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마지막 주, 유럽의 온도계와 사망통계가 함께 치솟았다. 서유럽은 관측 이래 가장 더운 6월을 겪었고, 여러 지역에서 평년보다 만 명 이상 많은 사망이 확인됐다. 독일과 프랑스, 벨기에와 영국 등에서 집계된 잠정 수치를 합치면 초과 사망 규모는약 1만4천 명에 이른다는 추산도 나왔다.
물론 이 숫자를 곧바로 ‘폭염 사망자 1만4천 명’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국가마다 집계 기간과 방식이 다르고, 초과 사망은 평년보다 늘어난 모든 사망을 포함한다. 그러나 폭염은 사람을 반드시 ‘열사병’이라는 이름으로 죽이지 않는다. 심장과 폐, 신장과 혈관의 기존 질환을 악화시키며 통계 속에 다른 이름으로 남는다.

2026년 26주차 유럽 참여국·지역의 초과 사망이 약 1만4천 명까지 증가했다
출처: EuroMOMO, 2026 (링크)
더 불편한 점은 이런 일이 제도적으로 낙후된 지역에서 벌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유럽은 세계에서 기후정책이 가장 강하게 제도화된 지역 가운데 하나다. 도시계획과 건축규제, 공공보건과 복지행정도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가장 일찍 기후변화를 경고하고 가장 많은 제도를 만든 유럽에서 왜 사람들은 여전히 더위로 죽는가.
문제는 유럽이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않았다는 데 있지 않다. 탄소배출을 줄이는 데에는 앞섰지만, 이미 달라진 기후에 건물과 도시, 보건과 복지를 맞추는 속도는 충분하지 못했다. 잘못된 제도라기보다, 그 제도가 전제로 삼았던 기후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유럽은 지구에서 가장 더운 대륙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수십 년 동안 세계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빠른 속도로 온난화 됐다. 유럽은 가장 더운 대륙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로부터 가장 빠르게 멀어지고 있는 대륙이다.
2026년 6월 서유럽은 관측 이래 가장 더운 6월을 겪었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 도시의 온도계가 하루 동안 40도를 넘었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넓은 지역에서 평년을 크게 웃도는 고온이 여러 날 이어졌고, 더위가 남유럽을 넘어 프랑스와 독일, 벨기에와 영국까지 동시에 덮쳤다는 점이다.

