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5월 18일에 탱크를 팔겠다는 스타벅스 코리아

 

제대로 이름 붙이지 않은 폭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충분히 단죄되지 않은 조롱도 사라지지 않는다. 잠시 숨을 뿐이다. 어둠 속으로 물러난 말들은 때가 되면 다시 고개를 든다.

 

한국 사회에서 5.18은 오래전부터 그런 일을 겪어왔다. 광주는 애도 되었지만 동시에 모욕당했고, 기념되었지만 동시에 왜곡되었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불렸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비틀린 농담의 소재가 되었다.

 

지만원.jpg

오랜 기간 5.18 광주민주항쟁이

북한군이 일으킨 폭동이라고

망언해 온 지만원

 

이번에는 그 말들이 댓글창이나 정치 집회가 아니었다. 대기업의 홍보 화면 위로 올라왔다. 5월 18일, 스타벅스 코리아는 ‘Tank Day’ 행사를 내걸었다. 텀블러를 책상에 ‘탁’ 놓는다는 식의 문구도 붙였다.

 

광고00.PNG

광고1.jpg

 

날짜는 광주를 불러냈고, 단어는 탱크를 불러냈고, 소리는 박종철의 죽음을 덮으려던 국가의 거짓말을 불러냈다. 논란이 확산되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이재명 대통령 sns.PNG

출처-<이재명 대통령 X>

 

결국 행사는 중단됐고, 사과가 나왔고, 대표 경질까지 이어졌다.

 

로이터는 이 논란이 광주민주화운동과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함께 환기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PNG

제목 : 대중의 공분을 촉발한 '탱크 데이' 프로모션 후 스타벅스 코리아 수장 해임

출처-<로이터> 링크

 

그러나 아직 사태는 제대로 마무리된 것이 아니다. 스타벅스 행사는 내려갔지만, 화면에 올라왔던 말들은 그렇게 쉽게 내려가지 않았다. 

 

그 장면에는 세 가지가 겹쳐 있었다. 

 

첫째, 인간의 고통을 읽지 못한 감각의 빈곤

 

둘째, 기업이 스스로 만든 브랜드 가치를 훼손한 비용 계산의 실패

 

셋째, 5.18을 조롱해 온 말들이 여전히 한국 사회의 어딘가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정치적 사실

 

이 사건은 커피 회사의 하루짜리 홍보 사고로 끝나지 않는다. 봉합되지 않은 과거는 다른 입을 빌려 되돌아온다. 이번에는 그 입이 기업의 홍보 문구였고, 그 화면 위에 탱크와 탁이 함께 올라왔을 뿐이다.

 

 

인문학적 천박함 : 인간은 소비자 이전에 기억하는 존재다

 

말은 사전 속에서만 살지 않는다. 사전은 말의 주소를 적어둘 뿐, 그 말이 실제로 어떤 표정으로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는지는 알지 못한다. 말은 기억을 만나 무거워지고, 죽음을 만나 날카로워지고, 어떤 날짜를 만나면 더 이상 농담이 될 수 없는 것이 된다.

 

기업은 이 차이를 자주 모른다. 기업의 언어는 대체로 가볍다. “신제품”, “할인”, “이벤트”, “한정 판매”, “오늘만” 같은 말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문제는 세상의 모든 말이 그렇게 가볍게 팔려나갈 수는 없다는 데 있다. 어떤 단어는 상품 진열대에 올려놓는 순간, 물건보다 먼저 역사를 불러낸다.

 

탱크가 그랬다. 탱크는 어느 날에는 튼튼한 텀블러의 이름일 수 있다. 그러나 5월 18일의 한국에서 탱크는 상품명으로만 머물 수 없다. 그 말은 광주의 거리, 계엄군, 장갑차, 총성, 시민의 죽음을 함께 데려온다. 가디언도 이번 광고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민주화 시위대 학살을 연상시켰고, “Tank Day”라는 표현이 광주 진압의 장갑차 기억과 연결됐다고 보도했다.  

 

가디언.PNG

제목 : 스타벅스 코리아 대표가 민주화 시위대 학살을 연상시키는 광고로 인해 해임되다.

출처-<가디언> 링크

 

“탁”은 더 깊이 찌른다. 한국어에서 탁은 그저 물건이 닿는 소리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 현대사에서 그 소리는 한 청년의 죽음을 덮으려던 국가의 문장과 붙어 있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말. 그것은 권력이 사람의 죽음을 얼마나 뻔뻔하게 말로 지우려 했는지를 보여준 문장이다. 로이터는 이번 “Tak” 표현이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경찰의 거짓 해명을 떠올리게 했다고 설명했다.  

 

문제의 단어는 하나가 아니었다. 

 

탱크, 탁, 5월 18일.

