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중앙의 인물은 살인 주모한 백백교 총참모 격인 이경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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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백백교(白白敎)가 세상에 알려지며 사람들은 경악했다. 산속과 계곡, 백백교 근거지 주변에서 암매장된 신도들의 시신이 잇따라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교주와 간부들은 신도의 재산을 빼앗고, 여성을 성 착취했으며, 내부 비밀을 알거나 교단을 떠날 가능성이 있는 자들을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이 사건 이후, 우리 사회에서 '사이비 종교'라고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공포의 이름은 백백교가 되었다.
백백교의 시작, 백도교는 무엇인가?

출처 - 영화 <백백교>
백백교는 백도교(白道敎)에서 출발한 사이비 종교단체다. 한자 흰 백(白)과 길 도(道) 자를 써 하얀 길 또는 순수한 진리의 길을 뜻한다. 백도교가 사용한 백(白)은 흰색이라는 특정 색깔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 동아시아 종교에 자주 등장하는 순결함, 깨끗함, 신성함과 새 시대의 상징이다. 흔히 '백의민족'이라고 하듯, 동학 계열이나 민간 신종교에서는 '새로운 세상'과 같은 개념과 연결하여 흰색을 긍정적 의미로 사용했다.
백도교는 대한제국 말기에 만들어진 신흥 종교로, 전정예(진정운 이라고도 불린다)라는 자가 최초의 창시자다. 1869년 평안북도 영변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동학에 입도한다. 금강산에서 여러 해 동안 기도와 수도를 한 뒤 천지 신령으로부터 계시받았다고 (스스로) 주장하는데, 1899년 무렵에 아버지의 연고가 있던 함경남도 문천 지역에서 자신의 도를 전하기 시작한다. 신도가 늘자 1912년엔 강원도 김화군 오성산에 본거지를 마련한다. 이곳에서 백도교를 정식으로 조직한다.
백도교가 시작된 시점을 두고 1899년과 1912년이 별도로 기재되는데, 그 이유는 1899년은 전정예가 가르침을 전하기 시작한 시점이고 1912년은 오성산에 본거지를 마련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작은 포교 활동이 종교 집단으로 자리 잡기까지 십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출처 - 영화 <백백교>
처음부터 새로운 형태의 종교를 창안한 것은 아니다. 백도교는 동학에서 갈라져 나온 신종교로 동학의 가르침을 따랐다. 다만, 이를 그대로 계승하기보다 민간 신앙과 산중 수도, 천지 신령에 대한 믿음, 신선 사상과 무병장수에 대한 염원을 결합했다. 신도들은 주문을 외우고 하늘과 땅에 예배하면 병 없이 오래 살 수 있으며, 종국에는 신선과 같은 존재가 된다고 믿었다. 교주 전정예도 늙거나 죽지 않는 지상의 신선으로 여겨졌다.
지금의 관점에서 이러한 교리는 황당하게 들리지만,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단순히 무지와 미신으로 치부하기엔 어려운 측면이 있다. 19세기 말 조선은 사회를 지탱하던 기존의 세계관이 무너지고 있었다. 오랫동안 백성의 삶에 깊이 관여하던 왕조의 권위가 흔들리고, 외세의 침입과 정치적 혼란이 이어졌다. 나라는 안팎으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농민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전염병과 기근이 반복되었다. 동학농민운동이 진압된 뒤에도 새로운 세상을 향한 민중의 열망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변화가 종교의 영역으로 옮겨갔다.
동학이 말한 새로운 세상, 인간 존엄, 낡은 질서의 종말이라는 사상은 이후 여러 종교 운동으로 갈라져 나갔다. 백도교도 이 중 하나였다. 보호받지 못한 백성들은 '무병장수'와 '신선' 같은 백도교의 언어에 혹할 수밖에 없었다. 혼란의 시대에 병들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다는 약속은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전정예는 종교 진리를 설명하는 스승이나 교주가 아닌 하늘의 뜻을 받은 자, 보통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능력을 지닌 자, 다가오는 새 시대의 비밀을 아는 자로 인식되었다. 그에겐 특별한 권능이 있었다.
신이 되겠다는 욕망
자신이 하늘의 뜻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것과 자신이 곧 하늘의 뜻이라 주장하는 건 전혀 다르다. 전자는 가르침을 통해 검증될 수 있지만, 후자는 의심하는 행위 자체를 죄로 만든다. 교주의 말과 행동을 판단하는 기준이 사라지고, 교주의 존재가 진리의 유일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백도교에 관한 자료의 상당 부분은 훗날 백백교 사건이 폭로된 뒤 작성된 경찰 기록이나 언론 보도와 식민지 당국의 조사에 의존한다. 백백교가 저지른 범죄가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탓에 그 전신인 백도교 역시 처음부터 동일한 목적을 가진 범죄 조직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동두천시 마차산의 한 동굴 근처에서 발견된 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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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교에는 이미 교주 신격화, 비밀 포교, 불로장생의 약속처럼 위험하게 변질될 요소가 분명히 존재했다. 다만 백도교 안에 위험의 씨앗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 씨앗이 반드시 백백교라는 결과로 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백백교에 나타난 조직적 살인과 극단적인 공포 정치는 전정예가 죽고 난 뒤, 교단 분열과 전용해(전정예 둘째 아들)의 권력 장악을 거치며 훨씬 체계화되었다.
전정예의 포교 방식은 비밀 결사의 형태로 은밀하게 이뤄졌다. 이러한 방식을 '은도'라고 부르는데, 공개적으로 간판을 걸고 누구나 출입할 수 있는 종교가 아니라 이미 신도가 된 사람의 소개와 신뢰 관계를 통해 새로운 신도를 끌어들이는 방식이었다. 백도교의 비밀스러운 운영은 당시 종교 환경과도 관련이 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에 활동을 시작했다. 비밀 포교는 교단이 신도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지만, 식민 권력의 감시를 피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다.
일본은 조선을 병합한 뒤, 불교와 기독교(천주교와 개신교)를 제도권 종교로 인정하고, 동학 계열이나 증산 계열을 비롯한 자생 신종교는 유사 종교로 분류했다. 종교로 인정받은 집단이 행정기관의 관리 대상이라면, 유사 종교는 경찰의 감시와 단속 대상이었다. 당시 총독부가 파악한 신종교 집단만 해도 70여 개에 이르렀고,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은 집단이 활동했을 거로 추정한다.
다만 모든 신종교가 백백교처럼 범죄 집단은 아니었다. 같은 동학의 뿌리에서 나온 천도교는 독립운동과 민중 계몽운동에 참여했고, 대종교 역시 민족의 역사와 정체성을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제가 유사 종교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여 모든 자생 종교가 사이비나 미신이라고 할 수 없다. 이들은 자신들이 통제하기 어려운 종교 운동, 특히 민족의식과 결합할 가능성이 있는 조직을 잠재적인 치안의 위협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백도교의 은밀함에는 두 얼굴이 함께 존재했다. 하나는 외부의 감시와 탄압을 피하려는 방어적 비밀주의였고, 다른 하나는 교단 내부를 외부 검증에서 차단하는 폐쇄성이었다. 아무리 처음엔 교단을 지키기 위한 장벽이었다 할지라도, 그 장벽은 시간이 지나며 교주와 간부들의 행동을 감추고, 신도를 격리하는 장치로 변하게 된다.
비밀은 없다