2026년 서유럽의 6월 기온은 1991~2020년 평균보다 3.06℃ 높아 관측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출처: C3S/ECMWF, ERA5 (링크)
그렇다고 유럽이 동북아시아보다 절대적으로 더운 지역이 된 것은 아니다. 서울과 도쿄, 상하이는 평균기온과 습도, 열대야 면에서 여전히 유럽 대부분의 도시보다 더 가혹하다. 다만 과거 유럽에서 예외로 여겨졌던 장기간의 고온과 더운 밤이 이제 반복되기시작했다.
같은 35도라도 모든 도시가 같은 위험을 겪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무더운 여름을 경험했고 냉방시설이 널리 보급된 도시와, 그런 기온을 전제로 주택과 학교, 병원과 생활방식이 만들어지지 않은 도시는 다르다. 폭염의 위험은 온도계의 숫자만이 아니라 그 사회가 얼마나 준비돼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특히 위험한 것은 밤이다. 낮 동안 사람의 몸과 건물 안에 쌓인 열은 밤에 빠져나가야 한다. 그러나 야간 기온까지 높게 유지되면 몸은 회복할 시간을 잃고, 집 안의 열도 그대로 남는다. 낮의 더위가 사람을 공격한다면, 더운 밤은 회복할 시간을 빼앗는다.
유럽을 위협하는 것은 몇 도 높은 기온만이 아니다. 예외로 간주했던 여름이 새로운 평년이 되는 속도다. 과거의 극단적 여름이 반복되면 건축기준과 보건계획, 노동과 복지제도가 전제로 삼았던 조건도 무너진다. 기후가 달라졌다면, 그 기후 위에 세워진 도시와 건물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할 수 없다.
건축은 단순히 벽과 지붕을 세우는 기술이 아니다. 한 사회가 추위와 더위, 바람과 비를 어떻게 경험해 왔는지를 물질 속에 저장한 기억이다. 기후가 달라지면 건물은 그대로 있어도 그 기능은 달라진다.
유럽의 모든 건축이 더위에 무방비였던 것은 아니다. 지중해 지역의 전통 건축에는 강한 햇빛을 막는 셔터와 좁은 골목, 바람을 끌어들이는 중정과 두꺼운 벽이 있었다. 문제는 냉방이 거의 필요하지 않았던 북부와 서부 유럽의 주택과 학교, 병원까지 장기간 폭염에 노출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출처 - NextG20 (링크)
낮에는 차양 없는 창으로 햇빛이 들어와 집 안을 달군다. 지붕 바로 아래층과 다락방은 먼저 뜨거워지고, 밤이 돼도 바깥 기온이 충분히 내려가지 않는다. 소음과 대기오염, 치안 문제 때문에 창문을 오래 열어두기 어려운 집도 많다. 하루 종일 쌓인 열이 빠져나갈 길을 잃는 것이다.
그렇다고 단열이나 석조건축 자체를 범인으로 지목할 수는 없다. 단열은 바깥의 열이 들어오는 속도를 늦출 수도 있다. 문제는 겨울철 열손실을 줄이는 데 집중하면서 여름철 차양과 환기, 열을 밖으로 내보내는 방법을 함께 설계하지 않은 경우다.
건물의 열은 도시의 열과 연결된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건물 외벽은 낮 동안 열을 흡수한 뒤 밤에 다시 내놓는다. 자동차와 상업시설, 냉방기 실외기도 열을 더한다. 폭염은 하늘에서만 내려오지 않는다. 도시는 낮 동안 받은 열을 밤새 다시 시민에게 돌려준다.
그래서 도시 전체에 공원이 몇 개 있는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과 아이들이 머무는 운동장, 사람들이 걷는 보행로와 광장에 실제로 그늘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폭염에 필요한 녹지는 경관으로서의 녹지가 아니라 사람이 실제로 서있는 곳의 그늘이다.
더위는 같은 도시 안에서도 공평하게 배분되지 않는다. 최상층과 노후주택, 사회주택은 더 쉽게 달아오르고, 냉방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가구는 더 오래 더위에 노출된다. 세입자는 창호나 차양을 스스로 바꾸기도 어렵다. 같은 폭염이 도시 전체를 덮쳐도 누구는 냉방된 방으로 이동하고, 누구는 가장 뜨거운 방에 남는다.
유럽의 건축은 실패한 건축이 아니었다. 다만 그것이 성공할 수 있었던 기후조건이 사라지고 있다.

파리의 하우스만 스타일 주거용 건물 아연 지붕 아래 9제곱미터 크기의 아파트
출처 - REUTERS (링크)
유럽이 기후변화를 외면했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기후변화를 법률과 산업정책의 중심으로 가장 먼저 끌어들인 지역이 유럽이다. EU는 기후법을 만들고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세웠으며, 배출권거래제와 에너지 전환을 오래 추진해왔다.
다만 탄소를 줄이는 일과 더위에 적응하는 일은 서로 다르다. 감축은 앞으로 더 심해질 기후변화를 막는 일이다. 적응은 그 효과가 나타나기 전까지 이미 닥친 더위 속에서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둘 중 하나를 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동시에 해야 할 일이다.
유럽에도 적응정책은 있었다. 폭염경보와 보건행동계획, 도시녹화와 건물개조가 시행됐고, 이런 조치들이 실제로 많은 사망을 줄였다는 연구도 있다. 유럽의 문제를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결과로 설명하면 오히려 핵심을 놓친다.
문제는 두 정책의 힘이 같지 않았다는 데 있다. 감축에는 배출량과 목표연도, 법적 의무가 붙었다. 반면 적응은 주택과 도시, 보건과 노동을 담당하는 여러 기관에 흩어졌고, 국가와 지방정부의 재정과 행정력에 따라 차이가 컸다. 탄소에는 톤과 목표연도가 있지만, 시민이 견뎌야 할 실내온도와 거리의 그늘에는 그만큼 분명한 의무가 없는 경우가 많다.
폭염이 오면 물을 마시고 외출을 피하라는 경보는 빠르게 나온다. 이런 안내는 필요하다. 그러나 학교와 요양원의 냉방, 노후주택의 개조, 야외노동자의 작업시간 조정은 훨씬 느리다. 유럽에는 폭염경보는 있지만, 경보와 동시에 움직이는 폭염행정도 충분히 있는가.
결국 폭염은 보건문제이면서 복지문제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위를 느끼는가가 아니라 누가 그 더위를 피할 수 있는가다. 건강이 약한 노인과 독거인, 뜨거운 거리에서 일해야 하는 노동자, 냉방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가구는 같은 도시 안에서도 더 오래 위험에 남는다.
고온과 대기정체가 겹치면 오존 농도까지 올라갈 수 있고, 산불 연기나 먼지가 더해지면 건강위험은 더 커진다. 폭염은 모든 시민에게 같은 온도로 도착하지만, 같은 위험으로 도착하지는 않는다. 기후정책은 배출량을 계산하는 일인 동시에 누구를 먼저 보호할 것인지 결정하는 복지정책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유럽의 모든 창문에 에어컨을 다는 것일까.

