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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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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이 이렇게 쓰인다니, 씁쓸하다. 그 기원이 전교조의 그것이 아니라 야구선수 호세의 폭행에서 비롯됐다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눈가리기식 말장난이다. 처음부터 참교육을 가져온 것이라 의심이 되기도 하지만,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전교조 참교육 맥락이 없었다면 이 단어가 이토록 대중적으로 퍼지지도 않았을 것.

 

그러나 그건 그건거고. 이미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처음 방송사 유튜브의 섬네일에서 이 단어를 보았을 때도 철렁했는데, 이 드라마가 나오는 걸 보니 이제 정말 돌이킬 수 없게 된 것 같다. 아쉽지만 그런 세상이 되었으니 별 수 있나.

 

드라마 참교육.jpeg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

 

 

들어가며 2

 

교사의 평균 근속 기간은 25~30년. 한 학교당 4~5년 근무하니, 교사 한 명이 교직에 있는 동안 경험할 수 있는 학교는 대략 6곳 정도다. 매우 제한적인 경험이다. 게다가 지역별로 차이도 크다. 강남과 강북과 강원도의 학교는 정말 정말로 다르다. 다른 직업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초등과 중고등의 차이도 엄청나다. 또 과목에 따라서, 교사의 성별이나 나이에 따라서도 다른 경험을 한다.

 

그러니 교사 타이틀을 달고 무슨 주장을 한다 한들, A4 용지 위에 연필로 점 하나 찍은 것만큼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경계하자. 교사도 다른 지역, 학군, 학년의 사정은 언론에 나온 이야기, 건너 건너 들은 이야기 정도만 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 글을 쓰는 나도 그렇다. 아는 선에서 최대한 아는 척을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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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한겨레 (링크)

 

드라마 <참교육> 정주행을 끝냈다. 학교에서 주변 교사들에게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작품만 놓고 말하자면, 4화 정도까지 몰입했고, 이후에는 평범한 수사물을 보는 느낌. 의무감에 끝까지 봤다.

 

교사용 힐링물, 역대급 사이다 등 소문 대로 일종의 미러링을 이용해 카타르시스를 주는 장면들을 잘 뽑았다. 그러나 내게 <참교육> 이야기를 한 모든 선생님이 그랬듯, 사족을 붙이지 않을 수 없다.

 

 

체벌 이슈

 

컨텐츠는 컨텐츠이고, 판타지는 판타지로 재밌게 즐기면 그만이지, 무슨 폭력을 폭력으로 제압한다느니, 선생 아니랄까봐 꼰대짓을 하느냐는 의견이 많다. 나도 기본적으로는 같은 관점이다. 우리가 <범죄도시>를 보면서 진실의 방에서 행해지는 비인격적 폭력을 문제삼지 않듯, 답답한 현실을 조소하는 방법으로서 <참교육>을 소비한다는 것을 안다.

 

댓글을 통해 배출되는, 어떤 놈들은 때려야 인간이 된다거나, 다시 체벌을 부활시키자는 말들도, 분노에 차서 내뱉을 뿐, 실제 공론장에서 다시 체벌을 부활시키자는 주장을 할 수 없고, 그게 전국민의 지지도 받을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어느 문명국에서 아이를 때려서 키운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건 이제 디폴트다.

 

참교육 김무열.jpg

 

그럼에도 <참교육>에 개정색을 하는 교사들이 곳곳에서 속출하는 것은 나름 사정이 있다.

 

15년. 2011년 초중등교육법이 입법되며 체벌금지가 된 뒤로 고작 15년이 흘렀다. 아직도 현장에선 몽둥이를 잡아 봤던 교사들이 남아 있다. 당장 우리 학교의 모 부장님만 해도 빠따로 꽤나 이름을 날리셨더랬다.

 

이제 막 신규 발령 받은 교사가 20대 중반이니, 학교에서 체벌을 당해보지 않은 세대가 교단에 막 들어서기 시작한 시점이다. 겨우 첫 걸음을 뗀 셈이다. 그러니 아직까지 과거에 대한 집착적 반성과 불안이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을 수밖에.

 

이런 우려를 모를 리 없는 제작사도 나름 연출에 신경을 썼다. 김무열 싸다구 한 방에 10m를 날아간다던가, 혼자 조폭 한 패거리를 무찌르는 만화적 설정들로 현실과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두어 장르로서 소비할 수 있도록 했다.

 

참교육 강당.jpg

 

다만 3화의 엔딩 장면만은 예외다. 진짜 좋은 교사의 모습으로 그려지던 교사가 학생을 지도하기 위해 ‘참교육’으로서 선택하는 방법이 회초리로 손바닥을 때리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게다가 수학 문제를 안 푸는 게 갈등 상황이라는 점에서 매우 크게 삐끗했다고 생각한다.

 

체벌 노스텔지어(?)를 자극하고자 한 것인지, 게으른 것인지 알 수 없으나 , 앞에서 실컷 교권국만이 예외적으로 불가피하게 이 엉망진창을 해결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처럼 만들어놓고 기껏 교사의 해법을 사랑의 매로 가버리면… 세계관이 붕괴하는 매우 후진(?) 컨텐츠가 되는 것이다.

