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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와 이병태의 논리는 화자의 입이 국가나 제도에 의해 막히는 장면을 매우 빠르게 포착한다. 

 

“혐오 발언이라도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면, 법이나 제도로 징계해서는 안 된다.”

 

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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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Linked in>

 

이들은 그러한 혐오 발언의 힘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학교와 직장, 공론장에서 입을 닫는 장면에 대해선 ‘표현의 자유’를 적용하지 않는다. 

 

왜 이 부분은 자유의 문제로 보지 않는가.

 

자유를 판단하는 데에는 서로 다른 두 질문이 있다. 

 

“누가 나를 방해했는가”

 

“누가 마음만 먹으면 나를 좌우할 수 있는가”

 

두 질문은 비슷해 보이지만 같은 자유를 묻지 않는다.

 

첫 번째는 실제로 어떤 간섭을 받았는지를 묻는다. 두 번째는 지금 당장 간섭이 없더라도 다른 사람의 자의에 매여 있는지를 묻는다. 아무도 오늘 내 입을 막지 않았더라도, 내가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다면, 나는 정말 자유로운가.

 

 

간섭받지 않을 자유, 지배받지 않을 자유

 

자유를 보는 첫 번째 방식은 간단하다. 국가나 타인이 내 행동을 직접 가로막지 않는다면, 나는 자유롭다는 것이다. 말하고 이동하고 계약하고 선택하는 일을 실제로 방해받지 않는 상태를 ‘비간섭의 자유’라고 부른다. 자유지상주의와 보수적 자유주의는 대체로 이 자유를 중심에 놓는다.

 

이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실제 간섭이다. 누가 내 입을 막았는가, 누가 이동을 금지했는가, 누가 선택을 강제로 바꾸었는가를 묻는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우선 자유는 침해되지 않은 것으로 본다.

 

비지배의 자유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실제로 방해받지 않았더라도 다른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내 삶을 좌우할 수 있다면, 자유롭지 않다고 본다. 자유는 간섭이 없는 상태만이 아니라, 누구의 자의에도 종속되지 않는 상태여야 한다는 것이다.

 

고전적인 사례가 선한 주인과 노예다. 주인이 오늘 아무 명령도 하지 않고 친절하게 대한다고 해도 노예는 자유롭지 않다. 주인이 내일 마음을 바꾸면 그의 노동과 이동, 재산과 삶의 조건을 모두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비간섭의 자유론은 오늘 명령이 없었다는 사실을 본다. 비지배의 자유론은 명령할 권력이 여전히 주인에게 있다는 사실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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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두 자유론은 같은 상황을 두고도 다른 판단을 내린다. 비간섭 자유론은 권력이 실제로 사용됐는지를 묻는다. 비지배 자유론은 그 권력이 한쪽에 자의적으로 집중돼 있는지를 묻는다. 간섭이 없다고 지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혐오 표현의 문제에서도 차이는 그대로 드러난다. 발화자가 국가나 제도의 제지 없이 말했다면 비간섭의 자유는 보장된 것이다. 이 관점에서는 누가 그 발언을 막았는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러나 비지배의 자유론은 그다음 장면을 본다. 공격의 대상이 된 사람이 언제 다시 조롱과 배제의 표적이 될지 몰라 스스로 입을 닫고, 다수나 권력자의 기분에 맞춰 행동해야 한다면 그는 지배받고 있는 것이다. 법적으로 말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말하는 순간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면, 발언권은 있어도 자유는 없다.

 

비간섭의 자유는 화자의 입을 누가 막았는지를 묻는다. 비지배의 자유는 그 화자의 말과 힘 때문에 누가 고개를 숙이고 침묵하게 됐는지를 함께 묻는다.

 

 

말할 힘이 다른데 자유가 같은가

 

법적으로는 대통령도 시민도, 교장도 학생도 말할 자유를 가진다. 형식만 보면 모두 같은 권리를 누린다. 그러나 같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힘으로 말한다는 것은 전혀 다르다.

