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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idol). 사전적으로는 '우상'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단어다.


원천을 따져보면 종교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idol'이란 단어를 얘기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얘기 중 하나가 바로 '우상숭배'라는 단어인데, 사실 이 단어는 고대 사회부터 쭉 사용되어 온 단어이기도 하다. 예-전에, 그러니까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한 번쯤 들어봤던 '샤머니즘'이나 '애니미즘' 같은 단어가 이 '우상숭배(idolatry)'와 일맥상통하는 단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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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의 우상.jpg

(기사 원문 - 오마이뉴스)


조금 더 넘어가면 현대의 종교에서도 이런 단어를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는데, 기독교 십계명 중 2번째 계명인 '우상을 섬기지 말라' 역시 위에서 얘기한 우상과 일맥상통하는 단어라 할 수 있다. 즉, 다시 말해 종교에서의 우상이란 어떤 물질이나 현상에 초자연적인 힘이 주어졌다고 있다고 믿은 사람들이 이를 숭배하는 일을 통칭했다 할 수 있겠다.


이런 우상의 개념은, 언젠가부터 대중문화에도 전파되기 시작한다. 물론 대중문화 소비자들은 숭배의 대상에게 초능력이나 초자연적 능력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소녀시대에게 기도한다고 해서 가뭄이 해갈될 것이라 믿는 바보는 없지 않은가. 어쨌든, 현대 대중문화로 넘어오면서 우상은 대중들에게 하나의 숭배 대상으로 여전히 자리 잡게 되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idol'이란 단어가 명시적으로 대중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가. 가장 강력하게 얘기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1940년대 프랭크 시나트라의 활동상이다. 1943년, 프랭크 시나트라는 <All Or Nothing At All>이라는 앨범을 미국에 발표하게 된다. 이 앨범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게 되고, 프랭크 시나트라를 순식간에 팝의 아이콘으로 띄우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앨범이 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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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k Sinatra


그러나 여기에는 약간의 비화가 있는데, <All Or Nothing At All>의 경우 이미 1939년 프랭크 시나트라가 이전에 속해있던 <해리 제임스 밴드>의 이름으로 발매된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앨범은 어떠한 주목도 받지 못한 채 조용히 묻혀버렸고, 이후 프랭크 시나트라는 몇 번의 스카우트와 이적을 거쳐 1943년 컬럼비아 레코드사와 계약을 하게 된다. 그러나 1943년 음악가 노조의 파업으로 인해 시나트라와 컬럼비아 사는 새로운 노래를 녹음하지 못하게 되고,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대안이 바로 1939년 조용히 묻혀갔던 <All Or Nothing At All> 앨범을 재발매한다는 것이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반신반의하며 내놓은 이 앨범은 시대적 상황과 경쟁자 부재라는 호재를 만나 빌보드 차트 2위라는 기록을 만들어내게 된다. 프랭크 시나트라는 이후 무대마다 수많은 여성팬을 몰고 다녔고, '팬들이 무대에서 공연하는 가수에게 환호를 보내다 졸도하는 현상'을 의미하는 '팝 히스테리' 역시 이때 처음 생겨났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프랭크 시나트라는, 1940년대를 대표하는 팝 음악의 아이콘으로 등극하게 된다.


주목해야 할 건, 이때 프랭크 시나트라에 붙여졌던 호칭이다. 이후 그에게는 10대들의 우상이란 의미의 'Bobby Six's idol'이란 호칭이 붙여졌는데, idol이라는 호칭은 이때부터 대중문화의 영역으로 본격적 진입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다면 세월을 건너뛰어 현대 문화 산업에서 'idol'이란 단어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각 국가마다 가지는 사회별 보편적 'idol'의 의미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본질은 동일하다. 이러한 idol의 핵심을 꿰뚫은 건, 1980년에 나온 영화 <idol maker>였다.


재능은 있으나 외모는 없는, 음악적 능력은 갖고 있으나 상품적 가치는 갖지 못한 주인공이 자신과는 대척적 자산을 보유한 청년에게 건네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제안은 현실 그 자체다. "넌 잘생겼어. 잡지에 나오는 남자애들처럼 말이야. 난 널 그렇게 만들어줄 수 있어. 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말이지." 부와 명예를 거부할 파우스트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 이후의 전개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아이돌 메이킹'의 교과서다. 노래와 춤은 물론이고, 매너와 에티켓까지 주입하여 완전히 새로운 페르소나로 거듭나도록 만드는 일. 그것은 작품의 창작과정이라기보다는 상품의 제작공정이었고, 예술적 투합이라기보다는 상업적 담합이었다. 그 속에서 직능별 전문가들의 역할이 다시금 중요해졌다.


-나무위키_아이돌 항목에서 발췌




대중문화의 부흥기, 현대 산업에서 가장 큰 축을 담당하는 아이돌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일정 수준의 외모와 재능을 가진 이들을 모아 산업적 측면에서 이들을 훈련시켜 문화적 가치를 형성한다. 러프하게 보면, 이것이 국가를 초월해 '아이돌 산업'이 가진 본질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부분은, 바로 '매너와 에티켓'이다.


