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1일,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미군은 또다시 이란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출처-<KBS>
공교롭게도 이날은 빌 게이츠가 미국 의회에 출석해 증언하는 날이었다.

출처-<게티이미지>
빌 게이츠가 국회에 출석한 이유는 바로 제프리 엡스타인 때문이었다.
월스트리트 거물인 엡스타인은 미성년 여성들을 상대로 성매매, 성폭행을 저지른 혐의로 2019년 체포됐다가 감옥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인물이다. 이 엡스타인의 성범죄는 수많은 정·재계 인사 및 각종 기득권층과 얽혀 있었다. 그들을 대상으로 은밀한 ‘성 상납’을 제공해 왔다는 것이었다.

엡스타인 스캔들에 연루된
유명 인사들을 그린 벽화 모습
출처-<인터넷 커뮤니티>
엡스타인 청문회 날, 미군이 이란에 미사일을 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월 28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미국 의회 청문회에 출석한 날에도 트럼프는 이란에 미사일을 쏘며 이란 전쟁을 일으켰다. (클린턴의 엡스타인 청문회 출석은 이전 기사(링크) 참조)

2월 28일 미국 의회 엡스타인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하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출처-<미국 하원 감독위원회>
이 정도면 이런 질문이 나올 만도 하다.
“아니, 왜 트럼프는 엡스타인 청문회가 열리는 날이면 이란을 공격하는 거야?”
실제로 빌 게이츠의 엡스타인 청문회 출석은 전 세계의 관심을 모았다. 빌 게이츠가 빌 클린턴에 이어 ‘엡스타인 파일’에 거론된 인물 중 가장 ‘거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초 미국 법무부가 공개한 엡스타인 수사 기록, 일명 ‘엡스타인 파일’에는 빌 게이츠가 성폭력범 엡스타인과 나눈 이메일과 사진이 무더기로 공개됐다. 그중 엡스타인이 빌 게이츠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은 적나라했다.

출처-<게티이미지>
“친애하는 빌 (게이츠) 씨… 우린 6년 동안 우리 같이 잘 지냈는데, 이제 관계를 끊겠다구? ... 당신이 나한테 부탁한 거 기억나게 해줄까? ... 당신이 성병에 걸렸고, 멜린다(당시 빌 게이츠의 아내)에게 줄 성병 항생제를 요청했고, 그리고 당신의 거기(중요 부위)에 대한 묘사가 담긴 이메일을 삭제해달라고 했잖아. 그리고 당신의 거기 상태에 대해서는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하자고 부탁했잖아… 당신이 말한 대로 멜린다가 이혼 소송을 제기하면, 당신 자선사업에 쓰일 수십억 달러가 날아가게 될 거야…”
‘엡스타인 파일’의 충격적 내용에 빌 게이츠도 자신의 ‘불륜’을 공개적으로 사죄하고, 국회 출석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 여성 2명과 혼외 관계를 맺은 것을 인정한다. 모두에게 사과한다. 그러나 엡스타인이 그런 ‘범죄’를 저지른 줄은 몰랐다. 나는 엡스타인 ‘범죄’와는 절대로 관련 없다.”
(‘엡스타인 파일’에 드러난 빌 게이츠의 행각은 이전 기사(링크)를 참조하시라.)

‘엡스타인 파일’에 공개된
빌 게이츠와 신원 미상 여성의 사진.
빌 게이츠는 이 여성이
엡스타인의 비서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출처-<미국 법무부>
빌 게이츠 청문회는 어땠나
그렇다면 6월 10일 빌 게이츠의 하원 청문회 증언 내용은 어땠을까? 빌 게이츠가 폭탄 증언을 터뜨렸을까?

출처-<AFP>
결론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었다’였다. 비공개로 진행된 청문회에서, 빌 게이츠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엡스타인과 함께한 모든 시간을 후회한다. 그러나 엡스타인이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또한 나는 어떠한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다. 나는 엡스타인의 개인 섬에 간 적도 없다.”
“엡스타인을 처음 만난 것은 2011년이었다. 엡스타인이 이전에 법적인 문제(2009년 미성년자 성폭력 혐의 체포)가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심각한 줄은 몰랐다.”

