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환(27세)
축산인
경력: 3년
사육 규모: 축사 2동, 150두
월 사료비: 약 1,000만 원(16.5톤)
건초 재배: 약 1만 평(임대), 연 2모작
화면 전환이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툭, 농촌 풍경이 자동차 앞 유리를 덮었다. 반듯한 농로와 울퉁한 임도가 번갈아 이어졌다. 임도 지날 때마다 뽀얗게 먼지가 피어올랐다. 창문을 닫을까 하다가 관뒀다. 그러고 보니 시골은 오랜만이었다. 완만한 경사길을 지나 언덕을 넘었다. 광활한 논이 봄빛을 머금은 채 누워 있었다. 가을에 왔어도 참 볼만하겠다, 싶었다. 저 너른 들판이 누렇게 물든다면 그 또한 장관이겠지. 그 논 끝자락에, 구조물 두 채가 낮게 웅크리고 앉아 존재를 드러냈다. 다가갈수록 삭은 볏짚 냄새가 창문 틈으로 스며들었다. 맞게 찾아온 것 같았다.
바싹 차를 세우고 내렸다. 보기보단 똑똑하다더니, 낯선 엔진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걸까. 눌린 나팔 소리처럼 텁텁하고 둔중한 울음이 고요한 적막을 깨웠다. 굳이 글자로 표현하자면 ‘음매’ 보단 ‘으무-우-’에 가까운 울음소리였다. 화답하듯, 깊고 지루한 울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난데없는 하모니에 인기척을 느낀 모양이었다.

저쪽에서, 소 키우는 사람이라기엔 다소 앳된 얼굴의 사내가 낫자루를 쥐고 다가왔다. 덩치는 누가 봐도 소 키우는 사람이었다. 소까지는 아니더라도, 송아지 정도는 들쳐멜 수 있을 것 같았다. 내딛는 걸음이 묵직했다. 귀를 울리는 울음소리 때문인지, 구수한 소똥 냄새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날카로운 낫자루 때문인지,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오해하지 말라는 듯 낫자루 가리키며, 건초 손질하던 중이었다고 말했다. 주인은 알아보는데 낯선 사람이 오면 이렇게 한바탕 요란들을 떤다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축사의 아침이었다.

사육
나는 이곳에서 태어났다. 5년 전이었다. 나의 어미는 날 낳기만 하고 돌보지 않았다. 주인아주머니는 내 몸에 엉긴 양수를 수건으로 닦아내고 드라이로 말려주며 중얼거렸다. 원래는 어미가 핥아줘야 하는 건데, 초산인 데다가 힘들게 널 낳아 신경 못 써주는 것 같아. 너무 속상해하진 마. 나한테 하는 얘기라기보단, 그냥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넋두리 같았다. 겨울이었다.
주인아주머니는 내 몸을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혼잣말로 “다른 아이들보다 몸이 약하네. 얼른 초유를 먹어야 할 텐데.”라고 했다. 그러고는 내 몸을 억지로 일으켜 어미 옆으로 데려다 놨다. 젖을 빨려고 하니 어미가 뒷발질을 해댔다. 다가갈 수 없었다. 지켜보던 주인아주머니가 젖병을 가져와 내 입에 물렸다. “아이고, 고놈 잘 빠네. 그래도 살고 싶긴 한가 보네.”라며 날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렇게 살아났다. 주인아주머니가 날 살렸다.

덩치 큰 사내가 축사에 온 건 3년 전이었다. 주인아주머니는 날 콕 짚어 가리키며, 이놈은 내가 젖 먹여 키웠다고 자랑했다. 그러고는 옆에 있던 사내 엉덩이 툭 치면서 이놈도 내 젖 먹고 이렇게 컸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내 아들이야. 앞으로 정환이가 니네들 밥 주고 똥 치워줄 거니까 얼굴 익혀둬.”라고 했다. 든든하다는 듯, 주인아주머니는 정환을 바라보며 그렇게 얘기했다.
그날부터 정환은 주인아주머니 옆에 딱 붙어 축사 일을 배워나갔다. 거르는 법 없이 매일 아침, 저녁으로 사료 퍼다 나르고, 건초 더미를 헤쳐 풀어놨다. 주인아주머니가 살리고, 정환이 먹인 덕에 나는 이곳에서 몇 번의 겨울과 몇 번의 장마를 별 탈 없이 보냈다. 그러는 사이 새끼를 네 번 낳았고, 더는 새끼가 붙지 않게 됐다. 발정 때마다 날 찾아왔던 사람에게 정환은 “수정사님, 이놈은 이제 비육 암소로 빼야 할 것 같아요.”라고 했다.

