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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혜(31세)

제빵사

 

경력: 8년 

주력 상품: 생화 케이크, 커스텀 케이크 

제빵 3요소: 비율, 온도, 시간 

프랜차이즈 시절 하루 물량: 70~80종, 500~600개

 

후미진 골목 끝에서 내비게이션이 안내를 종료했다. 서산 읍내에서도 한참 벗어난 골목이었다. 이런 곳에 케이크 가게가 있을까. 차에서 내렸다. 어디에도 간판이 안 보였다. 잘못 찾아왔나. 골목을 몇 바퀴나 헤맸다. 겨우 찾아 들어갔다. 정식 오픈 전이라더니 과연 그런 모양이었다. 포장도 뜯지 않은 새 물건이 여기저기 쌓여있었다. 그녀는 아직 가게가 어수선하다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래도 간판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온라인으로만 예약받아 제작해 드리는 케이크거든요. 굳이 간판이 필요한가 싶어서 입간판이나 하나 둘까, 생각 중이에요. 가게라기보다는 공방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런 데 돈 쓰느니 주방 기기에 아낌없이 투자하려고요(웃음).”

 

아닌 게 아니라, 어수선한 사무 공간에 비해 주방만큼은 번쩍번쩍 빛이 났다. 큼지막한 냉장고부터 오븐, 작업대와 싱크대, 휘핑기 포함한 자잘한 제빵 도구까지, 좁은 주방에 가득가득 질서정연하게 진열해 놓았다. 케이크 만드는 과정 한 번 보여주겠다던 그녀가 안 그래도 번들번들 윤이 나는 작업대를 구석구석 닦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싱크대로 가서 한참이나 손을 씻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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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부분을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빵 만들며 보내고, 이번에 막 케이크 가게 차렸다고 전해 들었다. 제빵사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고급 용어로 파티셰라고 해야 할지. 뭐가 맞는 건지 물었다. 농담인 듯 진담인 듯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글쎄요. 그냥 케이크 만들어서 돈 버는 사람? 저처럼 주문 제작으로 케이크 만들어주는 가게들이 전국적으로 꽤 있거든요? 그럼 뭐, 커스텀 케이크 스튜디오니 하면서 거창하게들 표현하던데, 아휴~! 저는 그런 표현이 좀 낯간지럽더라고요. 

 

저는 진짜로 먹고살려고 케이크 만드는 거예요. 다만, 내가 그 정도 돈 받을만한 케이크를 만들고 있는가. 이건 늘 고민하죠. 그러니까 알아서 적당히 표현해 주세요(웃음).”

 

그러고는 큰 볼에 물 받아 베이킹소다를 풀었다. 그 볼에 딸기 담아 살살 굴려 가며 헹궈냈다. 한 알, 한 알 정성도 그런 정성이 없었다. 무슨 딸기 하나 씻는데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이 과연 그녀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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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먹는 거 같으면 대충 후후 불어서 먼지 털어내고 먹죠(웃음). 근데 돈 받고 파는 거니까요. 베이킹소다로 헹군다고 뭐 얼마나 더 깨끗해지겠냐만 괜히 그렇잖아요. 건너뛰면 안 될 것 같은 찝찝한 기분. 그래서 그냥 이렇게 하는 거예요.”

 

 

제빵의 세계, 희생 반죽 

 

지혜 씨가 정성스레 헹군 딸기를 탈탈 털었다. 이후 재빨리 키친타월에 늘어놨다. 물기 제거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딸기가 금세 물기를 머금어버린다. 싱거워질 수 있다. 미세하지만, 분명 다르다. 딸기 말리는 사이, 지혜 씨가 조리 도구를 하나씩 꺼냈다. 시트를 만들 거라고 했다.

