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본색을 드러내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 연재의 11편에서 결국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가 뻘쭘해질 것이라는 의견을 남긴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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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링크)
8월 4일, 보완수사권을 전면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그 뻘쭘함이 누구의 차지였는지 일부 드러났습니다. 같은 달 1일에 시작한 민주당 전당대회 순회 경선은 17일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또 한 무리가 뻘쭘해지리라 예상합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뻘쭘해질 이들은 반드시 그렇게 될 테니까요.
흙탕물을 가만히 두면 모래흙이 가라앉고 맑은 물이 드러나듯,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드러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 줌 흙먼지를 더욱 거세게 흩뿌려대는 이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맑은 물과 흙먼지 중 자신이 어느 쪽이었는지, 본색은 그렇게 드러나는 것이죠. 자신의 이익이 직접적으로 걸려있다면 그 본색이 이해되는 면도 있습니다. 어쨌든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유형의 사람은 - 도덕과 윤리를 떠나서 - 어디에나 있을 법하니까요.

(시사포커스, 링크)
하지만 도저히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있습니다. 맥락에 맞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고,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이 무엇인지도 명확하지 않을 때, 이를 보는 사람들은 그 배경을 상상하게 됩니다. 이 사람이 누구누구와 이러이러한 사이라서, 과거에 저 사람이랑 이렇게 됐으니까 지금 이렇게 하는 걸까, 하고 말이죠.
그 상상의 저변에는 ‘이해하고 싶다’라는 인간이 가진 아주 근원적인 욕구가 있습니다. 인지부조화를 견디는 것보다, 예외적인 이상한 상황이라고 단정하는 것보다는, 원인과 결과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이해에 이르는 것을 선호하죠. 이상하다고 여기던 것을 완전히 이해하게 됐을 때 ‘속 시원하다’라는 말을 쓰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지난 12편에서 ‘분석’이라 칭한 그 과정, 언뜻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현상을 바라보고 여러 이유를 생각해 보며 가장 합당한 이유를 추리해 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결국 속 시원한 이해에 이르게 됩니다. 그 분야의 끝판왕 얘기로 이어 가보죠.

마음 챙기고 정치 12: 분석과 에세이, 유시민과 허지웅 사이
(딴지일보, 링크)
아인슈타인이 구분할 수 없었던 것
아인슈타인은 특수 상대성 이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과정에서 ‘등가원리’를 도입했습니다. 중력에 대한 기존 관점을 뒤엎은 이 원리를 통해, 공간이 휘고 시간의 속도가 달라지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죠. 이 파격적인 이론은 이제 상식이 되었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이 거대한 파도를 탈출하는 3시간 동안 우주선에서는 23년이 흐르는 설정을 보고, “말도 안 돼”가 아니라 “고증이 잘돼 있군”이라고 끄덕일 수 있을 정도입니다.
등가원리의 핵심은 아주 단순합니다.
‘중력과 가속도는 서로 구분할 수 없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블로그, 링크)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사람은 엘리베이터가 자유 낙하 하는 것과 우주공간에서 무중력 상태가 되는 것을 구분할 수 있을까요? 서로 전혀 다르다고 여겨온 두 현상을 구분할 수 없다는 의문은 깊은 사유로 이어졌을 겁니다. 그 생각을 좇다 보면 빛이 휘고 시공간이 왜곡되는 것마저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결국 수많은 관측과 실험이 증명해 낸 진실은, 가속도와 중력은 본질적으로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과학의 큰 발견은 대체로 차이를 구분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전자기력은 유독 쇳덩이가 달라붙는 돌과 그렇지 않은 돌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윈의 진화론은 역시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른 부리를 지닌 새들을 구분한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등가원리는 정확히 그 반대입니다. 당연히 다르다고 여겼던 것을 사실은 구분할 수 없다는 역발상에서 출발한 것이죠.
등가원리는 어떤 현상을 이해함에 있어 기존의 관념을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사합니다. 어떻게 측정해도 차이를 구분해 낼 수 없다면, 기존의 통념을 뒤집고 같은 것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통념을 뒤집지 않는다면, 가속도와 중력을 여전히 전혀 다른 것으로 여긴다면, 수많은 천체 관측과 물리적 현상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한편, ‘구분할 수 없다’ 말이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동아사이언스, 링크)
구분할 수 없는 기사와 건달
논리 퍼즐로 자주 쓰이는 ‘기사와 건달(Knights and Knaves)’ 이야기입니다. 어떤 지역에는 기사와 건달 두 부류만 있습니다. 기사는 참말만 하고 건달은 거짓말만 합니다. 외모로는 둘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서 퍼즐이 시작됩니다.

