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이번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4천 명이 넘는 자리를 놓고 1만 4천 명이 넘는 후보자들이 경쟁했습니다. 이 중 60%에 가까운 약 2,450명의 당선자는 민주당 소속의 후보들입니다. 이 결과를 그저 태연하게 받아들이기엔, 우리의 간절함은 더 컸고 그만큼 쓰라림도 깊었습니다. 헌데 그 쓰라림이 잠실에서 아주 황당한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농민신문, 링크)
이런 쓰라리고 황당한 일을 받아들이고 이해해 보려고 십수 년 전 이곳 딴지에서 ‘뱅뱅이론’이라는 말을 처음 썼고,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독자들 사이에서 회자되어 세간에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제가 쓰고 만든 말이지만, 그 말을 다시 써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왔고, 그 바람과는 상관없이 그런 일들은 이따금 벌어지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또 벌어졌습니다.
이변을 이해로
이변(異變)이라고들 합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기이한 일. 이럴 줄은 몰랐던 일이 일어나면 이변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말 대신 ‘이변은 없었다’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말입니다. 모든 일에는 벌어질 만한 이유가 있으니 사실 기이하다 할 만한 게 없습니다.
얼마 전 제가 친구에게 ‘세상에 삼성전자 주가가 30만 원을 넘을 줄은 정말 예상 못 했다’라고 했더니, 친구가 그러더군요. 주식에서 니 예상이 맞았던 적이 있긴 있냐. 뼈를 맞았지만,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제가 어떤 주식 종목의 변동에 대해 ‘이변’이라는 말을 쓰면 어색한 것이죠. 예상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변이라 말하기에는, 사실 거의 모든 일을 예상하지 못합니다. 그저 바람과 기대를 품어보고, 그것이 맞거나 틀린 것으로 드러나는 결과를 맞이합니다.
다만, 그 이유를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왜 그 일이 일어났는지, 또는 일어나지 않았는지. 무엇이 어떤 작용을 통해 어떤 영향을 끼친 것인지를 알아내려 노력합니다. 그런 노력이 쌓이고 쌓이면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 알 수 없는 것 중 그나마 이해하고 있는 일은 너무나 보잘것없고, 그 이해마저 완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노력으로 쌓아온 그 이해가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이해를 통해 ‘이변’이라 여겼던 일들이 일어난 이유를 알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이변이 아니게 됩니다.

(딴지방송국 짧터뷰 ‘유시민 편’, 링크)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들, 만약 벌어진다면 기적과 같은 이변이리라 여겨온 일 중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을 떠올려보죠. 그러한 일들은 숱한 좌절과 쓰라림 속에서도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쌓여서, 결국 그 일을 벌이게 만든 것입니다. 적어도 한국의 근현대 정치사에서, 시민들의 바람대로 이루어진 일 중 그러한 노력 없이 그저 우연으로 툭 떨어지듯 주어진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를 알기에, 우리는 쓰라림을 다독이면서 자신도 모르게 곱씹어보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할 실마리를 찾기 위해.
첫 번째, 조건 결합의 착시
전반적으로 이번 지방선거는 ‘내란세력 심판’이라는 상징성을 이어가는 선거였습니다. 정권교체 후에도 아직 많은 야당 정치인이 윤어게인을 외치며 극우 인사들과 꼭 잡은 두 손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내란수괴의 재판도 아직 완료되지 않았고 검찰과 사법부의 문제도 속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았죠.
한편, 이재명 정부는 1년이라는 시간 내에 이뤘다고 믿기 힘든 여러 가지 성과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반대 세력이 폄하에도 불구하고, 목표치를 크게 웃도는 주가지수, 오랫동안 손대지 못했던 경제범죄 대응, 하루아침에 달라진 외교적 존재감은 이전 내란 정권과 선명한 대비를 이룹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여론은 정권 견제보다 현 정부 지지 쪽으로 뚜렷하게 기울어 있습니다.
게다가 제1야당의 지도부는 전혀 정신 차리지 못한 모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여당이 국회와 지역 단체장 직 모두에서 과반을 가져갈 경우 이를 견제하려는 여론이 형성될 수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야당이 정상적인 수준일 때의 얘기입니다. 내란 세력 심판, 새 정권의 성과, 그리고 야당의 견제 여론 형성 실패라는 여러 측면이 맞물리며 민주당의 선거 승리를 예상하게 하는 근거로 작용했습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중요한 측면이 있습니다.

