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호크니의 색과 빛

 

rere.JPG

출처 - (링크)

 

지난달 11일, 영국 현대미술의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가 세상을 떠났다. 부고가 전해지자 찰스 3세 국왕과 스타머 총리를 비롯한 각계 인사들의 추모가 잇따랐고, 영국 언론은 일제히 그의 생애와 작품을 조명하는 특집 기사를 냈다. 그는 영국인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던 시대의 문화 아이콘이었다.

 

호크니라는 이름이 생소한 이들이라도 그의 그림은 어디선가 한 번쯤 접했을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강렬한 햇빛, 투명하고 푸른 수영장, 물속으로 뛰어든 사람이 남긴 새하얀 물보라. 직관적이고 생생한 색감은 단숨에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빛과 색채의 세계로 이끈다. 그의 작품은 복잡한 미술 이론을 들이대지 않아도 누구나 직관적으로 느끼고 이해할 수 있다.

 

fsdf.JPG

출처 - (링크)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대표작 'A Bigger Splash(1967)'이 좋은 예다. 그림 속에는 호크니가 오랫동안 머물렀던 미국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현대적인 주택과 야자수, 반듯한 수영장이 등장한다. 수영장 물속에 사람은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 막 뛰어든 듯 거대한 물보라가 일고 있다. 기하학적인 건물의 정적을 깨뜨리는 찰나의 물보라. 이 작품은 캘리포니아의 눈 부신 햇살과 자유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는 그림으로 유명해졌지만, 동시에 '지금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존재'와 '이미 지나가 버린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밝고 평화로워 보이는 화면을 오래 들여다볼수록 묘한 고독감과 긴장감이 배어 나온다.

 

gfdg.JPG

출처 - (링크)

 

1972년 작품 'Portrait of an Artist(Pool with Two Figures)' 역시 그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한 사람은 수영장 물속에서 헤엄을 치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분홍 재킷을 입은 채 수영장 가장자리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 눈부신 풍경, 맑은 물, 그리고 두 인물 사이에 흐르는 거리감이 한 화면에 공존한다. 이처럼 호크니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일상의 풍경을 빌려 사랑과 욕망, 친밀함과 거리감, 찰나의 아름다움과 그 뒤에 남는 쓸쓸함을 그려냈다.

 

그는 회화에만 머무르지 않고 드로잉, 판화, 사진, 콜라주, 무대미술 등 다양한 장르를 끊임없이 탐구했다. 그를 단지 '수영장을 그린 화가'로 기억하는 것은 그의 방대한 예술 세계를 오해하는 일이다. 여든이 넘은 노년에는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창작 도구로 받아들여 영국 요크셔의 시골길과 숲, 프랑스 노르망디의 사계절을 디지털 화면 위에 그려냈다. 전통적인 붓과 캔버스만을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누구보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실험했다.

 

스윙잉 런던

 

FRPAR3200694_0003.jpg

출처 - (링크)

 

세계적인 미술관을 채운 작품의 화가들은 대부분 유럽 대륙 출신이다. 르네상스를 꽃피운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는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루벤스와 렘브란트는 플랑드르와 네덜란드,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를 이끈 모네, 르누아르, 세잔과 고흐는 프랑스와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활약했다. 현대미술의 문을 연 피카소와 브라크 역시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미술사의 흐름을 새롭게 바꿨다. 오랜 기간 서양 미술사의 중심이 유럽 대륙에 머무는 동안, 영국 회화는 주류 미술계에서 비교적 소외되어 있었다.

 

영국에 거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8세기에는 조슈아 레이놀즈와 토머스 게인즈버러가 영국 초상화의 위상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19세기에는 J.M.W. 터너와 존 컨스터블이 자연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훗날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에게도 깊은 영감을 주었다. 특히 터너의 빛 실험은, 모네도 감탄했다고 전해질 만큼 시대를 앞서간 것이었다. 그럼에도 렘브란트에 비해 레이놀스와 게인즈버러라는 이름은 다소 낯설다. 이처럼 영국 미술은 오랜 시간 '독자적인 전통'으로 평가받았다. 르네상스나 인상주의처럼 유럽 미술사를 바꾸는 거대한 흐름을 영국이 주도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rer.JPG

출처 - (링크)

 

이 흐름을 바꾼 것이 바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찾아온 문화 격변기였다. 전쟁의 상흔을 딛고 일어선 젊은 세대가 이전과 다른 움직임을 만들어 냈다. 이들은 새로운 패션과 음악으로 이전의 사회적 규범을 흔들었다. 사람들은 이 시대를 스윙잉 런던(swinging london)이라 불렀다. 이때 '스윙'은 '활기차다' 정도의 의미를 넘어선다. 당시 런던은 세계에서 가장 새롭고, 젊고, 창조적인 도시의 상징이었다.