 

“우리는 제노와즈라고도 하는데, 그냥 그 케이크의 빵 부분 있잖아요. 그거 만드는 거예요. 원래 시트는 전날 미리 만들어서 하루 정도 숙성해요. 그래야 시트가 안정되고 자를 때도 단면이 깔끔하거든요. 오늘은 시트 만드는 것부터 보여드려야 하니까 숙성 과정 없이 바로 진행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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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씨는 저울에 큰 볼 올려놓고 계란과 설탕을 조금씩 추가하며 그램 수를 체크했다. ‘손맛’이 중요한 한식과 달리, 제빵은 단 1g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작은 차이가 맛과 모양을 크게 좌우한다. 마지막으로 꿀을 추가했다. 같은 단맛이라도 설탕과 꿀은 그 풍미와 감촉이 또 다르다. 꿀을 넣어야 시트가 좀 더 촉촉해진다.

 

“그다음에 이렇게 중탕하는 거예요. 아주 약한 불에서 천천히. 몇 분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순 없어요. 그냥 이렇게 봐서 설탕이 어느 정도 녹고, 계란에서 날 비린내가 날아가면서 아주 살짝 익었다고 할 수 있는 정도(웃음)? 미세하지만 계란 특유의 날 비린내가 있거든요? 그걸 가라앉히는 과정이에요.”

 

다 그렇다. 통제할 수 있는 건 재료 비율과 양 정도다. 그 외의 것들은 경험과 감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휘핑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중탕한 계란 반죽을 휘핑기로 계속 저어준다. 그러다 보면 슬슬 부풀어 오르면서 질감이 바뀐다. 어느 순간 꾸덕꾸덕해지면서 휘핑기 지나간 자리에 흔적이 남는다. 그 질감이 올라올 때까지다. 정해진 시간 같은 건 없다.

 

휘핑 끝낸 계란 반죽에 밀가루를 넣었다. 이때도 그냥 넣지 않고, 체로 쳐가며 넣는다. 가루가 고울수록 뭉치고, 뭉치면 구웠을 때 식감이 고르지 않다. 떡질 수 있단 얘기다. 누군가에겐 평생에 단 한 번뿐인 칠순 잔치 케이크다. 또 누군가에겐 사랑스러운 아기 돌잔치 케이크다. 그렇게 중요한 날을 떡진 케이크 하나가 망칠 수도 있는 거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무엇 하나 허투루 넘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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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 추가한 반죽을 주걱으로 자르듯 서서히 섞었다. 구름처럼 폭신폭신하게 부풀어 오른 반죽을 꺼트리지 않으면서 섞는 비결이다. 그렇게 만든 반죽에, 이번엔 녹여놓은 버터를 섞었다. 이때도 그냥 섞지 않는다. 일부 덜어낸 반죽과 버터 먼저 섞은 뒤, 그걸 전체 반죽에 부어서 다시 섞는다. 지혜 씨는 이걸 희생 반죽이라고 했다. 업계 표현이란다.

 

“만들어 놓은 반죽은 수분이고, 버터는 기름이잖아요. 녹인 버터를 그대로 본 반죽에 부으면 섞이지 않고 분리돼 버려요. 그래서 기름과 수분이 만날 수 있게 희생 반죽으로 먼저 길을 터주는 거예요. 제빵의 세계, 참 재밌지 않나요(웃음)? 이렇듯, 모든 일에는 희생이 따르는 법이랍니다. 우리 인생처럼 말이죠. 푸하하하.(지혜 씨는 이 멘트를 할 때 아주 개구쟁이 같은 표정과 과도한 제스처를 취해 보였다)”

 

반죽이 끝났다. 완성한 반죽을 케이크 틀에 부었다. 그러고는 틀 옆면을 가볍게 탁탁 쳤다. 기포 빼고 표면을 정리하는 과정이다. 미리 예열한 오븐에 반죽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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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형 빵집에 최적화된 인재

 

고등학교 때 제빵 전공하긴 했다. 어쩌다 보니 전공했을 뿐이었다. 제빵사가 되겠다는 꿈 같은 건 애당초 없었다. 졸업하자마자 서울에 갔다. 그때도 서울 가서 뭘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서산보단 서울에 가야 뭐라도 하지 않겠나 싶었다. 서울 가서 옷 가게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3년쯤 일했다.

