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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선박을 공격한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을 잃었다. 돈바스와 크림반도에서 싸우던 드론이 카스피해까지 날아가 이란 선박을 때렸다. 지도를 펼쳐보면 전선에서 한참 떨어진 바다다. 우크라이나와 이란은 직접 전쟁을 벌이는 나라도 아니다. 그런데 왜 이란 선박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표적이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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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MBC>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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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선이 ‘러시아-이란 교류 라인’이고,

주황색 선이 우크라이나 드론의 이동 라인이다.

<이미지 클릭하면 확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이란 사이의 군수·물류·정보 연결을 강조한다. 러시아는 이란의 드론과 기술을 이용하고, 두 나라는 카스피해를 통해 물자와 에너지를 주고받는다. 이번 공격이 처음부터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설계됐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이 사건을 러시아와 이란이 연결된 하나의 전쟁망 속에 배치한 것은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여기서 네타냐후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네타냐후가 오래 해온 일은 이스라엘의 적을 미국의 적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하마스는 이란의 대리 세력이 되고, 이스라엘이 하는 전쟁은 미국의 중동 패권과 핵확산 문제가 된다. 

 

약 일주일 전 발생했던 우크라이나의 이란 상선 공격에서 젤렌스키가 이러한 네타냐후의 전략을 실행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이제 “우크라이나를 도와달라”는 호소를 넘어, “러시아와 이란의 전쟁망을 막으려면 우크라이나가 필요하다”고 말하려는 것 같달까.

 

물론 두 사람은 같지 않다. 네타냐후는 압도적 군사력을 가진 국가를 이끌고 있고, 젤렌스키는 침략받은 국가의 지도자다.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과 우크라이나의 방어 전쟁을 같은 저울에 올릴 수는 없다. 

 

젤렌스키가 닮아가는 부분은 미국을 자기 전쟁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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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국은 왜 후견국을 포획하는가

 

동맹이라고 하면 보통 강대국이 명령하고 약소국이 따르는 장면을 떠올린다. 돈과 무기는 미국이 대고, 작은 동맹국은 미국의 뜻을 거스르기 어렵다는 그림이다. 하지만 전쟁은 그렇게 단순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돈과 무기는 미국이 줘도, 언제 어디에서 총을 쏠지는 현장에 있는 동맹국이 먼저 결정할 수 있다. 작은 나라가 먼저 방아쇠를 당기면, 큰 나라도 그 뒤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동맹에는 늘 두 가지 공포가 함께 있다. 

 

동맹국은 미국이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버릴까 두렵고, 미국은 동맹국 때문에 원하지 않는 전쟁에 끌려갈까 두렵다. 미국은 보험회사이고 동맹국은 가입자와 비슷하다. 보험회사는 사고가 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가입자는 사고가 나면 정말 보험금이 나올지 의심한다. 보험 회사가 지급을 망설이기 시작하면 가입자는 아예 보험회사 직원을 사고 현장에 데려다 놓으려 한다.

 

이를 ‘후견국 포획’이라고 부를 수 있다. 약한 동맹국이 전쟁을 확대하거나 돌이키기 어려운 기정사실을 만들어 강대국의 선택지를 줄이는 전략이다. 자신의 적을 미국의 적과 연결하고, 미국의 허락을 기다리기보다 먼저 행동하며, 미국 정치 안에 지지 세력을 만들어 철수를 어렵게 한다. 강대국의 힘을 빌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강대국이 떠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국제정치학에는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 ‘동맹 연루(alliance entrapment)’가 있다. 동맹국의 분쟁이나 행동 때문에 강대국이 원하지 않는 전쟁에 끌려 들어가는 위험을 뜻한다. 마이클 만델바움이 1981년 처음 제시하고, 글렌 스나이더가 1984년 ‘방기(abandonment)’와 짝을 이루는 동맹안보 딜레마로 이론화했다. 여기서 말하는 ‘후견국 포획’은 그중에서도 약한 동맹국이 강대국의 선택지를 의도적으로 줄여 개입과 지원을 지속하게 만드는 능동적 전략에 초점을 둔 표현이다)

 

이 전략은 과거에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훨씬 유혹적이다. 미국의 군사력이 갑자기 사라져서가 아니다. 미국의 약속이 얼마나 오래 유지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대통령이 이전 정부의 약속을 뒤집을지, 미국이 다음 달에는 우크라이나와 중동 가운데 어느 쪽을 더 중요하게 볼지 누구도 확신하기 어렵다. 불확실한 보호자는 동맹국을 얌전하게 만들지 않는다. 보호가 남아 있을 때 더 많은 기정사실을 만들게 한다.