 

광고00.PNG

광고1.jpg

 

우선, 광고를 보자마자 한국 사람이라면 눈에 확 들어올 부분만 해도 3개였다.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의심되는 부분은 많다.

 

1.jpg

 

503ml : 박근혜의 수인번호 503이라는 해석도 있고, 한 극우 매체의 보도로 시작된 주장 중 5.18 민주화운동 보상자가 실제 유공자보다 503명 더 많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를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다. 즉, 5.18 가짜 유공자가 503명이라는 것이다.

 

2.jpg

 

21% : 계엄군의 첫 집단 발포가 벌어진 21일로 해석될 수 있다.

 

4.PNG

3.jpg

 

오전 10시, 10% : 5·18민주화운동 최초 충돌 시각인 18일 오전 10시로 해석될 수 있다.

 

5.jpg

 

7 : 대한민국 지도에서 전라도가 한반도의 7시 방향에 위치한다고 하여 극우 커뮤니티에서 전라도를 비하하는 용어로 ‘7’을 주로 사용한다. 이 용어로 해석될 수 있다.

 

이걸 한 광고에 모아놨는데도 실수였다고 말한다면, 그 실수는 거의 재능에 가깝다. 한국 현대사의 가장 아픈 기호들을 이렇게 정확히 밟기도 쉽지 않다. 의도하지 않고는 일어나기 굉장히 힘든 일이다.

 

그래서 불쾌감은 더 깊다. 사람들은 단순히 텀블러 광고를 본 것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5.18을 희화화해 온 말투가 기업 홍보의 얼굴을 하고 다시 나타난 장면을 본 것이다. 조롱은 늘 이런 식으로 돌아온다. 대놓고 말하지 않고, 농담인 척하고, 우연인 척하고, 문제 삼는 사람을 예민한 사람으로 만든다.

 

사람의 죽음 앞에서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공동체의 상처에도 장난으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자리가 있다. 그 선을 알아보고 스스로 멈추는 일은 교양의 장식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 남기 위한 최소한의 분별이다. 아무리 이윤 추구가 목적인 기업이라도 그 분별을 갖추지 못한다면, 그 기업의 메시지는 천박한 폭력만이 될 뿐이다.

 

 

스타벅스는 경제학적으로도 천박했다

 

이 사건은 사람의 죽음을 장난처럼 다룬 문제이지만, 동시에 아주 현실적인 경제 문제이기도 하다. 스타벅스는 텀블러 가격을 계산했을 것이다. 재고, 할인율, 판매량, 행사 효과, 클릭 수, 전환율도 따졌을 것이다. 그러나 5월 18일에 탱크를 올려놓는 비용은 계산하지 못했다.

 

기업은 자신이 숫자에 밝다고 믿는다. 그런데 정말 비싼 비용은 종종 장부 바깥에서 생긴다. 불매의 비용, 회원 해지의 비용, 사과문의 비용, 대표 해임의 비용, 내부 조사와 재교육의 비용. 무엇보다 가장 큰 비용은 신뢰다. 브랜드는 한 번 상처를 입으면, 다음 판매 때도 그 흉터를 데리고 간다.

 

로이터는 이번 논란 뒤 환불 요구와 회원 해지, 스타벅스 제품 파손, 불매 요구가 이어졌고, 신세계 그룹 계열 이마트 주가도 하락했다고 보도했다. 

 

스벅 불매.PNG

SNS상에 올라오고 있는

스타벅스 불매 운동 이미지,

그리고 상품 파괴 인증 글

 

스페인 경제매체 Cinco Días도 보이콧 요구, 서비스 해지, 제품 파손 영상, 스타벅스 글로벌의 사과와 내부 조사 방침까지 경제 뉴스로 다뤘다. 커피잔 하나를 팔려던 일이 기업 가치 전체를 흔드는 사건이 된 셈이다.

 

스페인 언론.PNG

제목 : 1980년 군사 탄압을 연상시켜 대표 해임으로 이어진 한국 스타벅스의 논란의 광고

출처-<Cinco Días> 링크

 

브랜드는 로고가 아니다. 매장 인테리어도 아니고, 앱에 쌓이는 별도 아니다. 브랜드는 사람들이 그 이름을 들었을 때 함께 떠올리는 감정이다. 그 감정이 편안함이면 자산이 되고, 모욕이면 부채가 된다. 스타벅스가 팔아온 것은 커피만이 아니었다. 편안한 공간, 안전한 이름, 일상의 작은 보상 같은 감정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이름 옆에 탱크와 탁이 붙었다.