 

 

공론화 + 안민석 이슈

 

그럼에도 <참교육>을 통해 학교 현장에 관심을 더 갖고, 현실에 더욱 분노하게 되었다는 건 좋은 일이다. 분노는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인데, 학교는 그런 분노조차 사라진 지 너무 오래되었다.

 

내가 특히 비관적인 인간이라 더 그런 것만 눈에 들어올지도 모르겠지만, 교사들은 지쳤고, 무기력하다. 일에 치여 주어진 일들을 쳐내는 게 1번 목표다. 수업과 행정을 쳐내면서 버티다 방학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태반이다. 변화를 만들 에너지가 있는 사람은… 정말로 드물고, 그마저도 몇 년 구르고 나면 앵꼬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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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석 교권국]

출처 - KBS (링크)

 

그래서 이런 하프 어그로, 하프 코미디 제안조차 반갑다. 여론은, 이래서 교육감 직선제를 하면 안 된다느니, 비전문가 정치인이 교육감을 하니 이런 포퓰리즘 정책이 나온다느니 하지만, 논의가 1cm만이라도 앞으로 갈 수 있다면 쌍수에 쌍족을 들고 환영할 일이다.

 

아마도 이미 있는 교권 보호 조치들을 긁어모으고, 신설 조직을 만들고, 조금 더 권한을 주는 정도에 그치겠으나 그런 실패도 의미가 있다. 아니, <참교육>이 공론장을 연 김에 좀 더 가열차게 실패할 필요가 있다.

 

모든 실패들이 가르킬 방향이 결국 정해져 있기 떄문에.

 

 

교육 이슈

 

<참교육>이 판타지인 이슈는 단순히 폭력을 폭력으로 제압한다거나, 싸다구 한 방에 학생이 10미터씩 날아가는 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빌런 한 둘을 제압하면, 교권이니 학습권이니 하는 것들이 생기를 되찾고 학교가 유토피아가 될 것처럼 묘사하는 것이 판타지다.

 

그렇게 심플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정치인들이 달려들어, 교육의 적폐를 해결하고 <참교육>의 최강석 장관처럼 지지율 1위 대선 후보가 되었을 테니.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교육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사범대에 들어가 이 분야를 깊게 들어다보며 반복적으로 드는 생각이 있다.

 

모든 교육 문제의 원인은 교육이 아니다.

 

독재자가 통치했고, 가정 폭력도 만연했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체벌을 했고, 노동시장이 양극화된  이중구조이기 때문에 지위경쟁이 극심해 입시 몰입 교육을 하게 되고, 부동산 공화국이기 때문에 지역별 교육 불균형이 나타났다. 진상 학부모라 불리는 이들도 사회에서 진상 민원인이 되고, 진상 고객이 되는 이들이 학교로 찾아온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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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 (링크)

 

즉, 교육은 사회에 종속되어 있다.

 

그러니 교육 제도를 바꿀 때마다(실은 입시 제도이지만) 혼란만 가중되고 엉망으로 치닫게 되거나, 그렇게 보이기만 할 뿐인 것이다(그런 거 하지 말라고 만든 국가교육위원회는 윤석열 정부 때 이배용 같은 떨거지가 와서 조져진 상태다).

 

사회가 바뀌지 않고선 학교마다 김무열을 하나씩 놔주고, 양아치들을 잡아가고 밤새 싸다구를 날려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 무기력함. 교육 불가능함. 그게 본질이다. 교사가 어떻게 발버둥을 쳐도 벗어날 수 없는 그 구조가 본질이다.

 

그걸 건들지 않는 조치는 모두 땜질에 그칠 수밖에 없다. 아주 디테일하게 들어가서 학폭위가 어쩌구, 민원실이 어쩌구 해봐야 앞으로 한 칸, 뒤로 한 칸 차이다. 물론 그게 무의미하다고까지 말하고 싶진 않지만, 기대가 되지도 않는다.

 

좋은 교육을 하려거든,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건강하려면 주 3회 운동해야 한다는 말처럼 싱겁지만, 그게 사실인 걸 어쩌겠는가. 그러니 엄한 곳에 너무 힘 쓰지 말자. 학교도 학생도 학부모도 아니다. 지금 참교육이 필요한 대상은 한국 사회 그 자체다.

 

참교육 포스터.jpg

 

 

P.S.

그럼에도 <참교육>으로 모인 에너지로 좀 더 발버둥을 칠 수 있다면, 쳐야 한다면, 첫 째는 행정. 면피용 행정과 가짜 노동만 줄여도 에너지의 30%는 세이브할 수 있을 것 같다. 둘째는 인력. 이미 교실에서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을 분리조치 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다만 그렇게 보낸 학생을 관리할 인력이 없을 뿐. 관리자나 수업 없는 교사가 임시로 땜빵은 가능하겠으나, 그런 학생이 둘만 생겨도 학교 시스템으로 관리 안 된다. 바보 같이 쓰이는 예산 10%만 가져와서 거기 써도 유의미한 변화가 생길 거라고 본다. 그게 가능할리 없겠지만.

 

 

 

편집: 꾸물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이크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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