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14일, 미국과 이란 양 측에서 전쟁 중단 합의 소식이 나왔다. 며칠 뒤 서명식까지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도 따라붙었다. 전쟁이 멈춘다는 말은 언제나 사람을 안도하게 만든다. 총성이 멎는 순간, 우리는 문제가 해결됐다고 느끼기 쉽다.
하지만 바로 그 안도감이 착시를 만든다. 전쟁이 멈추는 일은 당연히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전쟁이 중단된다고 해서, 일어났던 전쟁이 정당화되진 못한다. 전쟁이 없었다면, 종전도 필요 없었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 완화도 같은 맥락에 있다. 이 해협은 원래 세계 에너지 수송의 길목으로 열려 있어야 할 바닷길이었다. 전쟁 때문에 막혔고, 다시 열린 것뿐이다. 막힌 길을 다시 열었다고, 길을 막은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번 사안의 핵심은 전쟁 중단도, 호르무즈 해협도 아니다. 결국 남는 것은 처음부터 문제였던 이란 핵협상이다. 트럼프가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 핵 합의를 깨면서 내세운 기준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더 나은 합의, 적어도 오바마보다 나은 합의.
오바마의 핵 합의
핵 합의는 “핵무기를 만들지 않겠다”는 선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핵 합의는 상대의 행동을 제한하고 확인하는 장치다. 무엇을 못 하게 할 것인가, 얼마나 못 쌓게 할 것인가, 누가 그것을 확인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5년 7월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그리고 독일을 포함시켜 이란과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이라는 핵 합의를 체결했다.

핵 합의를 체결하는 8개국 외무장관
출처-<위키미디어>
미국을 제외한 6개국이 핵 합의에 대한 보증을 서줬고, 미국은 이란이 핵 개발을 중단하거나 축소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강력한 사찰을 받는 대가로, 이란에 대한 국제 사회의 경제 제재를 해제해 주기로 했다.
이 핵 합의의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를 보려면, 다섯 가지를 봐야 한다.
1. 농축률
핵물질이 얼마나 위험한 단계에 있는지 보여준다. 즉, 우라늄이 핵무기에 얼마나 가까운 단계인지 보여준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 농축률의 상한선을 3.67%로 합의했다. 원자력 발전의 가장 대표적인 형태인 상업용 경수로에서 사용하는 우라늄 농축도가 보통 3~5%이기 때문에 딱 이 정도 레벨로 맞춘 것이다. 이 이상 농축하면, 농축에 가속도가 붙어 핵무기로 쓸 수 있는 90% 농축까지 빠른 속도로 달성할 수 있다.
2. 보유량
농축 우라늄을 얼마나 쌓아두었는지를 보여준다.
오바마 행정부는 농축 우라늄의 상한선을 300kg까지로 합의했다. 농축률이 아무리 낮아도 물질이 많이 쌓이면 위험은 커진다. 그래서 300kg 제한은 재료 창고를 작게 유지하는 장치였다. 핵으로 가는 길에서 재료의 양을 줄이는 일도 농축률을 낮추는 일만큼 중요했다.
3. 원심분리기
우라늄을 농축하는 장비.
오바마 행정부는 원심분리기의 개수를 5,060기로 합의했다. 핵무기로 쓸 수 있는 고농축 우라늄은 더 좋은 성능의 원심분리기를 쓸수록, 원심분리기를 많이 돌릴수록 만들기 쉬워진다. 그래서 운용 가능한 원심분리기의 수를 제한하는 것도 핵 능력을 갖추는 속도 자체를 묶는 일로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다.
4. 시설
원심분리기가 돌아가는 장소.
오바마 행정부의 핵 합의는 숫자만 묶지 않았다. 장소도 묶었다. 이란의 주요 핵농축 시설이었던 포르도 시설에서 최소 15년간 우라늄 농축을 하면 안 됐고, 아라크 시설은 무기급 플루토늄 생산을 못 하도록 개조 대상이 됐다.

