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세계의 힘을 현실로 가져오다
지금까지 <미드소마 대한민국> 연재물에서 다루었던 사이비 종교는 비교적 이해하기 쉬웠다. 대부분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시작된 단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태민의 영세교는 처음부터 달랐다. 영세교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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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영세교는 어떤 집단이길래,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박근혜가 엮여 있는 거지?"
영세교가 어떤 종교인지는 짧게 정의하거나 답하기 쉽지 않다. 영세교는 여러 종교를 한데 모아 새롭게 조립한 종교에 가깝기 때문이다. 종교학에서는 혼합주의(Syncretism)라고 부른다. 서로 다른 종교나 신앙 체계에 교리와 상징, 의식과 세계관을 가져와 하나의 새로운 종교처럼 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영세교는 바로 이러한 혼합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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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부터 독특하다. 한자어인 영세교(靈世敎)는 영혼과 신령한 세계를 의미하는 '영(靈)',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 세계를 뜻하는 '세(世)'자를 쓴다.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영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연결하는 종교'라는 의미를 갖는다.
초기에는 '영세계(靈世界)'라는 이름을 사용하다가 이후 영세교라는 명칭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단체의 명칭만으로도 추구했던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영세교는 사후세계만 이야기하는 종교도 아니었고, 현실 문제만 다루는 종교도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의 힘을 현실 속으로 가져와 인간의 삶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핵심적인 주장 중 하나였다.
그런데, 다른 사이비 종교 단체들과 다른 독특한 점이 또 있다. 교리가 뭔지 도통 알 길이 없다. 보통 특정 종교단체를 이해하려면 가장 먼저 교리나 경전을 살펴본다. 기독교나 기독교에 뿌리를 둔 사이비는 절대다수가 성경과 기독교 교리 기반으로 한다. 불교에도 불경이 있고, 이슬람도 코란과 그에 따른 전통 교리가 있다. 통일교나 신천지 JMS도 마찬가지다. 모두 자기들 만의 교리 체계가 존재한다.
하지만, 영세교는 다르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자료를 다 살펴봐도 영세교에는 체계적으로 정리된 교리서나 경전이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신문 기사와 각종 홍보물,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그 사상을 부분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을 뿐이다. 매우 중요한 특징이다. 결국 영세교는 '교리' 중심의 종교가 아닌 '교주' 중심의 종교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믿어야 했던 것은 경전이나 교리에 근거를 둔 종교가 아니라 최태민이라는 인물의 영적 권위였다.

1975년, 대한구국십자군 화랑 수련회 연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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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민이 창시한 영세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쳤을까. 남아 있는 자료를 종합해 보면 이렇다. 기독교와 불교, 천도교는 서로 대립하는 종교가 아니며 각각이 진리를 부분적으로 담고 있다. 그리고 최태민 자신이 그 진리를 하나로 통합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령과 불교의 깨달음, 천도교의 인내천 사상을 실천하고자 했다. 여기에 민간신앙과 무속에서 말하는 영적 능력까지 가져와 하나의 체계처럼 설명했다. 그래서 영세교에는 기독교인도 낯설지 않은 용어가 있고, 불교 신자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표현이 있다. 무속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영적 세계가 등장한다. 다양한 종교를 하나의 언어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영적인 힘으로 현실을 바꾼다. 영세교는 사람들에게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질병을 낫게 하고, 가정 문제를 해결하며, 불안을 없애고, 인생의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돕는다는 메시지를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교리보다 체험을 앞세웠다. 직접 경험하게 하여 믿게 만들겠다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종국적으로 이들이 믿는 대상은 하나님이 아닌 최태민. 영세교의 언어와 상징은 한 사람을 향해 모였다.
최태민은 여러 종교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요소를 가져와 자기 권위를 중심으로 재조립했다. 이 독특한 구조는, 훗날 최태민이 대한민국 권력의 중심부에 근접하도록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낳는다.
영세교 창시자, 최태민
영세교를 이해하려면 먼저 최태민이라는 사람을 알아야 한다. 최태민은 출생 연도부터 자료마다 다르게 기록된다. 널리 알려진 이력에 따르면, 1912년 황해도 출신이라는 기록도 있고, 1918년으로 정리된 자료도 있다. 1988년 무렵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른바 '최태민 보고서'에는 그를 1912년생(당시 76세)으로 기재한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그의 출생 연도조차 확정된 사실로 단정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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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인 인적 사항이 불분명한 이유는 단지 기록이 오래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생전 여러 이름과 직함, 사회적 정체성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최도원, 최상훈, 최봉수 등의 이름이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정확히 이름이 몇 개였는지에 대해서도 보도마다 차이가 있지만, 그가 반복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사실 자체는 여러 자료에서 공통으로 나타난다. 혼인 관계 역시 복잡했다고 전해진다. 이 역시 구체적인 결혼 횟수와 가족 관계가 자료마다 다르다.
