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은솔(21세)
딸기 농부
경력: 1년
농장 규모: 400평 스마트팜 딸기농장
하루 최대 수확량: 150상자(상자당 1kg)
주된 업무: 체험 운영, 고객 응대, 농사 보조
은솔 씨를 만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지역에서 진행하는 스토리 투어에 동행한 참이었다. 해설사가 말하길, 오후 일정으로 딸기농장에 들를 거라고 했다. 큰길에서 투어버스가 멈췄다. 시골길 따라 걸었다. 저 멀리서 불어오는 달큼한 딸기향이 기척을 알렸다. 농장 입구에 ‘레드팜’이라는 글자가 크게 적혀있었다. 해설사가 안내해 주는 대로 테이블에 삼삼오오 둘러앉았다. 테이블마다 양푼 가득 딸기를 담아놨다. 철이 좀 지난 때였다. 한창때만큼의 감동은 없었지만, 그래도 딸기는 역시 딸기였다. 적당히 달고 새콤한 것이 자꾸만 손이 갔다.

그때였다. 해설사가 잠시 주목해달라고 했다. 딸기농장 사장을 모실 거라 했다. 사실 별 감흥 없었다. 올해 먹을 수 있는 마지막 딸기라는 생각뿐이었다. 아마도 50대, 어쩌면 60대일 거라고 예상했다. 추측건대 남성일 테고, 평생 농사지었을 테니 기미와 주근깨, 검게 그을린 구릿빛 피부겠지. 바쁜 농사일로 미처 염색하지 못한 희끗희끗한 머리칼일 테고. 장화를 신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모습을 설핏 상상했더랬다.
“그럼, 잠깐 사장님을 모시겠습니다.”라는 해설사 말에 무심코 돌아봤다. 새하얀 피부의 청년이 꾸벅 인사를 건넸다. 고등학교는 졸업했을까. 아주 앳된 모습이었다. 청년은 “레드팜 대표 정은솔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럴 리가! 상상했던 ‘딸기농장 사장’과 단 1그램도 닮은 구석이 없었다.

진짜 반전은 다음이었다. 20명도 넘는 여행객을 앉혀놓고 아주 일상이라는 듯, 스마트팜으로 키우는 딸기와 이곳에서 운영하는 여러 체험 프로그램을 설명해 줬다. 그러고는 철이 지나 기대만큼 맛이 없었을 거라며, 송구한 마음 담아 딸기잼 한 통씩 나눠드릴 테니 내년에 꼭 방문해 달라는 마지막 당부로 소개를 마쳤다. 박수가 터졌다. 과하지 않은 친절과 적절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서글서글한 말투 너머로 보이는 자영업자 특유의 생활감이 묻어났다. 손님 상대가 몸에 밴 동네 식당 사장 같았다. 허, 참.
스마트 농법이니 초콜릿 퐁듀에 찍어 먹는 딸기니 하는 것보다 청중이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어리디어려 보이는 청년이 어쩌다 400평 딸기농장 대표가 되었을까. 질문이 쏟아졌다.
“예, 저는 21살이고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작년 여름부터 여기에서 일했습니다. 레드팜 실소유주는 부모님이고, 저는 그냥 직책만 대표인 ‘바지 사장’입니다(웃음).”
뜻밖의 단어였다. 여기저기서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퍼졌다. 이 청년, 보통 아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식빵 한 봉지 샀다. 받아온 딸기잼 듬뿍 발라 한입 베어 물었다. 황금비율이라더니, 과연 그랬다. 상큼한 딸기향과 달달한 설탕 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아주 어렵게, 어렵게 배워온 황금비율 딸기잼입니다. 냉장고에 보관하면 한동안 드실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그 황금비율이 몇 대 몇인데요?”
청중 물음에 은솔 씨가 아주 진지하고 엄숙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절~대로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영업비밀입니다(웃음).”
그 엉뚱했던 표정이 또다시 떠올랐다. 웃음이 쿡 터졌다. 딸기잼 뚜껑에 적힌 전화번호를 저장했다. 레드팜을 다시 찾은 건, 1년의 딸기 농사가 막 끝난 6월 어느 날이었다.

