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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1,092명(의원 후보 934명, 비례 후보 158명)의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가던 이들에게도 인사를 건네고, 생전 궁금하지도 않던 노점 상인들의 안부를 묻고, 입에도 대지 않던 오뎅을 시원하게 한 입 베어 물기도 한다. 뜬금없이 살려달라 석고대죄를 하지 않나, 내가 아무리 퉁명스런 반응을 보여도 해맑게 웃기만 한다. 그리고 말하기도 전에 뭐든 다 해준데, 지가 무슨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아니고 애인도 그런 애인은 지구상엔 없겠다. 남녀노소 불문, 다리 몽댕이가 부러져도 완전군장하고 행군할 기세고, 각혈을 토해내도 노래방에서 마이크 안 놓는 넘들마냥 하루 왠종일 사자후를 토해낼 기세다. 다들 눈치 까셨다시피 딱 12일 자정까지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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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한국일보>


딱 하루가 지나면, 그러니까 13일 자정, 늦어도 14일 오전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1,092명이 우리들의 눈앞에서 휘발된다. 우리의 표정은 여전히 무심하지만, 인사를 건네는 이는 없다. 노점상을 찾는 이는커녕 언제 철거될지 모를 불안만 엄습해 온다. 뭔가를 해주겠다 씨부린 입에서는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이 자연스레 튀어나온다. 여러분들을 위해서라면 완전군장하고 에부리데이 행군을 하겠다며 새끼 걸고 맹새한 넘들은 죄다 PX에 짱박혀 노닥거리고 있다. 정치에 '혐오' 혹은 '무관심'이란 워터마크를 박은 이들이 종종 내세우는 우주에서 오는 기운과도 같은 예측이자 주장이다. '이놈이 그놈 같고, 그놈이 저놈 같다'는 선택 불가론 역시 마찬가지다. 응당 일리 있는 말이기도 하다. 해방 이후 수십 년간 우리 정치가 스스로 누적해온 총량이 딱 그 정도일 수도 있다. '님들 혐오' '무관심이나 드셔'라고 낙인찍혀도 딱히 변명할 여지가 없는 그런 상황 말이다.


어쩌면 4월 13일 이후의 상황은 그날로부터 딱 2달 전쯤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 다를 것도 없고 나아질 것도 없어 투표라는 행위에 굳이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는 그런 회기 말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우리 정치나, 우리 사회에 대해 모두 회의적이다. 군사독재를 몰아냈고, 직선제를 쟁취했으며,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고 이를 바탕으로 민주사회를 구현한 다이내믹하고 역동적인 사회라는 기대와 희망에 의문부호 만오천 개쯤은 일단 달고 시작한다. 해방 이후 일제 부역자들이 고스란히 정권을 위임받고, 그 정권이 수십 년간 억압과 개발이라는 양날의 검을 휘두르며 보란 듯이 '보수'라는 말도 안 되는 이름으로 권력의 노른자위를 독점했기 때문이다. 그 다이내믹한 에너지를 생존과 민주화를 위해 쏟아붓는 대신 함께 잘 먹고 잘사는 고민에 때려 부었다면 우리의 삶은 얼매나 풍요로워졌을 것인가. 우리 정치는 그렇게 아주 오랫동안 구성원의 에너지 위에 견고하고 굳건하게 군림해왔다. 독재를 몰아내면 뭐하나. 독재자의 딸이 독재에 대한 반성이 없음에도 독재자 아버지와 같은 자리에 올라가 있는데 말이다.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수백 명의 아이와 그 가족에 대해 최고 권력자와 국가가 여전히 냉대와 무시를 보낸다고 해도, 당장 오늘 수많은 이들을 공포와 충격을 몰아넣는 대형 악재가 터진다 해도 13일 이후 남한 지도는 짜고 치는 고스톱마냥 동과 서로 나뉘어 한쪽은 벌겋고 한쪽은 퍼렇거나 녹색이거나 노랄 것이고, 수도권은 4색이 어우러져 있을 것이다. 조금 더 벌겋고, 조금 더 퍼런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래서 나는 세대를 막론하고 투표하지 않는 이들의 무관심, 혹은 혐오, 혹은 포기에 대해 그리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머 어때서. 우리 정치라는 게 존나 뛰긴 했는데 돌아보니 제 자리에 서 있는 도돌이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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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19대 총선 결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4.13 총선을 하루 앞둔 지금 '투표'를 권유 드린다. 미우나 고우나 '투표'는 우리의 의사나 기대를 확실히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다. 우리가 선택한 후보가 당선되고, 우리가 선택한 정당의 비례대표가 몇 명 더 국회에 입성하는지의 여부는 다른 문제다. 게다가 그들이 우리들에게 내건 약속들의 이행여부는 지금은 당췌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지난 대선에서 무상보육과 파격적인 노인연금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대통령이 그 약속을 어떻게 뒤집었는지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런 중앙정부와 여당에 대한 불신에 야당의 안이함과 무기력함을 더해 기권과 포기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변화는 늘 선택에 따른 결과였다. 그 변화가 긍정적일 땐 우린 같은 선택을 통해 응원했고, 부정적일 땐 다른 선택을 통해 경고했다. 그 선택이 작든, 크든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냈음은 분명하다.


