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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에서 조선 최고 선물투자가가 된 남자

 

1921년 5월 28일, 경성 최고의 호텔인 조선호텔 대연회장에서 무려 30억 원의 비용이 투입된 초호화 결혼식이 열렸다. 신랑은 20대 초반의 하인 출신이었고, 신부는 당대 최고의 엘리트이자 경성 최고의 미인으로 불렸던 동갑내기 김후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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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후동

출처-<동아일보>

 

신랑은 인천에서 서울로 올 자신의 하객을 위해 전세 기차를 준비했다. 하객 중에는 인천 시장 격인 부윤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고위 인사가 즐비했다.

 

"서울역에서 차량이 대기하고 있으니, 호텔까지 편하게 오시면 됩니다."

 

경성역 앞에는 신랑의 하객을 실어 나를 70대의 자동차가 대기 중이었다. 경성 전체에 자동차가 200대였으니, 신랑의 현금 동원력은 가히 당대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조선인들의 평균 월급이 40원이던 시절에 결혼식 당일 비용으로 3만 원을 뿌린 이 남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하인 출신이었지만, 조선인 개미투자자들에게 신이라 불리는 자리까지 올라간 사나이. 조선 최고의 선물투자가 ‘반복창’이었다.

 

“뭐? 종잣돈 5백 원으로 40만 원을 벌었다고? 잠깐 그럼 수익률이 800배! 도대체 그 양반은 무슨 수로 일 년 만에 그런 돈을 벌었던 말인가?”

 

“어허! 뭘 그리 놀래나! 난 인천에 살면서 반복창을 모르는 자네가 더 놀랍네. 자네 그럼 미두취인소도 모르겠구먼?”

 

“미두? 취? 뭐?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인가?”

 

“이 답답한 양반을 도대체 어디서부터 가르쳐야 하나. 자. 잘 듣게. 아니, 나 말고 우리 작가 양반이 자세하게 잘 알려 줄 걸세. 반복창과 미두취인소에 대해서”

 

20대 초반의 반복창은 도대체 어떻게 현재 한화 가치 40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을 일 년 만에 벌었을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1920년 인천의 금융 거리에 위치해 있던 미두취인소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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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인천 미두취인소

출처-<인천일보>

 

 

조선 최초의 선물거래소가 생기다

 

인천은 서해 최고의 개항항이다. 수많은 물산이 오갔지만, 특히 쌀의 집산지이자 출하지이기도 했다. 그리고 1896년 쌀과 콩을 대상으로 현물 및 선물을 거래하기 위한 미두취인소가 일본인 ‘가쿠 에이타로’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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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쿠 에이타로

 

“아노! 조선 쌀 거래의 안정화를 위해서 미두취인소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경매를 통해 농산물의 가격과 품질의 기준을 확립하는 것이 우리 미두취인소의 설립 목적입니다.”

 

일반적으로 말이 지나치게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며 듣기에도 좋다면, 반드시 가시가 숨겨져 있게 마련이다. 특히 일본인 자본가와 사업가들에 의해서 이곳이 설립되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속셈이 있었다.

 

미두취인소는 인천 자유공원 인근에 들어섰는데, 증권시장의 모태가 되기도 하는 쌀의 선물거래소이다. 쌀을 비롯한 곡물이 현물로 거래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쌀과 콩의 시세를 경매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거대한 투기판이 형성되었다. 어떻게?

 

“고객님! 어서 오십시오. 미두 거래에 참가하시려면 먼저 미두 통장을 만드셔야 합니다. 그리고 쌀 거래의 최소 구매 단위는 100석입니다.”

 

“여기 통장은 만들었소만, 100석을 사려면 1,000원이 필요한데 난 100원밖에 없는데 어쩌지요?”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객님. 저희 미두취인소에서는 100석을 현금으로 구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10%의 증거금만 예탁하시면 됩니다. 마침 딱 100원이 있으시군요. 여기 영수증 있습니다.”

 

“엥? 정말이요? 진짜로 10원만 냈는데 영수증에 100석을 구매했다고 기록되어 있네?”

 

“맞습니다. 고객님. 그리고 석 달 후에 쌀값이 20원이 되면 고객님의 통장에 2,000원이 꽂히게 됩니다.”

 

“엥? 10원을 투자했는데 2,000원이?”

 

요약하면, 미두취인소는 10%의 증거금만으로 쌀을 사고팔던 선물 시장이었다. 선물거래란 미래의 일정 시점에서 미리 정한 가격으로 매매할 것을 현재 시점에서 약정하는 거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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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미두 거래 모습

출처-<인천일보>

 

가격은 어떻게 결정됐을까? 