 

미국의 우산이 작아진 것은 아니다. 자동으로 펴지던 우산이 수동식으로 바뀌었다. 이제 동맹국 지도자는 비가 올 때마다 워싱턴에 전화해 버튼을 눌러달라고 설득해야 한다. 문제는 요즘 워싱턴의 전화번호가 국무부 대표번호가 아니라 대통령 개인의 휴대전화처럼 변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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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전화하면 전쟁이 멈추던 시절

 

한때 미국은 전쟁을 시작하는 나라일 뿐 아니라 전쟁을 멈추게 하는 나라였다. 특히 냉전이 끝난 뒤 조지 H. W. 부시와 클린턴 시기에는 군사적 압박, 국무부의 중재, 동맹국 조정, 유엔 결의, 경제제재, 평화유지군, 전후 복구와 원조가 하나의 체계로 움직였다. 미국 대통령이 전화를 걸었기 때문에 전쟁이 멈춘 것이 아니다. 전화기 뒤에 국무부와 나토, 유엔과 세계은행, 달러와 군대가 함께 서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시절 미국이 공정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은 모든 전쟁을 같은 기준으로 다루지 않았고,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개입할 분쟁과 외면할 분쟁을 골랐다. 군사개입은 때로 과도했고, 미국이 만든 평화가 현지 사회의 정의와 일치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지금과 다른 점은 분명했다. 적어도 미국이 합의를 만들면, 그 합의를 집행할 사람과 돈과 제도가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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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기로 하며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내려지는 성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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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아프가니스탄 미국 대사관'이 철수하는 모습

 

그런데 그 능력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미국은 정권을 쓰러뜨리고 수도를 점령할 수 있었지만, 그 자리에 지속 가능한 정치 질서를 세우지는 못했다. 압도적인 군사력은 승전을 만들어도 평화를 만들지 못했다. 이때부터 전쟁을 시작하는 능력과 전쟁을 끝내는 능력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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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EPA>

 

그리고 트럼프가 등장하며 이런 흐름을 질적으로 심화시켰다. 동맹은 공동의 질서보다 비용을 따지는 거래가 됐고, 국제기구와 외교 관료조직은 대통령의 협상을 방해하는 구식 장치처럼 취급됐다. 정상외교와 개인 특사, 즉흥적인 위협과 보상이 제도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미국의 정책을 믿지 못해도 미국이라는 체계와 협상할 수 있었다. 지금은 미국의 체계보다 대통령의 기분을 먼저 읽어야 한다.

 

트럼프는 미국이 다른 나라의 전쟁에 끌려다니지 않게 하겠다고 말한다. 이건 동맹국의 귀에는 “필요하면 언제든 너를 버릴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이런 상황은 결국 동맹국이 어떤 행동을 자제하기보다 서두르게 만든다. 

 

지원이 끊기기 전에 공격하고, 관심이 떠나기 전에 위기를 키우며, 미국이 빠져나가기 전에 미국을 현장에 묶어두려 한다. America First가 동맹국에 가르친 첫 교훈은 기다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미국이 확실한 후견국일 때 동맹국은 미국의 명령을 기다렸다. 미국이 불확실한 후견국이 되자 동맹국은 미국이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을 먼저 만들기 시작했다. 이 사용설명서를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능숙하게 익힌 지도자가 네타냐후다.

 

 

네타냐후 사용설명서 : 먼저 싸우고 미국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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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타냐후의 핵심 전략은 미국의 지시를 따르는 데 있지 않다. 미국의 이해관계를 이스라엘의 전쟁에 묶어두는 데 있다. 이스라엘의 적이 이스라엘만의 적이라면, 미국은 거리를 둘 수 있다. 그러나 그 적이 미국에게도 적이 되고, 핵확산이고, 미국의 중동 패권 문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모든 행동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쉽게 떠날 수 없게 된다.

 

이를 위해 네타냐후는 위협을 하나의 사슬로 연결한다. 

 

하마스는 헤즈볼라와 이어지고, 헤즈볼라는 후티와 이어지며, 그 끝에는 이란이 있다. 이 연결망은 허구가 아니다. 실제로 무기와 자금, 훈련과 정치적 지원이 오간다. 다만 연결돼 있다는 것과 그것을 하나의 전쟁으로 묶는 것은 다른 문제다. 연결망은 실제지만, 그것을 하나의 전쟁으로 만드는 것은 정치적 선택이다.