축사의 새벽은 고요하다. 처벅처벅. 아침은 늘 정환의 장화 소리로 시작한다. 이윽고 끼-이익, 축사 바깥에서 철문 미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저마다 모로 뉘었던 몸을 일으킨다. 수선한 움직임에 냄새가 먼저 깨어난다. 밤기운에 습해진 왕겨 냄새, 덜 마른 똥과 삭은 똥이 뒤엉킨 묵은내, 마른 건초 더미의 은은한 풋내가 얽혀 풀썩인다. 축사에 들어온 정환이 긴 통로 따라 찬찬히 걷는다. 우리들 하나하나와 눈을 마주친다. 특히 어린 송아지들을 꼼꼼히 살핀다. 긴 통로 끝에서 아침 빛이 희미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수정사가 다녀가던 날, 정환은 날 다른 곳으로 옮기려 했다. 어쩐지 내키지 않아 주저했다. 주인아주머니가 가느다란 대나무 작대기로 내 엉덩이를 톡톡 쳤다. 정환은 양팔을 벌려 나의 옆길을 막아섰다. 기세에 눌려 이끄는 곳으로 갔다. 그날부터 정환은 나에게 주는 사료량을 늘렸다. 몸에, 천천히 살이 올랐다. 그래도 옆 칸 녀석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언젠가 정환이 누군가와 통화하길, “예예, 거세 비육우, 4마리. 800킬로 이쪽저쪽 될 거예요. 조만간 차 보내주셔야 할 것 같아요.”라고 했다.

정환이 축사에 왔다는 건, 아침밥 준단 얘기다. 성질 급한 녀석들은 벌써 목책기로 목을 길게 뺀다. 힘껏 울어 젖힌다. 정환 손길에 조급함이 느껴진다. 빠르게 밥 구수를 쓸어낸다. 사료 포대에서 사료를 푼다. 젖 뗀 어린 녀석들은 한 바가지, 나랑 옆 칸 녀석들한테는 두 바가지, 새끼 빼는 녀석들 있는 곳은 기다란 관에서 사료가 후두둑후두둑 떨어진다.
사료 먹는 모습 지켜보던 정환이 낫을 들고 온다. 건초 더미를 헤치기 시작한다. 마른풀 먼지가 훌훌 일어난다. 정환이 엉긴 건초를 힘껏 당길 때마다, ‘바사락 바사락’ 하는 소리가 리듬을 더한다. 풀을 먹이고, 물 구수까지 훑어본 정환이 축사를 돌아 나간다. 한바탕 소란이 휩쓴 축사에 다시 고요함이 찾아온다. 배부른 녀석들이 하나둘 주저앉는다. 앞다리 접고 바닥에 배를 붙인다. 움적움적. 천천히, 그러면서도 집요하게 윗입술과 아래턱을 좌우로 돌려가며 되새김질한다. 송아지들은 볕 드는 쪽에서 방방 뛰거나 어미 다리 밑으로 파고든다. 축사의 시간은 멈춰 있는 사진처럼 더디게 흐른다. 축사 옆으로 드물게 차가 지난다. 잠에서 덜 깬 녀석 하나가 고개 쳐들고 목젖을 연다. 으-무-우.

