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요리란 무엇인가
영국 왕실과 귀족 연회는 유럽에서도 손꼽힐 만큼 화려했다. 그런데, 왜 오늘날 영국 음식은 단순하고 맛없는 음식이라고 평가받게 되었을까?
먼저 현대인들에게 좋은 요리 혹은 맛있는 음식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출처 - 영화 <바베트의 만찬>
다양한 재료와 오랜 조리 시간. 프랑스의 오트 퀴진(haute cuisine)은 이러한 전통 위에서 발전했다. 프랑스에서 셰프의 실력은 단순히 좋은 고기를 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육수를 수십 시간 우려내고, 와인과 버터, 허브를 이용해 소스를 만드는 등 여러 단계의 조리를 통해 재료를 새로운 요리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평가받는다.
반면 영국에선 좋은 음식은 재료에 손대지 않는 편이다. 다양한 소스와 조리법은 있으나 지나치게 많은 양념으로 본래 맛을 덮기보다 재료 본연의 풍미를 살리는 것이 더 좋은 요리라고 생각한다. 로스트비프나 로스트램, 구운 생선을 떠올리면 된다. 겉으로 보면 조리가 단순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쉬운 음식은 아니다. 원래 기본이 제일 어려운 법.
값싼 고기는 강한 소스와 향신료로 부족한 맛을 보완한다. 그러나 좋은 소고기는 오히려 재료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 숙성 상태를 판단해 부위에 따라 불의 세기를 달리하고, 겉면은 충분히 익히면서 속은 원하는 익힘을 내야 한다. 조금만 과하게 익혀도 이 훌륭한 재료는 순식간에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내놓는 평범한 스테이크가 된다.

출처 - (링크)
오늘날 영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셰프들을 생각해 보자. 고든 램지는 대중에 불같은 성격으로 유명하지만, 요리사들이 인정하는 그의 강점은 고기와 생선을 다루는 정확도다. 스테이크 한 조각과 생선 한 마리를 가장 이상적인 상태로 익혀내는 능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 평가받는다. 화려한 장식보다 재료 상태와 조리 정확성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이것이 영국 요리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을 대표하는 스타우어헤드 정원
출처 - (링크)
이러한 태도는 음식 외에도 나타난다. 영국은 오래전부터 지나친 과시보다 절제를 미덕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프랑스 베르사유 정원을 인간이 자연을 완벽히 통제하려는 의지라고 본다면, 영국식 정원은 자연 그대로의 곡선과 풍경을 살리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영국 신사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태도를 교양으로 여기며, 좋은 것은 억지로 과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드러난다고 믿었다. 음식에서 보이는 미학과 비슷하다.
그러나 단점이 있다. 언제나 좋은 재료만을 공수할 수는 없다. 프랑스 요리가 조리 기술을 통해 재료의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했다면, 영국 요리는 재료 의존도가 높아 식량 부족이 왔을 때 어떤 나라보다 빠르게 매력을 잃는다.
산업 혁명, 식탁 문화를 바꾸다
산업 혁명은 영국인의 식탁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이 변화는 오늘날 우리가 영국 음식을 떠올릴 때 갖는 '맛 없다'는 이미지의 출발점이 되었다.

출처 - (링크)
산업 혁명 이전,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농촌에 거주했다. 농사를 짓고, 집에서 빵을 굽고, 가족들이 함께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부터 상황이 급격히 달라졌다. 수백만 명이 농촌을 떠나 런던을 비롯한 맨체스터, 버밍엄, 리버풀과 같은 산업 도시로 몰려들었다. 농부는 공장 노동자가 되었고, 새소리 대신 공장의 사이렌 소리에 맞춰 하루를 시작했다.
농촌에서 채소를 키우고, 빵을 굽고, 고기를 손질하는 등 식사를 준비하는 일은 노동의 일부였다. 반면 하루 열두 시간 넘게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식사는 천천히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아니라 다시 일하기 위해 허기와 열량을 빠르게 채우기 위한 시간이었다. 진한 스튜를 한 냄비 끓여 여러 사람이 나눠 먹고, 빵, 감자, 죽, 파이를 중심으로 열량 보충 식사가 늘었다.

