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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섭 씨.jpg

윤창섭(32세)

택배기사

 

경력: 6년

일평균 걸음수: 2만 보

한달 평균 배송: 5,000개 이상

개당 수수료: 756원

 

 

그날 그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잠시만요”였다. 인터뷰가 수시로 끊겼다. 그는 1분이 멀다하고 차에서 내려 화물칸 문을 열었다. 상자 들고, 이리저리 뛰었다. 숨을 헐떡거리며 다시 차에 올라탄 그가 “아까 뭐라고 물어보셨죠?”라고 반문했다. 산타를 보는 것 같았다. 동화 속 산타할아버지는 1년에 딱 하루, 12월 24일 밤에만 선물을 배달한다. 루돌프가 끄는 눈썰매 타고 하늘 날아다니며. 창섭 씨는 1년 365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선물을 배달한다. 1.5톤 탑차 몰고 골목골목 다니며 이집 저집 문을 두드린다.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뒷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이야말로 21세기 산타가 아닐까.

 

 

택배 기사 24시

 

화요일이다. 물량이 가장 많은 날이다. 7시 30분, 집에서 나온다. 1.5톤 탑차 몰고 물류터미널로 향한다.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출발한 물류가 모이는 곳이다. 종이로 만든 돛단배가 시냇물 따라 졸졸 흐르듯, 레일 따라 물류가 줄지어 이동한다. 무거운 상자가 이동할 때마다 드르륵드르륵, 요란한 굉음을 쏟아낸다. 화물칸을 레일로 향하게, 1.5톤 탑차를 조심히 후진한다. 차에서 내려 먼저 도착한 기사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빨간 조끼 입은 사람들 얼굴엔 벌써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분류 도우미다. 이들 주 업무는 ‘까대기’(레일 따라 이동하는 물류를 정렬하고, 구역별로 분류하고, 레일에서 건져내 탑차 앞에 쌓아주기까지의 작업)다. 택배기사보다 2시간 정도 먼저 나온다. 잠시 서서, 그들을 바라본다. 정렬하고 분류하고 건져서 쌓는 동작을 무한히 반복한다. 군더더기가 없다. 허리 숙여 물류 내려놓을 때마다 땀방울이 후드득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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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도우미가 생긴 건 4년 전쯤이다. 그전까진 모든 작업을 택배 기사가 직접 했다. 새벽 6시에 출근해 정렬하고, 분류하고, 건져서 탑차 앞에 던져놓고, 다시 재분류해 탑차에 가득 쌓고 나면 정오였다. 한바탕 난리굿을 떨어야, 배달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니 툭하면 과로사로 쓰러졌다. 택배 기사 한 명이 죽고, 두 명이 죽고 수십 명이 죽고 나서야 분류 도우미 제도가 정착됐다. 택배 기사들 목숨을 갈아 넣어 만든 제도인 셈이다.

 

탑차 앞에 쌓아놓은 물류를 하나씩 확인해 가며 화물칸에 싣는다. 무게와 형태와 배달 동선을 모두 헤아려야 한다. 무겁고 반듯한 박스는 아래로, 가볍고 둥근 건 위로, 나중에 배달할 건 뒤로, 먼저 배달할 물류는 앞으로. 누가 누가 테트리스 잘하나 시합하듯 차곡차곡 쌓아나간다. 이 과정에 하나라도 삐끗하면 기껏 쌓아놓은 박스가 와르르 무너지거나 배달 다니는 내내 화물칸을 들쑤셔야 한다. 혹은 갔다 왔던 동네로 되돌아가 배달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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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30분, 3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상자를 화물칸 가득 실었다. 차에 올라 부르릉 시동을 건다. 첫 번째 구역은 ‘번지대’(아파트를 제외한 빌라, 주택, 상가 등을 통칭해 번지대라 부른다)다. 엘리베이터 없는 4~5층 빌라가 밀집한 동네다. 이런 동네에서 ‘똥짐’(소금에 절인 배추, 생수병 묶음, 쌀가마니 등 무겁거나 들기 번거로운 짐) 걸리면 일진이 사나워진다. 번지대를 얼마나 빨리 끝내느냐에 따라 퇴근 시간이 달라진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른다. 오후 2시, 번지대를 끝냈다. 손가락이 저릿저릿하다. 직업병이다. 아파트 단지로 가는 길, 잠시 편의점에 들러 김밥 한 줄과 생수를 산다. 한가하게 식당에 앉아 밥 먹는 건 사치다. 예정보다 배달이 늦어지면 전화통이 불난다. 지금 당장 필요한 물건인데 왜 안 오냐, 도대체 언제 오냐.