육묘(育苗): 어미모에서 자묘를 받아 모종을 키우는 단계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 부모님이 딸기 농사를 시작했다. 은솔 씨에게 딸기는 귀한 과일이 아니었다. 일상이었다. 딸기 수확 돕는다는 핑계로 아빠 뒤 ‘쫄래쫄래’ 쫓아다니며 딸기를 따 먹었다. 딸기값이 금값인 1~2월엔 몰래 먹고, 딸기가 흔해지는 3월부터는 대놓고 먹었다. 바구니에 담는 것보다 입으로 가져가는 게 더 많았다. 끝물인 5월부터는 친구들까지 불러다 함께 먹었다.
“매년 5월이면 친구들을 농장으로 초대했어요. 올 때 그냥 오지 말고 큰 통 하나씩 챙겨오라고 했어요. 그럼 와가지고 실컷 따먹으면서 놀다가 한 통씩 담아가는 거예요. 다들 좋아했죠. 그래서 별명이 딸기였어요. 제 친구 중에 딸기농장 안 와본 친구가 거의 없거든요. 그랬으니, 저만 보면 딸기가 떠오르나 봐요(웃음).”
자라는 내내 원 없이 딸기를 따고 또 먹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 밥만큼이나 딸기를 먹었다. 그렇게 먹었어도 질리지 않았다. 여전히 제일 좋아하는 과일 꼽으라면 딸기다. (실제로 은솔 씨는 사진 촬영하는 내내 습관처럼, 숨 쉬듯, 딸기를 따 먹었다.) 그렇게나 좋아하는 딸기건만, 대를 이어 농사지을 생각은 한 번도 안 했다. 딸기 농사가 얼마나 고달프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스마트팜으로 해서 그나마 조금 수월해졌는데, 그래도 딸기 농사는 딸기 농사예요. 벼농사처럼 기계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요. 모종 심는 것부터 수확하는 것까지 일일이 사람 손을 타야 해요. 또 딸기는 손바닥 체온만으로도 금세 무르거든요? 그래서 해뜨기 전 이른 새벽부터 아침까지, 또 해 넘어가는 저녁나절에만 딸 수 있어요. 부모님이 매일 새벽 4~5시에 일어나서 딸기 따러 가는 걸 옆에서 봤잖아요. 내가 부모님처럼 성실하게 꼭두새벽에 일어날 수 있을까?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그것도 그렇거니와, 꿈이 따로 있었다. 노래 부르는 사람. 축제 무대에도 오를 만큼 주변에서 꽤 알아주는 실력파였다. 은솔 씨 스스로는 “나름대로 학교에서는 좀 빛나고 있었거든요(웃음)?”라고 평가했다. 대학도 관련 학과에 가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즈음이었다. 아빠가 체험 농장 얘길 꺼내기 시작했다.
“저 19살 때니까 재작년이죠. 아빠가 체험 농장 얘길 어디서 듣고 오신 거예요. 딸기를 그냥 팔면 가격 변동이 심해서 수익이 들쑥날쑥하단 말이죠. 근데 체험 농장은 체험비가 고정적이니까 수요만 잘 잡으면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또 마침 대전에 체험 농장이 거의 없다 보니 대전 시민이 다 논산에 있는 체험 농장으로 가는 상황이잖아요. 논산으로 빠지는 수요만 좀 붙잡아도 괜찮겠다고 판단하신 거죠. 그런 데다가 아빠는 제가 가수로서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셨어요(웃음). 어설프게 대학 가느니 일찌감치 체험 농장 운영해 보면서 천천히 농사 배우라고 하더라고요.”

은솔 씨 의사와 관계없이, 아빠가 먼저 일을 벌였다. 비닐하우스를 모두 부수고, 체험 농장에 적합한 스마트팜을 지었다. 체험장도 정비했다. 큰돈이 들어갔다. 어린이집, 유치원이 대부분일 텐데 나이 많은 아저씨가 운영하는 체험 농장에 누가 오겠냐, 그래도 젊은 사장이 응대해야 고객들이 편하게 오지 않겠냐, 다 네 미래를 위해서 지은 거다, 너 여기서 운영 잘하면 돈 많이 벌 수 있다. 두세 달의 설득이 이어졌다. 은솔 씨는 결국 대학 원서를 쓰지 않았다.
“한마디로 아빠한테 가스라이팅 당한 거예요(웃음). 또 제 나름대로 체험 농장 정보 찾다 보니까 재밌을 거 같더라고요. 다만 제가 사회 경험도 없고, 그때만 해도 스스로 말주변 없는 성격이라고 생각해서 손님 응대를 잘할 수 있을까. 그게 걱정이었죠. 그래서 우선 알바하면서 경험 좀 쌓겠다고 아빠한테 말씀드렸어요.”
횟집에서 6개월쯤 일했다. 그곳에서 두 가지를 깨달았다. 남의 돈 버는 게 진짜 쉽지 않다는 것과 의외로 자신이 서비스업에 매우 적합한 사람이라는 사실. 은솔 씨는 “제가 생각보다 말을 되게 잘하는 사람이었더라고요”라며 웃어 보였다. 자신감이 생겼다. 결심이 섰다. 지난해 여름, 마침내 농장으로 첫 출근을 했다. 딱 1년 전이다.

