기대도 마음 놓고 안전할 수 없게 되었는가?”
이란은 이들에게 실제 위협이다. 미사일과 드론, 해협 봉쇄 능력, 주변 지역의 무장 세력과 연결된 영향력은 걸프가 무시할 수 없는 압박이다. 그렇다고 미국을 버릴 수도 없다. 방공망, 정보 자산, 해군력, 첨단 무기체계의 상당 부분이 여전히 미국과 묶여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미국에 기대면 안전해질 것 같지만, 그 길은 이스라엘 중심 질서와 가까워지는 길이기도 하다. 이란과 대화하면 전쟁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전쟁이 터지면 그 대화가 중립을 보장하지 못한다. 걸프의 고민은 바로 여기서 시작됐다.

걸프 국가가 선택했던 두 가지 길
이들이 선택한 길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 길은 미국, 이스라엘 중심의 아브라함 축이었다. 걸프 일부 국가는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해 미국 안보망 안에서 더 단단한 자리를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UAE와 바레인의 이스라엘 정상화, 사우디의 조건부 정상화 논의, 미국의 무기와 안보 약속이 모두 이 흐름에 놓여 있었다.
2020년 백악관에서 UAE와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 협정(아브라함 협정)을
맺는 모습.
출처-<NBC News>
이 길에는 분명한 계산이 있었다. 이란을 혼자 상대하기 어렵다면, 미국의 힘과 이스라엘의 군사력을 활용해 억제력을 키우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었다. 걸프의 눈에는 이것이 친이스라엘 선언이라기보다 이란을 견제하기 위한 현실적 보험에 가까웠다.
하지만 보험은 때로 위험을 줄이는 대신 위험의 위치를 바꾼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을 압박할수록, 걸프가 더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란은 걸프의 의사보다 그들이 미국 안보망 안에 있다는 사실을 먼저 보았다.
그 순간 아브라함 축은 방패가 아니라 표식이 되었다. 걸프가 전쟁을 원했는지, 이란 공격에 동의했는지는 부차적인 문제가 되었다. 미군기지, 미국산 무기, 합동훈련, 해상 협력망이 걸프를 이란의 보복 계산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걸프가 택한 또 하나의 길은 이란과의 데탕트였다.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복원, 오만과 카타르의 중재 노선, UAE의 부분적 관계 개선은 이란을 신뢰해서가 아니었다. 이란과 싸우면 잃을 것이 너무 많다는 냉정한 계산에서 나온 선택이었다.
2026년 2월 10일, 미국 침공 전
이란 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 알리 라리자니를 만나
이란과 미국 사이 중재를 하는
오만 술탄국 왕실 사무부 장관 술탄 빈 모하메드 알 누마니의 모습
출처-<al-monitor>
걸프의 도시들은 화려하지만 취약하다. 공항은 세계 비즈니스의 관문이고, 항구는 에너지와 물류의 동맥이며, 담수화 시설은 생존의 기반이다. 그래서 이란과의 대화는 이상주의가 아니라 전쟁을 멀리 두기 위한 생존 기술이었다.
두바이의 화려한 야경
출처-<스포츠경향>
그러나 중립은 선언한다고 성립하는 것이 아니었다. 걸프는 “우리는 이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었지만, 이란은 “그래도 당신들은 미국의 군사망 안에 있다”고 읽었다. 대이란 데탕트는 걸프의 의도를 보여주었지만, 전쟁의 순간 그 의도를 실제 안전으로 바꾸지는 못했다.
이 지점에서 이스라엘을 보는 걸프의 시선도 바뀐다. 한때 이스라엘은 적대적 아랍, 이슬람 세계에 둘러싸인 국가로 이해됐다. 미국의 이스라엘 보호도 그런 맥락에서는 방어적 질서처럼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걸프 앞에 나타난 이스라엘은 조금 다르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단순한 보호 대상만은 아니다. 미국의 후견을 받으며 전쟁의 방향을 정하고, 그 결과를 주변국이 떠안게 만들 수 있는 군사 행위자다.
이스라엘이 위협받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이란, 헤즈볼라, 하마스, 후티의 위협은 실제로 존재한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그 위협에 대응하는 방식이 걸프의 안전과 늘 같은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스라엘의 안보가 강화되면 걸프도 함께 안전해진다는 믿음은 여기서 흔들린다. 이스라엘의 군사적 우위가 커질수록 이란이 위축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걸프가 보복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걸프가 체감한 것은 바로 이 두 번째 가능성이었다.
그래서 이번 사태는 단순한 동맹의 균열이 아니다. 걸프가 기대온 두 길이 서로 다른 이유로 한계에 부딪힌 사건이다. 아브라함 축은 너무 가까워져서 위험했고, 대이란 데탕트는 중립으로 인정받지 못해서 위험했다.
이제 이 현실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이번 사태는 걸프 안보의 이중 실패다. 한쪽은 보호를 약속했지만 보복의 표식이 되었고, 다른 한쪽은 대화를 약속했지만 중립의 보증이 되지 못했다.
걸프는 두 길 사이에서 안전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전쟁은 그 안전이 아직 자기 손에 쥔 안전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냈다. 위기가 오면 남에게 맡긴 안전은 언제나 먼저 흔들린다.
짚어볼 것들
그렇다면 이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다만 이 책임론은 누구 하나를 악인으로 세우는 일이 아니다. 더 정확한 질문은 누가 걸프를 원하지 않은 전쟁의 비용 수령자로 만들었는가이다.

