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 파워(soft power : 연성권력)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강제적 수단이 아니라 매력과 설득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몽둥이 들고 ‘내 말 들어!’라고 외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스스로 이끌려 내 말을 듣게 만드는 거다. 이 소프트 파워에는 문화, 제도, 인권, 종교(경제력이 포함되는 경우도 있다) 등등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문화다. 한류 콘텐츠가 우리나라 영향력을 끌어 올린 걸 보면 이해가 쉽게 갈 거다.
미국이 전 세계를 압도하는 패권국가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소프트 파워이다. 지금도 미국은 소프트파워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한국은 대략 12~5위 사이에 있다).

출처 - Brand Finance (링크)
이 소프트파워의 작동원칙에서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신뢰>다.
소프트파워의 개념을 정립한 조지프 나이(Joseph S. Nye) 교수는 소프트파워를 실제적인 3가지 자원으로 분류했는데, 민주주의 같은 정신적 가치, 생활양식을 결정하는 문화, 그리고 국가의 외교정책이 그것이다.
여기서 이 소프트파워를 작동시키는 가장 큰 힘이 바로 신뢰다. 외교정책에 있어서의 일관성, 정신적 가치에서 보여주는 합리성과 우수성 등이 필요하다. 결론은 간단하다.
“저 나라는 합리적인 기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고, 이를 일관되게 실천한다.”
라는 대외적인 사인이다. 물론, 이 소프트파워란 것이 강대국 중심의 ‘개념’을 전 세계에 이식하는 것이고, 강대국의 패권을 손쉽게 유지하려는 ‘꼼수’란 시각도 있다.
미국이 힘이 빠지니까,
“우리 아직 쌩쌩해!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패권의 기준인지 알아? 세상의 질서를 움켜쥔 놈이 세상을 움직이는 거야!”
라고 말하는 거란 소리다. 어떻게 보면, 이데올로기 같은… 그러니까 일종의 허상이란 의미다. 강대국의 패권이란 건 결국 힘이다. 국제정치란 게 따지고 보면 힘 대 힘의 대결이다. 소프트파워란 말은 결국 말장난에 불과하다. 진짜 실력이 있다면, 그냥 힘으로 밀어붙이면 되는 건데, 힘이 없으니 말장난을 하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프트파워란 것의 의미는 무시할 수 없다는 게 내 개인적인 판단이다. 지난 기사에서 언급한 베를린 공수작전이나, 케네디의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라는 연설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걸 소프트파워라 말할 수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군사와 외교는 동전의 양면 같은 존재이다. 말로 안 되니 주먹을 드는 것이고, 주먹을 들지 않고 말로 타이를 수도 있는 거다.

(독일 주영국대사관, 링크)
미국은 동서 냉전의 시작점에서 자신의 힘을 보여줬고, 의지를 보여줬다. 특히나 케네디의 연설은 전 세계에 하나의 확실한 메시지를 보냈다.
“미국편에 붙으면, 끝까지 너희들을 지켜줄 거다.”
베를린 시민들이 열광했던 것처럼 전 세계가 미국 대통령을 보며, 환호를 보냈다. 간단했다. 미국이 보여준 신뢰였다. 1년 가까이 베를린 상공을 가득 메운 미군의 수송기들은 미국의 압도적인 힘과 함께 미국이란 나라의 의지를 보여줬다.
냉전의 한 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베를린에 들어가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라고 말한 케네디의 연설은 그 자체로 미국이란 나라의 신뢰를 담보했다.

베를린 템펠호프 공항에 착륙하는 미국 수송기를 바라보는 아이들, 1948
(브리태니커, 링크)
냉전 시절, 그리고 미국 일극체제의 짧디짧은 얼마간의 시간 동안 미국은 엄청난 신용자산을 쌓아 올렸다. 그리고 전 세계는 인류 역사상 가장 관용적이고, 덜 위험한 제국을 목격하게 된다.
지금의 미국을 바라보면서, 영화 대사 하나가 떠올랐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맞다. 미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관용적이고, 덜 위험한 제국이었다. 얼마나 관용적인 제국이었는지는 직전에 패권을 가졌던 영국을 떠올리면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거다. 해가 지지않는 나라 시절 영국이 전 세계에 뿌려놨던 똥들을 생각해 보라. 미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대한 제국이면서, 동시에 가장 관대한 제국이었다.

우리는 지난 70여 년 간 가장 관대한 제국 덕분에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당장 한국이 수출로 먹고 살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안전한 바다 덕분이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물건을 만들어 해외에 판매하면서 먹고사는 제조업 국가이다. 한국이 1960년대 가장 고민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에너지’를 어떻게 안전하게 들여오느냐였다. 가격의 문제도 컸지만, 중동의 석유를 한국으로 들여오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이걸 해결해 준 게 미국의 항공모함들이었다.
전 세계 바다를 안전하게 만들어준 미 해군 덕분에 수출입이 자유로워 진 거다. 대한민국 수출입 물량의 99.8%가 해양수송이다. 즉, 바닷길이 막히면 그 순간 바로 수입도 막히고, 수출도 막힌다는 거다.
이걸 미국이 지난 70여년 가까이 안전하게 지켜줬다.
인류 역사상 이 만큼 해적에게서 안전했던 시절이 있었을까? 이 하나만으로도 미국은 전 세계에 충분히 호의를 베풀었다. 물론, 이 자유무역으로 미국도 이득을 본 건 사실이다.