활착(活着): 옮겨 심은 모종이 새 자리에서 뿌리 내리는 단계
2026년 1월 체험 농장 오픈을 목표로 삼았다. 준비해야 할 게 많았다. 무엇보다 우선은 체험 농장을 알아야 했다. 전국적으로 유명하다는 체험 농장 SNS 콘텐츠와 유튜브 영상을 전부 찾아봤다.
“일일이 방문할 순 없으니까 그런 거 보면서 마케팅은 어떻게 하는지, 실제 고객이 오면 어떻게 응대하는지,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지 공부한 거죠. 또 아빠 아는 분 중에 체험 농장 하는 분이 계시거든요. 직접 방문해서 시설도 둘러보고 조언도 많이 듣고 왔어요. 딸기잼 황금비율도 거기에서 배웠어요(웃음).”
물론, 황금비율만으로 딸기잼이 완성되는 건 아니었다. 용량에 따라 온도, 시간, 으깨는 타이밍이 저마다 달랐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수없이 연구했다. 영업비밀이라 절대로 알려드릴 수 없다던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던 거다.
그렇듯 은솔 씨는 뭐든 스스로 알아보고 공부하면서 충분히 고민한다.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나간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마케팅도 마찬가지였다.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다. 그저 혼자 공부했다. 서투르나마 사진도 찍고 정성스레 글도 썼다. SNS에 하나씩 하나씩 소식을 전했다. 친구에게 부탁해 자신과 꼭 닮은 캐릭터도 만들었다. 그런 과정, 과정에서 아빠와 약간의 다툼(?)도 있었지만 말이다.

“체험 농장 이름 지어야 하는데, 아빠가 ‘은솔이네 농장’ 어떠냐는 거예요. 아휴, 완전 옛날 스타일. 싫다고 했죠(웃음). 그래서 그냥 저 혼자 고민해서 레드팜이라고 지은 거예요. 홍보하는 것도 그랬어요. 우리 농장에서 큰길로 좀 나가면 방동저수지 나오거든요. 주말에 사람들이 많이 오긴 해요. 아빠가 그 주변에 현수막 걸어 놓자는 거예요. 아니, 요즘 누가 현수막 보고 찾아오냐고요(웃음). 제가 고객들 올 때마다 어떻게 알고 오셨냐고 꼭 여쭤보는데, 지금까지 현수막 보고 왔다는 사람 한 명도 못 봤어요(웃음).”
대전에 체험 농장이 몇 없었던 덕분인지, 운이 좋았던 건지, 그도 아니면 은솔 씨 진심이 통한 건지, 고객이 하나둘 찾아왔다. 그때마다 딸기잼이라도 하나 더 챙겨주고, 말 한마디라도 살갑게 하려고 노력했다. 금세 입소문이 났다. 육아카페 중심으로 후기들이 퍼졌다. 어린이집, 유치원 등에서도 문의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3~4월에는 수십 명씩 방문하는 아이들 쫓아다니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얘기했듯 고객 대부분이 어린아이 둔 부모님이나 어린이집, 유치원 원장님과 선생님들이잖아요. 처음 방문하면 다들 저 보고 놀라요. 시골 농장에 21살짜리 여자 사장이 있을 거라고 생각 못 하시는 거죠(웃음). 제가 여동생 같고 딸 같아서 편하고 좋으신가 봐요. 한 번 오셨던 분들이 또 오시고, 제가 부탁드린 것도 아닌데 알아서 주변에 홍보해 주시더라고요. 그런 고마운 분들 덕분에 금방 자리 잡은 거 같아요.”

고마운 고객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만, 어디에나 ‘진상’은 있는 법. 딸기 체험 농장 생태계 갑 중의 슈퍼 갑은 어린이집, 유치원 원장이다. 그날의 발단은, 애석하게도 ‘황금비율 딸기잼’이었다. 넉넉히 챙겨드렸건만 부족하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원장이 은솔 씨를 따로 불러세웠다.
“반말로 ‘내가 여기까지 와서 딸기잼 하나 못 받아 가냐’라고 막 따지시는 거예요. 안 주면 진짜 한 대 때릴 것 같은 눈빛으로 저를 노려보셨어요. 그래서 더 챙겨드렸더니, ‘당연히 줘야지!!’ 하면서 홱 낚아채 가시는 거예요. 와, 그날은 진짜 집에 와서 펑펑 울었어요.”
그렇듯 은솔 씨는 얄궂은 세상을 조금씩 배워간다. 그리고 또 하나,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일, ‘농사’도 배워가는 중이다.
개화(開花): 꽃을 피워 열매를 준비하는 단계