 

김밥을 우걱우걱 씹어가며 아파트 단지로 들어간다. 그나마 요즘 아파트는 할 만하다. 지하 주차장이 전부 이어져 있다. 물류를 ‘구르마’(수레의 방언)에 쌓아 밀고 다니면 된다. 구르마를 끌고 엘리베이터에 탄다. 먼저 타 있던 꼬마가 예의 바르게 인사한다. 반갑게 웃어줬다. 코로나가 사회 전반을 뒤흔들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를 맞이한 건 택배업계다. 비대면이 일상화함에 따라 택배 물류가 폭발했다. 언론이 주목했고, 누적됐던 부조리와 낡은 시스템이 대중에 까발려졌다. 분류 도우미가 생긴 것이 이즈음이었다. 그러면서 택배 기사에 관한 인식도 개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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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 화물칸에서 마지막 택배 상자를 꺼내 현관문 앞에 살포시 내려놓는다. 어깨를 짓눌렀던 하루치 무게도 함께 내려놓는다. 허리는 쑤시지만, 어쩐지 몸이 가볍다. 21,375보. 오늘 내디딘 걸음 수다.

 

 

좌절과 실패 끝에 만난 택배 기사

 

창섭 씨는 개발자를 꿈꾸는 소년이었다. 고등학교 내내 기능올림픽 입상을 목표로 게임 개발에 몰두했다. 3년을 컴퓨터 앞에서 보냈건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어느 영역이나 천재는 따로 있더라고요. 프로그램 언어 하나 풀기 위해 저는 일주일을 고민하는데 어떤 사람은 1분 만에 뚝딱 풀어내요. 어느 순간, 이게 노력한다고 되는 건가 싶더라고요. 한계에 부딪히다 보니까,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전투적으로 달려들지 못했어요.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스스로 한계를 설정했던 것 같아요. 조금 더 절박했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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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을 못 버려 컴퓨터공학과에 들어갔다. 이미 냄비가 식어있었다. 군대 다녀와 학교 대신 사회로 나갔다. 정수기 설치 기사, 창섭 씨의 첫 직업이었다. 어린 나이에 신발 벗고, 남의 집 주방까지 들어가 고객 응대한다는 게 쉬울 리 만무했다.

 

“일 자체가 힘들거나 어려운 건 아니었어요. 아침에 출근해 너덧 집 다니면서 정수기 설치해 주는 게 전부였으니까요. 대신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그때 제가 22살밖에 안 됐으니까, 고객들 눈엔 어린애 같았겠죠. 그래서 그런지 반말 툭툭 던지면서 명령하듯 대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이렇게 살 순 없다고 생각했다. 1년 반 일하며 모은 돈 들고 무작정 서울로 갔다. 학원부터 등록했다. 프로그램 언어 배우는 학원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기초부터 다시 시작했다. 의욕은 넘쳤는데 이번엔 상황이 안 도왔다. 상경 6개월 만에 통장 잔고가 바닥났다.

 

“친구가 같이 애플리케이션 개발해 보자고 해서 스타트업 차렸는데 언제 수익 창출하게 될지 기약이 없었어요. 개발자로 취업 자리도 알아봤는데, 잘 안됐고요. 집에서 지원해 줄 형편도 아니었어요. 막판엔 친구 집에 얹혀 지내면서 끼니마다 밥까지 얻어먹었어요. 그 지경에 이르니까 더는 못 버티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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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어에 짐 꾸려 다시 서울역으로 향하던 날, 창섭 씨는 개발자가 되겠다는 꿈을 완전히 접었다. 그때부터 이 공장 저 공장 떠돌았다. 마지막 공장에서 그가 받은 월급은 겨우 190만 원이었다. 사무직 뽑는다고 해서 들어갔다. 직원 10명 남짓한 영세한 사업장에 내 역할 네 역할이 따로 있지 않았다.