임신
정환 씨 아버지는 평생 중장비를 굴렸다. 그걸로 먹고 살았다. 아버지가 집 앞에 축사를 지은 건 정환 씨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이었다. 밑소(번식용으로 키울 암송아지) 세 마리를 사다 키웠다. 그게 시작이었다. 소밥 먹이는 건 어머니 몫이었다. 어린 정환에게 밥해 먹이듯, 어머니는 아침저녁으로 축사를 들락거렸다. 번식우가 새끼 낳을 때면 아버지가 밤새 축사를 지켰다. 건강한 송아지가 태어나면 부모님이 함께 기뻐했고, 시름시름 앓다 끝내 폐사하면 어머니는 며칠씩이나 밥숟갈을 들다 눈물지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정환 씨에게 안면도 밖 세상은 차갑기만 했다.
“소는 그냥 일상이었고, 제 꿈은 여행 상품 개발자였어요. 관련 학과에 지원하면서 20살 때 처음 안면도를 벗어났죠. 대학 때는 재밌었어요. 배워보고 싶은 분야였으니까요. 취업하면서 완전히 망가졌죠. 몸이 힘든 건 얼마든지 오케이였는데 스트레스가 너무 많았어요. 말 못 하는 짐승한테도 감정이 있다고 배우면서 자랐는데, 제가 경험한 사회는 좀 달랐어요. 사람이 말을 하는데도 들어주질 않더라고요. 사람한테 질려버린 거죠. 그러던 차에 안 그래도 고질병이던 무릎이 아작났어요. 수술하기 전에 쉬려고 고향 내려왔는데 그냥 좀, 여러 가지로 따뜻하다고 느꼈어요. 엄마가 해주는 밥도 따뜻하고, 온돌바닥도 따뜻하고.”

찬바람에 얼굴이 발개져 돌아온 아들 바라보는 기분이었을까. 무뚝뚝하기만 하던 아버지가 정환 씨 어깨를 슥-슥 쓸어내렸다. 그러고는 ‘청년창업 후계 농업 경영인 지원사업’을 제안했다. 후계농을 위한 정착 지원금과 저금리 육성 지원 대출 등을 해주는 국가사업이다. 아버지는 강요하는 건 아니라며, 정 힘들거든 한번 고민해 보라고 했다. 정환 씨는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우선 지원했다. 태안군 전체에서 20명 선발하는데, 그 안에 정환 씨 이름이 붙었다. 소밥 주며 살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축산농가는 크게 번식우 농장과 비육우 농장으로 구분한다. ‘번식우’는 송아지를 생산하는 소다. 번식우 농장은 생산한 수송아지를 7~8개월 먹여 우시장에 팔고, 암송아지는 잘 키워 번식우로 돌린다. ‘비육우’는 고기로 출하하기 위해 살을 찌워가며 키우는 소다. 비육우 농장은 우시장에서 수송아지 사다가 거세한 후 살을 찌운다. 거세 비육우라고도 한다. 보통 31개월 안팎에 출하한다. 정환 씨 농장은 주로 번식우 관리하는 농장이다. 축사 두 개 동에서 150마리를 나눠 키운다. 그러니까 정환 씨 주된 업무라는 건 밥 먹이고 똥 치우는 틈틈이 발정 상태 체크하고, 그 주기에 맞게 인공 수정해 새끼 빼고, 그렇게 키운 수송아지를 우시장에 내다 파는 거다.

“아침에 축사 들어가서 제일 먼저 하는 게 송아지들 상태 보는 거랑 발정 난 애들 체크하는 거예요. 13개월까지 육성우라 부르고, 보통 14개월 전후로 발정 나기 시작해요. 이리저리 몸을 뒤채면서 운다든가, 털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다든가, 심한 경우엔 다른 암소를 올라타기도 해요. 반나절쯤 지나면 발정이 잦아들어요. 그때 맞춰서 수정사를 부르는 거예요.”
매우 당연한 얘기지만, 밑소가 좋아지려면 정액이 좋아야 한다. 콩 심어야 콩이 나오고, 팥을 심어야 팥이 나온다. 정환 씨 축사는 아버지의 고집스러운 뚝심으로 지난 10년 정도 품질 개량에 힘써왔다. 품질을 개량한다는 건 한마디로 투뿔 출현율 높은 소를 생산한단 얘기다. 지금도 좋은 정액만 받아와 보관한다.

수정사가 오면 목책기(소 머리 고정 장치)에 발정 난 녀석 머리를 단단히 고정한다. 발정이 잦아들었어도 예민한 상태인 건 분명하다. 어디로 튕겨 오를지 모른다. 0.5톤에서 내뿜는 파괴력은 공포 그 자체다. 뒷발에 차이기라도 하는 날엔, 갈비뼈 한두 대쯤 각오해야 한다. 어깨까지 오는 긴 비닐장갑을 낀 수정사가 항문 주변에 묻은 똥을 닦아낸다. 그러고는 직장 안으로 손을 넣어 안쪽에 남아 있는 똥까지 긁어낸다. 그런 후에 다시 손을 끝까지 밀어 넣어 자궁경부를 틀어쥔다. 그사이 다른 손에 쥔 정액 주입기를 외음부에 넣어 정액을 천천히 흘려보낸다. 수태율은 보통 70% 안팎이다. 인공 수정하고 한 달 있다가 수정사가 다시 방문한다. 초음파 기계로 임신 여부를 판단해 준다.
출산
정환 씨 축사에선 작년에 송아지 60마리쯤 생산했다. 평균으로 보자면 한 달에 다섯 마리꼴이고, 매주 한 마리 이상 생산한단 얘기다. 출산 전후로 일주일씩은 세밀하게 들여다봐야 하므로, 사실상 매일이 임신과 출산의 연속이다. 축사 일 처음 배울 때 어머니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미루지 말라”고 강조했다.