체험 농장에서 체험과 농장은 별개일 수 없다. 아무리 마케팅 잘하고 손님 응대 좋아도 딸기가 맛없으면 꽝이다. 그렇다는 걸 은솔 씨도 잘 안다. 자신의 정체성을 레드팜 대표가 아닌 농부로 여기는 것도 그래서다. 당연하게도, 아직은 부모님 역할이 절대적이지만 은솔 씨 또한 농사에 진심이다. 요즘은 매주 화요일마다 대전농업기술센터에서 수업도 듣는다.
“생각보다 도움이 많이 돼요. 은솔이네 농장, 현수막 홍보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웃음) 아빠는 아빠 세대의 문법이 있단 말이죠. 근데 농업도 빠른 속도로 발전하잖아요. 저는 또 저 나름대로 배워나가야 할 것들이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열심히 수업 듣고 있어요.”
물론, 현장과 이론은 다르다. 여전히 교실에서 배우는 것보단 부모님에게 배우는 게 많다. 아빠 뒤 ‘쫄래쫄래’ 쫓아다니며 딸기 따 먹던 그 시절처럼, 은솔 씨는 부모님 옆에 바짝 붙어 농사의 ABC를 배운다. 작년엔 아예 마음먹고 모종 심는 것부터 같이 했다. 본격적인 농사가 처음이었던 은솔 씨는 “모종 심다가 어깨가 끊어질 뻔했다”라고 회상했다.
“9월 초부터 모종 심기 시작했어요. 아빠가 식재 봉으로 구멍 뚫고 가면, 엄마랑 제가 모종 심으면서 뒤따라갔어요. 근데 저희가 2단 고설재배(딸기를 땅이 아닌 허리 높이 재배 화단에, 위아래로 2단 심는 방식)라서 다른 농장보다 화단이 좀 높아요. 그런 데다가 저는 키가 작아가지고 팔을 살짝 들어야 모종을 심을 수 있더라고요. 똑같은 자세로 몇 날 며칠 모종을 심었으니, 죽다 살았죠(웃음).”

모종 심었다고 끝이 아니다. 농장을 수시로 돌아다니며 모종이 잘 자리 잡는지 지켜봐야 한다. 시들시들하거나 기형으로 자라는 것들은 뽑아버리고 새로 심는다. 은솔 씨는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그걸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 꼼꼼히 배웠다. 10월엔 묵은 잎을 한 차례 걷어낸다.
“모종하고 한 달쯤 지나면 새잎이 올라오기 시작해요. 그즈음 해서 묵은 이파리를 한번 까는 거예요. 묵은 잎은 영양분만 빨아먹고 광합성은 잘 못하거든요……. 그렇대요, 엄마가(웃음). 그 작업만 또 3일 걸려요. 그렇게 3월에 한 번, 4월에 또 한 번 총 세 번 정도 까요. 그래서 3~4월에 진짜 힘들었어요. 이파리 까려면 고개 수그리고 집중해서 들여다봐야 하거든요? 목이 아프더라고요. 근데 또 오전엔 어린이집 아이들이 수십 명씩 오니까 큰 소리로 말하게 되잖아요. 나중엔 목소리가 안 나와요. 이래저래 목이 고생이었죠(웃음).”
11월 전후로 꽃대가 올라온다. 꽃이 피기 시작하면 농장 곳곳에 벌통을 갖다 둔다. 호박벌이 열심히 돌아다니며 수정한다. 11월 중순이 되면 꽃잎이 떨어지면서 열매가 맺힌다. 이때부터는 좋은 놈만 남기고, 못생긴 놈은 솎아 내야 한다. 1년 딸기 농사에서 제일 중요한 작업이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열매를 보고 이놈이 자라서 예쁜 딸기가 될지 안 될지 판단해서 솎아 내는 거예요. 너무 황당한 작업 아닌가요(웃음)? 근데 엄마는 그걸 귀신같이 찾아내서 솎아 내요. 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이건 진짜 경험과 시간이 필요할 거 같아요.”

