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령 세우타로 몰려온 모로코인들
2026년 7월 말, 7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로코에서 스페인령 세우타로 밀려들었다. 철책을 넘고, 방파제를 돌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대부분은 다시 모로코로 돌아갔지만, 최소 75명이 국경과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 인구 8만 명 남짓한 작은 도시는 순식간에 수용 한계를 넘어섰다.

2026년 7월 30일(현지 시각)
모로코 북부 프니데크에서
스페인령 세우타로 넘어가려던 사람들 모습

바다를 건너 세우타로 넘어간 사람들이
육지로 올라가는 모습
출처-<연합뉴스>
비극은 곧 정치적 구호로 번역됐다. 트럼프는 스페인의 이민정책을 공격했고, 멜로니 정부는 사건을 솅겐의 문제로 끌어올렸다. 유럽과 미국의 극우는 기다렸다는 듯 ‘침공’, ‘유럽의 위기’, ‘진보적 이민정책의 파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유럽의 국경을 넘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도를 한 번만 더 들여다보면 질문의 방향이 뒤집힌다. 유럽의 국경은 어째서 아프리카 대륙 안에 들어가 있는가.

스페인령 세우타의 위치
출처-<한겨레>
세우타 문제는 서로 다른 두 질문으로 나누어야 한다.
“누가 어떤 역사를 통해 아프리카 안에 유럽의 국경을 만들었는가.”
“그리고 누가 지금 그 국경에서 벌어진 비극을 ‘유럽의 위기’로 바꾸어 자신의 정치에 이용하고 있는가.”
국경을 먼저 넘은 쪽
2026년에는 모로코의 청년들이 유럽의 국경을 넘었다. 그러나 시간을 611년 전으로 돌리면 방향은 반대가 된다. 1415년 포르투갈 국왕 주앙 1세와 왕자들, 군대가 바다를 건너 북아프리카의 항구도시 세우타를 점령했다.