 

“인생이 언제는 뜻대로 되던가요(웃음)? 저는 목표 없는 게 목표예요. 목표를 설정하는 순간부터 욕심을 부리게 되고, 그러면 반드시 스텝이 꼬여요. 그래서 목표를 정하지 않아요. 제가 그동안 해왔던 모든 결정에 대해서도 특별하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요.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던 거고, 그 자리에서 제가 해야 할 일을 해낸 것뿐이에요.”

 

과연 그렇다. 무언가 결정할 때 우리 또한 대부분 ‘그냥’ 한다. 그 결정이 이랬다는 둥 저랬다는 둥 의미 부여하는 건, 대체로 결정하고 실행해서 결과까지 확인한 이후다. 그때 내 결정은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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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생활 정리하고 다시 서산에 내려온 건 어머니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간암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오빠도 타지에 있었다. 홀로 남은 어머니가 걱정됐다. 그래서 내려왔다. 또 먹고살아야 했다. 취업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려놨다. 며칠 뒤 전화가 왔다. 제빵 교육기관이었다. 고등학교에서 제빵 전공한 지혜 씨 이력이 담당자 눈에 띈 거다. 담당자는 3개월 교육 과정 거치면 프랜차이즈 빵집에 취업시켜 준다고 했다.

 

“무료로 교육도 해주고 취업도 시켜준다는 거예요. 처음엔 사기인가? 반신반의하면서 갔어요. 제가 늘 그래요. 크게 고민하지 않아요. 일단 부딪혀보고, 안 되면 그만인 거죠, 뭐(웃음). 알고 보니까 프랜차이즈 빵집 본사에서 위탁한 교육기관이었어요. 그게 벌써 10년 전이니까요. 충남 쪽에 제빵기사가 워낙 없다 보니까 그렇게 아예 육성해서 빵집에 투입시키는 거였어요.”

 

그곳에서 3개월 동안 빵과 케이크 만드는 걸 배웠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장형 빵집에 최적화된 인재로 길러지는 과정이었다. 생각하지 않아도 손이 앞설 수 있도록, 눈 감아도 능숙하게 아이싱(케이크 시트에 생크림 바르는 작업)할 수 있도록, 같은 작업을 끝도 없이 반복했다. 교육이 아니라 훈련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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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끝나고 다시 3개월간 실습 기간을 가졌다. 프랜차이즈 빵집은 보통 제빵기사 1~2명이 모든 빵과 케이크를 만든다. 실습생은 3개월간 제빵기사 보조하며 현장 전반을 익힌다. 지혜 씨가 3개월 동안 제빵기사에게 배운 건 맛있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빨리 만드는 기술이었다.

 

“프랜차이즈 빵집은 철저하게 공장형 시스템이에요. 본사에서는 어느 지점의 빵이 특별히 더 맛있다거나, 대체할 수 없을 정도로 특출나게 실력 좋은 기사가 있다거나, 그런 상황을 절대적으로 바라지 않아요. 본사 입장에서는 모든 지점의 빵 맛이 똑같고, 어느 기사든 대체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실습 기간에 그런 걸 배우는 거예요. 정해진 시간 안에 본사 레시피대로 균일한 맛의 빵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 내는 기술.”

 

6개월의 교육과 실습을 거쳤다. 마침내 제빵기사가 됐다. 지혜 씨가 파견 간 지점은, 그 바닥에서 이미 유명한 빵집이었다. 까탈스럽기로 소문 자자한 사장 빵집. 이제 20대 초중반이었던 지혜 씨는 그곳에서 아버지뻘보다 나이 많은 사장을 어르고 달래가며 3년이나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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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한 것처럼 프랜차이즈 빵집은 고용 구조가 좀 독특해요. 편의점이나 카페처럼 사장이 직접 면접 보고 고용해서 월급 주는 방식이 아니에요. 본사에서 직접 사람 뽑아 교육하고, 그렇게 육성한 기사를 지점에 파견하는 방식이에요. 그러니까 엄밀히 따지면 기사와 사장은 고용관계가 아니에요.

