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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조 원이 넘는 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하고도 삼성전자 주가는 지난주 이틀 동안 무려 15% 가까이 폭락했다. 전고점인 374,000원을 뚫고 올라가야 마땅한 역대급 실적이지만, 주가는 정확히 거꾸로 움직인 것이다. 앞서 실적을 발표한 마이크론도 시장 기대를 뛰어넘었고, 곧 발표할 SK하이닉스의 실적 역시 사상 최대치가 유력하다. 이 같은 눈부신 어닝 서프라이즈에도, 주가는 왜 반대로 움직일까?
술 취한 걸음으로 제 갈 길 찾아가는 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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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주가는 가야 할 길을 늘 '갈지(之)자' 걸음으로 간다. 인류 주식시장의 역사상 주가가 군인처럼 곧은 자세로 각을 맞추며 나아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주식이 시장에서 교환되기 시작한 이래, 주가는 늘 주취자처럼 비틀거리며 걸었다. 하지만 술 취한 사람이 결국 자기 집을 찾아가듯, 주가 역시 길게 보면 가야 할 길을 찾아간다. 경제가 흥하면 상승하고 망하면 하락하는 법이다.
특정 시점에서는 누구도 시장의 합리성을 함부로 확신하지 못한다. 행동주의 경제학자들이 골머리를 앓았던 것도 시장에서 단기적으로 폭발하는 투자자들의 비합리적 판단과 쏠림 현상이었다. 어떤 학자는 이러한 현상을 '집단 착각'이라 규정하기도 했다. 이는 비단 증시뿐만 아니라, 집단행동이 일어나는 모든 분야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통시적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집단 착각은 결국 제 길을 찾아가는 '집단 지성'의 노력에 의해 수정된다. 인간이 개인으로 혹은 집단이나 무리로 살아가며 저지르는 오류를 그때그때 수정하여 생존 가능성을 높여가는 과정, 이를 우리는 '진화'라고 부른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행동 심리학자 대니엘 캐너먼 역시 인간의 비합리적 행동 원인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찾았다. 사바나 초원에서 온갖 포식자들을 피해 생존해야 했던 인류의 조상(호미닌)은 실체가 모호한 위험 앞에서 매 순간 빠른 결정을 내려야만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었다.
눈앞의 덤불이 흔들릴 때 생존 확률을 높이는 최선의 결정은 일단 도망치는 것이다. 만약 비 오는 날 동쪽으로 나섰다가 풍족한 사냥감을 얻었다면, 다음 비 오는 날에도 동쪽으로 향하는 것이 인간에게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다. 비와 사냥 성공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은 없겠지만, 동쪽으로 이동하여 좋은 사냥감을 잡았다는 사실은 자신도 모르게 사냥감의 이동 경로를 무의식적으로 추적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사냥감의 이동 경로는 '비'라는 우연 뒤에 숨은 인과론의 결정 변수였던 셈이다. 무작위 확률과 우연의 중첩이 자연의 본질이라면, 인간이 의존하는 인과론이라는 틀 안에서 사유하고 행동하는 것의 결과 역시 무차별적이어야 한다. 인과론에 따랐다고 해서 사냥이나 채집의 성과가 특별히 낮을 이유는 없다.
이러한 생존 본능은 인류의 오랜 진화사를 거치며 우리의 유전자에 깊이 각인되었다. 오늘날 사바나의 맹수에게 목숨을 잃을 걱정은 사라졌지만, 인간이 모여 사는 거대한 도시 안에는 또 다른 형태의 포식자들이 존재한다. 실제로 길거리에서 육체적 시비가 붙는 일도 다반사라 현대 사회에서도 순간적인 판단으로 위험을 모면하려는 생존 본능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관점에서 보면, 증시나 사회적 현상에 나타난 단기적인 집단 쏠림 역시 피하기 어려운 인간 본연의 본능으로 보인다. 마치 양자역학에서 빛이나 기본 입자들이 입자성과 파동성 중 어느 하나로만 규정될 수 없는 것처럼, 그 애매함 자체가 입자의 본연인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도 심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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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코스피가 보여주는 진폭은 아무리 캐너먼이 상정한 빠른 사고의 결과라 할지라도 터무니없어 보인다. 특히 다른 나라의 대표 지수들과 비교해 보면 더 그렇다.
