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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하라, 시민들이여. 대열을 갖추라.”

 

7월 14일, 파리 샹젤리제에 《라 마르세예즈》가 울렸다. 프랑스혁명과 국민적 결속을 함께 기념하는 국경일이었다. 그런데 대열의 선두에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여러 나라 병사 약 500명이 섰다. 우크라이나군도 그 안에 있었다. 그 뒤로 프랑스군을 중심으로 한 역대 최대 규모의 도보 대열이 이어졌다.

 

프랑스군은 여전히 행사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이날의 정치적 의미를 만든 것은 병력의 숫자가 아니라 선두에 선 다국적 병력과 우크라이나였다. 프랑스 단독의 군사적 위용을 과시하는 행사로는 설명되지 않는 장면이다.

 

《라 마르세예즈》는 프랑스 국가이자 시민혁명의 노래다. 그러나 이날 “대열을 갖추라”는 명령이 가리킨 대오는 더 이상 프랑스시민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외국군이 프랑스 국경일을 차지한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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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FRANCE 24 (링크)

 

바뀐 것은 군대의 규모가 아니라 행사의 정치적 주어였다. 프랑스가 자기 군대를 보여주는 날이, 프랑스가 유럽 여러 나라의 군대를 모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날이 됐다.

 

이것은 프랑스 공화주의의 배신일까. 아니면 새로운 시대의 계승일까.

 

공화주의적 시선에서는 시민혁명의 날에 시민보다 군대와 국제 안보가 앞세워진 장면에서 불편함이 생길 수 있다. 극우·주권주의 진영에서는 프랑스 국경일의 중심에 다국적 병력과 우크라이나가 등장한 사실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서로 다른 두 불편함 사이에서 마크롱은 하나의 질문을 남겼다. 유럽을 조직하는 프랑스도 여전히 시민이 주인인 공화국일 수 있는가.

 

 

《라 마르세예즈》는 시민의 노래이자 전쟁의 노래였다

 

《라 마르세예즈》는 처음부터 평화로운 축제의 노래가 아니었다. 1792년 프랑스가 오스트리아 왕정과 전쟁에 들어간 직후, 루제드 릴이 스트라스부르에서 만든 원래 제목은 〈라인군을 위한 전쟁가〉였다. 마르세유의 연맹병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파리로 진군한 뒤, 사람들은 이를 《라 마르세예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 노래에서 시민과 군대는 서로 반대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혁명기의 군대는 왕의 군대에서 국민의 군대로 바뀌고 있었다. 시민은 정치의 주체인 동시에 새로운 정치질서의 방어자였다. 그래서 “무장하라, 시민들이여”라는 말은 왕의 명령에 복종하라는 뜻이 아니었다. 주권자인 시민이 자신이 만든 새로운 정치질서를 스스로 지키라는 선언이었다. 시민병사와 국민주권, 무장한 국민은 프랑스 공화주의 안에서 하나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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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은 자유와 평등, 보편적 권리의 이상을 내세웠다. 동시에 왕정과 외세로부터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강한 애국주의도 품고 있었다. 보편주의와 애국주의가 함께 있었다는 점이 프랑스 공화주의의 특징이다. 물론 이것을 오늘날 극우의 민족주의와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공화주의적 애국주의가 지키려는 것은 자유와 시민권을 보장하는 조국이다. 반면 배타적 민족주의는 국민국가 자체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둘 다 조국을 말하지만, 무엇을 위해 조국을 지키는지는 다르다.

 

프랑스 국경일인 7월 14일은 1880년 제도화될 때부터 시민축제와 군사 의례를 함께 품었다. 이날은 1789년 바스티유 습격 뿐 아니라, 이듬해 국민통합을 기념한 연맹제(Fête de la Fédération)의 기억도 담고 있다. 국경일로 제도화된 뒤 군사 퍼레이드는 시민과 국민, 공화국과 군대를 하나로 묶는 상징이 됐다.