서울시 7월부터 청년수당 월 50만 원 현금으로 준다.


뜬금없지만 서울시는 7월부터 서울시에 거주하는 미취업 청년들 3천 명에게 월 50만 원씩 6개월까지 지급한다고 한다. 예산이 집행된다고 하더라도 새빛둥둥 머시기의 예산 1,390억 원의 1/100도 안 되는 금액으로 취업을 준비하는 주변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업이다. 물론 지급되는 지원금이 악용될 수 있는 점, 그리고 중위권 이상의 가구 소득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기도 한다. 무상급식에 대해 여당과 중앙정부가 공격하고 언론이 퍼다 날랐던 프레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앙정부가 대법원에 제소까지 하며 반대한 이 사업에 대해 서울시는 '청년의 활동을 위한 정책이므로 제한을 두는 것보다는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신뢰를 바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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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향한 신뢰와 약속의 이행, 이것이 바로 우리의 선택이 만들어낸 변화라고 본다. 우리의 선택을 받은 이가 당선되고, 중앙정부와 여당의 태클에도 우리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약속을 지키는 것 말이다. 생각해보자. 우리에게 믿어달라 그렇게 애원하고 구걸하던 그들이 언제 우리를 믿은 적이 있었단 말인가. 있긴 하다. 국가적 악재나 재난이 발생하면 꼭 '우리 국민을 믿는다'고 했다.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님들의 중동 진출 무한 가능성을 믿어요.'라 말한 대통령도 있다. 지들에 대한 믿음은 늘 지역의 발전이자 국가의 미래요 국민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 설파하면서, 정작 우리에 대한 믿음은 늘 책임 전가용으로만 발행한다. 언제 우릴 진심으로 믿었던 적이 있던가. 있겠지. '니 찍어주마' 이 말만큼은 철석같이 믿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런 와중에 우린 오랜만에 우리에 대한 진짜 '신뢰'를 만났다. 


투표에 있어 포기도 확고한 의사 표현의 영역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포기 그 자체만으로든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다. 선택은 변화 그 자체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변화의 가능성을 향한 베팅이다. 그 가능성을 향한 베팅이 누군가를 당선시켰고, 그를 통해 새빛둥둥 머시기의 1/100도 안 되는 예산으로 현실적인 도움을 받는 주변의 청년들을 마주함으로써 우린 그 변화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 변화를 만들어 낸 것은 '선택'을 한 우리다.


그러니 포기들 하지 마시라. 우리와 같은 대의제에서 유권자의 존재감은 기껏해야 선거 전후로의 1달 정도밖에 인정받지 못한다.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포기는 그러한 현실이 우리에게 안겨준 무기력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4월 13일 내일 하루만큼은 우리가 선수다. 4년을 기다린 우리에게 돌아온 출전의 기회인 것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 꼼꼼히 살펴보며 몸 좀 푼 뒤, 내일 거침없이 경기장으로 향하자. 내일은 경기 결과에 매우 큰 변수로 작용하는 우천이 예고되고 있다. 무릇 진정한 선수란 날씨를 탓하지 않는 법. 바로 내일, 4년 만에 돌아온 출전의 기회를 잡은 모두가 승리의 주역이 되길 빈다.


4월 13일엔 우리가 선수다.


에불바리 굿 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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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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