과거에는 하루 3% 이상의 급등락이 빈번해진다는 것 자체가 시장에 뭔가 큰 일이 벌어졌음을 의미했다. 증시의 일시 매매정지 조치인 '서킷 브레이커' 역시 시장의 근간을 뒤흔드는 대형 리스크가 감지되었을 때나 드물게 발동되는 안전장치였다. 이 같은 현상이 가장 빈번했던 시기가 바로 미국발 금융위기가 엄습했던 2008년 무렵이었다.
리만 브라더스가 파산한 2008년의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사실 2006년 하반기부터 이미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당시 금융 위기의 진원지였던 미국 다우존스 그래프가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2007년에 들어서자, 다우존스 지수는 매우 가파르게 치솟았다. 그러다 상반기가 끝나는 6월을 기점으로 지수의 변동 폭이 급격히 커지기 시작했다. 2007년 10월 최고점을 돌파한 이후 급락과 반등의 패턴을 반복하다가, 2008년 4월 이후부터는 마치 이전의 상승 그래프를 뒤집어놓은 듯 폭포수처럼 고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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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만 브라더스가 파산하던 2008년 9월과 10월 한 달 동안은 하루 변동 폭이 7%를 넘는 날이 다반사였다. 결국 2009년 3월 6일 다우존스지수는 6,469포인가 되었다. 이는 2007년 10월 11일 14,198 포인트 최고점 대비 약 54% 하락한 수치다. 코스피도 마찬가지였다. 2007년 11월 1일 최고점 2,085이었는데 2008년 10월 27일 892포인트로 고점 대비 57%가 빠졌다.
이때 급격한 하락은 1980년 이후 신자유주의가 팽창하며 금융자본이 미국 워싱턴 정가를 금력으로 장악하며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당연한 결과였다. 1999년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국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벽을 완전히 허물었다. 대공황 이후 만들었던 글래스-스티걸 법은 그램-리치-블라일리법으로 대체되었다. 이때 가장 큰 수혜를 입은 회사가 씨티그룹이었다. 씨티그룹은 상업은행인 씨티코프와 보험·투자금융사인 트래블러스 그룹이 합병하며 등장한 초거대 금융기업이다.

씨티코프 합병 후 공동 회장에 취임한 샌디 와일과 존 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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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이 초거대 금융기업의 등장은 정상적인 법적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램-리치-블라일리법이 제정되기 전인 1998년, 샌디 와일의 주도로 씨티코프와 트래블러스 그룹의 합병이 먼저 있었다. 이 합병은 기본적으로 불법이었으나, 샌디 와일은 연방준비제도의 규제 유예 조항을 이용해서 시간을 벌었고, 워싱턴 정가에 엄청난 로비를 하며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합병을 적법화하는 법안 통과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1999년, 그램-리치-블라일리법이 통과되었다. 누가 봐도 이 법은 합병한 씨티그룹을 위한 것이었다. 당시 클린턴 행정부의 재무부 장관이었던 로버트 루빈은 이 법을 옹호했다. 그가 나중에 씨티그룹의 부회장이 되었던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처럼 워싱턴 정가와 결탁한 금융자본이 자산 시장의 덩치를 불리는 사이, 미국의 실물 경제는 식어가고 있었다. 이미 미국의 소비 시장을 떠받치는 제조업 산업 기반은 일본과 한국을 거쳐 중국으로 이전된 상태였다. 중산층이 무너진 상태에서 소비를 진작하는 유일한 방법은 '신용' 혹은 미래 소득의 현재가치화라고도 불리는 빚의 생활화였다.
자동차 산업으로 대표되던 미국의 제조업이 위축되면서 미국 중산층의 허리를 이루던 블루칼라 계층이 저숙련 서비스직으로 대거 이동하며 중산층에서 대거 탈락했다.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는 중산층 소비의 경제 기여도는 결정적이다. 이들의 소득이 감소하면 시장은 당연히 쪼그라든다.