영화 <idolmaker>에서 주인공은 자신과 대척적 자산을 보유한 청년에게 노래와 춤, 그리고 매너와 에티켓을 주입하여 하나의 idol로 성장시키게 된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idol은, 이 4가지 영역 이외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게 된다. 바로 '아이돌로서의 도의적 가치'라는 부분이다.


사실 미디어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전까지는 이러한 '아이돌로서의 도의적 가치'라는 부분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어찌 됐든 아이돌은 무대에서만 아이돌이면 되는 것이었고, 그들의 사생활이 들춰질 어떠한 수단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간혹 입소문을 통해 '저 가수가 이 배우랑 Blah Blah'라는 얘기가 떠돌지언정, 그것이 확대되는 데에는 짧으면 몇 주, 길면 몇 달 가까이가 걸렸고, 그사이 대중의 관심은 재빨리 식어버리는 경우가 상당수였다.


이러한 현상이 뒤바뀌기 시작한 것은 소위 말하는 '뉴미디어'의 탄생이었다. 더 이상 대중은 연예인을 만나기 위해 공연장이나 무대로 직접 나갈 필요가 없었다. 집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대중은 24시간 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브라운관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새로운 혁명의 바람이 연예계에도 몰아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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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미국의 사진

(이미지 출처 - National Archive)


이는 단순한 전송 매체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뉴미디어 태동 이전의 아이돌은, 오직 무대 근처에서만 그들의 매너와 에티켓을 대중에게 과시하면 되었다. 그러나 뉴미디어의 태동 이후, 그들은 무대가 아닌 카메라가 비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아이돌로서의 그들의 모습을 유지해야 하는 숙명에 놓이게 되었다.


이는 단순히 '스타의 사생활'을 포기한다는 얘기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애초 뉴미디어가 본격적으로 태동하기 전이라면, 그들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사랑과 연애, 기타의 것들에 대해서도 온전히 그들의 소유로 남길 수 있었다. 대중들이 쉽사리 그들의 사생활에 접근할 수 없었던 탓에 자연스레 '신비주의'가 이뤄진 덕이다. 그러나 뉴미디어가 발생한 이후, 이러한 신비주의는 서서히 무너지게 되었다. 더불어 대중들은, 자신의 스타에게 그들의 사생활을 능동적으로 오픈할 것을 주장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신비주의의 몰락'이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 역시 피해갈 수 없었다. 90년대 중반 H.O.T.의 등장은, 한국형 아이돌 '상품'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았다. 이 H.O.T.에게서는 몇 가지 놀라운 점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사생활의 공개'라는 부분이었다. 기존의 한국 시장에 존재하던 '아이돌 가수'라 불리던 이들과는 다르게, H.O.T.는 숙소부터 시작, 자신들을 완벽하게 공개하며 대중들을 마주했다. TV만 틀면, 우리는 H.O.T.의 숙소 내부 모습부터 그들이 평소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낱낱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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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놀라웠지만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애초부터 H.O.T.는 디테일 하나하나가 완벽하게 기획된 그룹이었기 때문이다. 미소년 다섯 명을 모아 숙소생활을 시키며, 일상생활에서 팬들을 마주할 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조차 완벽하게 훈련된 그들이다. 대중들이 요구하기 전에 먼저 그들의 사생활을 오픈할 수 있었던 동력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고도 볼 수 있다. 당연히 그들에겐 '예상 못 한 상황'에 대한 충돌률이 적었으며, 이렇게 H.O.T는 초대형 팬덤을 거느린 '한국형 슈퍼 아이돌'의 1세대로서 가장 임팩트있는 정착을 할 수 있었다. 이후 개발되고 발전된 아이돌들 역시 이러한 원칙을 충실하게 따르며, '팬들과의 소통'이라는 명목 하에 그들의 생활을 자발적으로 오픈하는 문화 역시 서서히 형성되어 갔다.


재미있는 건 기획자들이 이러한 팬덤이 바라는 바를 설계하는 방식이다. 그들이 아이돌에게 주입하는 가치 중 가장 소중한 가치는, 바로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로서의 가치'다. 즉, 수많은 팬덤의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를 자처함으로써 그들의 판타지를 만족시켜주고, 닿을 수 있을 듯하나 닿을 수 없는 간극을 유지하며 '그들이 숭배할 수 있는 우상'으로서의 가치를 아이돌에게 형성시켜 나간 것이다.


당연히, 여기에는 높은 도의적 가치가 요구되기 마련이다. 그들이 성공적으로 '아이돌 상품'으로써의 가치를 가지기 위해서는, 꽤 높은 도덕적/도의적 기준을 만족해야만 한다. 기본적인 윤리는 물론이며, 개인적 활동이나 연애사업까지 회사의 높은 컨트롤 속에 존재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이런 윤리나 도의는, 단순한 요구를 넘어 일종의 '터부'로써 아이돌들에게 기능하고 있었다.