출처 - (링크)
파이는 산업 혁명 시대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밀가루 반죽은 속 재료를 보호하는 그릇이고, 그 속엔 남은 고기와 채소를 넣어 한 끼 식사로 만들었다. 오늘날 영국의 미트파이가 서민 음식의 상징이 된 것 역시 이 시기와 관련이 있다.

출처 - (링크)
도시화는 여성의 역할도 바꾸었다. 공장이나 서비스업으로 진출하며 예전처럼 하루 종일 집에서 음식을 준비하기 어려워졌다. 시장에서 이미 만들어진 음식을 사 먹거나 짧은 시간 안에 조리할 수 있는 음식을 찾았다. 이 시기에 등장한 또 다른 메뉴가 피쉬 앤 칩스다. 값싸고 구하기 쉬운 흰살생선을 기름에 튀겨 한 방에 높은 열량을 제공한다. 오늘날 영국 하면 떠오르는 피쉬 앤 칩스는 전통 음식이 아닌 산업 사회가 만들어 낸 근대 음식이었다.
산업 혁명은 영국 음식의 수준을 떨어뜨렸다기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일부 계층의 식단을 단순하게 만들었다. 크게 사회 전체를 보았을 때는 계층 간 식생활을 둘로 갈라놓으며 상류층과 노동 계층의 식탁 격차를 키웠다. 영국 음식이 소박하다는 이미지는 사회 구성원의 절대다수인 노동자 계층의 식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계 대전이 남긴 상흔
이후 유럽에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 벌어진다. 이 사건은 영국인의 식탁을 백팔십도로 바꾸어 놓았다.

출처 - (링크)
가장 큰 이유는 식량 배급제다. 섬나라 영국, 평소엔 바다를 통해 세계 각지의 식재료를 실어 날랐지만, 전쟁 이후 바다는 큰 약점이 되었다. 독일 해군의 유보트(U-boat)는 대서양을 오가는 수송선을 끊임없이 공격했고, 영국은 식량 수급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많은 식품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던 터라 해상 교통이 막히자, 국민 식탁도 함께 흔들리게 된다.
정부는 식량 배급제를 시행한다. 버터, 설탕, 베이컨, 고기, 치즈, 달걀, 차까지 거의 모든 주요 식품이 배급 대상이 되었다. 식료품점에 가기 위해서는 배급표가 필요했고, 돈이 있어도 원하는 만큼 살 수 없게 되었다. 문제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러한 생활이 계속되었다는 점이다. 2차 대전 직후에도 식량 사정은 회복되지 않았고, 오히려 국가 경제는 곤두박질쳤다. 마지막 배급 품목인 고기가 자유롭게 판매되기 시작한 것이 1954년이다. 영국은 승전국이었지만, 이들의 먹거리는 오랫동안 전쟁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출처 - (링크)
이 시기 정부 홍보물이나 요리책을 보면, 당시 분위기가 드러난다. 정부는 제한된 재료로 건강하게 식사하는 법, 남은 음식을 버리지 않는 방법, 적은 양의 고기로 가족을 먹이는 방법 등을 소개한다. 문제는 영국의 식문화에 대한 전통 자체가 이러한 상황에 가장 취약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영국 요리는 좋은 재료의 맛을 최대한 끌어내는 데 강점이 있다. 재료의 신선함이 보장되었을 때 비로소 영국 음식은 그 가치를 발휘했다. 이러한 상태로는 요리에 창의성을 더하기 어려웠다. 으깬 감자, 삶은 양배추, 간소한 스튜 정도가 일상의 식탁을 채웠다. 피쉬 앤 칩스만큼이나 이름이 알려진 영국의 자켓 포테이토도 이러한 배경을 등에 업고 대중화되었다.

영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정어리 파이
세계대전 전후로 많은 미군이 영국에 주둔했고, 이들 대부분은 군부대에서 배급된 음식을 먹었다. 미국인들은 영국 영어를 'posh(우아한)' 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인식은 과거에 더 강했다. 상류 사회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을까, 1960년대 영국을 찾는 미국 관광객들이 꽤 많았다. 그러나 여전히 배급의 흔적이 남아 있던 영국의 식문화는 풍요로운 미국 소비문화와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영국에 주둔했던 미군과 미국 관광객들은 자국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들의 받은 인상은 방송, 신문, 영화 등을 통해 빠르게 퍼졌다.
"영국 음식? 맛이 형편없다"
이제 누구에게나 익숙해진 이 인식은 1960년대 이후 세계인이 공유하는 상식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세와 튜더 시대의 화려한 연회나 대영 제국 시기의 풍요로운 식문화는 세계인의 기억에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오히려 영국이 가장 궁핍했던 시기의 음식 문화가 가장 강하게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글로벌 레시피가 모여드는 곳