 

대통령의 말은 정책의 방향을 바꾸고, 언론의 말은 여론을 만들며, 교사의 말은 학생의 평가와 학교 생활에 영향을 준다. 고용주의 말은 노동자의 생계와 승진을 좌우하고, 다수집단의 말은 누가 정상이고 누가 낯선 존재인지를 정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를 논할 때에는 말의 내용뿐 아니라 누가 어떤 지위에서 말하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

 

“나쁜 말에는 더 좋은 말로 맞서라”는 원칙도 양쪽이 동등한 화자로 남아 있을 때에만 제대로 작동한다. 한쪽이 왕따와 낙인, 신상털기와 집단공격으로 상대의 신뢰와 안전을 무너뜨린다면, 더 많은 말로 맞서라는 요구는 공정한 토론의 원칙이 아니라 이미 기울어진 싸움을 계속하라는 명령이 된다.

 

교사가 특정 학생을 문제아로 낙인찍거나 다수 학생이 한 사람을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면, 아무도 공식적으로 침묵을 명령하지 않아도 그 학생은 입을 닫게 된다. 상사의 말 한마디가 인사와 업무 배치에 영향을 미치는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보복이 두려워 말하지 못한다면 금지명령이 없었다는 사실은 자유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

 

비간섭의 자유만을 앞세우는 논리는 화자의 입을 막지 않는 일을 공적 권리로 다루면서, 그 말로 위축된 사람이 다시 말할 힘을 회복하는 일은 개인의 몫으로 돌리기 쉽다. 말한 사람의 자유는 국가와 제도가 지켜주지만, 침묵하게 된 사람에게는 상처를 견디고 더 강해지라고 요구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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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 링크

 

회복력을 키우라는 조언이 피해자에게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공격한 사람의 책임을 없애지는 않는다. 강해지라는 말은 상처받은 사람에게 줄 조언일 수는 있어도, 타인을 약하게 만들 자유의 근거는 아니다.

 

모두에게 말할 권리가 있다는 선언만으로 자유가 평등해지는 것은 아니다. 누가 더 크게 말할 수 있는지, 누구의 말이 다른 사람의 기회와 평판을 바꾸는지, 누가 상대를 침묵시킬 힘을 갖고 있는지도 물어야 한다.

 

 

국가는 물러났지만, 힘센 사람은 남는다

 

비간섭의 자유는 경찰과 법률, 검열처럼 국가가 개인의 행동을 직접 가로막는 장면을 잘 포착한다. 국가권력이 시민의 입을 막거나 이동과 선택을 제한할 때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문제는 자유를 국가의 간섭 여부로만 판단할 때 생긴다. 기업과 고용주, 임대인과 학교, 플랫폼과 다수 집단이 가진 힘은 자유의 문제로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국가는 물러나 있어도 다른 권력은 여전히 사람의 생계와 주거, 평판과 발언 기회를 좌우한다.

 

시장 안의 계약도 언제나 대등한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와 고용주가 같은 계약서에 자발적으로 서명했다고 해도, 한쪽에는 생계가 걸려 있고 다른 한쪽에는 여러 대안이 있다면 선택의 무게는 같지 않다. 형식적 동의가 곧 권력의 평등을 뜻하지는 않는다.

 

국가가 개입하지 않았고, 모두에게 같은 규칙이 적용됐다는 사실만 강조하면, 그 결과는 개인의 노력과 능력의 차이로 설명되기 쉽다. 성공한 사람은 더 유능하고 성실했기 때문에 올라갔고, 밀려난 사람은 경쟁에서 부족했기 때문에 뒤처졌다는 서사가 만들어진다.

 

비간섭의 자유가 불평등을 반드시 만들어낸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비간섭만 세는 자유론이 이미 존재하는 힘의 차이를 자유로운 경쟁의 공정한 결과처럼 보이게 하기 쉽다는 데 있다. 출발선의 차이와 관계의 종속은 사라지고, 마지막 결과만 개인의 성취와 실패로 남는다.

 

혐오 표현의 문제에서도 구조는 비슷하다. 힘 있는 화자의 말이 다른 사람의 평판과 기회, 공동체 안의 지위를 흔들어도 국가가 직접 막지 않았다면 자유로운 의견 경쟁으로 처리된다. 반면 공격받은 사람이 위축돼 침묵하면 그것은 자유의 손실이 아니라 논쟁에서 밀린 결과로 해석된다.