주앙 1세
이는 이웃 국가 사이의 평범한 국경분쟁이 아니었다. 이슬람 세력에 대한 종교전쟁, 지브롤터 해협과 교역로의 장악, 신생 왕조의 권위 강화, 귀족들에게 새로운 전쟁과 보상을 제공하려는 목적이 결합된 군사적 정복이었다.
세우타 점령은 훗날 아프리카와 아시아, 남아메리카로 뻗어나간 포르투갈 해외 제국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됐다. 정복자들은 도시의 대모스크를 교회로 바꾸었다. 영토만 차지한 것이 아니라 피정복자의 신앙과 정체성까지 굴복시켰다. 이후 세우타는 이베리아 왕조의 결합과 분리를 거쳐 스페인 영토로 남았다.
물론 600여 년이 지난 오늘의 세우타를 15세기의 점령지와 완전히 같은 공간으로 볼 수는 없다. 세우타는 주민과 선거, 지방자치제도를 가진 스페인의 자치도시이고, 그곳 사람들은 스페인 시민으로 살아간다. 과거의 정복을 인정하는 일이 현재 주민의 의사를 무시한 채 영토를 넘기자는 주장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리와 제도의 불일치는 그대로 남아 있다. 세우타는 지리적으로 아프리카이지만, 정치·법적으로는 스페인이자 유럽연합의 일부다. 그러면서도 세우타에서 스페인 본토로 이동할 때에는 별도의 신분·서류 검사를 거쳐야 한다.
세우타의 이 복합적 예외성은 아프리카가 유럽의 경계를 침범해서 생긴 것이 아니다. 과거 유럽이 자신의 경계를 아프리카 안으로 밀어 넣었기 때문에 생겼다.
영토와 함께 책임도 상속된다
스페인과 유럽연합이 국경을 지킬 권리는 부정되지 않는다. 국가는 시민의 안전과 복지, 사회질서를 보호해야 한다. 세우타의 역사적 기원을 비판한다고 국경을 무조건 열거나, 현재 주민의 의사와 권리를 무시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국경을 지킬 권리가 그 국경의 역사를 면죄하지는 않는다. 현재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과, 그 주권이 침략과 정복에서 출발했음을 인정하는 것은 얼마든지 양립할 수 있다.
오늘날 유럽인이 1415년의 죄인이라는 뜻도 아니다. 다만 정복으로 얻은 영토와 권리를 계승한다면, 그 역사에 대한 기억과 책임도 함께 계승해야 한다. 영토는 상속받되 책임은 상속받지 않겠다는 태도는 성립하기 어렵다.
한국이 일본에 요구해 온 것도 배상만이 아니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인정하고, 한 번 인정한 역사를 다시 부정하거나 미화하지 말라는 요구였다. 세우타와 한일 관계의 법적 구조가 같다는 뜻이 아니라, 과거의 폭력을 대하는 윤리가 같다는 뜻이다.
역사적 책임은 영토의 무조건적 포기나 국경의 폐지를 의미하지 않는다. 정복의 역사를 인정하고 제국의 폭력을 미화하지 않으며, 국경에서도 인권과 법치를 지키는 일이다. 자신의 번영과 국경 바깥의 현실이 완전히 무관하지 않다는 도덕적 겸손을 잃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스페인령 세우타
출처-<aivp.org>
스페인이 세우타를 지킬 권리는 있다. 그러나 유럽은 그곳을 어떻게 얻었는지를 잊을 권리가 없다. 오늘날 북아프리카의 불평등과 취약한 경제구조, 청년들이 자기 사회에서 미래를 찾지 못하는 현실에도 유럽의 식민 지배와 그 뒤를 이은 불균형한 국제 질서가 남긴 몫이 있다.
물론 모든 책임을 유럽에 돌릴 수는 없다. 권력구조와 부패, 교육·고용정책의 실패와 사회적 불평등은 모로코 정부와 지배층의 책임이다. 그렇다고 유럽이 국경 밖의 절망을 자신과 무관한 외부 문제로 취급할 수도 없다.
다만 이 오래된 역사만으로 2026년 7월에 수만 명이 한꺼번에 움직인 이유까지 설명되지는 않는다.
직접적인 배경에는 교육을 받아도 안정된 일자리를 얻기 어렵고, 노력해도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품기 힘든 모로코 청년들이 있었다. 유럽은 이들에게 단순히 더 부유한 곳이 아니라 지금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출구로 보였다.
그럼, 왜 하필 지금 이 사건이 터졌나
불씨는 스페인 대법원의 판결과 이민자 합법화 정책에 대한 오해였다. 바다로 들어온 사람을 아무 절차 없이 곧바로 돌려보낼 수 없다는 판결은 소셜미디어에서 “지금 세우타에 들어가면 추방되지 않는다”는 말로 둔갑했다. 이미 스페인에 머물던 사람을 대상으로 한 합법화 정책도 새로 들어오는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처럼 퍼졌다.

