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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에서 한국은 무기를 파는 나라보다 한 단계 더 나가려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NATO에 무기체계를 “함께 연구하고, 함께 생산하고, 함께 운용하는” ‘한-NATO 방위산업 파트너십 2.0’을 제안했다. 거래국이 아니라 무기의 설계와 생산, 운용체계까지 함께 짜는 방산 파트너로 올라서겠다는 선언이었다.

 

이틀 뒤 울란바토르에서는 테이블 위의 단어가 달라졌다. 핵심 광물과 통상, 물류와 한반도 평화였다. 이 대통령은 몽골을 “국익중심 실용 외교의 주요 파트너”라고 불렀고, CEPA 원칙적 타결과 2030년 교역 10억 달러, ‘한몽 관계의 황금시대’를 선언했다.

 

두 도시 사이에는 불과 이틀이 있었다. 앙카라가 힘을 연결하는 외교였다면 울란바타르는 선택지를 늘리고 신뢰를 얻는 외교였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오락가락한 것이 아니다. 안보는 동맹으로 받치고, 자원과 물류, 대북 대화는 별도의 협력망으로 넓히는것. 이번 순방은 이재명 정부가 말하는 실용외교의 윤곽을 처음으로 한 장면에 펼쳐 보였다.

 

다만 진짜 시험은 울란바토르에서 시작된다. 무기의 성능은 사거리와 명중률로 증명할 수 있다. 신뢰의 성능은 계약이 끝난 뒤 상대국에 무엇이 남았는가로만 증명된다.

 

한국 몽골 정상회담.jpg

 

 

선택이 너무 적어서 복잡한 나라

 

몽골의 외교는 선택이 많아서 복잡한 것이 아니다. 선택이 너무 적어서 복잡하다. 북쪽에는 러시아, 남쪽과 동서에는 중국이 있다. 바다로 나가려 해도 두 나라의 철도와 항만을 거쳐야 한다. 2025년에도 몽골 수출의 90% 안팎은 중국으로 향했다. 중국의 경기와 광물 수요가 흔들리면 몽골의 수출과 세수, 통화가 함께 흔들린다.

 

그래서 몽골은 중국과 러시아 밖의 협력국을 ‘제3의 이웃’이라고 부른다. 두 인접국을 버리거나 그들과 맞서는 정책은 아니다.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미국·일본·한국·유럽과의 연결을 넓혀, 어느 한 나라가 몽골의 경제적 출구와 외교적 선택을 독점하지 못하게 하는 전략이다.

 

몽골이 찾는 것은 두 이웃을 대신할 나라가 아니다. 두 이웃만이 전부가 아니게 해줄 나라다. 국경은 옮길 수 없지만 선택지는 늘릴 수 있다. ‘제3의 이웃’은 수사보다 생존에 가깝다.

 

몽골 지도.png

 

한국은 이 구도에서 꽤 독특한 위치에 있다. 몽골의 국경과 연료, 항만의 열쇠를 쥔 인접국은 아니지만 제조업과 디지털 행정, 금융과 의료, 교육을 제공할 역량이 있다. 몽골 총리도 이번 방문을 앞두고 양국 관계가 공유된 민주적 가치와 커지는 상호 신뢰 위에서 깊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정학적 압력은 상대적으로 작고, 함께 만들 수 있는 사업은 많다.

 

그 관계는 이미 정상회담장보다 생활 속에서 먼저 자라고 있다. 비즈니스포럼 행사장에는 몽골 편의점과 마트에서 팔리는 한국식품과 화장품, 의약품이 진열됐다. 이 대통령은 한국 젊은이들이 울란바토르를 동탄과 몽골을 합친 ‘몽탄’이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도 꺼냈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양국 사이의 거리가 외교문서보다 편의점 진열대에서 더 빨리 좁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필요는 한쪽에만 있지 않다. 한국에 몽골은 중국 중심 광물 조달의 위험을 분산할 공급원이고, 남북한 모두와 관계를 유지하며 동북아 안보 대화를 열어온 접촉 공간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제공하는 것은 대체가 아니라 여백이다. 몽골의 ‘제3의 이웃’과 한국 외교의 ‘제3의 공간’이 여기서 만난다.