 

그다음에는 먼저 행동한다. 

 

미국의 완전한 승인을 기다리기보다 군사 행동을 벌이고, 이미 벌어진 전쟁 앞에서 미국이 선택하게 만든다. 선택지는 많지 않다. 동맹국을 지원하거나, 공개적으로 충돌하거나, 이스라엘이 위험해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다. 동맹국은 작아도 방아쇠를 먼저 당기면 강대국의 선택지를 줄일 수 있다. 먼저 만든 현실이 나중의 외교를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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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을 공습하는 이스라엘

 

네타냐후는 백악관만 상대하지도 않는다. 

 

미국 의회와 정치 후원 조직, 복음주의 세력, 친이스라엘 안보담론 속에 자신의 지지기반을 갖고 있다. 미국 행정부가 이스라엘을 압박하려 해도 미국 정치 내부에서 반대가 일어난다. 이스라엘은 워싱턴에 대사관만 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분점을 차려놓은 셈이다.

 

네타냐후 모델은 단순히 호전적인 지도자의 성격을 뜻하지 않는다. 후견국이 떠나려 할 때 위협의 범위를 넓히고, 먼저 행동해 선택지를 줄이며, 후견국 국내 정치까지 동원해 출구를 막는 전략이다. 젤렌스키는 네타냐후와 같은 전쟁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점점 같은 문제를 풀어야 하는 사람이 되고 있다.

 

 

젤렌스키의 변형 : 원조받는 나라에서 필요한 나라로

 

우크라이나의 적은 러시아군만이 아니다. 미국의 피로와 관심 이동도 전쟁의 또 다른 전선이다. 중동에서는 새로운 위기가 이어지고, 미국이 가장 경계하는 국가는 중국이다. 패트리엇 요격탄과 군수생산 능력은 무한하지 않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과 싸우는 동시에 세계 뉴스의 첫 화면을 놓고 싸운다.

 

침략당한 국가라는 우크라이나의 도덕적 정당성은 여전히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미국의 지원 우선순위를 영원히 보장하지는 않는다. 국제정치는 억울함의 경연대회가 아니다. 가장 억울한 나라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나라가 지원을 받는다. 젤렌스키에게 필요한 것은 우크라이나가 계속 불쌍한 나라라는 증명이 아니라, 서방이 포기해서는 안 될 나라라는 증명이다.

 

그래서 메시지도 달라진다. 

 

우크라이나는 단순한 원조 수혜국이 아니라 드론전의 실전경험, 러시아 무기체계 분석, 이란산 드론 대응 기술, 러시아·북한·이란의 군사협력 정보, 흑해와 카스피해 물류망에 대한 지식을 가진 전략적 자산으로 자신을 재정의한다. 

 

“우리를 도와달라”에서 “우리를 잃으면 당신들이 더 위험해진다”로 메시지가 바뀌고 있다.

 

러시아와 이란은 하나의 국가도, 하나의 군대도 아니다. 이해관계가 언제나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두 나라는 서로의 부족한 무기와 기술, 물류와 외교적 공간을 교환하는 전쟁 네트워크를 만들고 있다. 이란의 드론 기술은 러시아의 공습에 이용되고, 러시아는 이란에 군사기술과 정보, 국제적 보호막을 제공할 수 있다. 카스피해는 그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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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해와

우크라이나, 러시아, 이란의 위치

출처-<서울신문>

 

그렇다면 카스피해의 선박 공격은 두 층위에서 읽을 수 있다. 군사적으로는 러시아의 후방 보급과 군수물류를 끊으려는 합리적인 작전이다. 정치적으로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이란을 잇는 전쟁망을 실제로 추적하고 공격할 수 있는 국가라는 신호다. 군사적으로는 보급망을 끊는 공격이고, 정치적으로는 우크라이나전의 지도를 중동까지 펼쳐 보이는 공격이다.

 

미국의 관심이 중동으로 향할수록 우크라이나는 중동과 동유럽이 별개의 전쟁이 아니라고 말할 유인이 커진다. 러시아가 이란을 돕고 이란이 러시아를 돕는다면, 우크라이나 지원은 더 이상 동유럽에 보내는 원조만이 아니다. 미국의 대이란 전략과 중동 안보를 위해서도 필요한 투자가 된다. 자신의 적을 후견국의 적과 연결하는 ‘후견국 포획’의 쟁점 연결이 여기서 작동한다.