 

“진짜 별의별 일 다했어요. 지게차도 끌었다가, 생산직 ‘빵꾸’ 나면 가서 기계도 돌리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엑셀 작업도 했다가. 그런데 월급은 꼴랑 190만 원이니까 월세랑 공과금 내고, 이것저것 생활비 쬐금 쓰고 나면 단돈 10만 원도 저축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다 경력 20년 공장장님 월급이 400만 원도 안 된다는 걸 알아버렸어요. 내가 여기서 끝까지 가봐야 공장장일 텐데, 이게 맞나 싶더라고요.”

 

그즈음 택배 기사로 일하는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친구가 월급통장을 보여줬을 때 창섭 씨는 어안이 벙벙했다. 믿기지 않았다. 친구는 창섭 씨보다 두 배, 아니 세 배 가깝게 벌었다. 창섭 씨는 친구가 사준 소고기 먹고 집에 오자마자 사직서를 썼다.

 

 

오늘 하루의 무게를 감당해 내는 것

 

하루 평균 300개. 창섭 씨가 매일 감당하는 ‘짐’이다. 보통 10시 30분에 상차 끝내고 터미널에서 출발한다. 담당하는 구역에 도착해 배달 시작하는 게 11시다. 이때부터 창섭 씨는 단 1분도 안 쉬고 헐레벌떡 뛰어다닌다. 이동하는 차에서 햄버거나 김밥 따위 씹어가며, 끊임없이 울려대는 전화 받아 가며, 뛰고 또 뛴다. 1분 30초마다 꼬박 한 개씩 배달해야 겨우 저녁 6시에 화물칸을 비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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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비를 맞아야 한다. 눈이 오거나 태풍이 몰아쳐도 피할 수 없다. 창섭 씨가 보호해야 하는 건 자신의 몸뚱이가 아니라, 고객의 소중한 택배다. 열이 펄펄 끓고,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쑤셔도 멈출 수 없다.

 

“언제였던가. 몸살감기가 독하게 와서 진짜 계단 한 번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고통스럽더라고요. 그래도 어쩔 수 있나요? 매일매일 저에게 할당된 물량이 있잖아요. 택배 오길 목 빠지게 기다리는 제 구역 주민들이 있고요. 그러니까 우린 몸이 아파서 죽을 것 같아도 쉴 수 없는 거예요. 아니, 쉬면 안 되는 거죠. 그날도 진짜 두어 개 배달하고 차에서 잠깐 기대앉아 쉬고, 또 나가서 몇 개 배달하고 잠깐 길바닥에 쭈그려 앉아 쉬고. 그렇게 배달했어요. 밤 10시에 겨우 끝냈다니까요.”

 

구역과 할당이라는 대전제 앞에 개인의 사정과 안녕 같은 건 고려 대상이 아니다. 최근엔 물류 플랫폼끼리 새벽 배송이니 365일 배송이니 해가며 속도 경쟁을 벌인다. ‘카체이싱’ 보다 빠른 속도 경쟁에 치여 죽는 건 고라니가 아니라 택배 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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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당 수수료(평균 756원)는 10년 넘게 제자리다. 물가 상승을 고려하면 실질임금은 줄어든 셈이다. 수수료를 올려주지 않으니, 구역과 물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저마다 실질임금을 맞춘다. 뼈를 깎고 살을 발라 억지로 물가상승률을 좇는 꼴이다. 창섭 씨는 “그건 그것대로 개선해야 할 일”이라고 전제하면서, 자신은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하겠다고 말한다.

 

“택배는 방학 숙제하듯 미뤘다가 한 번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오늘 저에게 주어진 물량을 내일로 미루지 않고 오늘 감당해 내야만 하는 거죠. 그게 택배 기사의 숙명이자 책임이에요. 지금 당장 제가 할 수 있는 건 딱 그 정도예요. 오늘 하루의 무게를 감당해 내는 것.”

 

창섭 씨에겐 루돌프도 없고, 썰매도 없다. 그를 기다리는 302동 1302호 김철수 씨와 492-3번지 2층 이영희 씨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무거운 쌀가마니를 어깨에 둘러메고 열심히 뛴다.

 

 

 

불혹의 아들이 기록한

1961년생 '정동분'의 연대기.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이기 이전에

뜨겁게 삶을 살아낸 한 여성의 고백.

 

<노가다 칸타빌레> 꼬마목수의 신작,

<61년생 정동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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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꾸물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꼬마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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