 

 

광물은 땅속에 있고 공급망은 길 위에 있다

 

이번 방문에서 가장 손에 잡히는 성과는 CEPA 원칙적 타결과 핵심광물 협력이다. 몽골산 텅스텐 정광 27톤이 지난 6월 이미 한국에 들어왔고, 7월부터 공급을 50톤으로 늘리기로 했다. 양국은 희소금속협력위원회를 차관급에서 장관급으로 높이고, 협력 범위도 탐사와 연구에서 현지 1차 가공·분리·정제, 안정적 공급과 투자까지 넓히기로 했다.

 

CEPA 원칙적 타결도 기념사진에 맞춰 급히 적어 넣은 문구는 아니다. 협상은 시장개방 수준과 몽골 내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약 1년 7개월 동안 멈춰 있었다. 정상회담 전날에도 상품 양허 문제가 남아 있었고, 양국 장관이 하루 세 차례 직접 협상한 끝에 마지막 문턱을 넘었다. 아직 기술적 협의와 정식 서명, 국내 절차와 발효가 남아 있지만 멈춰 있던 협상을 정상외교가 움직였다는 의미는 분명하다.

 

몽골 광물 자원.jpg

출처 - 연합뉴스 (링크)

 

광물은 땅에서 캐는 순간 공급망이 되지 않는다. 매장량과 품위를 확인하고 채굴권과 투자조건을 정한 뒤, 선광과 가공, 육상운송과 국경통관, 항만과 정제시설, 장기구매계약까지 이어져야 한다. 산업통상부도 한국 기업들이 몽골 진출의 장애물로 정보 부족과 물류·규제 문제를 지적해왔다고 밝혔다. 정부가 말하는 ‘안정적 공급망’은 이미 얻은 결과보다 앞으로 이어 붙여야 할 경로에 가깝다.

 

몽골에는 바다가 없다. 광물이 몽골산이어도 한국으로 오려면 상당 부분 중국이나 러시아의 철도와 항만을 지나야 한다. 산지가 몽골이어도 길과 정제시설이 중국에 묶여 있다면 공급망의 주도권은 길을 쥔 쪽에 남는다.

 

산지 다변화와 공급망 다변화는 같은 말이 아니다. 몽골은 중국을 지워버릴 대체 공급처가 아니라, 공급원을 추가해 조달 중단의 위험과 가격 협상력을 분산하는 축이다. ‘탈중국’이라는 요란한 구호보다 위험 분산이라는 차분한 언어가 이번 성과의 실제 크기에 가깝다.

 

몽골 자원 운송루트.jpg

출처 - KDB(산업은행)대우증권 몽골 현지법인

 

CEPA가 발효된 뒤 가장 먼저 달라질 풍경도 광산보다 편의점 진열대일 가능성이 크다. 2025년 한국의 대몽골 수출은 약 6억 6천만 달러였지만 수입은 약 3천만 달러에 머물렀다. 산업부는 이미 900개에 가까운 한국계 편의점과 대형마트를 발판으로 화장품과 라면, 조미김 등의 수출을 늘리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한국수출입은행도 이번 방문에 맞춰 한국 소비재 구매를 지원하는 3천만 달러 규모의 금융협력을 체결했다.

 

반면 광산 개발과 현지 가공시설, 철도와 물류망, 장기투자는 더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 몽골 현지 영문지 UB Post가 CEPA 협상에서 강조한 것도 한국 제품을 더 수입하는 문제가 아니라 몽골 수출의 다변화와 농축산물의 한국 시장 진입이었다. 한국의 소비재만 더 빠르게 팔리고 몽골은 원료만 내보낸다면 ‘황금시대’라는 이름이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UB Post CEPA.png

기사 원문 - (링크)

 

2030년 교역 10억 달러는 달성 가능한 목표일 수 있다. 하지만 총액은 관계의 방향을 말해주지 않는다. 한국산 제품의 판매만 늘어나는가, 몽골에도 가공능력과 기술, 고용과 세수가 쌓이는가. 공급망의 완성도는 광물이 한국에 도착하는 길 뿐 아니라 그 길을 따라 몽골에 무엇이 축적되는가로도 측정해야 한다.