 

그러나 둘의 출발점은 전혀 다르다. 네타냐후에게 확전은 미국의 힘을 끌어다 쓰는 선택지에 가깝다. 반면 젤렌스키에게 전장의 확대는 미국의 관심과 지원이 떠나는 순간 국가의 생존이 흔들릴 수 있다는 압박에서 나온다. 하나는 선택의 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생존의 전략이다.

 

그렇다고 생존이라는 이유가 모든 공격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젤렌스키가 네타냐후와 같은 지도자가 됐다는 데 있지 않다. 미국의 보장이 불확실해지자, 전혀 다른 처지의 지도자들이 미국을 붙잡기 위해 비슷한 전략을 배우고 있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 수업을 듣는 사람은 두 사람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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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자기 전쟁을 미국의 전쟁으로 만든다

 

미국의 리더십이 약해지면서 세계는 두 방향으로 움직인다. 

 

1. 미국 없이도 버틸 준비를 하는 것이다. 유럽이 독자 방위와 군수산업을 확대하는 움직임이 여기에 해당한다. 

 

2. 미국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자기 문제에 더 단단히 묶어두는 것이다. 네타냐후와 젤렌스키가 보여주는 전략은 두 번째에 가깝다.

 

더 우려되는 것은 두 번째 전략이 확산되는 경우다. 특히 지금처럼 미국의 지도자가 동맹을 안심시키지도, 통제하지도, 전쟁의 출구를 설계하지도 못할 때 후견국 포획은 가장 효과적인 생존법이 된다. 

 

트럼프의 미국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막대한 힘을 언제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지조차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무능하다. 어제의 약속은 오늘의 거래가 되고, 오늘의 동맹은 내일 청구서를 덜 낸다는 이유로 버림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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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AP>

 

이런 미국을 상대하는 지도자는 기다릴 수 없다. 미국이 내일 등을 돌릴 수 있다면 오늘 먼저 움직여야 한다. 지원이 남아 있을 때 공격하고, 관심이 떠나기 전에 위기를 키우며, 미국이 발을 빼기 전에 사태를 되돌릴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미국의 무능이 동맹국의 자제를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제 행동과 기정사실의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다.

 

그 결과 각국 지도자는 자기 지역의 적을 미국의 적으로 번역하려 경쟁한다. 지역 분쟁은 테러리즘과 핵확산, 러시아와 중국의 도전, 민주주의와 서방 문명에 대한 위협으로 승격된다. 자기 문제가 작게 보이는 순간 워싱턴의 관심과 무기는 다른 전장으로 떠날 수 있다. 미국의 지원을 받기 위해 전쟁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지원을 잃지 않기 위해 자기 전쟁을 더 큰 전쟁으로 만드는 역설이다.

 

이것은 단순한 다극 질서가 아니다. 여러 강대국이 세계를 나눠 책임지는 질서가 아니라, 여러 지역 지도자가 자기 전쟁을 강대국의 전쟁으로 만들기 위해 경쟁하는 ‘다중 포획의 질서’다. 미국의 통제력은 무너졌지만, 미국의 무기와 돈을 차지하려는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무능한 미국은 세계에서 조용히 물러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통제하지도 못하는 더 많은 전쟁에 이름과 무기를 빌려주는 방식으로 세계를 더 위험하게 만든다.

 

 

America First가 가르친 교훈

 

과거에는 미국이 세계의 위기를 관리했지만, 지금은 세계의 지도자들이 미국 대통령을 관리한다. 그의 관심이 어디에 머무는지, 기분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는지, 선거에 무엇이 유리한지, 패트리엇 미사일이 몇 발 남았는지를 계산한다. 미국이 세계의 전략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각국 지도자가 미국을 자기 전략 안에 배치하는 시대가 되었다.

 

‘America First’가 각국 지도자에게 가르친 교훈은 간단하다. 미국이 내 전쟁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면, 내 전쟁을 미국의 첫 번째 전쟁으로 만들어라. 이제 ‘America First’는 미국을 세계에서 빼내는 구호가 아니라, 세계의 모든 분쟁에 미국을 우선 끌어들이라는 구호가 됐다. 다 함께, America Fi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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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임권산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임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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