2011년 엡스타인의 별장에서
같이 사진 찍은 엡스타인(가운데)과 빌 게이츠
출처-<뉴욕타임스>
“엡스타인은 내가 벌이고 있는 글로벌 보건 자선사업에 대해 세금을 줄여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여러 은행과 접촉했지만 성사되지 않았고, 결국 나는 2014년 엡스타인과 사업 관계를 끊었다.”
“내가 관계를 끊자, 엡스타인은 나의 개인정보를 이용했다. ‘엡스타인 파일’에서 보듯, 엡스타인은 내가 결혼 생활 중에 저지른 불륜을 이용해 나를 협박했다. 그리고는 사업을 계속해야 한다고 내게 압력을 가했다.”
“엡스타인을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엡스타인과 만나서, 내가 이룬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됐다.”
빌 게이츠의 증언은 모두 언론에 보도된 내용뿐이었다. 새로운 내용이나 충격적 폭로는 전혀 없었다. “어차피 망신당한 거, 드러난 것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잡아떼자”에 불과했다.
사실 빌 게이츠의 ‘솜방망이 청문회’는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빌 게이츠는 먼저 청문회를 대비해 ‘전관예우’ 스킬을 시전했다. 그는 청문회 대책반으로 제이크 그린버그 변호사를 선임했는데, 그는 불과 반년 전 ‘하원 조사위원회 수석 조사관’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한 마디로, 이런 상황이다.
“작년까지 엡스타인 사건을 조사하던 의회 조사관이, 사표를 내고 빌 게이츠 변호사가 됐네?”
그린버그 변호사는 ‘전관예우’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불과 반년 전 자기 상관인 하원 감독위원회 위원장에게 로비를 벌였고, 다음과 같은 약속을 받았다.
“빌 게이츠 청문회는 비공개로 한다. 사진도 안 찍고 비디오 녹화도 안 한다. 기록은 속기록만 남긴다!”
하원 감독위원회는 불과 3개월 전 열렸던 빌 클린턴, 힐러리 클린턴 청문회의 사진과 비디오도 공개해, 빌 클린턴 부부를 ‘망신’준 바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빌 게이츠는 말이 의회 청문회지, 거의 ‘맹탕’이었다. 말 그대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었던 셈.
결국 6월 10일 빌 게이츠 청문회는 ‘맹탕 청문회’와 ‘이란 미사일 공격’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같은 날, 상상도 못 한 반전이 터져 나왔다.
바로 6월 10일 자로 터진 뉴욕타임스의 특종 기사였다.
뉴욕타임스에서 보도한 백악관 대책 회의

뉴욕타임스는 ‘엡스타인 파일로 발칵 뒤집힌 백악관 사정’이라는 기사를 게재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2025년 6월과 7월 백악관 상황실에서 ‘엡스타인 대책 회의’가 열렸다. 미국 언론들이 “엡스타인 파일에 트럼프 대통령 이름이 있다”고 특종 기사를 터뜨리고, 미국민들이 ”엡스타인 파일을 공개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이었다.
이 때, JD 밴스 부통령 주재로 백악관에서 대책 회의가 열렸다.

엡스타인 대책 회의가 열린 백악관 상황실
출처-<게티이미지>
JD 밴스 부통령 : MAGA(트럼프 지지층) 민심 이반이 우려된다. 이렇게 된 바에 ‘엡스타인 파일’을 모조리 다 까자. 의회 청문회도 열자.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 :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부통령이 그런 음모론(엡스타인 파일)을 거론해서 되겠나?
JD 밴스 부통령 : 우리가 안 해도, 어차피 의회가 엡스타인 파일을 다 까게 돼 있다. 그럴 바에야 우리가 먼저 선수 쳐서 자발적으로 공개하자. 트럼프에게 불리한 내용까지 모조리 말이다. 그래야 민심이 진정된다. 필요하면 친트럼프 유튜버를 동원해 길레인 맥스웰(수감 중인 엡스타인 공범) 인터뷰도 시키자.
워링턴 백악관 법률고문 : 맥스웰을 시켜 트럼프에게 유리한 증언을 시키고, 그 대가로 사면을 제시하자.
스티븐 정 홍보참모 : 아동 성착취범 맥스웰을 사면시키자니, 당신 미쳤냐? 엄청난 민심 이반이 일어날 것이다.