 

 

광산은 움직이는데 몽골의 몫은 언제 오는가

 

이 대통령이 울란바토르에 도착하기 약 3주 전, 몽골 남부의 황량한 도로 위에서 구리 트럭이 멈춰 섰다. 오유톨고이 광산에서 중국 국경으로 향하는 운송로를 시위대가 막은 것. AP가 전한 현장에는 ‘Stop Rio Tinto’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시위대가 요구한 것은 광산 폐쇄가 아니었다. 몽골 국민에게 돌아갈 몫을 늘리라는 것이었다.

 

작은 무리가 도로 하나를 막자 세계적 구리광산의 수출이 즉시 멈췄다. 오유톨고이는 몽골 전체 세수의 약 9%를 부담한다. 회사측은 봉쇄가 일주일 이어지면 정부가 잃는 세금만 350억 투그릭, 약 1천300만 달러에 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시위대가 광산을 막은 것은 광산이 필요 없어서가 아니다. 국가가 광산에 너무 깊이 의존하는데도 시민의 몫은 너무 멀리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Rio Tinto mine in Mongolia.png

기사 원문 - AP (링크)

 

오유톨고이의 지분은 리오틴토(다국적 광산 기업) 66%, 몽골 정부 34%다. 그러나 비용 증가와 주주대출 이자, 관리수수료가 쌓이면서 몽골의 배당은 당초 기대됐던 2017년에서 2030년대 후반까지 밀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몽골 정부는 올해 3월 계약조건이 “불공정하다”며 재협상을 요구했고, 6월 말 이자와 관리수수료 부담을 낮추는 합의가 이뤄졌다. 광산은 이미 구리를 냈다. 몽골의 배당은 아직 조건문이다.

 

현지의 시선은 정부의 승리 선언보다 더 신중하다. UB Post는 새 합의가 분명한 진전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실제 이자 산식과 미해결 세금분쟁, 몽골이 언제 얼마나 배당받을 수 있는지에는 여전히 핵심 질문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계약서의 숫자가 바뀌는 것과 시민이 변화를 체감하는 것은 다른 시간표 위에서 움직인다.

 

비용은 회계장부 밖에도 남는다. 남고비의 목축민들은 오유톨고이 개발 과정에서 물과 초지, 이동경로와 생계가 영향을 받았다며 세계은행그룹의 분쟁조정기구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후 회사와 주민, 지방정부가 참여하는 협의체가 만들어졌지만, 자원개발이 지역사회의 생활세계와 충돌한다는 사실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한국도 이 구조의 바깥에 저절로 서는 것은 아니다. 광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정제와 제조, 금융과 이윤은 한국에 쌓이는데 환경 비용과 지역갈등, 가격 하락의 위험은 몽골에 남는다면 사업자의 국적만 바뀐다. 과거와 다른 국기를 달고 오래된 자원개발의 공식을 반복하는 셈이다.

 

근대 제국의 자원경제는 주변부에서 원료와 노동을 가져오고, 가공과 기술, 금융과 이윤은 중심부에 남기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자원은 이동했지만 부가가치는 함께 이동하지 않았다. 그 역사는 오늘날 광산을 점령하는 군대보다 투자계약과 공급망의 형태로 재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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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조선총독부는 백두대간 일대에서 금강소나무 원시림을 체계적으로 수탈했다

출처 - 녹색연합 (링크)

 

한국은 식민제국의 중심에서 출발한 선진국이 아니다. 식민지배와 전쟁, 빈곤을 겪었고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자본과 기술을 제공하는 나라로 이동했다. 이 이력은 몽골과 같은 국가에 기존 선진국과 다른 파트너가 될 가능성을 준다.

 

그러나 다른 과거는 가능성을 줄 뿐, 다른 현재를 보장하지 않는다. 식민 지배를 당한 역사가 해외 자원개발의 도덕적 면허가 될 수는 없다. 한국이 몽골에서 어떤 선진국으로 기억될지는 과거의 피해가 아니라 현재의 계약이 결정한다.

 

이 대통령은 비즈니스포럼에서 한국 유통기업이 기술과 경험을 제공하고 몽골 기업이 직접 투자·운영하는 ‘몽탄’을 “상호 호혜적협력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재 유통에서 출발한 이 원칙을 광물로 옮기려면 훨씬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 현지 가공과 기술이전, 몽골 인력의 양성, 안정적인 지역고용, 환경복원, 투명한 계약과 공정한 수익배분이다.