출처 - 영화 <백백교>
신도들에게 전정예는 죽음을 넘어선 존재였다. 전정예가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면 그가 설파한 불로장생은 참된 것이며, 반대로 보통 사람처럼 병들고 죽는다면 그가 전하는 약속도 믿기 어렵게 된다. 하지만 죽음 앞에 누구도 예외 없다. 1919년 불사 전정예가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죽음은 교단이 피할 수 없는 결정적인 시험이었다. 교주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그동안 신도들에게 전한 가르침이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었다.
이들은 교주의 죽음을 숨기기로 한다. 전용해와 당시 백도교의 핵심 간부였던 우광현은 그의 시신을 몰래 땅에 묻고, 사망 사실을 신도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거짓말과 속임수는 신앙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정당화되었다. 신도에게 무엇을 알리고 알리지 않을 것인지, 신도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교주와 간부들이 결정했다.
1920년, 평안남도 강서에 살던 정성희라는 인물이 자기 아버지가 백도교에 빠져 재산을 탕진했다며 일본 경찰에 고발한다. 수사가 시작되면서 전정예가 이미 사망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죽지 않는다던 교주가 죽었단 사실을 알게 된 신도들이 교단을 떠나기 시작했다. 백도교 종말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교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난리를 겪고도 오히려 분열과 개명을 거치며 새로운 형태로 살아남는다. 창시자의 권위를 물려받으려는 자들은 각기 새로운 교단을 만들고, 전정예의 이름과 혈통은 다시 권력의 근거로 사용되었다.

국과수에 보관되었던 전용해의 것으로 추정되는 머리
1923년 전정예의 큰아들 전용주는 이희룡이라는 자와 함께, 사람이 하늘이라는 교리를 설파하며 인천교(人天敎)를 세웠다. 셋째 아들 전용석은 도화교(道化敎)를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도교의 명맥은 둘째 아들 전용해가 이어간다. 아버지의 죽음을 숨기고 암매장했던 전용해가 백도교를 백백교로 개명하고 그 교리를 계승하고 개편했다.
형식적으로는 당시 백도교의 간부였던 우광현이 백백교를 창설하고 교주가 되었다고 알려졌지만, 실제 권력은 전용해가 쥐고 있었다. 교단은 그를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나중에 전용해는 절대적 지도자의 위치에 올라 신도들로부터 천부의 아들로 추앙받는다. 이것이 종교단체 세습의 시작이었다.
대한민국 대규모 사이비 종교 집단의 시초로 꼽히는 백백교는, 오늘날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수많은 사이비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통일교, 신천지, JMS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그 뿌리에 도달하기 위해, 가장 오래된 사례를 연재물 마지막에 다루었다. 이 연재가 사이비를 이해하고, 우리 사회가 더욱 안전한 기반을 갖추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다음 주, 마지막 <미드소마 대한민국>. 에필로그로 찾아옵니다.

편집 : 금성무스케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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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 BR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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