(머니투데이, 링크)
이재명 대통령은 당선된 이후 국무회의를 전 국민에게 공개했습니다. 내가 다니는 회사 임원들의 회의도 엿보기 어려운데, 한 나라의 대통령과 관료들이 회의하는 것을 언제든 휴대폰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죠.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이재명 대통령이 얼마나 뛰어난 행정가인지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정치적 가치 못지않게 실질적인 행정 능력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체감하고 있죠.
이는 시대의 흐름이 됩니다. 다양한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시대에는 특정한 가치가 아니라 그 가치들을 관통할 수 있는 능력이 주목받게 되는 것이죠. 뛰어난 행정 능력이 구체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대중은 그러한 역량을 갖춘 인물을 찾게 됩니다.

(MBC, 링크)
정원오는 그런 인물로서의 상징성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행정 능력 이외에도 극적인 성장 과정, 변호사로서의 이력, 특유의 화법 등 다양한 면모로 강한 인상을 남기는 캐릭터입니다. 그에 비해 정원오는 25년이 넘도록 오직 성동, 성동, 성동입니다. 그 성동구에서 묵묵히 만들어낸 성과가 ‘행정 능력’이라는 시대적 키워드를 만나 비로소 조명받게 된 것입니다. 정치인으로서의 존재감이 특출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행정 능력 하나에 모든 것을 건 캐릭터라는 점에서 오히려 설득력을 갖습니다.
반면 오세훈 시장은 이렇다 할 행정적 성과 없이 한강 수상버스, 철근 누락과 같은 부정적 키워드로 상징되는 문제가 누적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전 임기 때도 세빛둥둥섬, 무상급식 주민투표 같은 부정적 키워드들이 있었죠. 서울 시민들로부터 행정가로서의 신뢰를 얻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행정 능력’이라는 시대적 키워드에서도 정원오는 오세훈에 비해 분명한 기대감을 형성했습니다. 내란 세력 심판, 현 정권의 성과, 견제 여론의 부재에 이어 네 번째 축까지 갖춰진 셈이죠. 여러 축에서 모두 유리하다는 판단이 모이면 총체적으로 유리하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경험적으로도, 이렇게 여러 조건이 긍정적일 때 실제 결과 역시 긍정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그러나 조금 더 엄밀하게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여러 유리한 조건들이 겹친다고 해서 그 가능성이 수학적으로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조건들은 어디까지나 ‘더 유리하다’, ‘긍정적이다’라는 평가적 요소이지, 득표 결과와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갖는 원인은 아닙니다.
두 번째, 추세와 반동

(어린이 동아, 링크)
동전 뒤집기로 내기한다고 해보죠. 9번을 던졌는데 9번 모두 앞면이 나왔습니다. 이론적으로 앞선 9번이 어떤 결과였든, 10번째의 확률은 여전히 50대50이라는 점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사람들의 성향은 갈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앞면에 베팅합니다. 9번이나 앞면이 나올 확률은 512분의 1, 정말 낮은 확률이므로 이번 판은 앞면이 나오는 특이한 흐름을 탔다고 해석하는 것이죠. 앞면이 나오는 ‘추세’가 형성됐다고 보는 겁니다.
다른 성향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9번이나 앞면이 나왔으므로, 10번째에는 뒷면이 나올 가능성이 좀 더 높다고 해석하는 것이죠. 이 경우는 앞서 9번 반복됐던 추세가 있었으므로, 이제 ‘반동’이 나올 차례가 가까워졌다고 보는 시각입니다.
변화의 폭이 크고 반복이 길수록 우리는 마치 그 추세에 강력한 힘이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됩니다.

(법률신문, 링크)
지난 내란 정권이 막을 내리는 과정에서 이번 지방선거에 이르기까지, 몇몇 인물들은 뚜렷한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추경호는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국회의원으로서의 존재감보다 내란 피의자로서의 인상이 강해졌고, 결국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까지 이어졌습니다. 한동훈은 정계 입문 초기 보수의 아이콘을 자처했지만, 윤석열에 대한 굴종적 폴더 인사, TV 토론에서의 잇단 희화화와 당내 고립 끝에 무소속으로 출마해야만 했습니다.
반면 이들과 맞붙은 김부겸과 하정우는 강한 상승세의 인상을 형성했고, 이는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됐습니다. 두 후보 모두 당선 가능성을 기대하는 것은 충분히 합리적이었습니다.