출처 - (링크)
최근 영국에서 있었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음식으로 '치킨 티카 마살라'가 뽑혔다. 인도 음식 같지만 놀랍게도 영국에서 탄생한 메뉴다. '치킨'은 닭고기, '티카'는 힌디어와 우르두어로 작게 썬 고기 조각을, '마살라'는 여러 향신료를 섞어 만든 소스를 뜻한다. 기존의 치킨 티카에 새로운 마살라 소스를 더하면서 붙은 이름이다. 이 요리가 탄생한 배경에는 영국 이민의 역사가 있다.
세계 대전으로 젊은 남성을 잃은 영국은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출신 이민자를 받아들인다. 이들이 영국에 정착하면서 인도식 레스토랑도 빠르게 늘어났다. 당시 영국 손님들은 전통 치킨 티카를 맛본 뒤, 맛은 훌륭하지만 먹기에 퍽퍽하다며 소스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한 셰프가 토마토와 크림, 향신료를 섞어 만든 진한 소스를 치킨 티카에 얹어 제공하였는데, 이것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오늘날의 치킨 티카 마살라가 되었다.

출처 - (링크)
이처럼 재료와 뿌리는 인도에 있지만, 영국 이민자들이 영국인의 입맛에 맞게 발전시켰다. 2001년 영국 외무장관 로빈 쿡은 치킨 티카 마살라를 진정한 영국의 국민 음식이라 소개하며 다양한 문화가 융합된 현대 영국 사회를 상징하는 음식이라 평가했다. 물론, 인도 전통 요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영국 음식이라 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인도의 요리법과 영국인의 식성, 식문화가 결합한 퓨전 요리로 영국 이민과 문화 교류가 만들어낸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대영 제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카리브해 지역, 홍콩 등지에서 수많은 이들이 영국으로 이주해 왔다. 그들은 노동력뿐 아니라 음식 문화로 함께 가져왔다. 인도를 대표하는 커리는 영국인의 일상적인 저녁 식사 메뉴가 되었고, 런던에서는 유럽 각국의 음식뿐 아니라 한중일 음식을 하나의 거리에서 모두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세계가 영국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헤스턴 블루멘탈
출처 - (링크)
마르코 피에르 화이트가 영국 요리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면, 고든 램지는 영국 셰프도 세계 최고의 미식 문화를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제이미 올리버는 영국 가정식의 가치를 다시 조명했고, 헤스턴 블루멘탈은 영국 전통 음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세계 미식계에 새로운 충격을 주었다. 특히 런던은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수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달성했으며, 세계 어느 도시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음식 문화를 갖추고 있다.
프랑스 하면 미식의 이미지, 이탈리아 하면 훌륭한 피자와 파스타, 반면 영국은 피쉬 앤 칩스 정도가 떠오른다. 영국 음식이 맛없다는 말이 전쟁 직후의 영국을 두고 하는 말이라면 어느 정도 사실일 수 있으나, 영국 역사 전체를 두고 식문화를 평가한다면 한 시대의 예외적 상황을 한 나라의 문화로 오해하는 셈이 될 수 있다.

편집 : 금성무스케잌
마빡 디자인 : 꾸물
기사 : BRYAN
제보 및 연재 문의
ddanzi.master@gmail.com
검색어 제한 안내
입력하신 검색어에 대한 검색결과는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딴지 내 게시판은 아래 법령 및 내부 규정에 따라 검색기능을 제한하고 있어 양해 부탁드립니다.
1. 전기통신사업법 제 22조의 5제1항에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삭제, 접속차단 등 유통 방지에 필요한 조치가 취해집니다.
2.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청소년성처벌법 제11조에 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을 제작·배포 소지한 자는 법적인 처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4.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에 따라 청소년 보호 조치를 취합니다.
5. 저작권법 제103조에 따라 권리주장자의 요구가 있을 시 복제·전송의 중단 조치가 취해집니다.
6. 내부 규정에 따라 제한 조치를 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