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미중 정상회담의 진짜 의미

중국 인민대회당 앞에서 만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출처-<로이터>
미중 정상회담이 열리면 늘 같은 질문이 따라붙는다.
누가 이겼나.
트럼프는 무엇을 얻었나.
시진핑은 어디까지 버텼나.
관세, 희토류, 대만 문제에서 누가 더 많은 카드를 챙겼나.
이번에는 이란 문제까지 추가됐다.
그러나 이번 회담을 승패의 관점에서만 보면, 더 중요한 장면이 보이지 않는다. 더 중요한 장면은 따로 있었다. 중국이 미국 앞에 선을 그었고, 미국은 그 선을 예전처럼 마음대로 넘지 못했다.
이른바 ‘4대 금지선’이다.
1. 대만 문제로 흔들지 말라.
2.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로 압박하지 말라.
3. 정치체제와 발전 경로, 즉 공산당 체제를 겨냥하지 말라.
4. 발전 권리, 즉 중국의 성장 길목을 막지 말라.
중국은 이 네 가지를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미국이 압박할 수는 있어도, 중국의 핵심 이익을 마음대로 재단하던 시대는 끝났다는 선언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는 한 번 더 뒤집힌다. 중국이 그은 선은 미국을 막는 벽이지만, 동시에 중국 자신을 가두는 벽이기도 하다. 미국은 그 선을 넘지 못한다. 중국은 그 선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번 회담의 진짜 의미는 여기에 있다. 미국 패권의 끝도 아니고, 중국 패권의 시작도 아니었다. 두 강대국이 각자의 한계를 서로에게 확인시킨 장면이었다.

미국 "야, 중국 니 많이 컸네"
중국이 정상회담의 조건으로 내세운 첫 번째 기준은 전술한 ‘4대 금지선’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외교 수사가 아니다. 약한 나라는 금지선을 긋지 못한다. 부탁하거나 항의할 수는 있어도, 상대에게 “여기서 멈추라”고 말하기 어렵다.
중국은 이제 그 말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미국이 관세를 때리고, 기술을 막고, 대만 카드를 흔들어도 중국은 물러서기보다 선을 긋는다. 이것이 이번 회담이 보여준 첫 번째 장면이다.

출처-<EPA>
미국은 여전히 강하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의 핵심 이익을 마음대로 재단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힘은 남았지만, 명령은 예전 같지 않다. 미국도 결국 그 선을 의식한 채 정상회담장에 앉았다.
4대 금지선은 중국의 자신감이다. 동시에 미국 단극 시대가 약해졌다는 신호다.
그런데 이 목록은 한 번 더 읽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 네 가지가 외부 비판자가 억지로 만든 기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이 스스로 정상회담의 문턱에 올려놓은 목록이다.
그래서 더 치명적이다. 중국이 미국에 그은 선을 뒤집어 읽으면, 그것은 곧 중국이 세계 리더가 되기 위해 넘지 못하는 네 개의 벽이 된다.
미국의 한계 : 압박은 가능, 관철은 힘듦
트럼프는 중국을 거래의 언어로 상대한다. 관세를 올리고, 시장을 열라고 요구하고, 농산물과 항공기 구매를 압박한다. 희토류, 반도체, 이란 문제까지 모두 협상장 위의 카드가 된다.
이 방식은 트럼프에게 익숙하다. 상대를 몰아붙이고, 비용을 키우고, 마지막에 거래를 끌어내는 방식이다. 문제는 중국이 더 이상 쉽게 몰리는 상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도 미국 시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미국도 중국 없이는 많은 문제를 풀기 어렵다. 희토류 공급망, 세계 제조망, 중동 에너지, 이란 문제, 물가 안정까지 중국과 연결돼 있다.
미국은 중국을 때릴 수 있다. 하지만 중국 없이 세계 경제를 안정시킬 수는 없다. 압박은 가능하지만, 관철은 어렵다.
이것이 미국의 한계다. 힘은 남아 있다. 그러나 명령은 약해졌다.