이란의 우라늄 농축 시설
5. 사찰
위 모든 것을 확인하는 것.
국제원자력기구가 사찰할 수 있도록 했다. 숫자, 장소, 눈이 함께 있었던 셈이다.
핵 합의를 깬 트럼프

오바마 이후, 미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한 트럼프는 2018년 (잘 이행되고 있던) 이 합의를 깼다. 미국은 다시 제재를 되살렸고, 이란도 단계적으로 합의 이행을 줄여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난의 순서가 아니다. 잠금장치가 풀린 뒤 문제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였는가다.
그 뒤 이란 핵 문제는 더 단순해지지 않았다. 낮은 농축률과 제한된 재고를 관리하던 문제가, 고농축 물질과 불확실한 사찰을 다시 다뤄야 하는 문제로 바뀌었다. 묶어둔 것을 더 단단히 묶는 협상이 아니라, 풀려버린 것을 다시 붙잡아야 하는 협상이 된 것이다.
전쟁 직전 이란의 전체 농축 우라늄은 약 9.9톤으로 추정됐다. 그중 60% 농축 우라늄은 440.9kg으로 거론됐다. 위험한 상태였다.
오바마 합의가 작동하던 세계에서는 이런 물질이 협상의 중심에 놓여 있지 않았다. 농축 우라늄에 제한선이 있었고, 제한선을 잘 지키고 있나 사찰도 꼼꼼히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 물질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협상의 출발점이 됐다.
핵 위험은 양만의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많이 쌓였는가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높은 수준까지 농축됐는가가 더 중요하다. 60%는 무기급에 훨씬 가까운 단계다. 트럼프가 막무가내로 핵 합의를 깬 이후 문제는 단순히 커진 것 정도가 아니라 더 예민해졌다.
트럼프가 핵 합의를 깨며 내세웠던 명분은 이랬다.
“더 나은 합의를 만들겠다!”
그런데 결과는 더 무거운 재고와 더 높은 농축 수준이다. 낮은 단계에서 관리하던 문제를 높은 단계에서 수습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전쟁 중단은 핵 타결이 아니다