출처-<KBS>
첫 번째 책임은 네타냐후 정부에 있다. 그는 이스라엘의 안전을 말했지만, 그 선택의 비용은 이스라엘 밖으로 흘러갔다. 걸프의 기반 시설과 해상 교통이 그 비용의 장소가 되었다.
자국의 안전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어느 국가도 자기 생존을 가볍게 다룰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안전을 지키는 방식이 주변국의 주권, 민간 기반 시설, 해상 교통의 위험으로 바뀐다면, 그것은 단순한 군사 판단을 넘어 도덕적 책임의 문제가 된다.

출처-<AP>
두 번째 책임은 트럼프와 미국에 있다. 트럼프는 네타냐후의 전쟁 선택이 미국 전략 안에서 작동하도록 길을 열었다. 걸프가 치를 비용보다 이스라엘의 군사 목표를 먼저 받아들인 셈이다.
더 깊은 문제는 미국의 오랜 착각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군사적 우위가 중동 안정으로 이어진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그 우위가 걸프의 안전과 충돌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미국의 실패는 이스라엘을 보호하지 못한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이스라엘 보호를 중동 안정의 중심 원리로 삼은 데 있다. 이 등식이 무너지는 순간, 걸프는 동맹의 보호를 받은 것이 아니라 동맹의 비용을 떠안은 쪽이 되었다.
마가(MAGA)의 책임은 조금 다르다. 그것은 전쟁 명령서의 책임이라기보다 세계를 읽는 방식의 책임이다. 이란은 악, 이스라엘은 동맹, 걸프는 따라와야 할 편이라는 단순화는 중동을 설명하지 못한다.
걸프는 친미일 수 있지만, 친이스라엘 질서에 무조건 들어갈 수는 없다. 이란을 두려워하지만, 이란과의 대화도 포기할 수 없다. 이 복잡함을 보지 못하는 정치는 실천적 지성의 결핍이다.
물론 이란도 책임에서 빠질 수 없다. 걸프가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란이 걸프를 공격 대상으로 삼을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민간 기반 시설과 해상 교통은 정권 간 신호를 주고받는 도구가 아니다.
이란은 걸프의 중립 의사를 무시했고, 민간과 경제의 안전을 압박 수단으로 삼았다. 이란은 피해자가 아니다. 다만 이란의 책임을 말한다고 해서, 그 보복을 불러오는 판을 만든 미국과 이스라엘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걸프 국가들도 스스로 돌아봐야 할 대목이 있다. 미국 의존, 이스라엘과의 실용 협력 검토, 이란과의 대화는 모두 현실적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 선택들을 하나의 자율적 안보 능력으로 묶는 데는 부족했다.
조기경보, 방공망, 대드론 체계, 해상 방어, 위기 외교를 충분히 통합하지 못한 대가도 이번 사태에서 드러났다. 걸프는 여러 보호장치를 조합해 왔지만, 그것을 하나의 자율적 안보 능력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이제 그 빈틈이 드러난 것이다.
걸프의 결론
그래서 걸프의 결론은 차갑다. 미국은 필요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이 그어놓은 전쟁선 위에 그대로 설 수는 없다. 이번 사태가 드러낸 것은 반미 전환이 아니라, 미국 의존의 조건이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다. 방공망, 정보 자산, 해군력, 첨단 무기체계에서 미국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보호자다. 다만 그 보호가 이제 더 이상 순수한 보호로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달라졌다.
걸프의 눈에는 미국이 제공하는 안전과 이스라엘이 만들어내는 위험이 한 묶음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의 무기를 붙잡으면 이란을 막는 힘을 얻는다. 그러나 미국, 이스라엘 축에 너무 깊이 들어가면 전쟁의 반대편에 노출된다.
따라서 선택은 이탈이 아니라 조건 변경에 가까울 것이다. 미국과의 군사 협력은 유지하되, 이스라엘의 군사 목표를 자기 운명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으려 할 것이다. 걸프는 보호는 원하지만, 그 보호가 남의 전쟁으로 이어지는 상황은 피하려 할 것이다.
이것이 미국 중동 전략의 가장 큰 균열이다. 미국은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지키면 중동 질서도 안정된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그 등식이 더 이상 걸프에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아브라함 축은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 대이란 데탕트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그러나 둘 다 이제 충분한 답은 아니다. 하나는 걸프를 이란의 표적으로 만들었고, 다른 하나는 걸프를 실제 중립 지대에 세우지 못했다.
앞으로 걸프는 더 복잡한 길을 갈 것이다. 미국의 힘은 붙잡고, 이스라엘과는 거리를 재고, 이란은 억제하면서도 관리하려 할 것이다. 동시에 터키, 유럽, 한국, 중국, 파키스탄 등으로 안보 협력의 폭을 넓히려 할 것이다.
한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려는 걸프 국가들
이것은 줄타기가 아니다. 누구에게도 전부 맡길 수 없는 안전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 다시 짜는 일이다. 걸프가 배운 것은 단순하다. 빌린 안전은 필요하지만, 빌린 안전만으로는 위기를 버틸 수 없다.
이것은 중동만의 변화가 아니다. 트럼프의 미국이 가속한 미국 중심 질서의 균열이, 걸프에서 가장 선명한 형태로 드러난 것이다. 한 축에 줄 서는 시대가 지나가고, 여러 힘 사이에서 자기 안전의 조건을 다시 짜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중동의 새 질문은 결국 이것이다.
“이제 걸프는 누구에게도 전부 맡길 수 없는 안전을 어떻게 자기 손으로 다시 짤 것인가?”
이것이 다극화 시대가 중동에 던진 가장 현실적인 질문이다.

편집: 임권산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임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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