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maxresdefault.jpg

 

막장 드라마들의 바닥에 흐르는 공통의 정서는, 남의 것이 너무 탐스러워 뺏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다. 뺏고 싶은 대상은 돈일 수도 있고 명망이나 권력이 될 수도 있다. 드라마에선 돈, 명망, 권력 등을 가진 이를 상정하고 그것을 차지하려는 주변의 암투를 그린다.

 

개가 똥을 끊지 못하듯 우리가 막장 드라마를 잘 끊지 못하는 것은 스토리가 너무 뻔하지만, 극 중간중간에 불쑥 끼어드는 비정상 전개의 아연함이 주는 도파민 폭발 때문이다. 입술 옆에 점 하나를 찍고 나온 여주인공을 모든 극중 인물이 알아보지 못하면서, 비평가들이 중시하는 이야기의 골격, 개연성을 비웃는 듯한 작가의 용기에 감탄한다. "미친 거 아니야?"하면서도 리모컨 버튼 위에 올라간 엄지손가락을 치우지 못한다.

 

막장은 대개 가족을 배경으로 한다. 남남보다 가족 관계가 막장 드라마를 쓰는 데 힘이 덜 들기 때문이다. 혈연이 아닌 타인과의 관계에서 막장을 쓰려면 반인륜적 행위를 해야 하지만, 가족 관계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가족과 혈연은 공동체 윤리가 작동하는 가장 기초 단위로, 인간이 끝까지 지키려 하는 마지막 울타리이기 때문이다. 윤리의 당위성을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고 시대나 상황에 따라 변하는 상황 윤리의 그늘에서도 자유롭다.

 

패륜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칼을 들거나 누군가를 죽이지 않아도 패륜이 된다. 아주 가벼운 언어적 폭력에서 타인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가혹한 폭력까지 패륜의 농도는 조절이 가능하다. 그래서 막장 드라마의 배경은 거의 가족이며, 그 주인공은 가족의 구성원이다.

 

깨어 있는 시민의 유산, 노무현 재단

 

화면 캡처 2026-06-17 234410.png

 

우리나라에는 1980년 군사 쿠데타와 광주 학살의 원흉인 전두환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역대 대통령의 기념재단이 있다. 기념재단 대부분 대통령의 유족이 재단 운영에 깊이 관여한다. 유족이 재단 운영에 참여하지 않는 곳은 단 두 곳뿐이다. 이승만 기념재단과 사람 사는 세상의 노무현 재단이다.

 

이승만 기념재단의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유족은 없다. 이승만의 양자인 고 이인수의 두 자녀가 이승만 기념사업에 가끔 모습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재단 운영에 깊이 개입하는 것 같지 않다. 노무현 재단도 노무현 대통령의 유족 중 누구도 재단 운영에 개입하지 않는다.

 

두 재단은 다른 이유로 유족이 재단 운영에 개입하지 않는다. 이승만 재단의 경우, 유족이 재단을 독자적으로 이끌 만큼의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여전히 대한민국과 연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미국 국적의 유족을 내세운다. 반면, 노무현 재단은 유족 스스로가 전면에 나서지 않는 길을 택했다. 권양숙 여사와 그의 자녀들은 재단 운영에 지금까지 일절 개입하지 않았으며, 이사진에도 등재되지 않았다. 가족이 배제된 시민 대표로만 구성된 이사진이 설립 이후부터 지금까지 재단을 운영해 왔다.

 

사람 사는 세상,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유지에 걸맞은 운영 방식이다. 유족 중 그 누구도 재단 운영에 개입한 적이 없으며, 구두로 조차 개입하지 않았다. 이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유지이자, 노건호 씨가 편지에서도 밝혔듯 유족의 뜻이기도 하다. 자칫하면 빠지기 쉬운 유족의 전횡으로부터 재단 운영의 파행을 막고, 그로 인한 시민의 외면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내린 현명한 결정이다.

 

화면 캡처 2026-06-17 235046.png

출처 - (링크)

 

이러한 재단 운영 원칙과 자세는 가시적인 성과로 드러났다. 노무현 재단은 공익법인회계기준에 맞춰 재단의 사업 성과를 항목별로 세세하게 정리해 매년 공개한다. 재단 구조가 주먹구구식이 아닌 현대 시민 조직으로서 손색없는 투명한 조직 구조와 운영 체계를 갖추고 있다.