 

당연히 쌀을 사겠다는 사람이 많으면 쌀값이 올라가고, 팔겠다는 사람이 많으면 쌀값이 내려갔다. 다만 변동 폭이 상당했다. 

 

쌀값은 공개 시장에서 결정됐지만, 하루에도 열 차례 이상 가격이 변동했다. 10%의 증거금만으로도 쌀을 구매할 수 있고, 단 한 번의 거래만으로도 목돈을 만질 수 있다 보니 심각한 사회문제가 발생했다.   

 

일제강점기 미두취인소의 병폐를 다룬 동아일보 기사를 보자.

 

“하루 사이에 쌀값이 10원씩 20원씩 오르내리자, 노름판은 더 커진 셈이었다.”

 

경성과 경기도 인근은 물론이고 팔도의 부자들이 돈 보따리를 싸 들고 인천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인천의 미두취인소 인근은 장 마감 후에도 불야성을 이루었다. 미두장에서 돈을 날린 사람들은 쓰린 속을 달래고 솟아오르는 분노를 누르기 위해서 술이 절실했다.

 

“에이! 오늘 날린 돈이 얼마여! 속에서 천불이 나는구먼. 아 주인장! 뭐 하시오? 빨리 술부터 달라니까!”

 

이따금 미두장에서 돈을 번 사람들 또한 술이 필요했다.

 

“이게 도대체 얼마냐? 몇 년 치 월급보다 큰돈을 하루 만에 벌었네! 기분이다! 오늘은 내가 여기 오신 분들에게 한잔 살 테니 실컷 마시고 즐기시오.”

 

1920년대 나라를 잃고 실의에 빠진 조선인들에게 미두취인소는 꿈이자 유일한 희망처럼 여겨졌다. 

 

처음 접하는 금융시스템인 선물시장임에도 미두판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자신만은 돈을 잃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미두장에 개미투자자들까지 끌어모으게 하는 한 남자가 등장했다.  

 

하루 결혼식 비용으로 30억을 치른 미두의 신이라 불린 남자, 반복창이었다.

 

 

반복창의 인생

 

1900년도에 태어난 반복창은 가난한 집안 환경 탓에 12살의 나이에 이른 취직을 하게 된다. 말이 취직이지 일본인 아라키의 집에 하인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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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천일야사>

 

“월급은 없다. 먹여주고 재워주니 그것으로 대일본제국의 은혜에 감사하게 여겨라.”

 

소년 반복창의 첫 사회생활은 그렇게 일본 상인의 집에서 시작되었다.

 

2년 후, 아라키는 소년 반복창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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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천일야사>

 

“너 제법 셈이 빠르더구나. 오늘부터 잡일은 그만하고 사무실로 나와 요비코로 일하거라. 월급은 5원이다.”

 

“감사합니다.” 

 

착취나 다름없는 금액이었지만, 반복창은 기회가 주어짐에 감사했다.

 

일본인 아라키는 미두 시장에서 중매점을 운영하여 큰돈을 번 인물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증권사의 지점을 운영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라키가 반복창에게 맡긴 ‘요비코’란 오사카의 쌀 시세를 미두장에 모인 투자자들에게 알려주는 직책이었다. 

 

“오늘 오사카 쌀 가격은 20원 50전입니다.”

 

왜 반복창은 오사카의 쌀 시세를 조선의 미두장에 있는 투자자들에게 알려야 했을까?

 

당시 조선의 쌀 시세는 거래량, 풍작과 흉작은 물론이고 해외시장인 일본의 쌀 시세에도 큰 영향을 받았다. 조선 쌀의 최대 소비지가 일본이었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대호황을 맞은 일본은 쌀의 소비가 급속도로 늘어났다. 그리고 이는 쌀 부족 현상으로 이어졌다.

 

"쌀을 외국에서 수입해야겠는데, 어디가 적당하겠소?"

 

그렇게 일본은 자신들의 쌀과 품종은 같지만, 가격은 훨씬 싼 조선 쌀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일본 내 최대 쌀 집산지 중 하나인 오사카의 쌀 시세는 조선의 미두 시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오사카에서 전보가 올 시간이 됐는데?”

 

“어! 저기 아라키 집 직원이 들어오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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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천일야사>

 

“오늘 오사카 시세는 30원 80전입니다.”

 

“만세! 쌀값이 올랐네! 올랐어!”