“귀찮다고 밥 먹고 똥 싸는 일 미루지 않잖아요. 소를 키운다는 게 결국 그런 일이거든요. 말 못 하는 짐승의 배를 채우고, 아픔을 살피고, 똥을 치우면서 하루를 보내는 것. 그렇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평일이건 주말이건, 밤이건 새벽이건 똑같은 일을 매일 365일 해내는 거예요. 단 하루도, 단 한 순간도 미룰 수가 없어요. 그나마 저는 엄마랑 둘이 있으니까, 교대로 볼일도 보고 때때로 쉬기도 하는데, 혼자 축사하시는 분들은 잠시도 자리를 못 비워요.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오죽하면 ‘소는 누가 키우나?’라는 말이 있겠어요. 하하하.”
축산이라는 건 결국 거창한 산업이기 전에, 반복되는 돌봄 노동이다. 여물 한 삽, 물 한 바가지, 똥 한 번 치우는 것. 남들 눈엔 단순하고 하찮아 보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 하찮은 반복이 모여야만 비로소 하나의 생명을 키워낼 수 있다. 때때로, 그 하찮은 반복이 꺼져가는 불씨를 붙들기도 한다. 유독 약하게 태어나는 송아지들이 있다.
“소도 사람이랑 임신 기간이 비슷해요. 출산 일주일 전부터 계속 예의주시하는 거예요. 꼬리가 바짝 들리면 곧 새끼가 나온다는 징후예요. 밤에 꼬리 들기 시작한다? 밤샐 각오 해야 하는 거죠. 1차 양수가 터지면 보통 1시간 안에 2차 양수가 터져요. 그러고 다시 1시간 안에 새끼를 낳아야 하는데, 초산우들이 대체로 한 번에 쑥 못 낳더라고요. 열 마리 중 서너 마리가 그래요.”

머리부터 나오는 사람과 달리, 송아지는 앞다리부터 나온다. 그 상태에서 더 이상 힘주지 못하고 걸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송아지도 문제지만, 어미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 그럴 때는 어미 몸 밖으로 삐져나온 송아지 앞다리 두 짝을 밧줄로 잘 동여매 도르래에 건다. 어미가 힘주는 타이밍에 맞춰 도르래를 당긴다. 억지로 빼낸 송아지는 양수 먹었을 확률이 높다. 뒷다리 잡아 빨래 널 듯 거꾸로 5분쯤 걸어놓는다. 꿀럭꿀럭. 양수 토해내면 곧바로 어미 옆에 놔준다. 그때 어미가 정성스럽게 핥아주고 초유 먹이면 끝나는 거고, 안 돌봐주거나 심한 경우 새끼를 들이받기도 하는데 그러면 얘기가 복잡해진다.
“이산(二産)부터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는데, 초산우 중에 새끼를 힘들게 낳았거나 타고나길 모성애 없는 녀석들이 있어요. 보통 6시간 안에 초유 못 먹으면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져 폐사할 수도 있거든요? 지켜보고 있다가 어미가 젖 먹일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러면 미리 받아서 보관해 놓았던 초유를 젖병에 담아다가 먹여요. 그때 살고 싶어 하는 애들은 쭉쭉 빨아먹는 거고, 삶의 의지가 없는 애들은 입에 밀어 넣어줘도 안 빨아요. 그럴 때는 큰 주사기에 초유 담아서, 아가리 억지로 벌려서 짜 넣거나, 그것도 안 되면 포카리스웨트라도 따뜻하게 데워서 억지로 흘려 넣는 거죠. 그렇게 진짜 어렵게 어렵게 살린 애들이 몇몇 있어요.”