 

시민들의 자발적 후원, 이사진을 구성한 시민 대표들의 헌신, 유족의 균형 잡힌 책임감이 함께 만든 성과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의 상당한 공은 고 이해찬 이사장과 유시민 이사장에게 있다고 본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에게 가족과 같았던 '유시민'이 없었다면 지금의 노무현 재단이 있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당 대표, 국회의원, 복지부 장관을 거치지 않고, 당리와 정략에 따라 이합집산과 배신을 밥 먹듯 하는 정치판 경험이 유시민에게 전혀 없었다면, 그래서 국가와 조직에 대한 깊은 숙려와 경험이 없는 유시민이었다면, 지금의 노무현 재단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퇴임 후 검찰 기소, 장례식에서 울분을 터뜨리던 노무현을 향한 유시민의 절절한 애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노무현 재단은 있을 수 없었다.

 

동지이자 가족이었던 유시민

 

12643.JPG

출처 - (링크)

 

2025년 노무현 재단의 총수입은 135억 원이었다. 이 중에서 77.7%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낸 후원금이다. 금액으로 따지면 약 100억 원에 이른다. 노무현 재단이 출범한 첫해인 2009년의 후원금 30억 원에 비하면 3배 남짓 많아졌다. 후원금이 많아진 것은 노무현이라는 인물이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갖는 정치적 상징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민들이 노무현에게 느끼는 가족과 같은 감정 때문이기도 하다. 노사모였던 시민뿐만 아니라 퇴임한 노무현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봉하를 찾았던 시민들, 운구를 보며 눈물을 강물처럼 흘리며 따랐던 수많은 시민은 노무현을 나의 영원한 대통령이자 가족 같은 나의 형, 나의 오빠 적어도 이웃 삼촌으로 느꼈을 것이다. 내가 그랬다.

 

20080830_12095_노무현사료관.JPG

출처 - (링크)

 

유시민은 한순간도 노무현에게 동지이자 가족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피를 섞지 않았으나 피보다 진한 동지애로 묶인 혈연이었다. 정치를 그만둔 뒤, 유시민은 자신의 시간, 땀, 자산을 자기 자신보다 노무현 재단에 더 많이 쏟아붓는 것처럼 보였다. 지상파와 종편을 통해 쌓은 높은 인지도와 지적 재산을 본인이 아닌 재단에 기꺼이 쏟아부었다. 순전히 개인의 노력으로 쌓은 자산임에도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 결과, 다른 대통령 기념 재단은 꿈도 꾸지 못하는 폭발적 성장을 노무현 재단은 할 수 있었다.

 

편집증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노무현 재단에 대한 유시민의 헌신은 컸다. 그의 헌신은 노무현 재단의 성공뿐만 아니라 노무현의 유지를 이은 문재인과 이재명의 집권과 국정 성공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 목적을 이룰 수 있다면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길을 걷기도 했다. 피를 흘리는 조국과 그의 가족 옆에 서서 윤석열 정권이 휘두르는 망나니 칼을 함께 맞았다. 주류가 된 민주당이 권력 투쟁의 늪에 빠져들어 깨어 있는 시민들에게 상처를 줄까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내란 세력이 암약하고 있으며, 노무현 정신도 아직 충분히 뿌리내리지 못했기에 유시민의 이러한 노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서 우리는 매주 노무현 재단의 유튜브를 켜고 유시민이 진행하는 알릴레오 북스를 보며 노무현 정신을 상기하고, 그의 유지처럼 대한민국이 깨어 있는 시민의 나라가 되기를 갈망했다. 그와 함께 민주 시민의 소양을 단련한다.

 

maxresdefault.jpg

출처 - (링크)

 

곽상언이 만드는 막장 드라마

 

2009년부터 노무현 재단이 만들어 온 시민의 역사, 그 발자취는 노무현 재단의 유튜브 채널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아니, 160만 명의 유튜브 구독자의 기억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런데 느닷없이 이 기억을 부정하는 인물이 등장했다. 그것도 유족 중 한 명이다.

 

cf.JPG

출처 - (링크)

 

노무현 대통령의 사위이자 민주당 종로구 국회의원인 곽상언. 아주 저렴한 제과점 비유와 가장 오래 방송한 알릴레오와 알릴레오 북스의 통계치를 예로 들며, 노무현 재단 운영이 유시민 개인에 의해 재단된다는 요설을 공개적으로 피력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동지이자 가족이었던 유시민이, 자기 명망과 사적 이익을 위해 노무현 재단의 자원을 이용하는 막장 드라마 속 빌런이 되어 있었다. 깨어 있는 시민의 집단 기억을 부정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사안에 대한 인식도 형편없는데, 시기도 틀렸다. 일베식 작명과 같은 '문조털래유'라는 표현의 한 축이 되어 버린 유시민이, 자칭 뉴이재명 무리에게 혹독한 비판과 힐난을 받는 와중에 곽상언이 뛰어들었다는 것은, 그가 아무리 가족의 아픔을 앞세운다 한들 그의 진심을 의심하게 만든다. 지난 지방 선거에서 서울 시장 선거보다 평택을 보궐선거에 더 적극적이었던 모습도 마찬가지다.