 

이런 문구는 혼자 태어나지 않는다. 누군가 기획했고, 누군가 디자인했고, 누군가 승인했고, 누군가 봤고, 누군가 그냥 넘겼다. 큰 기업의 실패는 한 사람의 돌발 행동보다,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여러 사람의 침묵에서 자주 나온다. 조직이 크면 위험을 더 잘 걸러낼 것 같지만, 실제로는 책임이 여러 칸을 지나며 희미해질 때가 많다.

 

한국 대기업의 약점은 몸집이 작아서가 아니다. 몸집은 이미 충분히 크다. 문제는 큰 조직이 공적 판단을 키우는 대신, 윗사람의 취향과 분위기를 읽는 데 익숙해질 때 생긴다. 숫자는 빠르게 올라가지만, 위험한 말에 대한 경고는 올라가지 않는다. 매출은 보고되지만, 모욕의 비용은 보고되지 않는다.

 

정용진 인스타그램.PNG

사각형 안의 글자를 

거꾸로 뒤집어 읽으면

‘멸공’이 된다.

 

정용진.jpg

북한, 중국과 평화적 분위기를 만들어

최대한의 국익을 도모하자는

평화적 외교 방식을 ‘멸공’이라는 

단어로 조롱하며, 

국내 민주 세력을 향해 

냉전 시대에나 할 법한 빨갱이 프레임을 씌우는

정용진 신세계 그룹의 성향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기업은 가격을 매기지만, 사회는 가격표 바깥에서 반응한다. 이번 사건에서 스타벅스가 놓친 것은 텀블러의 가격이 아니라 기억의 비용이었다. 그 비용은 할인 행사로 회수되지 않고, 사과문 한 장으로 완전히 정산되지도 않는다. 돈을 가장 잘 안다고 믿는 기업이, 정작 가장 비싼 것을 계산하지 못한 사건이었다.

 

 

정치학적 천박함은 조롱을 공적 언어로 만든다

 

이 이야기를 기업의 무지로만 묶어두면 너무 편하다. 무식한 홍보팀, 허술한 검수, 사과문, 대표 경질. 이렇게 끝내면 사건은 하루짜리 소동이 된다. 그러나 이 장면의 더 어두운 대목은 따로 있다. 

 

5.18을 조롱하는 말은 이번에 처음 생긴 것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있었다. 댓글창에 있었고, 일부 정치인의 입에 있었고, 극우적 음모론의 문장 속에 있었다.

 

광주는 오랫동안 모욕당했다. 누군가는 희생자를 의심했고, 누군가는 학살을 음모론으로 덮었고, 누군가는 민주주의의 피를 농담처럼 소비했다. 그 조롱은 늘 비겁했다. 광주를 정면으로 이기기 어려우니, 암시와 말장난과 비틀린 농담으로 기억을 갉아먹었다. 가디언은 이번 사건을 보도하면서, 한국의 극우 담론 일부가 광주민주화운동을 북한과 연결하는 허위 서사를 유통해 왔다는 맥락까지 짚었다.  

 

그래서 이번 일은 섬뜩하다. 

 

탱크, 탁, 5월 18일. 

 

이 조합은 너무 정확한 곳을 찔렀다. 의도가 어디까지였는지 문서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장면이 가진 정치적 냄새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조롱은 원래 정장을 입고 오지 않는다. 농담인 척, 우연인 척, 몰랐던 척한다. 그러다 항의가 나오면 말한다. 왜 그렇게 예민하냐고.

 

이번에도 비슷했다. 조롱의 언어는 변방에만 있지 않았다. 상품의 언어를 빌려 중심으로 들어왔다. 댓글창의 비열함이 기업 홍보 문구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 셈이다. 그래서 문제는 스타벅스가 무슨 정치 선언을 했느냐가 아니다. 5.18을 희화화해 온 말들이 이사회의 공기 속에 얼마나 오래 떠돌았기에, 대기업의 홍보 화면에서도 그 냄새가 났느냐는 점이다.

 

정치는 선거와 권력 싸움만이 아니다. 공동체가 무엇을 기억할 것인지, 무엇을 모욕으로 볼 것인지, 어떤 죽음 앞에서 멈출 것인지를 정하는 일도 정치다. 5.18을 지킨다는 것은 과거에 갇히겠다는 뜻이 아니다. 다시는 국가가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누고도, 그 장면이 장난과 상품의 소재가 되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이다.

 

외신도 이 일을 커피 회사 해프닝으로만 읽지 않았다. 로이터는 “Tank Day”와 “Tak”이라는 표현이 각각 광주민주화운동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환기했다고 보도했고, 가디언은 이 광고가 독재 시절 민주화 시위대 학살을 연상시켰다고 썼다. 알자지라는1980년 광주의 유혈 진압을 불러낸 홍보라고 전했고, 스페인 경제매체 Cinco Días도 이 사안을 1980년 군사 진압의 기억을 환기한 광고로 다뤘다. 세계는 이 일을 커피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억 문제로 읽었다.  