출처-<연합뉴스>
이번에 발표된 종전 합의는 이 핵 합의에 대한 것이 아니다. 오바마 때보다 더 나은 핵 합의로 타결됐다는 것이 아니란 거다.
지금 트럼프가 이란과 합의를 봤다는 건,
1. 전쟁 중단
2. 미국의 이란 항구 봉쇄 해제
3. 호르무즈 해협 항행 재개
4. 향후 60일간 진행될 미국-이란의 협상 틀에 관한 합의.
이 정도다. 기존에 없었던 문제를 만든 후에 그 문제를 다시 원상 복구하려는 수준이다.
이제 미국-이란 사이의 진짜 문제였던, 핵 문제가 다시 남게 되었다. 더 컨트롤하기 힘든 상태로.
미국은 다시 이란의 농축률을 어디까지 낮출지, 쌓인 재고를 어떻게 처리할지, 장비와 시설을 어떻게 묶을지,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어디까지 복구할지를 합의해야 한다.
특히 고농축우라늄 처리 방식이 중요하다. 미국이 말하는 제거와 이란이 말하는 국내 희석은 같은 말이 아니다. 물질을 위험한 자리에서 치우는 것과, 농도만 낮춘 채 이란 안에 남겨두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지금 종전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당연히 축하할 일이지만, 진짜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선 아직 무엇이 합의되지 않았는지를 봐야 한다. 전쟁 중단은 정치적 장면을 만들었지만, 핵 합의는 여전히 기술적 빈칸을 남겼다.
다섯 항목으로 본 비교열위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오바마 때의 핵 합의와 비교하여 트럼프가 합의해야 할 핵 합의의 조건은 어떻게 변했을까.
1. 농축률
오바마 때는 아직 낮은 농축률을 더 높이지 않고 유지하는 정도의 합의였다. 그러나 트럼프 이후 이란의 우라늄 농축률은 60%까지 높아졌다. 즉,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 것에서 고농축우라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합의하는 문제로 바뀌었다.
2. 보유량
농축률과 마찬가지로 오바마 때는 아직 낮은 보유량을 유지하는 정도의 합의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커진 창고 안에 무엇이 얼마나 있는지, 그것을 어디로 보낼지, 어떻게 줄일지를 합의해야 한다. 제한의 문제가, 재고 정리의 문제로 바뀐 것이다.
3. 원심분리기
오바마 합의는 원심분리기를 어느 정도까지 돌릴 수 있는지를 제한했다. 지금 협상에서는 그 장비를 다시 어떻게 묶을지 확인해야 한다.
4. 시설
같은 물질이라도 어디에서, 어떤 시설에서, 어떤 감시 아래 다뤄지는지가 위험을 바꾼다. 오바마 합의는 포르도와 아라크 시설을 직접 다뤘다. 포르도는 최소 15년간 우라늄 농축 기능을 제한당해야 했고, 아라크는 플루토늄 경로를 줄이도록 손봐야 했다. 이번 틀은 아직 그 수준의 시설 제한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5. 사찰
사찰은 핵 합의의 마지막 보루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느냐보다 국제원자력기구가 무엇을 볼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보고, 세고, 봉인하고, 다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오바마 합의는 그 눈을 현장에 붙여두었다. 지금은 그 눈을 살려낼 수 있을지, 살려낸다면 어디까지 되살릴 수 있는지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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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합의와 비교하면, 확실한 비교열위다. 이제 트럼프가 오바마보다 나은 합의라고 말하려면, 먼저 그가 깬 장치보다 더 강한 장치를 보여줘야 한다.
군사력은 검증을 대신하지 못한다
물론 트럼프 쪽은 전쟁의 효과를 말할 수 있다. 핵시설이 손상됐고, 그 때문에 미국의 협상력이 커졌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을 그냥 무시할 필요는 없다. 군사 공격이 실제로 시설을 망가뜨렸다면, 이란의 핵 활동은 일정 기간 늦춰졌을 수 있다.
폭격은 시설을 부술 수 있고, 장비 일부를 망가뜨릴 수 있다. 깊은 지하에 있던 시설이든, 지상에 드러난 장비든, 물리적 손상이 생기면 복구에는 시간이 걸린다. 여기까지는 전쟁 효과론이 기대는 부분이다.

출처-<로이터>
그러나 시설 손상과 핵위험 감소는 같은 말이 아니다. 폭격은 장부를 대신하지 못한다. 핵물질의 행방을 확인하지도 못하고, 원심분리기 재고를 봉인하지도 못한다. 국제원자력기구 사찰관의 눈도 대신하지 못한다. 핵 문제는 폭탄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확인으로 끝나는 문제다.
핵무기 접근 시간이 길어졌다는 평가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같은 1년이라도 성격이 다르다. 오바마 합의의 1년은 제한과 사찰이 만든 시간이었다. 지금의 1년은 폭격 이후 추정된 시간이다. 하나는 잠금장치가 만든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무너진 현장을 바깥에서 가늠한 시간이다.
고농축우라늄 처리도 아직 핵심 쟁점이다. 제거는 물질을 위험한 자리에서 치우는 일이다. 국내 희석은 농도를 낮추더라도 물질을 이란 안에 남겨둘 수 있다. 둘은 같은 합의가 아니다. 앞으로 60일 협상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위험을 실제로 줄일 것인가, 아니면 위험의 이름만 낮출 것인가.
만약 협상의 최종 결과가 오바마보다 나은 합의가 아니라면, 트럼프의 합의는 오바마 이후 더 어려워진 문제를 잠시 보관해 둔 임시 장치에 가까울 것이다.

편집: 임권산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임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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