 

오사카의 쌀 시세가 10원 오르면 인천 미두장에 투자한 이들은 현재 가치 1억 원을 호가하는 수익을 올릴 수도 있었다. 이런 직장에서 일을 하게 되는 반복창도 당연히 금빛 꿈을 꾸게 되었다.

 

“우선 종잣돈부터 부지런히 모으자.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소년 반복창은 일본인 지주 아라키에게서 받는 월급 5원을 악착같이 모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복창아! 너도 이제 19살이니 월급을 1원 올려주마. 그리고 내일부터 네가 중매점 대리인을 맡도록 해라. 나는 다른 일을 좀 해야겠다.”

 

12살에 잡부로 취직을 한 반복창이 19살의 나이에 증권사 지점장이 된 것이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런데 무슨 일을 하시려고?”

 

미두 중매점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던 아카리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투자에 나서기로 했다.

 

“나만큼 미두 시세에 밝은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느냐? 인천의 미두장을 통해 조선! 아니, 일본 최고의 부자가 될 것이다.”

 

아라키는 다양한 루트를 통해 얻은 풍부한 정보와 현장 경험을 살려 초반부터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분명 쉬워 보였는데? 어째서 쌀값이 내 예상과 정반대로 움직인단 말이냐? 안 되겠다. 복창아! 이번엔 따블로 가자!”

 

“저기 사장님! 더 이상 낼 증거금이 없습니다!”

 

“뭐? 내가 미두 중개점으로 그동안 번 돈이 얼마인데, 벌써?”

 

쉽게 번 돈은 더 쉽게 새는 것이 돈의 법칙이다. 아라키는 그동안 쌓아온 신용과 인맥을 총동원하여 증거금도 내지 않고 무려 180만 원어치의 쌀을 매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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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증권 시황 기사

출처-<서울경제>

 

몇 달 후, 조선총독부로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증거금도 내지 않고 무리한 투자로 인천 미두취인소를 혼란에 빠트린 아라키가 일본으로 도주했다. 오늘부터 미두취인소를 잠정 폐쇄한다.”

 

아라키가 조선에서 번 돈을 조선의 미두취인소에서 탕진하고 일본으로 도주해 버린 것이다. 불똥은 반복창에게 튀었다.

 

“아! 진짜 너무 하십니다. 이제 좀 살만해졌는데.... 제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아는 거라고 미두 시세밖에 없는데, 앞으로 뭘 먹고 산단 말입니까?!”

 

그러나 석 달 후 상황이 달라졌다.  

 

조선총독부가 오히려 자본금을 100만 원으로 늘려 미두시장을 재개장한 것이다. 도대체 조선총독부는 투기장으로 변모해 버린 미두취인소에 왜 공을 들였을까? 

 

조선의 미곡 유통·수출과 투기 자금의 흐름을 장악하는 식민지 경제 장치로서 미두취인소의 기능을 포기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로 인해 청년 반복창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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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천일야사>

 

“월급으로는 답이 안 나온다. 인생의 절반을 미두장에서 보냈다. 증거금만 있으면 누구나 투자할 수 있다. 내가 직접 해보자.”

 

청년 반복창은 일본인 사장 밑에서 일하며 배운 일본어와 미두시장의 흐름을 읽는 눈을 무기로 직접 투자에 나서기로 한다. 특히 그는 쌀값의 등락을 점쟁이에게 물어보던 여타의 개미투자자들과 달리 그래프까지 직접 그려가며 미두 시황을 분석했다.

 

“최근 6개월간의 등락을 보면, 석 달 후에는 반드시 오르겠구나. 다른 건 몰라도 쌀값만은 내가 점쟁이보다 잘 맞출 수 있다.”  

 

반복창의 투자는 처음부터 성공했을까? 아니면 여타의 다른 개미투자자처럼 실패를 반복하다 어느 순간 대박을 터트렸을까?  

 

다음 편에서 이어가 보겠다.

 

<계속>

 

 

추신.

 

필자가 신간을 출간했다. 

 

잘 알려진 사건을 반복 설명하는 대신, 기록 속에서 잊히거나 의도적으로 지워진 이야기, 지금까지도 논쟁이 이어지는 사건, 역사와 전설의 경계에 놓인 이야기를 치밀하게 추적하는 책이라고!

 

본 기사도 책 내용 중 일부다.

 

우리가 알고 있던 전혀 다른 한국사의 얼굴을 마주해보고 싶은 독자께 권한다.

 

아, 참! 슈퍼팩토리공장장이 꼭 좀 전해달라 했다.

 

"형님, 누님, 동생 여러분, 책 한 권 사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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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임권산

마빡 디자인 : 꾸물

기사 : 슈퍼팩토리공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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