 

화면 캡처 2026-06-17 235313.png

출처 - (링크)

 

노건호 씨가 말한 것처럼 곽상언은 오래전부터 노무현 재단 운영에 가진 자기의 문제의식을 가족들에게 피력한 듯하다. 그리고 그 문제의식은 단순 패륜적인 일베 작당에 대한 노무현 재단의 대응을 요구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 것 같다. 노무현 재단의 운영 주체도 문제 삼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 노건호 씨의 편지가 막히지 않고 해석된다.

 

거지 같은 타이밍, 국회의원의 지위, 그가 사용한 어설픈 언어를 곱씹어 보면, 그가 오래전부터 원하던 상태는 유시민이 떠난 노무현 재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가 흔히 보는 막장 드라마의 다음 편으로 넘어갈까? 6만 명의 회원과 160만 명의 구독자, 130억 원에 이르는 예산을 가진 재단을, 수많은 깨어 있는 시민들이 뿜어 올리는 사랑과 헌신으로 운영되는 노무현 재단이, 특정 정치인이나 정치 세력을 위한 정치 플랫폼이 되는 저열한 욕망의 서사가 펼쳐질까?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상대 호흡조차 끊어 먹는 저질 연기로 막장 드라마의 조연 배역도 따내지 못하고 퇴출되는 삼류 배우의 뒷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말.

 

2006723_710046_5004.jpg

출처 - (링크)

 

곽상언이 주장하는 것처럼 대한민국의 많은 10대들이 죄책감 없이 노무현 대통령을 패륜적 유희거리로 소비하는 건 사실이다. 이런 유희의 대상은 노무현 대통령만이 아니다. 국가 폭력, 국가 안전망 붕괴 등 다양한 이유로 발생한 모든 죽음이 이들의 놀잇감이 된다. 보편적 인권을 유린하는 발언을 표현의 자유라는 미망으로 덮어씌우고, 아무렇지 않게 피해자의 처절한 희생을 조롱과 유희의 대상으로 삼는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유족이 겪는 사회적 고통을 짐작조차 할 수조차 없다. 그저 짐작만 하며 아리고 미안한 가슴을 쥐어뜯을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런 고통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깨어 있는 시민 중 그 고통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유족의 고통이 얼마나 가혹한지 짐작조차 못하지만, 내 자식이 좌파의 아들이라는 낙인이 찍혀 소위 또래 일베로부터 따돌림을 당할까 염려하며 밤을 새웠다. 아들이 학창 시절 내내 일베의 피해자가 되지나 않을까 아니면 가해자인 일베가 되진 않을까 마음 졸이며 살았다.

 

일베가 되는 것은 단지 개인의 기질이나 취향 문제, 놀이의 쾌감이 주는 도파민 중독 문제가 아니다. 인간 사회의 모든 중독의 주된 원인이 사회적 소외와 관계의 결핍이듯, 일베라는 중독 현상도 아이들이 그들만의 사회에서 겪게 되는 소외와 결핍이 가장 주요한 요인이 된다. 진보 부모와 일베 자식이라는 극치의 부조화가 생기는 이유다. 부모의 생활이 반듯하고 모자람이 없는데 자식이 일진이 되고 일베가 되는 것이다.

 

취학한 아이들의 사회는 학교와 온라인 커뮤니티다. 아이들은 그 사회 안에서 관계망을 만들고 관계적 자기 정체성을 키워 나간다. 우리는 그 과정을 보통 사회화라 부른다. 이런저런 이유로 대한민국의 경쟁 시스템에서 도태된 젊은이들이 이런 사회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소외와 결핍을 보상받기 위해, 더 처절하게는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선택한 마지막 탈출구가 일베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생물학적 생존과 사회적 생존이 얽힌 존재의 문제를 곽상언은 오래전부터 한낱 법이라는 메스를 들어 간단히 치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재단 차원에서 고인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일베에 아무리 단호하게 민형사상의 책임을 추궁한들, 그것으로는 지금 우리 아이들의 사회적 소외와 결핍, 그 보상으로 등장한 일베 문화를 불식할 수 없다.

 

87b40dcbbc5339e4bebe4c31c0a71dd8.jpg

 

 

편집 : 금성무스케잌

마빡 디자인 : 꾸물

기사 : 무이야

 

제보 및 연재 문의

ddanzi.mast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