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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선교단 명예총재 박근혜와 최태민(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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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교 교주 최태민은 박근혜 개인의 영적 상담자에만 머물지 않았다. 구국, 반공, 새마음과 같은 네이밍을 사용해 공적 조직을 만들기 시작했다. 영적 치유를 말하던 자가 국민정신을 계도하겠다 나섰고, 개인의 구원을 말하던 사람이 구국을 주장했다. 종교의 언어가 국가의 언어로 바뀐 것이다. 박근혜라는 이름은 이러한 조직에 권위를 부여했다.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권력자의 도움으로 인사 청탁이 이뤄지는 일이 흔했다. 박근혜는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의 딸로서 최태민에게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었다. 그 권위를 바탕으로 최태민은 정부 기관과 기업, 학교와 사회단체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는 박근혜라는 통로를 이용해 자신의 영적 권위를 사회적 권력으로 치환했다.

 

'선교단'이 주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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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기독신보에 실린 공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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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구국선교단이라는 명칭은 최태민이라는 사람의 사상과 특징을 잘 보여준다. 선교단은 기독교에서 사용되는 표현이지만, 최태민의 영세교에 선교단이라는 명칭을 가져다 붙였다. 당시 성장세가 큰 기독교의 영향력을 업고 싶었던 것이다. 대외 활동을 할 때에도 기독교적이고 애국적인 명칭을 사용했다. 특히 박정희 정권은 반공을 국가의 핵심 정체성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구국과 선교의 결합은 정치적으로 효과적이었다. 사람들이 보기에 최태민의 선교단은 일반 기독교 단체와 다를 바 없었다. 영리한 최태민은 자신의 혼합 종교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시대가 받아들이기 쉬운 언어를 선택했다.

 

최태민은 영세교의 칙사, 박근혜의 영적 조언자, 공적인 공간에서는 목사이자 구국 운동가, 기업과 관료 앞에서는 대통령 영애가 총재로 있는 조직의 책임자였다. 다양한 정체성이 쌓아 올린 그의 권위는 영세교가 사회운동단체로 탈바꿈하면서 더욱 커져간다. 지금이야 어느정도인지 가늠이 잘 안되지만, 박정희 정권 시절 최태민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최태민의 딸 최순실에게 엄청난 재산이 있다는 소문도 괜히 도는 것이 아니다.

 

구국선교단은 이후 구국봉사단, 구국여성봉사단, 새마음봉사단, 새마음갖기운동본부 등으로 이어진다. 새마음운동은 충효, 예절, 봉사, 애국심을 강조하며 국가와 사회를 위해 국민의 마음을 새롭게 하자는 도덕 운동이었다. 이런 류의  조직은 단순한 민간 봉사단체로 보기 어렵다. 대통령의 딸 박근혜가 조직의 상징적 지도자였고, 정부 기관과 학교, 많은 기업이 행사와 모금에 참여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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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제1회 새마음 제전 당시 박근혜와 최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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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새마음 운동이 확장되면서 영세교라는 종교 조직은 한 발 뒤로 물러난다. 그러나 영세교가 사용했던 방식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초창기 최태민은 여러 종교를 자기 주변으로 끌어와 결국 자신에게 집중되게 만들었다. 이제는 여러 사회 조직과 공적 권위를 주변으로 모으기 시작한다. 그는 새마음 운동을 통해 박근혜와 사회단체, 기업, 국가 기관을 연결하는 중개자가 되었다. 그가 다루는 대상이 종교에서 권력으로 바뀌었을 뿐 구조는 유사하다. 사람들이 직접 초월적 존재에 접근할 수 없어 최태민을 거쳐야 했듯, 박근혜에게 접근하려는 사람들도 최태민과 그가 운영하는 조직을 거쳐야 했다.

 

끝없는 비리와 전횡 의혹

 

최태민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그의 비리와 전횡을 고발하는 진정이 청와대와 정부 기관에 여러 차례 제기되었다. 그와 그의 주변 사람들이 박근혜와의 관계를 이용해 인사에 개입하거나 기업으로부터 금품과 후원을 받고, 각종 이권에 관여한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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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민 보고서'에는 최태민이 사용한 여러 이름과 가족 관계, 종교 활동, 비리 의혹 등이 상세히 정리되어 있다. 이 문건은 오랫동안 중앙정보부 보고서로 알려졌지만, 문서에 적힌 나이와 작성 정황을 토대로 추측해 보았을 때 실제로는 1988년 무렵 국가안전기획부 시기에 작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문건의 모든 내용이 수사와 재판을 통해 확정된 사실도 아니기 때문에 보고서에 적혔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의혹을 사실로 단정 지을 수 없다. 다만, 최태민을 둘러싼 문제가 2016년 국정농단 사건이 발생한 뒤 갑자기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미 박정희 정권 말기부터 그의 영향력과 의혹을 문제 삼는 정권 내부의 우려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1979년 10.26 사건 이후 있었던 김재규 재판 과정에서도, 최태민의 문제와 새마음 봉사단을 둘러싼 기업의 불만이 언급되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그럼에도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는 지속되었다. 박정희 사후, 박근혜가 청와대를 나온 뒤에도 최태민 일가는 그녀의 주변에 머물렀다. 1994년 최태민이 사망한 뒤에는 그의 딸 최순실이 박근혜의 오랜 측근이 되었다. 그가 다져놓은 폐쇄적인 관계성과 오래전부터 확보해 놓은 자리는 딸 최순실에게 이어졌고, 이것은 최순실이 훗날 대통령의 공적 권한과 국가 의사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발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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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삼성동 자택에 출입하는 정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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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그들의 폐쇄적인 관계망이 작동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경험이 있다. 주영국 대한민국대사관에서 근무하던 때의 이야기다. 박근혜 대통령이 영국을 국빈 방문했다. 나는 대통령 수하물을 담당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방문 기간 대통령 일행의 움직임을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그때 박근혜와 함께 영국을 찾은 사람 중에는 훗날 국정농단 사건을 통해 이름이 알려진 자들이 있었다. 박근혜의 생활과 운동을 보조한 헬스 트레이너 출신 윤전추와 대통령 머리와 화장을 담당한 정송주, 정매주 자매였다. 국정농단 사건이 보도되던 당시, 이들은 언론에서 '비선' 또는 '최순실 라인'으로 불렸다.