이러한 터부가 무서운 부분은, 바로 '기획사 위주의 연예계'에서 다양한 캐릭터의 아이돌들이 나오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특히 보이그룹보다 걸그룹에게 조금 더 강하게 적용되는 잣대이기도 했다. 비록 활동 컨셉은 셀지언정, 무대 위가 아닌 그들의 모습이 방송에 나올 때 그들은 언제나 팬들밖에 모르는 예쁜 인형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방송에 나와서는 '저희 회사는 몇 년 동안 연애를 못하게 해요'라며 투덜거리는 정도만이 그들에게 허용된 자유의 전부였다. 만일 그 선을 넘어 터부를 건드리는 순간,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보복을 당해야만 했다. 회사로부터 탈퇴를 요구받거나, 팬들로부터 지지가 철회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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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식이다.

(이미지 출처 - KBS '나를 돌아봐' 방송 화면 갈무리)


설리에 관련된 문제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봐야 한다. 설리가 f(x)를 탈퇴한 이후, 설리의 행보는 그야말로 타인이 보기에는 '기행'처럼 보일 정도라 할 수 있다. 논란이 되는 사진과 영상들을 끊임없이 올리며, 설리의 인스타그램 댓글은 언제나 갑론을박의 현장이 되고 있다.


최근 올라온 사진과 영상 역시 끊임없는 논란을 형성하는 중이다. 먼저 첫 번째 영상. 생크림을 쭉 짜서 입에 넣는 설리의 모습으로 화제가 된 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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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설리 인스타그램에서 갈무리


의견 역시 완벽하게 갈린다. 섹슈얼 코드를 넣었다는 입장과, 단순한 일상 영상이라는 것. 뭐,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필자 역시 이 영상에 대해서 명확하게 코멘트를 날릴 수는 없다. 혹자의 말 그대로 '설리가 생크림을 진짜 진짜 좋아해요'라 얘기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연예계가 뒤집혔던 건 그 이후에 올린 사진이다. 설리는 이미 2014년 부인 끝에 '다이나믹 듀오'의 최자와 연애 사실을 밝힌 상황. 이런 상황에서 설리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최자와 함께 침대에 누워 찍은 사진을 공개하게 된다. 이 사진에 대해, 누리꾼들은 또다시 설리의 인스타그램에 강도 높은 비판의 댓글을 달고 있는 상황.


생각해보자.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만일 위에 올렸던 영상과 사진이 아이돌이 아닌 일반인의 SNS에 올라갔다 치자. 일각의 말대로, 그것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이 수위가 너무나도 세서 저건 반드시 차단과 신고를 눌러야 하는 사진과 영상인가? 섹슈얼 코드를 차용했다고 치더라도, 저 영상이 사회의 일반적 윤리에 빗대어볼 때 너무나도 어긋나서 두고 볼 수가 없는 영상이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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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위와 같음


설리는 여전히 아이돌이다. f(x)는 탈퇴했지만 여전히 그녀에게는 수많은 팬덤이 있으며, 일거수일투적을 감시하는 기자들이 있다. 그러나 설리는 아이돌이기 이전에 하나의 개인이다. 거기다 연애사까지 공개한 입장에서, 사회적 윤리를 넘지 않는 선이라면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은 하나의 개인적 선택일 뿐, 그 선택을 누군가가 비판하거나 비난할 정당한 이유는 없다. 올라온 영상과 사진 역시, 이러한 개인의 선택에 따른 표현일 뿐이다.


사실 내가 설리를 응원하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사실 그동안, 한국 대중문화계에는 사생활적으로 '악동'이라 칭할만한 캐릭터가 없었다. 간혹 '일탈'을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논란이 불거진 직후 기획사와의 빠르고 정확한 협의를 통해 '사과'하거나 이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그러나 설리는 다르다. 설리는 사회가 규정한 선의 근처로 서서히 다가가면서도, 일련의 논란들에 대해 전혀 응답하지 않거나 오히려 이를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실 아이돌 역시 문화적으로 첨예하게 기획된 상품이기 이전에 하나의 사람이다. 그 '아이돌'이기에 터부시되는 수많은 장난들을, 설리는 아슬아슬하게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이런 캐릭터가 한 명쯤은 나와줘야 한다. 윤리적인 선 안에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거침없이 표현하는 아이돌. 착할 필요도 없고, 때로는 섹스 어필도 허용되면 더 좋다. 왜 사람들은 '섹시 걸그룹'과 '섹시 안무'에는 환호하면서 아이돌 스스로의 '섹스 어필'에 대해서는 분노하는가.


또한 어쩌면, 이것이 그동안 지나치게 경직되어있던 아이돌과 연예인들의 스스로에 대한 행동반경 역시 조금은 더 늘릴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역시 문득 든다. 아이돌이란 한계에 막혀, 팬덤이라는 눈치를 보며 그들이 표현할 수 없었던 것들을, 조금 더 많이 표현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런 것들을 인정할 수 있을 때, 문화도 사회도 조금 더 다양한 색깔을 가질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설리가 악동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보다 더 절실히 악동이 되어서, 'idol'이란 굴레를 스스로 박차고 나간 하나의 개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그런 걸 받아들여야 할 때다.





성게매니아


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