(논리 퍼즐 모음집 〈What Is the Name of This Book?〉, 링크)
기사인지 건달인지 모를 사람에게 ‘당신은 기사입니까?’라고 물으면 어떻게 될까요. 기사라면 ‘네’라고 할 것이고, 건달이더라도 거짓말을 할 것이므로 ‘네’라고 답변하겠죠. 이 질문은 상대가 누구든 똑같은 답변을 받게 됩니다. 구분할 수가 없는 것이죠.
여기서 말하는 ‘구분할 수 없다’라는 등가원리와는 다른 의미입니다. 등가원리에서는 본질이 동일하므로 차이가 자체가 없다는 뜻이지만, 기사와 건달의 경우는 분명 본질적 차이가 있는데 구분할 단서가 제한돼있다는 뜻입니다. 다소 작위적인 설정이긴 합니다만, 현실은 이 퍼즐보다 훨씬 가혹합니다.
퍼즐에서는 적어도 상대가 기사 아니면 건달이라는 것만큼은 명확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전제조차 없습니다. 애초에 어떤 부류가 존재하는지, 참말만 하는지 거짓말만 하는지조차 알 수 없죠. 이런 상황에서 불현듯 똑같은 정보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둘을 구분해 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구분해야 할 필요성조차 인식하기 힘들 겁니다.
의심 많은 사람이 보이스 피싱을 당하는 일, 다수의 대중과 엘리트가 기꺼이 독재자를 추앙하는 역사까지 모두 당연히 구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을 구분하지 못한 사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현실에서 접하는 이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은, 등가원리의 중력과 가속도처럼 처음부터 같은 것이었기에 구분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요.

(중앙일보, 링크)
구분할 수 없을 때 행동 지침
그렇다면, 구분이 안 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A와 B 두 사람에게 50가지 질문을 했는데 둘 다에게서 완전히 동일한 답변이 돌아왔다고 해보죠. 이 단서만으로는 A와 B를 구분할 수 없습니다. 다만 ‘둘은 분명히 다를 것’이라는 기사와 건달의 관점과 ‘구분할 수 없다면 동일한 것’이라는 등가원리의 관점, 두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먼저 기사와 건달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죠. 누군가는 거짓말을 할 수 있고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완전히 같을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꽤 상식적인 생각이어서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또 이 관점에서는 정보의 양에 대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질문 50개에 대한 답변이라는 정보량은, 본질이 다른 두 사람의 차이를 완전히 드러내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50개 질문의 주제나 형태가 충분히 다양하지 않았다면 A와 B의 차이를 더 잘 드러낼 수 있을 만한 질문을 생각해 내야 할 겁니다.
그렇게 새로운 질문이 10,000개쯤 나왔다고 해보죠. 이쯤 되면 차이가 드러날 겁니다. 만약 이번에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답변을 했다면, 그때는 관념을 뒤집고 A와 B가 동일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고민을 진지하게 할 것입니다.

(뉴스핌, 링크)
이번에는 등가원리의 관점입니다. 50개의 질문에 동일한 답변을 내놓은 A와 B가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역발상이죠. 그렇다면 이 발상의 전환을 바탕으로 상황을 더욱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할 행동은 무엇일까요.
답은 ‘동일하다’입니다. A와 B의 차이를 극명히 드러낼 다채로운 질문을 새로 고민하는 것이죠. 뻔하고 비슷한 질문을 늘려가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겁니다. 그렇게 또 10,000개쯤 되는 질문을 던져서 하나라도 차이가 드러난다면, 둘은 다른 사람이고 어떤 지점에서 갈라지는지 알게 되겠죠. 반대로 예측처럼 답변이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다면, A와 B가 동일인이라는 결론을 한층 더 확신하게 될 겁니다.
흥미롭게도 두 관점 모두 차이를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구분하기 위해 해야 할 행동 지침도 동일하죠. 더 다양한 질문을 만들어 의미 있는 정보를 추가로 확인하고, 그 정보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판단하는 것입니다. 관념이 어떻든 간에, 확보할 수 있는 객관적 정보를 최대한 모아서 그것이 가리키는 결론을 따라가는 것. 그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다시, 뻘쭘해질 사람들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한때는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하는 행동은 차마 보기 힘들 만큼 노골적이고 유치한 지경에 이른 이들 말입니다. 결국 우리 편이 전혀 아니라고 생각했던 이들과 구분할 수 없게 되어버렸죠. 마음 같아서는 직접 만나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어떤 사정이 있었던 건지 묻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MBC, 링크)
각자의 경험과 지식에 따라 관념의 차이는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 관념에 따라 지금의 행동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고 지켜볼 수도 있고, 과거의 판단이 틀렸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앞세울 수도 있겠죠. 그 관념이 어떠했든, 이 상황을 이해할 방법은 하나입니다. 지금 확인할 수 있는 의미 있고 객관적인 정보를 따라가는 것이죠. 그 정보들이 가리키는 곳이 기존 관념을 뒤집어야 설명이 되는 방향이든 그 반대든, 그 결론을 따라가면 됩니다.
이해의 끝판왕 아인슈타인이 처음 등가원리를 떠올린 그 시점에 과감하게 통념을 뒤집었는지, 아니면 조심스럽게 연구를 이어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양자역학에 대해 그가 보인 태도는 매우 신중하고 보수적이었으니, 양쪽 다 말이 됩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었든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그의 관념이 어떠했든, 그 시점에 확보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정보들을 최대한 찾아서 그것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결론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점이죠.
흙탕물은 가만히 두면 가라앉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눈앞의 정보를 관념 없이 똑바로 보는 것입니다.

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춘심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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