 

인상적인 것은 이들의 위치였다. 박근혜가 머물던 곳은 하이드파크가 내려다보이는 런던 중심가의 호텔 스위트룸이었다. 대통령을 수행하는 정부 고위 관료들조차 머물기 어려운 바운더리 내에 윤전추와 정 자매가 들어와 있었다. 그들은 대통령과 매우 가까운 위치에 숙박했다. 공식 직함과 정부 내 서열로 설명되지 않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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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순방 의상을 챙기는 최순실과 윤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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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그 장면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국정농단 사건 이후 되돌아보니, 그것은 단순히 대통령의 생활과 미용을 담당하는 자들의 순방 동행이 아니었다. 최순실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적 신뢰와 인적 네트워크가 국가 조직 깊숙이 침투해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의전과 보고 체계에서 벗어난 이들은 박근혜의 개인적인 신뢰를 받았고, 그래서 더 강한 접근권을 가질 수 있었다. 최태민이 박근혜와의 관계를 통해 얻은 특별한 자리는 사후에도 형태를 바꾸어 지속되고 있었다. 종교적 조언자의 자리는 딸 최순실에게 이어졌고, 최순실을 중심으로 연결된 자들은 대통령의 가장 은밀한 공간까지 제집 드나들듯 자연스럽게 출입했다.

 

최태민의 지배를 받은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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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를 설명할 때, '세뇌', '주술', '영혼 지배'와 같은 표현이 사용된다. 이러한 표현은 대중의 관심을 끌기는 쉽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에 대해서는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박근혜가 영세교의 정식 신도였는지, 최태민의 종교적 주장을 모두 실제로 믿었는지, 특정한 주술 의식에 지속적으로 참여했는지 등을 입증할 수 있는 공개 자료는 확인하기 어렵다. 게다가 한 사람의 정치적 판단과 그로 인한 결과를 모두 교주에게 세뇌당했기 때문이라 한다면, 박근혜 자신의 선택과 책임을 가볍게 만드는 해설이 될 수 있다.

 

최태민은 어머니를 잃고 고립된 젊은 박근혜에게 영적 메시지를 내세워 접근했고 이후 오랫동안 그녀의 가까운 조언자이자 조직 활동의 동반자로 남았다. 그 관계를 통해 영향력을 얻은 최태민을 둘러싼 여러 의혹이 반복적으로 제기되었음에도 박근혜는 관계를 단절하지 않았다. 이 점이 중요하다. 박근혜는 왜 공식적, 제도적 루트를 통해 알게 된 조언자보다 최태민과 그의 가족에게 오랫동안 신뢰를 주고 의지했는가.

 

최태민이 가진 다양한 정체성 뒤에서 그를 뒷받침하는 일관된 능력이 하나 있었다. 이 사람에게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빠르게 인지하고, 필요에 맞춰 자기 얼굴을 바꾸는 능력. 아픈 사람에게는 치유자였고, 불안을 보이는 사람에겐 예언자였으며, 상실한 사람에겐 죽은 이의 뜻을 전하는 영적 대리인이 되어 주었다. 권력자에겐 충성스러운 조언자였고, 기업인에게는 권력으로 통하는 통로이자 대중에는 나라를 구할 종교 지도자였다. 거대한 교단을 세우지는 못했지만, 훗날 대통령이 되는 사람과 신뢰를 쌓아 그보다 훨씬 큰 권력을 얻었다.

 

오늘날 사이비의 모습도 다르지 않다. 사람들의 상실과 불안을 파고들어 자신을 유일한 해답으로 내세우고, 질문과 비판을 막으며 자신의 권위를 절대화하는 방식으로 신도를 미혹한다. 세대가 교체되어 교단에 선 지도자의 얼굴은 바뀌었지만, 미드소마 대한민국은 여전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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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금성무스케잌

마빡 디자인 : 꾸물

기사 : BR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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