사진 - 뉴스1 / AFP (링크)
에어컨은 생명을 구하는 장비다. 폭염 속에서 노인과 환자에게 냉방을 줄이는 것은 환경을 위한 인내가 아니라 위험을 떠넘기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에어컨만 늘리면 전력수요와 냉매, 실외기 폐열과 냉방비 격차가 함께 커진다. 에어컨은 해답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고, 에어컨만이 해답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먼저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열을 줄여야 한다. 창 밖의 차양과 셔터, 햇빛을 덜 받아들이는 창호와 지붕, 낮에 들어온 열을 밤에 내보내는 환기가 함께 필요하다. 가장 값싼 냉방은 실내로 들어오지 않은 열이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공원을 하나 더 만드는 것보다 사람들이 매일 걷고 기다리는 길에 그늘을 연결하는 일이 더 직접적인 대책일수 있다. 가로수와 정류장 차양, 학교 운동장과 광장의 그늘, 열을 덜 머금는 포장재가 하나의 생활권 안에서 이어져야 한다.
필요한 냉방은 개인의 소비능력에만 맡겨둘 수 없다. 병원과 요양원, 학교와 사회주택에는 최소한의 냉방과 실내온도 기준이 필요하고, 냉방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지원이 따라야 한다. 겨울철 난방이 인간다운 생활의 조건이라면, 반복되는 폭염속 냉방과 실내 열 안전도 같은 사회권으로 다뤄야 하지 않는가.
폭염경보도 행동수칙을 알리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경보가 발령되면 응급의료 인력을 조정하고, 가장 더운 시간의 야외작업을 줄이며, 냉방 가능한 공공시설의 운영시간을 늘리는 조치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독거노인과 취약가구의 안부를 누가 확인할지도 미리 정해져 있어야 한다.
동시에 냉방이 새로운 악순환을 만들지 않게 해야 한다. 고효율 기기와 저온난화 냉매, 재생에너지와 전력망 보강이 함께 가야한다. 유럽이 바꿔야 하는 것은 에어컨의 숫자만이 아니다. 어떤 여름을 정상으로 간주하고 건축과 도시, 복지와 에너지체계를 설계할 것인가라는 기준 자체다.

출처 - BBC 코리아 (링크)
유럽의 문제를 무능이나 무대응으로 설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유럽은 기후변화를 오래 경고했고 감축과 적응정책도 추진해왔다. 유럽이 마주한 것은 기후정책의 부재가 아니라, 미래의 기후가 과거에 만들어진 선진적 제도보다 빨리 도착한 상황이다.
건축과 도시, 보건과 복지는 자연환경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특정한 기온과 계절, 인구와 생활방식을 전제로 만들어진다.기후변화는 온도만 바꾸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좋은 집이고, 안전한 도시이며, 충분한 복지인가라는 기준까지 바꾼다.
한국은 유럽보다 더운 여름에 익숙하고 냉방도 보편화된 사회다. 그러나 익숙함이 안전을 뜻하지는 않는다. 길어지는 열대야와 도시열섬, 고령화와 취약주거를 생각하면, 지금의 건축과 도시, 보건과 노동제도가 앞으로의 더위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다른 나라가 해답을 만든 뒤 따라가는 일이 아니다. 실패가 충분히 확인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아직 완전히 도착하지 않은 위험을 현재의 제도에 먼저 반영하는 일이다. 기후변화 시대에는 미래가 천천히 오지 않는다. 유럽의 여름은그 사실을 먼저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편집: 꾸물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임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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