착과(着果): 꽃이 수정된 뒤 열매가 맺히는 단계
크리스마스 전후로 드디어 첫 번째 딸기를 수확한다. 그렇다. 겨울딸기의 계절이다. 흔히들 딸기 하면 봄을 떠올리지만, 사실 진짜 맛있는 딸기는 겨울딸기란다. 은솔 씨가 말하길, 딸기는 서서히 익어야 당도가 높단다. 봄 딸기보다 겨울딸기가 맛있는 이유다.
“봄 딸기는 높은 온도에서 금방 익어버려요. 열매 맺혀서 수확하기까지 30일밖에 안 걸려요. 말하자면 웃자라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맛도 가볍고 금방 물러요. 그에 반해 겨울딸기는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꽃 피우고 서서히 열매 맺고, 단단하게 익어가거든요. 빨갛게 익기까지 50일쯤 걸려요. 속이 꽉 차 있다고 해야 할까요(웃음)?”
딸기 수확할 땐 식당 서빙용 카트를 밀고 다닌다. 카트에 빨간 ‘다라이’를 4개 펼쳐놓는다. 딸기를 따 크기별로 선별해 담는다. 은솔 씨는 이를 “왕 큰 거, 좀 큰 거, 중간 사이즈, 쬐그만 사이즈”라고 표현했다.
“제가 따오면 왜 이렇게 섞어놨냐고, 아빠가 맨날 뭐라고 해요(웃음). 제 딴엔 분명 구분한 건데 아닌가 봐요. 그래도 따는 것만큼은 자신 있어요. 딸기는 손가락으로 집어서 따면 절대 안 돼요. 손가락 자국도 남고 금방 물러버리거든요. 검지와 중지를 이렇게 줄기 사이에 끼고 인사하듯이 손목을 ‘까딱’하면 딸기가 똑 떨어져요. (은솔 씨는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설명하듯 친절한 말투로 시범을 보여줬다. 까딱.)”

딸기 수확은 5월 초까지 매일 이어진다. 400평 스마트팜엔 2단 화단이 15줄, 그러니까 총 30줄이 있는 거다. 비닐하우스 6개 동을 합친 규모다. 많을 땐 하루에만 150상자(상자당 1kg)를 수확한다. 한 상자에 대략 40알(한 알 평균 25g) 담는다 치면 무려 6,000알이다. 3초에 한 알씩 쉬지 않고, 5시간 동안 따야 가능한 양이다. 그렇게 매일 따고, 따고, 따고, 따고, 따고, 또 따도 계속, 계속, 계속, 계속, 계속 딸기가 계속 달린다.
그래도 다행인 건, 적성에 맞다. 바쁘게 손님 응대하다 보면 에너지 소모가 크다. 멍때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농장으로 들어간다. 노래 들으면서 이파리 손질도 하고, 딸기도 딴다. 그렇게 1년 지내고 보니 이제는 좀 운명인가 싶다. 할 만하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체험 프로그램과 홍보는 제가 전적으로 맡고 있지만, 농사는 아직 부모님 옆에서 돕는 수준이란 말이죠. 근데도 느끼는 게 많아요. 농사는 카페나 편의점처럼 알바생한테 맡겨 놓고 볼일 보러 다닐 수 있는 그런 일이 절대 아니에요. 바쁠 때 부족한 일손을 좀 빌릴 순 있어도 어쨌든 그 농장의 모든 걸 꿰뚫는 책임자가 1년 365일 딱 붙어있어야 하더라고요. 그 책임자가 언젠가는 결국 저의 몫일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죠(웃음). 아, 평생 농부로 살 수밖에 없겠구나. 그래서 더 배우고 싶은 거예요. 하다못해 딸기 당도가 떨어지면 2~3일 물을 안 주거든요? 그러면 다시 당도가 올라가요. 그런 사소한 노하우 하나까지도 다 배워두고 싶은 거죠.”

이왕 하기로 마음먹은 거, 잘 해보고 싶다. 단순히 농사만 잘 짓는 농부가 아니라, 멋진 농부가 되고 싶다. 체험 농장도 더 알차게 꾸리고 싶고, 언젠가는 농장 옆에 딸기 전문 카페도 차릴 계획이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겠지만, 더 부지런히 움직여서 하나씩 하나씩 해내 볼 생각이다.
“농촌에 젊은 세대가 점점 줄어들고 있잖아요. 제 또래 친구들에게 농업도 충분히 멋지고 미래가 있는 일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나중에 누군가가 저를 떠올렸을 때 그런 좋은 선례를 남긴 사람으로 기억해 주면 좋겠어요.”
은솔 씨는 그렇게 차근차근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천천히 꽃 피우고 서서히 열매 맺고 그리하여 단단하게 익어가는 겨울딸기처럼.

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꼬마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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