 

따라서 올해 달라진 것은 군대가 등장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달라진 것은 그 군대가 무엇을 상징하느냐였다. 과거에는 시민의 군대가 프랑스 공화국을 상징했다면, 올해는 여러 나라의 군대가 유럽의 공동 안보를 상징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국경일의 선두에 선 유럽

 

외국군이 프랑스 국경일에 등장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1919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연합군이 함께 행진했고, 1994년에는 독일군이 포함된 유로군단이 샹젤리제에 섰다. 2007년에는 유럽연합 회원국 병력도 초청됐다.

 

따라서 2026년의 파격은 외국군의 참가가 아니라 그 배치와 역할에 있었다.

 

이번에는 우크라이나군과 ‘의지의 연합’ 병력이 대열의 선두에 섰다.* 사열대에는 유럽 주요국 정상들도 자리했다. 프랑스가 내건 공식 주제는 ‘유럽의 전략적 각성’이었다. 외국군은 손님이 아니라 메시지였다. (*의지의 연합: 우크라이나 지원과 휴전 이후의 안전보장을 위해 프랑스와 영국이 주도해 구성한 국가 협의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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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 / AFP (링크)

 

전날인 7월 13일에는 우크라이나 지원국 정상회의가 열렸다. 이에 앞서 탄도미사일 방어 협의가 열렸고, 정상회의에서는 휴전 이후의 안전보장 계획이 논의됐다. 다음 날의 퍼레이드는 전날 확인하고 구체화한 전략을 군대와 무기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그래서 이 행사를 마크롱의 허영이나 단순한 군사적 연출로만 볼 수는 없다. 프랑스는 휴전 이후까지 내다본 유럽의 억지체계를 준비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의 위치도 달라졌다. 더 이상 도움을 받는 외부의 피해국으로만 등장하지 않았다. 유럽 안보의 최전선에 선 국가이자, 상징적으로는 내부 구성원처럼 대우받았다. 물론 우크라이나는 아직 EU 회원국도 NATO 회원국도 아니다. 그러나 상징적으로, 그리고 군사적으로 우크라이나는 이미 유럽의 안보질서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유럽이 현재 준비하는 현실적 시나리오는 모든 쟁점을 해결한 종전보다, 전투를 멈추고 전선을 장기간 관리하는 정전이다. 하지만 보장 없는 정전은 러시아가 병력을 재정비한 뒤 다시 공격하기 위한 휴식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정전 이후에도 우크라이나의 방위력이 약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유럽의 인식이다. 러시아가 다시 침공할 경우 감당해야 할 대가가 훨씬 커지도록 우크라이나의 군사력을 유지하고, 유럽도 방공·무기 지원과 휴전 뒤 다국적 병력의 안전보장 임무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프랑스 국경일은 바로 그 구상을 시각화한 행사였다. 전쟁을 곧 끝내겠다는 평화선언이 아니라, 전쟁을 다시 시작하기 어렵게 만들 유럽을 조직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두 개의 불편함, 두 개의 주권

 

그 선언이 유럽의 전략가들에게는 분명했을지 몰라도, 프랑스 시민들에게 같은 뜻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인들이 올해 군사 퍼레이드를 모두 불편하게 본 것도 아니다. 다수는 여전히 군대와 국경일 행진에 자부심을 느꼈고,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앞세운 구성에도 과반이 찬성했다.

 

그러나 반대도 적지 않았다. 같은 장면을 보면서도 불편함의 이유는 서로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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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 / REUTERS (링크)

 

공화주의적 시선에서는 시민혁명의 날에 시민보다 대통령과 군대, 외국 정상과 국제 안보가 앞세워진 장면에서 불편함이 생길수 있다. 문제는 군대의 존재 자체가 아니다. 시민적·사회적 공화국이 안보국가의 언어에 가려지는 데 있다. 공화국의 주인공은 시민인가, 국가기구인가. 국방비 증액의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전쟁의 긴급성이 복지와 평등, 민주적 토론을 뒤로 미루는 명분이 되는 것은 아닌가.

 

극우·주권주의 진영에서는 다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이들에게 문제는 시민의 소멸보다 프랑스라는 최종 정치주체의 희석이다. 왜 프랑스 국경일의 선두에 우크라이나군과 다국적 병력이 서는가. 프랑스군은 프랑스만을 위해 존재하는가. 우크라이나와 공동운명을 짊어지겠다는 결정을 누가 승인했는가.