출처 - ALJAZEERA (링크)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게 지금 트럼프는 지난 세월 미국이 쌓아올린 신뢰를 불과 몇 달 사이에 다 까먹었다는 거다. 케네디가 베를린에 가서 외친 독일인이라는 외침도 레이건이 제네바에서 고르바초프를 만나면서 만든 냉전의 균열도 다 사라졌다.
국제정치학자들이,
“미국은 이제 2026년 2월 28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미국의 달러 패권도, 미국에 대한 신뢰도, 그리고 미국의 군사력에 대한 믿음도 예전 같지 않다.
물론, 지금 당장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무너지거나 미국 군사력이 흔들리는 건 아니다. 위안화가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이게 당장 달러를 위협할 수준이 될 수가 없다. 중국의 정치, 경제적인 위치를 생각한다면 달러화를 쫓아가기엔 아직 멀었다. 군사력 역시 마찬 가지다. 미국이 아무리 쇠퇴했다 해도 아직 미국을 상대할 만한 군사력을 찾기는 어렵다.
문제는 트럼프가 잘못된 방향으로 미국의 패권을 정리하려 했다는 거다.

사진 - The Economist | Getty Images (링크)
트럼프 집권 초기만 하더라도 미국이 마치 고립주의로 회귀하는 것 같아 보였지만, 엄밀히 말하면 다르다. 1823년 미국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선언한 먼로주의(Monroe Doctrine)와 트럼프가 내놓은(?!) 돈로주의(Donroe Doctrine)는 다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립주의자들… 그러니까 제임스 먼로, 앤드루 잭슨, 제임스 포크, 윌리엄 매킨리, 시어도어 루즈벨트 등등은 고립주의라기보다는 미국의 이익을 우선했다고 할 수 있다. 먼로주의를 선택한 이유는 당시 미국이 유럽의 아메리카 대륙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돈로주의의 경우는 먼로주의와 다르다. 고립주의가 아니라 일방주의라 볼 수 있다.
이제껏 자임했던 세계의 경찰 타이틀을 버리고, 해외 분쟁 개입을 줄이겠다는 건데… 이건 세계에 잘못된(?!) 사인을 보낸 거다. 간단히 말해 지역 패권을 인정한다는 소리다. 즉, 지역의 패자가 등장하게 된다는 거다. 이렇게 되면, 세계는 블록화 되어가고 이제껏 세계를 지배하던 규칙이 무너진다는 거다. 여기에 트럼프가 불을 붙여버렸다. 당장 국제기구를 탈퇴하고, 지원을 축소하는 건 기본이고 관세장벽을 치고 보호무역으로 돌아서 버렸다.

2026년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새로운 국가방위전략을 발표하며,
국방의 우선순위에서 본토를 최우선으로 꼽는 한편, 세계 모든 지역에서 '동맹의 분담'을 강조했다
출처 - 연합뉴스 (링크)
얼핏 보면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게 지금 미국이 보호할 만한 산업이 남아 있냐는 걸 생각해 봐야 한다. 제조업은 필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부를 수밖에 없고, 언제고 경쟁력 있는 다른 국가에게 이양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갖고 태어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패권을 쥐고 수십년을 호령해 왔다. 미국과 영국이 일찌감치 금융자본주의로 넘어간 상황에서 그 제조업을 이어받은 게 일본과 서독이었고, 이게 다시 아시아의 4용이라 불렸던 이들이었다. 그 중 하나가 한국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겠다며 관세를 물리고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웠다. 이 때 가장 큰 패착은 미국 스스로가 세계 리더십을 내려 놓는 모습을 보였다는 거다. 패권 국가가 스스로 그 패권을 내려놓겠다는 황당한 짓을 우리는 목도하게 된 거다.
이제 지역 패권자들이 등장할 것이고, 세상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금 이란과의 전쟁이 가지는 의미가 그렇다. 지난 두 달여 간 트럼프가 보여준 것은 달러의 약화도 미 군사력의 허실도 아니었다. 그건 아직도 수습할 방도를 찾을 기회가 있다. 문제는 소프트파워… 미국에게 알아서 복종하게 만들던 그 힘에 균열이 갔다는 거다.
일방주의까지는,
“그래, 트럼프는 미친놈이니까… 그리고 솔직히 나토가 꿀 빤 거도 맞고, 그 동안 미국이 호구짓한 것도 맞잖아.”
라면서 수긍하고 넘어갈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을 지탱하던 세 가지 축 중 가장 오랜 시간 공을 들였고, 쌓아놓았던… 신뢰를 기반으로 만든 소프트파워에 균열이 갔다. 이제 미국은 2026년 2월 28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편집: 꾸물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펜더
제보 및 연재 문의
ddanzi.master@gmail.com
검색어 제한 안내
입력하신 검색어에 대한 검색결과는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딴지 내 게시판은 아래 법령 및 내부 규정에 따라 검색기능을 제한하고 있어 양해 부탁드립니다.
1. 전기통신사업법 제 22조의 5제1항에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삭제, 접속차단 등 유통 방지에 필요한 조치가 취해집니다.
2.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청소년성처벌법 제11조에 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을 제작·배포 소지한 자는 법적인 처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4.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에 따라 청소년 보호 조치를 취합니다.
5. 저작권법 제103조에 따라 권리주장자의 요구가 있을 시 복제·전송의 중단 조치가 취해집니다.
6. 내부 규정에 따라 제한 조치를 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