 

알자지라.PNG

제목 : 스타벅스 코리아 대표가 군사 진압을 연상시키는 프로모션으로 인해 해고되었다.

출처-<알자지라> 링크

 

아이러니하다. 멀리 있는 외신은 이 사건이 왜 문제인지 비교적 빨리 알아들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장사하는 대기업은 몰랐다고 한다. 세계는 광주를 읽었는데, 한국 시장에서 돈을 버는 기업은 광주 앞에서 멈추지 못했다. 이쯤 되면 무지는 변명이 아니라 또 하나의 혐의다. 광주를 몰랐다는 말은, 한국에서 벌어들인 돈의 크기에 비해 한국이라는 사회를 읽은 깊이가 얼마나 얕았는지를 고백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커피는 식어도 기억은 식으면 안 된다

 

전술했듯, 이번 사건은 세 겹으로 남는다. 하나는 사람의 고통을 읽지 못한 천박함이고, 다른 하나는 기억의 비용을 계산하지 못한 천박함이며, 마지막 하나는 5.18을 조롱해 온 말들이 기업의 언어를 빌려 다시 고개를 든 정치적 천박함이다.

 

스타벅스는 행사를 내렸고, 사과문을 냈고, 대표도 물러났다. 그러나 그런 조치들로 화면 위에 올라왔던 말들이 곧장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탱크와 탁은 이미 자신들이 불러낸 기억을 데리고 나왔다. 광주와 박종철은 홍보 문구의 배경음처럼 소비될 수 있는 이름이 아니다.

 

커피는 식어도 된다. 텀블러는 안 팔리면 창고로 돌아가도 된다. 그러나 기억은 그렇게 처리되지 않는다. 기억은 재고가 아니고, 상처는 마케팅 실패 보고서의 한 줄이 아니며, 죽음은 할인 행사 뒤에 치우는 장식물이 아니다.

 

스타벅스는 고객의 이름을 부르는 기업이다. 한국에서도 닉네임을 부르고, 화면에 띄우고, 그 이름으로 주문을 완성한다. 이번에는 우리가 물을 차례다. 당신들은 이 나라의 이름을 알고 있었나. 광주라는 이름을, 박종철이라는 이름을, 그리고 5월 18일이라는 이름을 정말 알고 있었나.

 

광주는 오래 싸워 이겼다. 더 이상 광주를 대놓고 “폭동”이라 부르는 말은 예전처럼 쉽게 공론장의 중심에 서지 못한다. 역사가 싸워 얻은 최소한의 승리다.

 

그러나 비겁한 말들은 패배했다고 곧장 사라지지 않는다. 정면으로 말하면 비난받을 것을 알기에, 농담으로 몸을 바꾼다. 암시가 되고, 말장난이 되고, 우연을 가장한 기획이 된다. 그리고 문제가 되면 늘 같은 말로 빠져나간다. 

 

“몰랐다, 그런 뜻은 아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틈을 타 잘못된 역사관을 가진 이들은 다시금 고개를 든다. 다음의 모습들이 이번 스타벅스 사태 이후 벌어진 일들이다.

 

최준용.PNG

배우 최준용 씨 SNS

 

대구 스레드.PNG

대구의 한 스타벅스

 

자칭 우파 미녀라는 시민의 스레드 게시물.PNG

SNS에 올라온 자칭 우파 미녀의 게시글

 

전두환.PNG

극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게시물

 

국민의힘 충북도당.PNG

국민의힘 충북도당 SNS

 

이번 스타벅스 논란이 섬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광주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말은 밀려났지만, 광주를 비틀어 조롱하는 말투는 아직 살아 있었다. 

 

이번에는 그 말투가 커피잔 위에 올라왔을 뿐이다. 문제는 그 잔 하나가 아니라, 그런 잔이 아무렇지 않게 만들어지고 진열될 수 있었던 이 사회의 오래된 방심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사과문이 아니다. 그런 말이 다시 상품의 얼굴을 하고 돌아오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적 기억의 힘이다. 5월 18일을 기념한다는 것은 해마다 꽃을 놓는 일만이 아니다. 탱크를 탱크라고, 조롱을 조롱이라고, 모욕을 모욕이라고 부르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커피는 식으면, 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식어버린 기억은 다시 모욕의 언어를 불러낸다. 이번 일을 한 기업의 실패로만 접어두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광주를 지키는 일은 과거를 붙드는 일이 아니라, 다시는 이런 말들이 웃음과 장사의 얼굴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배너.png

 

 

편집: 임권산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임상훈

 

 

제보 및 연재 문의

ddanzi.master@gmail.com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