트럼프의 백악관 측근들.
왼쪽 앞줄부터 JD 밴스 부통령,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 팸 본디 법무장관,
뒤쪽 둘째 줄은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
출처-<게티이미지>
JD 밴스 부통령 : 그런데 ‘엡스타인 파일’에 무슨 내용이 있길래 그러나?
토드 블랜치 법무부 부장관 : 아동 포*노가 엄청나게 많이 들어있다. 이건 공개할 수가 없다.
법무부 관계자 : 엡스타인 파일 가운데는, 트럼프가 피해 여성의 중요 부위를 너무 세게 만져서 아팠다는 확인 불가능한 주장까지 있다.
백악관 관계자A : 무슨 소리냐. 나는 그런 소리 들은 적 없다.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신빙성이 없다.
백악관 관계자B : 아무리 신빙성 없는 주장도, 일단 공개되면 문제가 커진다.
JD 밴스 부통령 : 그 문서도 그냥 까자. 트럼프 대통령은 그보다 더한 의혹(성추행 등)도 당해봤고 극복했다. 트럼프 지지자들도 이해하고 넘어갈 것이다.
본지노 FBI 부국장 : (법무부 장관에게 소리지르며) 당신이 처음부터 이 일을 망쳤다!
와일즈 비서실장 : 왜 그렇게 화를 내냐? 엡스타인 파일을 언론에 유출한 게 혹시 당신 아니냐?
본지노 FBI 부국장 : 내가 언론에 유출시켰으면 10만 달러를 걸겠다!
와일즈 비서실장 : 흥분하지 마라. 우리 모두 이 문제(엡스타인)에 엮여 있다.
본지노 FBI부국장 : ’우리’에서 나는 빼달라. 난 처음부터 경고했다. 당신들이 무시한 거다!
(상황실을 박차고 나감. 얼마 후 이 사람은 FBI 부국장에서 사임한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 본인은 어땠을까? 상황실 회의 참석자에 따르면, 트럼프는 ‘엡스타인’ 말도 못 꺼내게 했고, 참모들도 언급조차 못 했다. 트럼프가 내세운 이유는 이러했다.
“(엡스타인 파일을 공개하면) 내 친구 몇 명이 다칠 수 있다.”
이 보도가 공개되자, 빌 게이츠 증언보다도 큰 파장이 일어났다. 다름 아닌 백악관과 법무부 관계자들이 적극적으로 ‘엡스타인 파일’을 은폐하려 했다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젠 사키 전 백악관 대변인
출처-<연합뉴스>
바이든 행정부 당시 백악관 대변인이었던 젠 사키는 TV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2011년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 당시
백악관 상황실 모습
출처-<위키피디아>
“백악관 상황실은 국가 최중요 시설이다. 2011년 오바마 행정부가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을 총지휘하던 곳이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백악관 상황실에서 *꼭지를 공개할지 말지에 대해 회의했다고? 정말 초현실적인 상황이다!”
그리고 뉴욕 타임스 보도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민주당에서 ‘백악관 엡스타인 대책 회의’ 참석자들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하원감독위 로버트 가르시아 의원(민주당)은 제임스 코머 감독위원장에게 다음과 같은 서한을 보낸다.

엡스타인 청문위원 로버트 가르시아 의원
출처-<게티이미지>

‘엡스타인 청문회’ 증인 소환 요구 서한
「백악관이 조직적으로 엡스타인 파일을 은폐하려 한데 충격을 감출수 없다. 따라서 상황실 회의 참석자들을 엡스타인 청문회 증인으로 소환해야 한다.
JD 밴스 부통령
수지 와일스 대통령 비서실장
카쉬 파텔 FBI 국장
댄 본지노 FBI 부국장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
이 사람들을 당장 ‘엡스타인 청문회’에 증인으로 소환할 것을 정식으로 요구한다!」
물론 가르시아 의원의 백악관 관계자 증인 소환 요구는 당장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감독위원회 위원장이 공화당 출신이고, 현재 하원은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는 11월 중간선거 이후는 상황이 달라진다.
이란 전쟁과 인플레이션 등으로 트럼프의 인기는 떨어지고 있고, 오는 11월 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 과반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주당이 의회 과반 차지해봐라.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 모조리 청문회 증인으로 소환한다! 클린턴이 청문회에서 망신당한 만큼 갚아주마. 두고 봐라!”
과연 반년 후, 민주당은 선거에 승리해 부통령과 대통령 비서실장을 ‘엡스타인 청문회’ 증인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엡스타인 파일의 진실은 밝혀질 것인가? 앞으로 계속 업데이트해드리겠다.
추신.
엡스타인 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독자는 지난 연재를 참조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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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스타인 사건 지난 연재물
5. 미국이 9월을 주목하는 이유(feat.엡스타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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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임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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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고물상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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