잘못된 인터넷 게시물들에 대한 기사
소셜미디어는 사건을 전한 데 그치지 않는다. 먼저 국경을 넘은 사람들의 영상은 성공 가능성의 증거가 되고, 반복되는 장면은 검증된 정보처럼 받아들여진다. 중앙의 지휘자가 없어도 수만 명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분산형 동원이 일어난다.
소셜미디어는 판단보다 모방을 앞세운다. 무엇이 사실인지 따지기 전에 남들이 움직인다는 사실 자체가 행동의 근거가 되게 한다. 검증되지 않은 가능성도 반복될수록 현실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모로코 정부가 사태를 직접 조직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그러나 국경통제를 강화하거나 느슨하게 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모로코의 외교적 지렛대인 것은 분명하다. 소문은 불씨였다. 하지만 자기 사회에서 미래를 잃은 청년들의 절망이 없었다면, 그렇게 큰불로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국의 과실은 먹고, 청구서는 거부한다
세우타의 비극은 곧 극우·급진 우파의 정치적 자산이 됐다. 멜로니 정부는 이를 솅겐의 위기로 확대했고, 트럼프는 스페인의 진보적 이민정책이 불러온 ‘침공’이라고 규정했다. 국경에서 벌어진 혼란은 순식간에 진보 정부와 이민자 권리, 유럽 통합의 실패를 입증하는 장면으로 편집됐다.
그러나 세우타에 들어온 사람들이 곧바로 스페인 본토와 유럽 전역으로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다시 모로코로 돌아갔다. 세우타에는 분명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가 발생했지만, 이를 유럽 전체가 이주민에게 점령당하는 위기로 바꾼 것은 사실의 기술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이었다.
더 기묘한 것은 이 비판을 주도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세우타를 만든 유럽의 정복과 식민적 역사를 진지하게 반성해 온 세력이 아니다. 오히려 과거 유럽의 문명적 우월성과 제국의 팽창을 축소하거나 미화하면서, 그 역사가 남긴 이동과 갈등은 오늘날 진보 정책이 새로 만들어낸 문제처럼 말한다.
식민주의는 끝난 역사라고 하면서, 이민은 오늘 시작된 침략이라고 부른다. 제국이 남긴 부와 국제적 위계는 자연스러운 유산으로 누리면서, 그 역사에서 비롯된 책임과 인간의 이동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제국의 과실은 계속 먹고 싶지만, 청구서는 수취 거부다.
물론 오늘날 유럽의 모든 번영이 식민 지배에서 나왔다고 할 수는 없다. 산업화와 과학, 노동운동과 민주주의, 복지국가의 성취가 현재의 유럽을 만들었다. 그러나 식민 팽창과 불평등한 국제질서가 유럽의 부와 세계적 지위에 아무런 몫도 남기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역시 역사 왜곡이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스페인 진보정당인
‘스페인 사회노동당’(PSOE)의 당수이기도 하다.
출처-<로이터>
미국 정치권과 이스라엘 외교관들도 세우타의 식민적 기원을 들어 스페인의 현 진보 정권을 공격했다. 그들이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해서 그 역사가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의 목적은 탈식민화나 역사적 책임의 인정이라기보다, 팔레스타인과 이민 문제에서 스페인 진보 정부가 가진 도덕적 정당성을 훼손하는 데 가까웠다.
따라서 두 비판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제국의 역사를 인정하고 그 책임을 기억하라는 비판과 그 과거를 반성하며 만들어온 현재의 유럽을 해체하라는 공격은 같은 유럽 비판이 아니다. 하나는 유럽이 더 나은 유럽이 되라는 요구이고, 다른 하나는 유럽을 과거의 위계와 배제 속으로 되돌리려는 정치다.
여기서 ‘진보와 극우’라는 표현은 좌우에 일부러 다른 강도의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니다. 오늘날 유럽의 좌측은 대부분 중도좌파와 사회민주주의·녹색정치를 중심으로 재편된 반면, 우측에서는 과거 주변부에 있던 배외적 민족주의와 권위주의 세력이 전통적 보수의 의제 주도권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현실의 중심 대립은 극좌와 극우도, 진보와 전통 보수도 아니라 진보와 극우의 충돌에 가까워졌다.
그렇다면 처음의 두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누가 어떤 역사를 거쳐 아프리카 안에 유럽의 국경을 만들었는가. 그리고 누가 지금 그 국경에서 벌어진 비극을 ‘유럽의 위기’로 번역해 자신의 정치에 이용하고 있는가.