 

비틀즈와 롤링스톤즈가 등장하고, 메리 퀀트가 미니스커트로 여성 패션의 새 시대를 열었다. 늘 파리 뒤를 쫓던 런던이 마침내 세계의 트렌드를 선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그 시기, 미술 분야에서 영국의 젊은 에너지를 대변하며 등장한 인물이 바로 데이비드 호크니였다.

 

gfg.JPG

출처 - (링크)

 

인간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가

 

'인간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가'

 

호크니가 평생을 매달린 화두이자 그의 모든 예술적 시도의 출발점이다.

 

사진은 셔터가 눌린 순간의 한 장면만을 기록하지만, 인간의 눈은 카메라처럼 한순간만을 포착하지 않는다. 우리의 눈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탐색한다. 여기에 개인의 기억과 감정이 더해지면서 비로소 우리가 인식하는 풍경이 완성된다. 즉, 인간은 수많은 순간을 이어 붙여 세상을 경험한다.

 

호크니는 이 점에 주목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는 것도, 익숙한 길을 떠올리는 것도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라 수많은 시선과 시간이 축적된 경험이다. 그는 인간의 이 역동적인 시각을 가장 충실하게 담아낼 수 있는 매체가 '회화'라고 믿었다.

 

fdsf.JPG

출처 - (링크)

 

이러한 철학은 그의 작품 곳곳에서 드러난다. 여러 장의 사진을 이어 붙여 하나의 풍경을 만드는 '포토 콜라주'를 시도하는가 하면, 하나의 대상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동시에 바라본 듯한 화면을 구성하기도 한다. 얼핏 낯설어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볼수록 우리가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과 놀랍도록 닮아있음을 깨닫게 된다. 호크니는 인간만의 '살아있는 시선'을 캔버스 위에 옮기고자 했다.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며 미술계의 관심은 점차 개념과 이론, 정치와 사회 비판으로 이동했다. 때로는 작품 그 자체보다 그것을 설명하는 글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경우도 있었다. 호크니는 이 흐름에 동조하지 않았다. 예술은 무엇보다 인간의 감각을 움직여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설명 없이도 관람객의 눈을 사로잡아야 했다. 선명한 색채와 따뜻한 빛, 그 단순함 속에 드러나는 인간의 시간과 기억에 대한 철학, 오래 바라볼수록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작품. 그것이 호크니가 보여준 예술의 힘이었다.

 

호크니의 또 다른 대단한 점은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전통 회화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사진을 연구했고, 복사기를 이용한 작업을 시도했다. 늦은 나이에도 컴퓨터 그래픽과 디지털 드로잉에 관심을 보였다. 여든이 넘는 나이에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며,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그것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일에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그러나 기술을 사랑하면서도 기술에 압도되거나 기술을 숭배하지 않았다. 기술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각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도구였다. 아무리 정교한 카메라도 인간의 눈을 대신할 수 없고, 어떠한 첨단 기기도 인간의 생생한 경험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림을 그리는 주체도 인간, 그것을 보며 감동을 느끼는 주체 역시 인간이다. 그가 추구하는 예술의 중심에는 언제가 인간이 있었다.

 

gdfg.JPG

출처 - (링크)

 

데이비드 호크니가 세상을 떠난 지금, 그의 질문은 과거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닌다. 몇 초 만에 이미지를 생성해 내고, 거장의 화풍까지 완벽하게 재현해 내는 인공지능의 시대. 기술은 머지않아 곧 인간의 것과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 할지라도 결코 대신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세상을 살아낸 '인간의 경험'이다.

 

인간은 같은 풍경 앞에서 저마다 다른 세계를 본다. 어린 시절 뛰놀던 공원의 나무 한 그루가 누군가에게는 아련한 추억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 된다. 호크니가 그의 작품에 담고자 했던 본질도 이와 같다. 단순히 대상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저마다의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의 시선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어준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시간이 흘러도 빛바래지 않는다.

 

비정기 브라이언.jpg

 

 

편집 : 금성무스케잌

마빡 디자인 : 꾸물

기사 : BRYAN

 

제보 및 연재 문의

ddanzi.mast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