 

그런 데다가 사장님들 대부분이 빵은 한 번도 만들어 본 적 없는, 그냥 빵을 파는 사람들인 거예요. 사장 입장에서는 어쨌든 빵을 많이 팔아야 본사에 돈을 주는 거고, 그 돈으로 기사들 월급 받는 거니까, 내 말을 따르라는 게 기본이에요. 

 

그래서 어느 지점 가든 주방과 매대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있는 거죠. 기사는 사장이 주방으로 넘어오지 않길 바라는 거고, 사장은 어떻게든 주방에 개입하려고 하는 거고.

 

우리 사장님으로 말하자면 수시로 주방 와서 잔소리하는 스타일이었어요(웃음). 목소리는 또 얼마나 쩌렁쩌렁한지, 귀가 먹먹할 정도였어요. 그때마다 조곤조곤 웃으면서 ‘네네~ 알겠어요. 이것까지만 해놓고 바로 빼 드릴게요. 나가 계셔요~’ 이렇게 얘기하고 그냥 제 할 일 했었죠(웃음).”

 

지혜 씨는 그곳에서 매일 혼자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빵을 굽고 케이크를 만들었다. 일어나면 빵 만들고 집에 오면 쓰러져 잠들었다. 힘들다고 생각할 겨를이 없을 만큼 바쁜 시간이었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그저 그렇게 매출 나오던 빵집이 3년 만에 충남 탑을 찍었다. 지혜 씨가 다른 지점으로 옮길 때, 그렇게나 까탈스러웠던 사장은 지혜 씨 손을 꼭 잡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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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빵집의 하루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난다. 6시까지 출근이다. 출근하면 가게 앞에 물량 상자가 한가득이다. 수량이 제대로 왔는지 체크한다. 냉동과 냉장 제품을 구분해 넣어놓는다. 그러고 나면 벌써 6시 30분. 가장 조급해지는 시간이다. 7시면 가게 오픈이다. 출근길에 커피와 빵 사 가는 손님이 많다. 30분 안에 다만 몇 가지라도 빵이 나와야 한다.

 

첫 번째로 굽는 건 모닝빵, 단팥빵, 슈크림 같은 작은 빵이다. 프랜차이즈 빵집은 매일 똑같은 과정 반복한다. 생지(아직 굽기 전의 빵 반죽) 기준으로 보자면 이렇다. 전날 발주한 생지가 아침에 들어온다. 냉동실에 보관해 놨다가 오후부터 성형해 퇴근 전 발효기에 넣는다. 발효기에 들어간 생지는 하룻밤 사이 숙성 과정 거친다. 적당히 부풀어 오른 생지를 다음 날 아침에 꺼낸다. 마감 작업해 오븐에 굽는다. 그렇게 전날 발주-오늘 성형 및 숙성-다음날 작업 및 판매까지, 3일 사이클을 무한 반복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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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오늘 아침 작업은 발효기에서 숙성한 생지 꺼내는 것부터다. 발효기에서 꺼낸 생지는 그 상태 먼저 확인한다. 매일 똑같은 시간과 온도로 설정해 놔도 그때그때 발효 상태가 제각기다. 겨울과 여름 온도가 다르고, 비 오는 날과 맑은 날 습도가 또 다르기 때문이다. 한여름엔 생지가 과발효되기도 한다. 오래 일하다 보면 그 모양과 크기만 봐도 알 수 있다.

 

과발효된 생지를 오븐에 넣을 때는 거꾸로 온도를 낮추거나 시간 줄인다. 과발효됐다는 건 평소보다 크게 부풀었단 얘기다. 크게 부풀었다는 건 평소보다 많은 공기를 머금었단 얘기이기도 하다. 평소와 똑같은 온도, 시간으로 오븐에 돌리면 부풀었던 공기만큼 생지가 폭삭 주저앉는다. 모양도 맛도 볼품없어진다.