그렇듯 특별한 경우 제외하고, 보통은 3개월 때까지 어미 곁에서 젖을 빤다. 잘 먹고 잘 자란 송아지는 이리저리 통통 튀어 다닌다. 칸막이가 높지 않아, 뒷심 좋은 녀석들은 훌쩍 뛰어넘기도 한다. 정환 씨는 그런 녀석들을 애정담아 ‘불량 송아지’라고 칭한다. 불량 송아지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우방을 탈출한다. 멀리 가진 않는다. 축사 근처 돌아다니며 킁킁거린다. 풀어놓고 키우는 강아지들과 어울리는가 하면, 사료 포대를 죄 뜯어놓기도 한다. 그런 녀석이 태어나면 잡으러 다니는 게 일이다. 최근에도 불량 송아지가 한 마리 태어났다. 잡아다 넣어놓으면 또 탈출하고, 잡아다 넣어놓으면 또 탈출하기에 그냥 좀 놔둬 봤더니, 이제는 알아서 놀다가 밥때 되면 알아서 돌아와 어미 젖을 빤다.
“그러다가 3개월 전후로 어미 젖을 떼야 해요. 어미랑 붙여놓으면 젖을 계속 빠니까 3개월 지나면 육성우 모아놓은 우방으로 분리하는 거죠. 그러면 또 난리가 나요. 어미도 울고, 새끼도 울고. 어쩌다 타이밍이 맞아서 일주일 안에 너덧 마리가 한 번에 태어날 때도 있거든요? 한꺼번에 젖 떼면 어미 소 너덧 마리에 새끼들까지 해서 열 마리가 몇 날 며칠을 울어 젖히는 거예요. 그럴 때는 진짜 온마을이 쩌렁쩌렁 울려요.”

출하
7~8개월가량 키운 수송아지는 우시장에 내다 판다. 축협에 신청하면 경매 일자를 정해준다. 경매 날은 새벽 5시에 일어난다. 정환 씨가 평소 몰고 다니는 1톤 트럭에 송아지를 한 마리, 한 마리 싣는다. 키가 182cm에 몸무게만 100kg이 넘건만, 혼자 힘으론 감당이 안 된다. 잘 키운 수송아지는 평균 200kg이다. 그럴 때면 아버지가 도와준다. 그렇게 너덧 마리 한 번에 태워 서산으로 간다. 현장에 도착하면 축사마다 정해진 자리가 있다. 그 자리에 너덧 마리를 함께 묶어둔다. 언제였던가. 그날따라 내다 팔 송아지가 한 마리밖에 없었다. 그놈이 하필이면 또 어렵게 살려 키운 녀석이었다.
“그놈 살린다고 고생 진짜 많이 했었거든요? 초유도 제가 직접 먹였고, 그러고도 어미가 젖을 안 줘서, 두 달 동안 아침저녁으로 분유 타서 먹여가며 키웠단 말이죠. 평소 같으면 너덧 마리 한 번에 데려가서 같이 묶어놓으니까 그런 생각이 안 드는데, 그 녀석 혼자 덩그러니 묶어놓고 나오려니까 괜히 마음이 짠하고 그렇더라고요. 그날은 좀 발걸음이 안 떨어졌던 거 같아요.”
거세 비육우 출하할 때도 마음이 유쾌하지만은 않다. 많이는 아니지만, 정환 씨 축사에서도 거세 비육우를 몇 마리씩 키운다. 이 녀석들 출하할 땐 5톤짜리 ‘소차’를 부른다. 살을 많이 찌운 녀석은 무게가 1톤에 육박한다. 한 덩치 하는 정환 씨도, 네 다리 딱 버티고 선 비육우와 마주하면 그 무게감에 압도당한다. 그렇듯 위엄 뿜어내는 녀석들도 소차가 오면 운다. ‘음매’하고 우는 게 아니라, 진짜로 눈물을 주룩주룩 흘린다. 도축장 드나드는 소차엔 그 특유의 냄새와 기운이 담겨 있다는 거다.