 

제국은 자원을 가져가고 비용을 남겼다. 새로운 선진국은 이익을 나누고 신뢰를 남겨야 한다.

 

이 국가 이미지는 광물 밖에서도 작동한다. 몽골은 북한을 압박해 협상장으로 끌어낼 경제적·군사적 지렛대는 크지 않다. 대신 남북한 모두와 외교 관계를 유지하며 2014년부터 ‘울란바토르 대화’를 열어왔다.

 

올해 6월 열린 11번째 회의에는 한국 통일부 장관이 참석했고, 후렐수흐 대통령은 한국 정부의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에 대한 지지를 밝혔다. 몽골의 힘은 대화를 강제하는 데 있지 않다. 대화가 시작될 수 있는 방을 마련하는 데 있다.

 

한국이 몽골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외교자산도 결국 평판이다. 자본과 기술을 가졌지만 상대국의 선택권을 줄이지 않는 나라, 자원을 원하지만 자원 뒤의 사회까지 함께 보는 나라라는 평판이다. 그것이 몽골에서 실체를 얻으면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 다른 자원보유국에서도 한국 외교의 문을 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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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 (링크)

 

 

광물을 가져간 뒤 무엇이 남는가

 

이번 방문은 의미 있는 출발이다. 멈춰 있던 CEPA 협상을 움직였고, 텅스텐 공급과 희소금속 협력을 제도화했으며, 자원·통상·대북 대화를 하나의 외교 공간에서 연결했다. 다만 ‘황금시대’는 공동선언에 적는다고 시작되는 시대가 아니다.

 

CEPA가 정식 서명과 발효로 이어지는가. 몽골산 광물이 가공·운송·정제와 장기구매계약으로 연결되는가. 그 과정에서 몽골에 기술과 일자리, 세수와 산업역량이 남는가. 울란바토르가 실제 한반도 대화의 장소로 작동하는가. 정상외교의 성과는 MOU 숫자가 아니라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판정될 것이다.

 

광물은 계약으로 얻을 수 있다. 이웃은 결과로 얻는다.

 

몽골 방문의 진짜 성과는 얼마나 많은 광물을 가져오느냐가 아니다. 광물을 가져간 뒤에도 몽골이 한국을 이웃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자리에 무엇을 남겼는가에 있다.

 

 

추신.

 

이재명 정부가 어떤 그림으로 외교하고 있는지,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려 하는지 궁금한 독자께는 본지의 <이재명 정부 정상회담 시리즈> 일독을 권한다.

 

 

이재명 정부 정상회담 연재물

    

1. 한미정상회담을 다룬 유럽 언론 :

이재명이 깔아준 판에서 놀다

 

2. 외신이 평가한 한중정상회담 :

그들이 주목한 점은 따로 있다

 
 
 

5. 한-브 정상회담의 숨겨진 의미 :

브라질은 강대국으로 가는 입구다

 

6. 왜 한국-필리핀 정상의 말이 달랐나 :

이재명의 아세안 외교가 다른 이유

 

7. 마크롱이 한·일을 방문한 속셈 :

한국이 프랑스에 중요국이 된 이유

 
 

​​​9. 한국·인도 정상회담, 대통령의 한 수 :

임기 초 인도 방문, 숨은 이유가 있다

 

10. 브로맨스를 보여준, 한국-베트남 정상회담 :

두 정상이 자주 만나는 이유

 

11. ‘한일 정상회담’에서 밝혀진 일본의 본심 :

한국을 이용해 미국에 구애하다 

 

12. 유럽 순방에서 벨기에를 첫 회담 국가로 택한 이유 :

규칙을 만드는 국가가 되어가는 한국

 

13. 유럽 순방의 숨겨진 의미 :

확고한 ‘종합 선진국’이 되다

14. 대통령이 로마와 에비앙에서 한 일 :

국제 사회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다

15. 나토에서 기술보다 ‘신뢰’를 강조한 이유 :

국익 극대화를 위한 대통령의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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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꾸물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임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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