 

오늘날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일부 보수 논자들은 이런 비간섭의 자유를 자유 전체처럼 제시한다. 국가가 손을 떼고 형식적으로 같은 규칙만 적용하면 자유가 보장됐다고 본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 누가 누구의 생계와 지위, 발언 기회를 좌우하는지는 자유의 바깥으로 밀려난다.

 

국가는 물러났지만, 힘센 사람은 남는다. 그런데 비간섭만 보는 자유론은 그 힘을 지배가 아니라 성공으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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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AFP>

 

 

평등은 자유의 반대가 아니다

 

보수적 담론은 흔히 자유와 평등을 서로 맞바꾸어야 하는 가치처럼 놓는다. 자유를 넓히면 평등이 줄고, 평등을 높이려면 자유를 일부 포기해야 한다는 구도다. 이 관점에서 평등은 자유를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이거나, 자유를 제한하는 장치로 이해된다.

 

그러나 비지배의 관점에서는 평등의 의미가 다르다. 평등은 자유를 줄이는 가치가 아니라, 자유가 실제로 가능해지기 위한 조건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허락과 호의, 변덕에 매여 있다면 법적으로 같은 권리를 갖고 있어도 자유롭다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평등은 모두에게 같은 결과를 나누자는 뜻이 아니다. 누구도 생계와 발언, 참여와 존엄을 다른 사람의 선의에 맡기지 않아도 되는 관계를 만들자는 뜻이다. 자유의 핵심은 똑같이 갖는 데 있지 않고, 누구도 타인의 자의에 종속되지 않는 데 있다.

 

힘 있는 사람은 아무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고, 약한 사람은 불이익을 두려워해 끊임없이 눈치를 봐야 한다면 형식적으로는 둘 다 자유롭다. 그러나 실제로 자유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한쪽뿐이다. 평등은 자유의 대가가 아니라, 자유가 모두의 것이 되기 위한 조건이다.

 

그렇다고 비지배의 자유가 국가의 개입을 무조건 늘리자는 뜻은 아니다. 국가 역시 거대한 지배자가 될 수 있다. 권력이 무엇이 혐오이고 허위인지를 자의적으로 판정하고, 불편한 의견을 규제하기 시작하면 시민은 다시 국가의 판단과 허락에 종속된다.

 

그래서 제도적 규율에는 분명한 한계와 절차가 필요하다. 무엇을 금지하는지 명확해야 하고, 제재는 해악에 비례해야 하며, 당사자에게 반론과 재심의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 규율의 목적은 불편한 말을 없애는 데 있지 않고, 누구도 타인의 권력 때문에 침묵하거나 복종하지 않도록 하는 데 있어야 한다.

 

자의적인 혐오도 지배이고, 자의적인 검열도 지배다. 자유의 과제는 한쪽 권력을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자의에 맡겨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자유를 넓힌다는 것

 

자유주의가 지켜낸 자유를, 자유주의가 스스로 좁혀서는 안 된다. 국가가 시민의 생각과 말을 재단하지 못하도록 막아온 성취는 분명하다. 그러나 자유를 국가가 직접 간섭하지 않는 상태에만 묶어두면, 국가가 물러난 자리에서 고용주와 다수집단, 학교와 플랫폼, 힘 있는 화자가 행사하는 지배는 자유의 문제에서 빠져나간다.

 

말하는 사람이 방해받지 않을 자유만 자유가 아니다. 그 말 앞에서 누구도 침묵하거나 복종하지 않을 자유도 자유다. 폭력을 몸의 손상에만 가두면 말과 기술, 관계와 규범이 인간에게 가한 파괴를 놓친다. 마찬가지로 자유를 비간섭에만 가두면, 법적으로는 입을 열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하는 사람의 부자유를 보지 못한다.

 

자유의 한 형태를 자유 전체로 부를 수는 없다. 누구도 입을 막히지 않고, 누구도 다른 사람의 말과 권력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을 때 비로소 자유는 모두의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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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임권산

마빡 디자인: 임권산

기사: 임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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