14일 시진핑 주석과 회담하는 트럼프 대통령
출처-<로이터>
중국이 경고한 4대 금지선
1. 대만 : 동의 없는 통합
중국에게 대만은 주권 문제다. 중국은 대만을 별개의 나라로 보지 않는다. 언젠가 반드시 통합해야 할 자기 영토로 본다.
그러나 세계가 보는 대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대만은 이미 오래전부터 독자적인 정치공동체로 움직여왔다. 선거가 있고, 정부가 있고, 시민의 의사가 있고, 세계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위치도 갖고 있다.
그래서 대만 문제는 지도 위의 선만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중국은 통합을 말하지만, 그 통합을 받아들여야 할 사람들의 동의를 어떻게 얻을지는 말하지 못한다.
여기서 중국 리더십의 첫 번째 한계가 나온다. 세계 리더는 사람들을 끌어당겨야 한다. 그러나 중국은 대만을 설득하기보다 눌러 붙잡으려는 나라로 보인다.
대만은 중국의 힘을 보여주는 문제인 동시에, 중국의 매력이 어디서 멈추는지를 보여주는 문제다.

중국과 대만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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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민주주의와 인권 : 묻지 말라는 리더십
중국은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를 외부 간섭으로 본다. 미국과 서구가 인권을 언제나 순수하게 말해온 것도 아니다. 필요할 때는 크게 말하고, 불편할 때는 조용히 넘긴 역사도 있다.
그러나 서구의 위선이 중국의 면책이 되지는 않는다. 상대가 위선적이라고 해서 내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권은 서구의 소유물이 아니라 인간의 문제다.
세계 리더가 되려면, 불편한 질문에도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감옥에 갇힌 사람, 침묵당한 언론, 사라진 목소리, 감시받는 시민에 대해 “그 문제는 묻지 말라”고 말하는 순간 설득은 멈춘다.
중국은 서구의 이중잣대를 비판할 수 있다. 그 비판에는 맞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나은, 서구의 위선을 압도하는 인간 존엄의 언어를 내놓지 못하면, 비판은 방어에 머문다.
세계는 완벽한 나라를 따르지 않는다. 적어도 자기 문제를 질문받을 수 있는 나라를 더 믿는다. 중국의 약점은 여기에 있다. 비판은 있지만, 보편성은 약하다.
미중 정상회담 직전 뉴스
3. 정치체제와 발전 경로 : 질문 밖에 선 체제
중국은 자기 정치체제와 발전 경로를 건드리지 말라고 한다. 겉으로는 각 나라가 자기 길을 선택할 권리를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실제로는 공산당 통치체제에 대한 외부 비판을 차단하겠다는 뜻에 가깝다.

출처-<중국 신문판공실>
물론 모든 나라가 같은 제도를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식 민주주의가 세계의 유일한 답도 아니다. 각 사회는 자기 역사와 조건 속에서 제도를 만든다.
문제는 그 제도가 질문 밖에 서려고 할 때 생긴다. 세계 리더가 되려는 나라는 자기 체제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비판이 들어오면 막는 것이 아니라, 왜 그 체제가 더 나은 질서를 만들 수 있는지 보여줘야 한다.
미국이 오래 세계를 이끌 수 있었던 이유는 미국이 완벽해서가 아니었다. 미국도 인종차별, 빈부격차, 전쟁, 감시, 돈 정치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다만 자유, 법치, 선거, 언론이라는 기준 안에서 미국 자신도 비판받을 수 있었다.
중국은 효율을 보여준다. 빠른 결정, 장기 계획, 거대한 동원 능력도 보여준다. 그러나 효율은 신뢰와 다르다.
빨리 결정하는 국가는 될 수 있다. 그러나 세계가 안심하고 따르는 국가는 아직 아니다.
4. 발전 권리 : 주변국을 불안하게 하는 성장
중국이 말하는 발전 권리에는 맞는 부분이 있다. 어떤 나라도 다른 나라의 성장을 마음대로 막아서는 안 된다. 미국의 반도체 통제와 기술 봉쇄는 중국 입장에서 실제 압박이다. 중국이 “우리도 발전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 발전이 주변국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다.
중국은 발전을 말하지만, 필리핀과 베트남은 남중국해에서 압박을 느낀다. 중국은 해양 진출을 말하지만, 주변국은 자기 바다가 줄어드는 위협으로 듣는다. 어업권이 흔들리고, 해상교통이 불안해지고, 군사적 긴장도 커진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주장하는 해상 영토(빨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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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중국 리더십의 네 번째 한계가 드러난다. 세계 리더는 자기 성장을 주변국의 불안 위에 세우지 않는다. 가까운 나라들이 안심하지 못하는 강대국은 세계의 중심이 되기 어렵다.
중국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주변국들은 아직 중국의 성장을 함께 안전해지는 과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것이 중국 발전권의 역설이다.
그래서 중국은 미국을 막을 수 있지만, 대신할 수는 없다
여기서 이번 회담의 두 번째 결론이 나온다.
중국은 미국을 막을 힘을 얻었다. 대만, 인권, 체제, 발전권에서 “여기부터는 넘지 말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미국도 그 말을 완전히 무시하지 못한다.
그러나 막는 힘과 이끄는 힘은 다르다. 중국은 미국의 압박을 버틸 수 있다. 그렇다고 세계가 중국의 질서를 따르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명령은 약해졌다. 그러나 중국의 설득도 부족하다. 미국은 더 이상 세계를 마음대로 끌고 가지 못하고, 중국은 아직 세계가 믿고 따를 언어를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벌어지는 일은 패권 교체가 아니다. 미국의 자리를 중국이 곧바로 차지하는 장면도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패권 공백이다. 미국은 내려오고 있지만, 중국은 아직 올라서지 못했다.