여러 이름을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 한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다. 해방과 전쟁, 월남과 사회적 혼란을 겪은 세대 가운데에는 호적과 이름, 직업 이력이 명확하지 않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최태민이 앞서 언급한 경우와 다른 이유는, 최태민의 이름은 그의 직업, 종교적 정체성의 변화와 함께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력을 정리한 문건에는 일제강점기 경찰 경력, 해방 이후의 공직 또는 경찰 관련 활동, 사업과 종교 활동이 뒤섞여 등장한다. 불교와 기독교를 오가며 승려, 장로, 목사 같은 종교적 직함을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다만, 이러한 세부 경력 중에는 충분히 교차 검증되지 않은 부분도 있으므로, 모두 확정된 전기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일반적으로 교주는 자신이 세운 종교를 확장하고 신도를 늘리며 독자적인 공동체를 구축하려 한다. 교단의 조직과 재산, 교리와 의례를 발전시키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최태민의 활동에서 영세교가 대규모 교단으로 성장한 흔적은 뚜렷하지 않다. 통일교의 원리 강론이나 신천지의 성경 해석 체계처럼 후대까지 전승된 체계적인 교리서도 확인되지 않는다. 전국적인 예배 조직이나 장기간 지속된 대규모 신도 공동체 역시 분명하게 남아 있지 않다. 물론, 영세교는 불교의 깨침, 기독교의 성령강림, 천도교의 인내천을 결합한 '영혼합일법'을 내세웠고, 최태민은 자신을 특별한 사명을 받은 '칙사'로 표현했다. 그러나 이는 영세교의 교리라기보다 최태민의 특별한 능력을 강조한 것에 가깝다.
신의 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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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민은 자신을 특별한 사명을 받은 '칙사'로 표현했다. '칙사'는 본래 임금이나 절대적 권위자의 명령을 전달하는 사신을 뜻한다. 최태민이 자신을 칙사로 불렀다면, 그는 단순한 목회자나 수행자가 아니라 인간에게 초월적 존재의 뜻을 전달하는 특별한 대리인을 자처한 셈이다. 병을 고치고,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며, 여러 종교의 가르침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특별한 인물이라는 식의 선전이 중심에 있었다.
영세교와 같은 단체가 가진 구조적 특징은 신도들로 하여금 진리를 판단하기 어렵게 한다. 최태민이 하는 말이 곧 영적 세계의 뜻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종교 창시자인 동시에 교리 해설자였고, 영적 능력의 증거였으며 초월적 세계와 인간을 연결하는 통로였다. 종교를 전하고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 자신이 곧 종교적 사건이 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겉으로는 종교 간의 화합을 추구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각 종교의 핵심 사상과 역사적 맥락을 충실하게 이해하고 대화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전통에서 매력적인 개념만을 골라낸 뒤, 그것을 자신의 영적 능력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결합했다. 모든 종교가 내 안에서 완성된다고 주장한 최태민이 결국 시도한 것은 종교의 사유화다.
최태민과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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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를 만나기 전까지, 최태민은 그저 그런 사이비 종교단체의 교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최태민의 인생을 바꾼 사건은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가 피살된 뒤 발생했다. 당시 박근혜는 스물두 살이었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박근혜는 영부인 역할을 대신하며 공식 행사에 참석하기 시작했고, 개인적으로 극심한 상실과 고립을 겪었다. 이 무렵 최태민이 박근혜에게 편지를 보낸다.
최태민은 편지에서 육영수 여사가 자기 꿈에 나타났으며, 자신이 박근혜를 도와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편지 원본 전체가 공적으로 검증된 자료로서 널리 공개된 것은 아니며, 세부적인 표현은 관계자 증언과 후대 보도에 의존한다. 따라서 항간에 떠도는 소문, 가령 최태민이 "육영수의 영혼을 직접 불러냈다"라는 식의 표현을 사실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최태민이 육영수 여사의 죽음과 영적 메시지를 매개로 박근혜에게 접근했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육영수 여사 사후 얼마 지나지 않아 최태민은 박근혜와 가까워졌다. 두 사람은 함께 대한구국선교단이라는 조직을 세웠다. 1975년 최태민은 대한구국선교단을 조직했고, 박근혜는 명예총재를 맡았다. 이 단체는 종교적 '구국' 운동과 반공, 도덕재무장, 사회봉사를 결합한 조직이었다. 영세교처럼 많은 사이비 종교단체가 1960~70년대 경제성장 시절에 반공사상을 등에 업고 급격히 성장했다.
이후 구국여성봉사단(1976)에서 새마음봉사단(1979)으로 조직의 명칭이 변화하거나 확장되면서 박근혜는 명예총재 또는 총재로 활동했다. 최태민은 그녀의 옆에서 실무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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