 

두 불편함을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공화주의적 시선은 민주적·사회적 주권을 걱정하고, 극우 민족주의는 국민국가적 주권을 걱정한다. 역사적 뿌리도, 지키려는 가치도 다르다.

 

다만 한 지점에서는 만난다. 프랑스 국민이 국가의 목적을 직접 결정하고 있다는 감각이 약해졌다는 의심이다.

 

한쪽은 시민이 대통령과 군대에 밀렸다고 느끼고, 다른 쪽은 프랑스가 유럽과 외국군에 밀렸다고 느낀다. 마크로니즘은 좌우에서 같은 공격을 받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두 주권 개념으로부터 동시에 정당성을 요구받고 있다.

 

 

마크롱에게 유럽은 프랑스의 반대말이 아니다

 

이 두 가지 불편함에 대해 마크롱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답한다. 그에게 주권은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는 능력이 아니다. 다른 나라를 불러 모으고, 공동행동을 조직하고, 더 큰 규모의 결정을 이끄는 힘이다. 프랑스가 유럽 속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유럽을 움직임으로써 프랑스의 규모를 확장한다는 논리다. 프랑스가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유럽을 통해 가능하게 만드는 것도 주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크롱은 “애국주의는 찬성, 민족주의는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버리려는 것은 조국에 대한 애정이 아니다. 각국의 애국심을 서로 충돌시키지 않고 유럽의 공동방위로 묶으려는 것이다. 러시아의 위협 앞에서 한 나라의 자유는 혼자 지키기 어렵다. 그렇다면 유럽의 공동방위는 국민주권의 부정이 아니라, 그것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 된다. 프랑스는 유럽의 한 구성원이면서 동시에 그 유럽을 조직하는 나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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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 / REUTERS (링크)

 

이런 시선에서 보면 다국적 병력의 선두 행진도 다르게 읽힌다. 프랑스 주권이 약해진 장면이 아니라, 파리가 여전히 유럽 국가들을 한자리에 세울 수 있다는 증거다. 프랑스의 힘을 병력의 숫자보다 정치적 소집 능력으로 보여준 셈이다. 여기서 마크로니즘의 고유성이 드러난다. 전통적 공화주의는 시민이 주권자인 프랑스를 말한다. 극우 민족주의는 국민국가만이 최종 주권자라고 본다. 마크로니즘은 유럽을 조직함으로써 더 주권적인 프랑스를 상상한다.

 

이 구상은 지금의 국제정세에서 분명한 기회도 가진다. 러시아의 위협은 커졌고, 미국의 보호는 예전만큼 확실하지 않으며, 유럽의 군사력은 아직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는 자신의 보편주의와 외교 전통을 새로운 지도력으로 바꿀 수 있다. 단순한 프랑스 우선주의보다 현실적이고, 미국 의존보다 자율적인 길이다. 마크로니즘은 공화주의와 유럽주의를 화해시키려는 독창적인 프로젝트다.

 

문제는 그 논리가 없다는 데 있지 않다. 그 논리를 프랑스 국민이 자신의 언어로 받아들이게 만들지 못했다는 데 있다.

 

 

전차는 모았지만 주권자는 모으지 못했다

 

마크롱의 집권 기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연출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프랑스의 국방비는 늘었고, 유럽 정상들을 불러 모으는 외교력도 유지됐다. 우크라이나 지원체계와 방공·군수산업 협력도 이전보다 구체화됐다.