“자신들이 죽으러 간다는 걸 아나 봐요.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만, 한마디로 지랄발광해요. 눈물을 뚝뚝 흘려가면서 안 가겠다고 버티는 거죠. 그런 모습 보면서 마냥 기분 좋을 사람이 몇이나 있겠어요. 어쨌든 내 손으로 30개월이나 먹여서 키운 놈들인데. 소들도 저마다 얼굴이 달라서 1년만 키워도 누가 누군지 다 구분할 수 있거든요. 솔직히 송아지 출하할 땐 그 정도까진 아니에요. 송아지들이야 당장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말하자면 다른 축사로 입양 보내는 셈이니까 아무래도 죄책감이 덜 하죠. 거세 비육우 출하하고 나면 한동안 마음이 싱숭생숭해요.”
그럴 때마다 정환 씨는 마음을 다잡는다. 축사에서 몇 년 보내며 다짐한 거다. 애지중지 키워서 떠나보내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되, 개별 소 하나하나에 정 주진 말자고. 150마리 키운다는 건, 150배의 생로병사를 감당하는 일이다. 태어나고, 때로는 병들어 죽고, 또 많은 경우는 건강하게 자란다. 걔 중 어떤 녀석들은 새끼를 너덧 번씩 빼고 끝내는 살까지 찌워 비육 암소로 출하하기도 한다. 몇몇 소는 정환 씨보다도 축사 ‘짬밥’이 많다. 또 그 가운데는 유달리 새끼를 잘 빼 108월째 축사 지키는 터줏대감도 있다. 그 모든 순간에, 그 모든 소에게 일희일비 감정 소비하다 보면 다음 일을 할 수가 없다. 한 마리에 신경 쓰고 있으면 나머지 149마리를 굶길 수도 있다. 그게 축사 일이다.
개량
소 키운다는 건 결국, 소를 먹인단 얘기다. 소는 농후사료(곡물, 깻묵 같은 진한 사료)와 조사료(섬유질이 많은 풀 사료) 둘 다 먹여야 한다. 농후사료는 소에게 에너지와 영양소를 공급해 준다. 건강하게 키우고 살을 찌우는 역할이다. 조사료는 약간의 영양소도 영양소지만, 되새김질하게 만들어 소화를 도와준다.

정환 씨 축사 기준, 150마리 키우는데 한 달 사룟값만 1,000만 원이 넘는다. 그걸 무게로 따지면 한 달에 약 16.5톤이고, 매일매일 545kg씩 먹이는 거다. 거세 비육우의 경우 31개월에 출하할 때까지 사료만 7톤 먹어 치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한우 비육우 두당 평균 사육비가 1,006만 원이라고 나온다. 우시장에서 송아지 사 오는 데 평균 330만 원, 사룟값이 평균 411만 원, 여기에 기타 잡비 더한 값이다.
“저희도 비육우 출하한다고 했잖아요. 부천 경매장으로 가는데, 현장에서 다들 하는 말이 인건비까지 생각했을 때 솟값 1,000만 원 받으면 손해, 1,200만 원 받으면 똔똔이라고 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비육우 실어 가려면 5톤짜리 소차 불러야지, 가서 또 도축비니, 경매 수수료 같은 거 내야 하니까, 소 한 마리에 최소 50만 원은 추가된단 말이죠.
최근에도 거세 비육우 네 마리 싣고 갔는데, 한 녀석이 투뿔 나인(여기에서 1++는 육질등급, 9는 근내지방도 즉 마블링 점수를 뜻한다. 근내지방도는 1~9까지 있다. 그러니까 투뿔 나인이면 최고 등급인 거다.) 뜨는 바람에 그날 최고가 경신했거든요. 킬로당 31,000원. 그나마 그 녀석을 1,800만 원에 팔아서 괜찮았지, 나머지 놈들은 다 손해거나 똔똔이었어요.”

더욱이나 요 몇 년 사룟값이 크게 올랐다. 수입 옥수수가 주재료인 농후사료는 국제 정세 따라 가격이 요동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 자료에 따르면 2018~2020년 평균 394원/kg 수준이던 사룟값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기점으로 폭등해 500원/kg대로 올랐다. 2026년엔 급기야 600원대(2026년 1월 611원/kg)를 돌파했다. 몇 년 사이 1.5배 오른 거다.
“저희 축사는 그동안 품질 개량에 신경을 많이 써서 당장 수익 낸다는 생각보단 투자한다는 개념으로 버텨왔거든요. 작년 기준으로 보자면 1년 동안 사룟값만 1억 넘게 들었는데, 수송아지는 평균 450만 원으로 20마리(약 9,000만 원 수익)쯤 내다 팔았으니까요. 엄마랑 저랑 두 사람이 달라붙어서 수익을 낸 게 아니라, 거꾸로 돈을 까먹은 거죠. 하하하. 아버지가 중장비 굴려서 번 돈으로 계속 재투자했던 거예요. 그래도 그렇게 개량한 덕에 말씀드린 것처럼 최근에 최고가도 경신했었고, 적어도 태안 바닥에서 품질로만 따지자면 1등 한다고 자부합니다.”