 

얼마나 온도를 낮추고, 시간을 얼마나 줄일지는 철저히 기사 몫이다. 단팥빵 12분, 피자빵 15분, 식빵 25분, 밤식빵 30분 등 본사 지침이 때때로 공허한 이유다. 결국 수시로 오븐 들여다보며 적당한 때를 가늠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적당한 때를 가늠하는 건 결국 ‘짬밥’이다. 몇 번의 사계절과 몇 번의 장마를 거쳤는지, 그러는 동안 단팥빵 몇 개를 구웠는지가 빵 완성도를 가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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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 확인이 끝나면 마감 과정 거친다. 빵 종류에 따라 마감 방법 또한 천차만별이다. 단팥빵은 광택제(계란, 물, 우유 등 섞은 액체) 바르고 깨를 뿌린다. 피자빵은 토마토소스 바르고, 야채와 햄 등 토핑한 후 치즈를 뿌린다.

 

보통 오전 10시 안팎으로 오늘 판매할 모든 빵을 굽거나 튀긴다. 종류로 보자면 70~80종에, 그 개수로 보자면 500~600개다. 한바탕 요란 떤 주방은 파장한 시장통처럼 어수선하고 너저분해진다. 쓸고 닦고 정리하면 11시다. 말하자면 1부 끝이다.

 

11시부터는 케이크 만든다. 혼자 감당해야 하는 빵집 주방에 식사 시간 같은 건 없다. 오후 1~2시까지 쉬지 않고 휘핑(액체 상태로 들어오는 생크림을 섞는 과정)과 샌딩(케이크 시트에 토핑 올리고 쌓는 과정)과 아이싱을 반복한다. 2부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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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판매할 빵과 케이크 모두 만들었으면 이제 내일 판매할 빵을 준비해야 한다. 아침에 들여와 냉동실에 넣어놨던 생지를 모두 꺼내 성형한다. 밀대로 밀어서 펴거나 접거나 다시 말아서 모양 잡는 과정이다.

 

좁은 주방에서 종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들고 나르고, 무언가 바르거나 뿌리고, 굽고 튀기고, 또 밀거나 편다. 오후 2시 기준으로 벌써 출근한 지 8시간이 넘는다. 진이 빠진다고 표현하면 꼭 맞다. 그래도 멈출 수 없다.

 

제빵은 시간 예술이다. 어떤 빵도 뚝딱 만들어지는 건 없다. 그것이 어떤 빵이든 일정 시간 발효와 숙성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 어떤 장인도 그 과정 건너뛰고 빵을 완성할 순 없다. 내일 가게 열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퇴근하기 전까지, 모든 생지를 발효기에 넣어야 한다. 이 과정까지 모두 끝내면 오후 4~5시다. 마지막으로 내일 들여올 물량까지 체크해 발주 넣는다. 마침내 퇴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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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보다 내일, 다만 1그램이라도 나은 사람

 

까탈스러운 사장 옆에서 3년을 버텨냈다. 충남 매출 탑까지 찍어봤다. 자타공인 베테랑 기사가 된 거다. 이를 눈여겨본 본사에서 지혜 씨를 지원 기사로 차출했다. 얘기한 것처럼 프랜차이즈 빵집은 보통 제빵기사 1~2명이 책임진다. 빵집은 연중무휴다. 기사가 일주일에 한 번이든 두 번이든 쉬려면 다른 누군가 그 자릴 ‘땜빵’ 해줘야 한다. 이렇게 매일 이 빵집, 저 빵집 옮겨 다니며 ‘땜빵’ 해주는 사람을 지원 기사라 칭한다.

 

“처음엔 하기 싫었죠. 아무리 바빠도 내가 익숙한 주방에서 일하는 게 낫지, 남의 주방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일하려면 불편하거든요. 근데 어쩌겠어요. 아무 주방에서나 맡은바 해줄 수 있는 기사가 저밖에 없다는데(웃음).”