 

하지만 유럽의 의지가 곧 유럽의 힘을 뜻하지는 않는다. ‘의지의 연합’은 상설군도 아니고, 자동으로 병력을 투입하는 군사동맹도 아니다. 미국의 정보·수송·방공 지원 없이 얼마나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병력 배치와 재정, 무기 생산능력도 충분하지 않다. 회원국의 국내정치가 바뀌면 약속도 흔들린다. 불가리아가 이번 정상회의 참여를 거부하고 연합과 거리를 둔 일은 정권교체에 따라 결속이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마크롱은 유럽의 취약성을 일찍부터 지적했지만, 집권 기간 동안 그 취약성을 되돌리기 어려운 힘으로 바꾸지는 못했다. 메시지는 선명했지만, 성과는 그 메시지를 따라가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시민적 승인이다. 대통령은 정상과 군대를 한자리에 모을 수 있다. 그러나 국방비를 위해 무엇을 줄일지, 러시아가 다시 침공할 경우 누가 싸울지, 우크라이나와 어디까지 공동운명을 질지는 정상회의만으로 결정할 수 없다. 그 선택에는 시민의 동의가 필요하다. 프랑스 국민, 독일 국민, 폴란드 국민은 존재한다. 하지만 같은 전쟁 위험과 희생을 공동으로 승인하는 정치적 의미의 유럽 시민은 아직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다.

 

유럽의 군대를 조직하는 일과 유럽의 주권자를 조직하는 일은 다르다. 전자는 정상회의와 군사계획으로 가능하지만, 후자는 공동의 정치와 민주적 절차를 필요로 한다. 이 간극은 2027년 프랑스 대선에서 더 선명해질 수 있다. 극우의 집권을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극우 국민연합(RN) 후보가 1차 투표에서 크게 앞서고, 일부 결선 시나리오에서도 우세한 조사가 나올 만큼 그 가능성은 이미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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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겨레 (링크)

 

마크롱이 유럽적 애국주의를 충분히 설득했다면, 프랑스 우선주의가 지금처럼 강한 대안으로 성장했을까.

 

올해 7월 14일은 마크롱이 대통령으로서 맞은 마지막 프랑스 국경일이었다. 헌법상 2027년 대선에 연속 3선 도전할 수 없는 그는 후임 정권이 쉽게 되돌리지 못할 전략적 유산을 남기려 했다. 그 정치적 유언의 핵심은 국방비 숫자보다 더 큰 문장이었다. 프랑스는 유럽을 이끌 때 가장 프랑스답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유언은 남기는 사람의 뜻만으로 살아남지 않는다. 그것을 이어받을 정치세력과 시민이 있어야 한다. 마크롱은 유럽 여러나라의 군대를 한 줄에 세웠지만, 그 대열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시민적 주권자는 아직 세우지 못했다.

 

 

“시민들이여, 대열을 갖추라”는 이제 질문이다

 

1792년의 《라 마르세예즈》가 그려낸 시민과 군대, 국민은 하나의 정치적 주체였다. 시민이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무장한다는 이상이었다. 그러나 2026년의 대오는 훨씬 복잡하다. 프랑스 시민과 프랑스군, 유럽과 우크라이나가 하나의 행렬 안에 섰지만, 이들이 정말 하나의 정치공동체를 이루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번 행사는 프랑스혁명 정신의 단순한 배신도 아니고, 유럽 연대의 완성도 아니다. 공화주의적 애국주의를 유럽의 공동방위로 넓히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전략적으로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민주적 정당성까지 자동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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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 / AFP (링크)

 

마크롱의 유산이 살아남으려면 프랑스 국민이 세 가지를 납득해야 한다. 유럽과 함께 행동하는 것이 왜 프랑스의 주권을 줄이는 일이 아닌지, 우크라이나의 방어가 왜 프랑스 공화국의 자유와 연결되는지, 공동방위의 비용과 위험을 시민이 어떻게 통제할 수있는지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올해의 퍼레이드는 새로운 유럽의 출발보다 마크롱 시대의 마지막 장면으로 남을 수 있다. 반대로 답할 수 있다면 프랑스는 공화주의의 이상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더 강하고 자율적인 유럽을 만드는 길을 열 수 있다.

 

마크롱은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프랑스 국경일에 유럽 여러 나라의 군대를 샹젤리제의 한 대열에 세웠다. 그러나 그 대열의 목적과 희생을 공동으로 승인할 시민은 아직 세우지 못했다.

 

“무장하라, 시민들이여. 대열을 갖추라.”

 

1792년의 후렴은 2026년에 명령보다 질문이 됐다.

 

어느 시민이며, 누구의 대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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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꾸물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임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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