그러니 소 키워서 큰돈 번다는 건 옛말이다. 그나마 정환 씨는 아버지가 기반 다져놓은 덕에 쉽게 자리 잡았다. 한마디로 ‘축산업 금수저’다. 처음부터 땅 사서 축사 짓고, 트랙터 같은 중장비라도 한두 대 갖다 놓고 시작하려면 5억 원으로는 턱도 없다. 최소 10억 원은 있어야 시작할 수 있는 게 축산업이라고, 정환 씨는 혀를 둘렀다.
“그래서 귀농 귀촌한 청년 중에 빚잔치하다가 자살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농사든 축산이든 예전처럼 맨몸으로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에요. 땅도 있어야 하고, 이런저런 중장비도 갖춰야 하고, 무엇보다도 경험이 있어야 하거든요. 혈혈단신으로 대출받아서 농사짓다가 경험 없으니까 망치고, 빚은 빚대로 늘어나고, 감당이 안 되는 거죠. 축산도 마찬가지예요. 10억 원 정도 투자하면 400~500두 세팅할 수 있는데, 그 정도 규모 관리하려면 새벽 6시부터 밥 주기 시작해서 저녁 늦게까지 종일 붙어있어야 해요. 그렇게 해봐야 한두 사람 인건비 나오는 건데, 빚은 언제 갚냐는 거죠.”
농사
먹으면 싼다. 섭리다. 먹었을 때, 일부는 몸으로 스며 영양분이 되고, 다른 일부는 몸 밖으로 나와 똥이 된다. 정환 씨 축사는 여름엔 3주, 겨울엔 4주에 한 번 축사를 갈아엎는다. 축사에선 보통 너덧 마리가 함께 지낼 수 있게 칸막이를 구분한다. 우방이라 부른다. 우방은 다시 앞 칸과 뒤 칸으로 나눈다. 중간에 칸막이를 설치해 여닫을 수 있다.

똥 치우는 날이면 정환 씨가 한쪽으로 소를 몰아 칸막이를 걸어 잠근다. 그러면 아버지가 트랙터 몰고 와 다른 쪽 바닥을 긁어낸다. 긁어낸 똥은 곧장 축사 옆 퇴비사에 쌓는다. 그러고 바로 옆 창고에 들러 트랙터 바가지로 왕겨를 크게 한 바가지 퍼다가 엎어놓는다. 눈삽 들고 기다리던 정환 씨가 수북이 쌓아놓은 왕겨를 고르게 편다. 한쪽으로 몰아놨던 소들을 다시 깨끗해진 칸으로 몰아 칸막이를 걸어 잠근다. 같은 작업을 반복한다. 그렇게 축사 2개 동 갈아엎으려면 꼬박 이틀이 걸린다.
“소한테도 감정이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종종 있거든요? 새로운 왕겨 깔아줄 때가 특히 그래요. 송아지들 뛰어다니는 거야 일상다반사니까 놀라울 것도 없는데, 덩치 커다란 번식우도 왕겨 깔아주면 뒷다리를 퉁기고, 왕겨에 머리를 박아가면서 막 비벼 댄다니까요?
왕겨 값도 많이 올라서 사실 부담이긴 해요. 그래서 4주에 한 번 갈아엎던 걸 5~6주, 심한 데는 두 달에 한 번씩 갈아주는 축사도 있어요. 그런 데 가면 진짜 악취가 나요, 악취가. 근데 직접 오셔서 느끼셨겠지만, 저희 축사는 냄새가 거의 안 나잖아요? 다른 건 몰라도 똥 치우는 주기는 엄격하게 지키고 있어요. 이건 아버지 원칙이에요.”
퇴비사에 쌓아놓은 똥은 발효 과정 거쳐 거름이 된다. 그 거름은 초지(草地)에 뿌린다. 초지란 한자 뜻 그대로 풀을 키우는 땅이다. 정환 씨는 축사 일과 농사일이 따로 있지 않고, 구분할 수 없다고 말한다. 조사료에 해당하는 수입 건초가 1롤(약 150kg)에 10만 원 안팎이다. 안 그래도 치솟은 농후사료값에, 건초까지 사다 먹이자면 타산이 안 나온다. 초지 빌려 풀을 키우면 몸은 좀 고생스러워도 조사료값을 절반쯤 아낄 수 있다.