(MBC, 링크)
추세와 반동이라는 개념은 대단히 사후적인 해석입니다. 일관된 변화가 반복되었기 때문에 추세라 부르는 것이고, 그 흐름이 끊겼기 때문에 반동이라 부르는 것이죠. 변화의 폭이 크고 반복이 길수록 마치 그 추세에 강력한 힘이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지만, 그 힘은 실존하는 물리적 힘이 아닙니다. 추세는 해석이기에, 아무런 예고 없이 언제든 멈출 수 있습니다. 이번 선거 결과는 그것을 증명했습니다.
셋째,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그들

(인사이트, 링크)
이번 선거에서 가장 황당한 흐름은 선관위의 투표용지 부족 문제에서 시작됐습니다. 투표용지를 50%만 인쇄했다는 선관위의 해명은 해명이라 부르기조차 어려운 발언이었습니다.
이에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대뜸 재선거를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오세훈이 당선된 것도 황당한데, 자당 후보가 당선되었는데도 당대표가 계속해서 재선거를 주장하는 황당함이 더해진 셈입니다.

(서울신문, 링크)
이 와중에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2030 세대의 비중이 높으면서도 60대 이상이 뒤섞여 있고, 전한길 같은 인물이 등장하면서 성조기와 MAGA 구호까지 들려왔습니다. 무고한 시민과 사업장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가 난무하고, 경찰 통제는 상식선에서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을 ‘시위’라고 명명해도 될지 헷갈릴 정도로 한국 근현대사를 통틀어 압도적으로 가장 황당한 시위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광경을 만들어내는 이들은 극우 성향의 각 세대가 뒤섞인 형태이지만, 기존의 어떤 이름으로도 뚜렷하게 지칭할 수 없는 모호한 영역을 형성합니다. 이번 선거 결과의 세대별·성별 득표율을 보면, 지난 대선에 비해 30대 남녀의 변화가 눈에 띕니다. ‘이대남’으로 상징되던 20대 남성의 고립된 우경화 구도는 이제 해체되기 시작했습니다.
국민의힘 내부와 극우 여론에서도 피아식별이 혼탁한 상황에서, 선관위 문제는 진영을 막론하고 공유되는 문제의식이 됐습니다. 이 흐름은 분명 새로운 갈등의 축을 형성하겠지만, 그 구도가 어떤 방식으로 자리 잡을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MBC, 링크)
앞으로 맞이할 이 갈등의 축은 곧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될 겁니다. 이름이 붙여지는 순간이 바로 그 갈등이 본격화되는 시점이 될 것이고, 그때서야 그 집단이 어떤 의식을 공유하고 있는지 선명하게 드러날 겁니다. 아직은 그 이름이 붙여지기 전입니다. 이름 붙여지지 않은 그들이 이번 선거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열쇠를 쥐고 있고, 우리는 아직 그들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몇몇 장면들이 이변으로 받아들여졌을 겁니다.
마치며
솔직히 말하면, 조금 방심했습니다. 앞서 정리한 내용들은 모두 그 방심에 대한 반성이기도 합니다. 조건들의 결합을 실제 유리한 입장으로 해석했고, 확실한 추세가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으며, 이 황당한 사건의 연속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좀 더 압승에 가까운 결과를 기대하며, 국회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손발을 맞추고, 크고 작은 삐걱거림이 있더라도 대체로 더 나은 방향으로 순탄하게 흘러가기를 바랐던 것이죠.
막상 그 기대와 다른 일부 결과와 함께 예상 못 한 황당한 일들이 벌어지고 나니, 쓰라림과 안타까움은 여전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의욕의 불씨가 타오르는 느낌도 있습니다. 순탄하게 흘러가기를 바라는 마음 안에, 어느 정도의 권태로움이 있었나 봅니다.
앞으로 내란 재판은 계속 진행될 것이고, 선관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면서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날 겁니다. 이름 붙여지지 않은 그들에게 이름이 붙여질 것이고, 갈등의 전선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겠죠. 이재명 정부는 계속 잘해 나갈 것이고, 민주당도 이번 선거를 계기로 다시금 전열을 정비할 겁니다. 국민의힘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2년 남짓 남은 23대 총선 즈음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정치 지형과 여론 구도가 형성돼 있을 겁니다. 알아봐야 할 것도, 이해해야 할 것도 무궁무진하겠습니다. 완패하지 않은 상태에서 투지가 생겼다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려 합니다.

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춘심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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