영미권의 신자유주의는 가계 소득 감소로 인한 전방위적인 경제 위축을 막기 위해 '제조업 포기'와 '감세'라는 기이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들은 제조업 기반을 노동력이 값싼 해외로 이전하고, WTO와 자유무역 체제를 통해 상품과 자본 이동을 자유롭게 했다. 또한 기업에는 감세 혜택을 주어 이익을 극대화했다. 동시에 소득 대신 가계 빚을 늘려 소비를 진작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신자유주의의 처방은 사회의 건강을 해치고 공동체 윤리를 붕괴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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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 부채를 늘리는 대표적인 방법은 신용대출을 확대하거나 주택담보대출 문턱을 대폭 낮추는 것이다. 보통 두 가지 방법은 병행되지만, 시기에 따라 주도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예컨대 2002년 대한민국의 카드대란은 신용대출이 주된 동인이었고,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특히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이 주요 수단이었다. 당시 미국의 대출 심사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지나가던 잘생긴 개도 브로커의 눈에 띄면 제 명의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시장 실패라는 파도 앞에서 미국의 내로라하는 투자은행들도 모조리 파산 위기에 직면했다. 어항이 깨지는 마당에 그 안의 생물이 고래라 한들 살아남을 리 만무했다. 리먼 브라더스는 본보기였을 뿐, 미 행정부와 연방준비제도의 구제 금융 없이 자생할 수 있는 투자은행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신자유주의가 탄생시킨 금융자본의 대표주자, 씨티그룹도 정부에 손을 벌려야 했다.
이렇게 근원적 시장 실패라는 큰 위기가 터져야 코스피 같은 대표 지수가 하루 7% 진폭으로 출렁인다. AI 거품론이나 트럼프와 푸틴의 전쟁 리스크로 시장이 어수선하지만, 이런 변수들만으로는 지금 코스피의 극심한 변동성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만약 그것이 진짜 원인이라면 미국 나스닥이나 다우지수, 일본의 닛케이지수, 대만지수도 우리 시장처럼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즉, 지금은 2008년 금융위기 때처럼 '시장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지배하는 국면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왜 AI 거품론이 근원적 시장 실패의 전조가 아닌지 그 이유부터 짚어 보자.
인공지능 버블, 시장 실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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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시장에는 본래 어느 정도의 거품이 끼기 마련이다. 투자라는 것 자체가 자산 가격의 상승을 기대하는 행위이자, 하락하는 화폐 가치의 위험을 회피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가격 상승 기대에 통화량 증가(그것이 소득이든 부채든)가 맞물리면 자산 가격은 빠르게 치솟는다.
하지만 특정 대상이나 분야의 이름을 딴 거품이 시장 전체의 실패를 초래한 일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17세기 튤립 투기나 2001년의 닷컴 버블은 불나방처럼 뛰어든 투자자들의 실패였을 뿐, 시장 전체의 실패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반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1920년대 대공황과 마찬가지로 현대 석유 자본주의 체제와 시장 실패를 우려해야 했을 만큼 심각한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2008년 위기가 대공황 때처럼 세계대전 같은 극단적 파국 없이 지나갈 수 있었던 것은, 미국 실물경제에 제조업의 기여가 미미했기 때문이다.
생필품 같은 필수 재화의 공급을 전적으로 중국이 담당하고 있었기에, 미국은 기존 방식대로 달러를 찍어내는 것만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만약 2008년의 위기가 1920년대 대공황 시기의 경제 구조에서 터졌다면, 아마도 세계는 또다시 세계대전의 참화 속으로 빠져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 거품은 어디에 해당할까? 특정 분야의 국지적 거품일까, 아니면 시장 실패의 전조일까? 만약 지금의 AI 투자 열풍이 거품이라면 후자보다는 전자, 즉 '특정 대상이나 분야의 거품'에 머무를 가능성이 훨씬 높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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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 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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