정환 씨와 아버지는 초지 1만 평을 빌려 1년에 이모작을 한다. 봄기운이 깃든 4월이면 퇴비사에 쌓아둔 거름 퍼다가 초지에 뿌린다. 거름 머금은 땅과 그렇지 않은 땅의 수확량은 비교할 수 없다. 거름이 스며들길 기다렸다가 적당한 때에 흙을 갈아엎는다. 막혀있는 숨길을 다시 터주는 작업이다. 그러고 나서 파종한다. 중간에 한두 번 비료를 준다. 그것 외에 특별히 손을 타진 않는다. 7월부터 수확하기 시작한다. 풀을 베고, 기계로 말아 랩핑하는 작업까지 정환 씨와 아버지가 직접 한다. 한 모작 돌리면 건초 500롤이 나온다.
수확하고 빈 초지엔 곧장 다시 거름을 준다. 흙을 갈아엎고 씨앗을 뿌린다. 2차 파종이다. 농번기인 9월부터 11월까지는 눈코 뜰 새가 없다. 윗집 사는 큰아버지가 벼농사를 크게 한다. 모내기 철과 수확 철에 쫓아다니며 돕는다. 금전이 오가는 건 아니다. 그냥, 도리다.
“9월부터는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소밥을 줘요. 그 시기에는 저도 든든하게 아침밥 챙겨 먹어요. 안 그러면 못 버텨요. 작년에도 9월 한 달에만 10kg이 빠지더라고요. 하하하. 그러고 논에 가는 거예요. 서리가 가시기 시작하면 큰아버지가 콤바인 몰고 들어가서 추수하는 거예요. 저는 1톤 트럭을 논 가에 바짝 대고, 짐칸에 톤백을 부려놔요. 그럼 콤바인이 톤백에 벼를 쏟아내는 거예요. 톤백이 가득 차면 곧장 수매장으로 싣고 가서 내려놓고 오는 거죠. 그렇게 종일 논과 수매장을 오가는 거예요.”

추수 작업은 9월 내내 이어진다. 집에 오면 보통 저녁 8시다. 그런 때, 저녁 소밥은 어머니가 챙긴다. 콤바인이 휩쓸고 간 논엔 볏짚이 성기게, 혹은 군데군데 뭉쳐서 나뒹군다. 10월부터 정환 씨는 빈 논에 기계 끌고 다니면서 볏짚을 말고 랩핑한다. 그 작업만 또 보름이다. 영양가는 거의 없어도, 건초와 섞으면 그럭저럭 쓰임새를 한다. 쉴 틈도 없이 11월부터는 2차로 파종했던 풀을 베러 다닌다. 그 작업까지 끝내야 한 해 마무리다.
풀을 키워 소를 먹이고, 그걸 먹고 싼 똥을 삭혀 땅에 뿌린다. 그리고 그걸 양분 삼아 다시 풀을 길러 소에게 먹이니, 버리는 게 아무것도 없다. 하나의 단계로 끝맺는 게 아니라, 다음 생명의 시작을 열어준다. 죽음과 배설마저 순환한다. 질서다. 그 질서를 정환 씨는 거스르지 않는다. 아버지와 어머니한테 그렇게 배웠다. 덜 삭힌 똥은 거름이 아니라 독이라고 배웠고, 풀이 없대서 언 땅 들춰 씨를 뿌릴 수는 없는 거라고, 모든 일에는 적당한 때가 있는 거라고, 그렇게 배웠다. 소와 풀과 똥과 땅과 태양과 시간과 노동이 얽히고설켜 빚어낸 세계에서, 정환 씨는 지배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순응하고, 동행한다.

“아침마다 축사 문을 활짝 열잖아요. 그럼 150마리의 소가 일제히 영롱한 눈으로 절 바라봐요. 물론 빨리 밥 달라는 얘기겠죠. 그래도 저는 그때마다 에너지를 얻어요. 가끔은 제가 소를 키우는 게 아니라, 소들이 저를 키워주는 것 같아요. 하하하.”

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꼬마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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