세우타 사건을 이용하고 있는
유럽의 대표 극우 정치인들.
(순서대로) 이탈리아 총리 멜로니,
프랑스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 원내대표 마린 르 펜,
독일 극우 정당 AfD(독일을 위한 대안) 대표 알리스 바이델,
영국 극우 정당 Reform UK(영국 개혁당) 대표 나이절 파라지.
두 질문의 답은 결국 하나의 계보로 모인다.
과거에는 군대와 정복으로 유럽의 경계를 아프리카 안에 밀어 넣었던 제국의 유럽이고, 오늘날에는 그 제국이 누렸던 위계와 특권을 그리워하며 국경과 문명의 위기를 말하는 극우의 유럽이다. 시대와 수단은 달라졌지만, 세계를 지배하는 쪽과 지배받는 쪽으로 나누는 시선은 이어진다.
과거 제국주의를 가장 덜 반성하는 세력이, 바로 그 과거를 넘어서려는 오늘의 유럽을 위기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위기는 어디에 있는가
제국주의는 유럽의 부인할 수 없는 과거다. 그러나 오늘의 유럽은 민주주의와 법치, 인간의 존엄과 사회적 권리, 노동과 복지의 보호, 환경과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을 제도화하려는 노력 속에서 만들어졌다.
시장과 기술, 국가의 힘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고 공공의 규율 아래 두려는 태도도 이 유럽의 일부다. 솅겐과 유로는 국경과 화폐, 주권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국민 국가를 넘어선 공동체가 가능한지를 시험해 온 제도다.

유럽연합
물론 유럽이 언제나 이 가치에 충실했던 것은 아니다. 국경에서는 인권이 후퇴했고, 시장의 논리가 연대를 앞섰으며, 식민주의가 남긴 불평등과 위계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인간과 노동, 환경과 생명, 기술과 미래의 문제를 공동의 정치적 책임으로 바꾸려 한 가장 선도적인 정치적 실험 가운데 하나가 오늘의 유럽이다.
그것은 유럽인이나 유럽 문명이 본질적으로 우월해서가 아니다. 현재 유럽이 집단적으로 선택하고 제도화해 온 철학이 미래지향적이기 때문이다. 그 우수성은 혈통이나 문명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시장의 힘을 스스로 제한하고 공동의 책임을 제도화하려는 정치적 선택에 있다.
이러한 유럽은 제국의 유럽이 자연스럽게 발전한 결과가 아니다. 전쟁과 파시즘, 홀로코스트와 식민주의가 남긴 폐허를 돌아보며 과거의 유럽을 부정하고 넘어가려 한 진보적 성찰의 산물이다. 인권과 사회권, 초국가적 연대와 생태적 책임은 과거 유럽의 무죄를 증명하는 장식이 아니라 그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세운 방파제다.
극우가 말하는 ‘유럽의 위기’는 정반대의 뜻을 갖는다. 이들에게 위기는 유럽이 더 이상 민족적·문명적으로 동질적이지 않고, 국경과 국가 주권이 절대적이지 않으며, 인권과 노동권, 환경규제가 국가와 기업의 힘을 제한하는 현실이다. 유럽이 과거처럼 세계를 일방적으로 지배하지 못하는 것마저 쇠퇴로 읽힌다.
그러나 정작 유럽의 위기는 다른 곳에 있다. 솅겐과 유럽 통합이 후퇴하고, 인권과 법치가 국경 앞에서 멈추며, 노동과 환경, 사회적 연대가 다시 민족주의와 시장의 힘에 밀려나는 것이 위기다. 과거의 문명적 위계와 제국의 질서가 새로운 이름으로 돌아오는 것이 위기다.
스페인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려는 움직임도 이 대립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세우타의 국경 관리나 산체스 사회당 정부의 개별 정책을 둘러싼 갈등을 넘어, 과거를 반성하며 미래로 나아가려는 유럽과 민족·국경·문명적 위계의 과거로 돌아가려는 유럽이 앞으로의 방향을 놓고 충돌하고 있다.
극우에게 위기는 유럽이 더 이상 제국처럼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다. 진보에게 위기는 유럽이 다시 제국을 그리워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세우타는 과거 유럽이 아프리카 안에 밀어 넣은 국경이다. 유럽은 그 앞에서 책임의 기억과 도덕적 겸손을 가져야 한다. 동시에 그 반성 위에서 형성된 인권과 연대, 초국가적 협력의 방향까지 과거의 유럽과 한데 묶어 부정해서는 안 된다.
세우타가 드러낸 것은 이주민이 만들어낸 ‘유럽의 위기’가 아니다. 유럽이 제국의 기억을 책임으로 받아들이며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그 기억을 지우고 제국의 특권만을 되찾으려 할 것인지의 갈림길이다.

편집: 임권산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임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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