헤징의 시대 : 도래할 세계는 신냉전이 아니다
그래서 세계는 신냉전으로만 가지 않는다. 냉전은 선택의 시대였다. 워싱턴이냐 모스크바냐. 어느 편에 설 것인가가 국가의 운명을 갈랐다.
지금은 다르다. 미국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예전처럼 안심을 주지 못한다. 중국은 피할 수 없을 만큼 커졌지만, 그렇다고 믿고 따르기에는 불편하다.
유럽은 미국의 보호를 의심하면서도 중국을 경계한다. 동남아는 중국 시장을 필요로 하지만 남중국해를 두려워한다. 걸프 국가는 미국의 안보 우산과 중국의 경제력을 동시에 본다. 한국도 안보는 미국과 함께하지만, 경제와 공급망에서 중국을 무시할 수 없다.
이것이 헤징(Hedging)이다. 충성이 아니라 계산. 줄 서기가 아니라 위험 분산.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를 필요로 하면서 양쪽 모두를 완전히 믿지 않는 방식이다.
패권 공백의 시대에 국가는 신념보다 생존을 먼저 계산한다. 세계는 진영으로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안별로 연결을 바꾸며 버티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리좀적 국제질서
냉전의 세계는 나무에 가까웠다. 줄기는 워싱턴, 모스크바 둘이었다. 어느 줄기에 붙어 있느냐가 많은 나라의 운명을 갈랐다.
미국 단극 질서는 줄기가 하나인 나무였다. 가지는 많았지만, 중심은 워싱턴이었다. 달러, 미군, 동맹, 국제기구, 무역 질서가 그 줄기를 따라 움직였다.
지금의 세계는 조금 다르다. 나무보다 뿌리줄기에 가깝다. 안보는 미국으로 뻗고, 시장은 중국으로 뻗고, 에너지는 중동으로 뻗고, 기술은 여러 표준 사이를 오간다. 하나의 길이 아니라 여러 길이 동시에 작동한다.
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런 연결 방식을 리좀(rhizome)이라고 불렀다. 중심 줄기 하나에서 질서가 뻗는 것이 아니라, 여러 방향으로 이어지고 끊어져도 다른 곳에서 다시 연결되는 방식이다.
그러나 지금의 국제질서는 1990년대식 낙관의 리좀이 아니다. 중심이 사라져 자유로워진 것이 아니다. 중심을 믿을 수 없어서 사방으로 뻗는 것이다.
해방의 리좀이 아니라 불안의 리좀이다. 이것이 헤징의 시대가 가진 진짜 얼굴이다.

즉,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그야말로, 패권의 공백으로 인한 계산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전 세계에 보여준 사건이라 정리할 수 있다. 믿을 중심이 없는, 각자 살길을 찾아야 하는, 각자도생의 시대의 선언식이었다.

편집: 임권산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임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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