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BBC>
지난 5월 8일, 런던의 로열 알버트 홀(우리로 치면 예술의 전당과 같은 장소다)에서 데이비드 애튼버러의 100번째 생일 축하 공연이 열렸다. 수천 명의 시민이 모였고, 영국의 국영방송 BBC는 그를 위한 특별 기념 방송을 편성했다. 영국 왕실을 비롯한 유명인들의 축하가 이어졌다. 주말 내내 영국 언론은 그의 삶과 업적을 조명했다.
깊은 바다를 유영하는 고래, 얼음에서 미끄럼틀을 타는 펭귄, 정글 속 희귀 새가 나오는 화면 뒤에서 차분한 목소리로 자연 현상을 설명하던 노인이 바로 데이비드다. 영국에서 제작된 자연과 관련한 다큐멘터리 해설은 줄곧 데이비드가 맡아왔다. 얼굴은 익숙지 않아도 그의 목소리는 한 번쯤 들어봤을 거다.
북극의 얼음 지대부터 아프리카 밀림, 갈라파고스 제도, 심해와 사막까지. 대부분의 인간이 평생에 한 번 가보기도 어려운 장소를 그는 끊임없이 탐방하고 기록해 왔다.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BBC의 상징이자 수십 년 동안 지구의 자연을 기록해 온 '살아있는 자연사 박물관'이다. 미국에 제인 구달이 있다면, 영국에는 데이비드 애튼버러가 있다.
데이비드 애튼버러와 BBC
출처 - <BBC>
1926년, 런던 서부 아일워스에서 태어났다. 런던에서 태어났지만 중부 도시 레스터에서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 프레드릭 애튼버러는 지금의 레스터 대학의 전신인 University College Leicester에서 총장으로 일했다. 덕분에 어린 데이비드는 대학 캠퍼스 근처에서 생활하며 거대한 자연 놀이터에서 유년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당시만 해도 중부지방은 런던에 비해 개발이 더딘 곳이었다).
데이비드는 돌과 화석, 곤충을 수집하는 데 깊이 빠져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운동장을 뛰어다닐 때, 들판과 숲을 돌아다니며 이상한 모양의 돌을 주워 모았다. 집 안에는 직접 모은 화석과 표본들이 쌓여 갔다. 훗날 데이비드는 그때부터 자신의 인생이 시작되었다고 회상한다. 어린 데이비드에게 자연은 끝없이 관찰하고 탐험해야 할 미지의 세계였다.
그의 20대 시절, 유럽은 격변하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데이비드 부모는 나치를 피해 영국으로 온 유대인 난민 자매 두 명을 집으로 받아들여 함께 생활했다. 데이비드는 이때 생명의 소중함은 어쩌면 자연에서만이 아니라, 전쟁과 인간의 폭력성을 마주하는 시대에서 배우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1950년대, 데이비드 애튼버러의 초창기 모습
출처 - (링크)
처음부터 다큐멘터리 제작을 꿈꾼 것은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텔레비전은 막 대중화되던 매체였고 지금처럼 유명 방송인이 선망의 대상이 되던 시대도 아니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생명 공학을 전공한 뒤, 그는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데이비드는 차분하고 조용했으며 학자나 연구자에 가까운, 방송인과는 거리가 먼 청년이었다.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BBC 입사였다. 당시 BBC는 새로운 시대에 맞춰 실험을 시도하고 있었다. 데이비드는 텔레비전이 뉴스 전달 역할을 넘어 사람들이 경험할 수 없는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창이 될 것이라 내다보았다. 형제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을지도 모르겠다. 데이비드 형인 리차드 애튼버러는 영화 <간디>를 연출했고, 영화 <쥬라기 공원> 속 공룡 테마파크 창립자 역할을 한 인물이다. 한 집안에서 세계적인 영화감독과 자연사 진행자, 두 명의 인재가 배출되었다.
애튼버러, 세상을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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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는 지금처럼 해외여행이 흔한 시대가 아니었다. 아프리카 밀림이나 갈라파고스 제도, 북극의 얼음 지대는 책이나 지도 속에서만 존재하는 미지의 장소였고, 심해의 생물은 전설 속의 동물과 다름없었다. 데이비드는 이러한 세상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겠다는 비전을 세웠다. 수십 년 동안 카메라와 함께 지구 곳곳을 누볐다. 뜨거운 사막과 열대우림, 화산 지대와 북극의 빙하를 직접 밟으며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을 화면에 담았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자연 다큐멘터리는 당시엔 오지 탐험과 무모한 도전에 가까운 작업이었다.
그는 자연을 인간보다 거대한 존재로 바라보게 했다. 화면 속 동물들은 인간의 구경거리가 아닌, 인류와 함께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로 비쳤다. 그의 영상을 보고 있으면, 설명을 듣는다기보다 그의 안내를 받아 낯선 세계로 함께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데이비드의 다큐멘터리가 특별한 이유다.

출처 - <BBC>
여러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을 럭키 가이로 불렀다. 대부분이 평생 가보지 못하는 장소를 방문하고, 자연의 경이로움을 눈앞에서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업적은 자연이 선사하는 놀라움에 비할 수 없다고 했다. 전달자의 역할에 충실하고 그가 얻은 기회에 감사함을 느끼는 그의 겸손함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가 신뢰받는 이유일 것이다.
영국은 오래전부터 자연사에 큰 관심을 보여 왔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라는 거대한 발견과 제국 시대에 수집한 생물 표본과 탐험 기록을 기반으로 한 지식과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 여기에 BBC는 지식과 교양을 대중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공영 방송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데이비드가 진행한 <Life on Earth, Planet Earth, Blue Planet>은 위대한 다큐멘터리의 수준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사건으로 평가 받는다. 사람들은 거실 TV 앞에 앉아 지구 반대편의 정글과 바다, 북극의 풍경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화면 뒤에는 언제나 데이비드 애튼버러가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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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의 초기 다큐멘터리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탐험 분위기가 강했다. 새로운 동물을 발견하고 미지의 세계를 소개하는 데 집중했다. 화면 속 자연은 거대하고 아름다웠으며 훼손되지 않은 공간으로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점점 어두운 이야기를 담기 시작했다. 빙하는 녹아내렸고, 산호초는 죽어갔고, 바다는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으로 오염되어 갔다. 빠르게 파괴되고 소멸해 가는 자연은, 오랜 시간 지구의 변화를 직접 목격해 온 데이비드의 증언이었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지구는 기후 변화와 자연 훼손의 국면에 도달했다. 초창기 데이비드가 남긴 지구의 모습은 영원히 되찾을 수 없는 또 다른 미지가 되었다.
작년 10월, 제인 구달이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그녀의 죽음을 한 시대의 퇴장으로 여겼다. 반세기 동안 지구의 변화를 직접 목격해 온 마지막 증언자. 자연 앞에서 인간의 겸손을 일깨운 그의 마지막도 머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100세를 맞은 데이비드의 존재가 더욱 각별히 다가온다.
<계속>

편집 : 금성무스케잌
마빡 디자인 : 꾸물
기사 : BR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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