 

지원 기사로 몇 년 일하며 수많은 기사 흔적을 보고 또 함께 호흡했다. 각양각색 주방도 경험했다. 그러면서 지혜 씨는 거꾸로 확신이 들었다. 평생 몸담을 수는 없겠다고. 공장형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일하는 기사 한계는 너무도 명확했다. 발전할 수 없는 구조였으므로 아무도 발전하려 하지 않았다. 안정적인 고용과 적정한 월급에 너무나들 쉽게 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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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또한 뭘 대단히 목표하며 살진 않았지만, 그래도 오늘보다는 내일, 다만 1그램이라도 나은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근데 진짜 경력 30년 베테랑 기사가 저보다도 아이싱을 못 해요. 그렇게 적당히 해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하니까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는 거예요. 계속 거기 있으면 저도 그렇게 될 것 같았어요.”

 

더 이상 ‘고인 물’이 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그만뒀다. 그리고 덜컥 케이크 가게를 차렸다. 이 역시 대단한 의지와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어쨌든 먹고살아야 했다. 가진 능력이라고는 빵 굽고 케이크 만드는 기술이 전부였다. 빵을 만들자니 8년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빵이라면 진절머리가 났다. 그나마 케이크라면 좀 덜 힘들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생화 케이크를 주로 만들게 된 건, 계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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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원래 꼭 생일 아니어도 케이크 선물하는 걸 좋아해요. 언제였던가. 생화 케이크 가게가 막 생기기 시작할 무렵이었어요. 선물용으로 주문했죠. 주문하면서 일부러 얘기했어요. 내가 빵집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특별한 날에 선물하는 거니까 신경 써서 만들어달라.

 

그렇게 주문하고 찾으러 갔는데 웬걸. 가격은 엄청 비싼데 꽂아놓은 생화는 시들시들하고, 결정적으로 케이크 상태가 너무 엉망인 거예요. 일반인들은 몰라도 저는 딱 보면 알잖아요. 그동안 만든 케이크가 몇 갠데. 제가 만들어도 이것보단 잘 만들겠더라고요(웃음). 그때 생각이 나서 생화 케이크를 전문으로 하게 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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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시트가 다 구워졌다. 오븐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시트를 꺼냈다. 달큰하고 구수한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시트 식히는 사이, 지혜 씨가 또다시 주방 정리하고 작업대를 꼼꼼히 닦아냈다. 그러고는 생화 몇 가지와 돌림판을 챙겨왔다. 본격적으로 케이크 만들 거라고 했다. 생화는 특별히 서울고속터미널 꽃시장에서 사 온 거라고 덧붙였다.

 

“어제 지인 케이크 하나 만들어줬는데, ‘호접란’ 올라간 케이크를 원하더라고요. 그래서 알아보니까 서산, 태안 이쪽에서는 제대로 된 호접란을 구할 수 없었어요. 겸사겸사 서울 가서 사 온 거예요. 구경도 할 겸 거래처도 알아볼 겸. 앞으로 매번 서울까지 갈 순 없겠으나, 그런 마음가짐으로 케이크 만들고 싶어요. 다만 꽃 한 송이 사 오더라도 꼼꼼히 따져가면서.”

 

시트를 반으로 가르고, 단면에 시럽을 뿌렸다. 딸기 썰어 올리고 생크림을 넉넉히 발랐다. 그렇게 한 단, 한 단 차곡차곡 4단까지 쌓아 올렸다. 마지막으로 겉면 전체를 크림으로 덮었다. 도자기 만드는 장인처럼 돌림판을 천천히 돌려가며 크림을 고르게 펴 발랐다.

 

마지막으로, 준비해 놨던 생화를 하나씩 꽂았다. 마침내 3시간에 걸친 작업이 끝났다. 제빵이라기보다는 3시간짜리 우아한 예술 영화를 본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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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계획이요? 그런 거 없어요(웃음). 제값 하는 케이크 만들자!! 뭐 그 정도? 그러다 망하면요? 망하면 어쩔 수 없는 거죠, 뭐(웃음). 제가 빚내서 가게 차린 것도 아니고, 그동안 모아놨던 돈으로 차린 거니까요. 망해봤자, 이 가게 하나 망하는 거지, 제 인생 전체가 망하는 거 아니잖아요? 푸하하하. 계속 말씀드리지만, 과정마다 의미 부여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요. 쉽게 쉽게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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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꼬마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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