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세습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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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특히 개신교 일부 대형 교회의 세습 문제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시기가 있다. 대형 교회들이 성장기를 지나면서 1세대 목회자들의 은퇴 시기가 왔고, 이후 누가 해당 교회를 이끌어 갈 것인지의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시작되었다. 1세대 목회자들은 자녀, 특히 아들에게 교회를 넘겨주기 위해 온갖 편법을 동원한다.
교회의 정관을 바꾸거나 새로운 교회를 세운 뒤 합병하는 방식이 동원되었고, 아들이 직접 담임 목회를 물려받는 대신 사위나 측근을 거쳐 다시 가족에게 권력이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대형 교회가 결국 담임 목회자의 아들을 통해 세습을 마쳤다. 쪽팔린 건 순간이지만, 권력과 돈은 영원하다. 그렇게 잠시의 비난을 감수한 교회들은 당분간 유지될 세습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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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다. 교회 성취는 목회자 개인의 능력도 아닐뿐더러 그 개인은 어떠한 영향력도 가질 수도, 행사할 수도 없어야 한다. 신앙은 상품이 아니며, 성직이라는 직제도 재산으로 분류될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은 교회 구성원인 성도가 세습을 원하는데 안 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수백 년 전, 왕권과 기독교가 중심이었던 유럽, 과거 미국에서 행해진 각종 사례를 들어 세습을 정당화한다.
절대적인 권력으로 백성을 다스리던 왕조의 시대가 저물고, 개인이 자신의 의지로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신분과 혈통이 아니라 각자의 믿음에 따라 종교 공동체를 선택하는 세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종교의 자유 속에서 다시 나타난 것 가운데 하나는 오래된 왕조의 방식이었다. 권력의 세습. 우리 근현대 종교사에서 이러한 모습을 가장 이른 시기에 선명하게 보여준 집단이 바로, 백도교와 그 뒤를 이은 백백교다.
1919년, 백도교의 창시자 전정예가 죽었다. 불멸의 존재가 세상을 떠났으니, 그가 만든 종교도 함께 끝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실제로 그의 죽음이 알려진 뒤 적지 않은 신도가 교단을 떠났다. 불로장생을 말하던 교주가 죽었다는 사실은 그가 전한 가르침 전체를 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백도교는 사라지지 않았다. 죽은 교주의 권위는 전정예의 세 아들에게 나뉘어 넘어갔다. 큰아들 전용주는 인천교, 셋째 아들 전용석은 도화교를 세웠다. 둘째 아들 전용해는 백도교의 실질적인 조직을 이어받아 백백교를 장악했다. 전정예의 가르침과 사상은 교리 대신 종교적 자산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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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부모의 종교를 이어받는 일 자체는 잘못은 아니다. 목회자의 자녀가 목회자가 될 수도 있고, 종교 지도자의 자녀가 부모와 같은 신앙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앙을 이어받는 일과 권력을 물려받는 일은 다르다. 권위는 검증받아야 하며,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동의가 필요하다. 세습이 시작되는 순간 이러한 과정이 생략된다. 후계자의 자격을 판단하는 주된 근거가 혈통이 되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혈통이 능력을 대신하고, 아버지의 권위가 아들의 세습 자격이 된다.
다만, 자녀에게 자리를 넘겨준다고 세습이 완성되는 건 아니다. 그 권력을 기꺼이 수용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교주의 자녀에게 아버지의 영적 능력과 사명이 이어졌다고 믿는 자들 말이다.
세습의 시작, 백도교
지난 100년간, 한국의 기독교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성장을 일궈냈다. 성장의 뒷배경에는 카리스마 리더십이 있다. 확고한 목표와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에게 대중은 매료되었고, 신도들은 헌신과 봉사의 마음으로 자신을 갈아 넣었다. 그 결과, 국가 경제가 성장하고 교회는 세를 키웠다. 하지만 공동체가 리더의 카리스마에 의존하고 있을 때 발생하는 리더의 부재는, 세상의 질서가 무너지는 계기가 된다. 특히 종교에서 이러한 구조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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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들이 바친 재산과 시간, 공동체 안에서 얻은 정체성이 모두 흔들리는 상황에서 새로운 지도자를 처음부터 검증하는 일은, 지금까지 믿어온 세계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연다. 이때 이 모든 과정을 단숨에 해결해 주는 것이 '혈통'이다. 아버지 시대의 끝은 아들 시대의 시작을 의미한다. 하나님도 아들 예수를 메시아로 삼았다. 하늘의 선택은 한 개인이 아니라 그의 가문 안에서 계속된다는 믿음은 상실감을 덜게 한다. 세습은 아들을 통해 아버지를 다시 보려는 일이기도 하다. 창시자의 혈통 안에 그의 신성함이 살아 있을 거로 기대한다.
전용해가 백백교의 지도자로 올라서는 과정도 그러했다. 신도들이 전정예에게 품었던 두려움과 경외, 구원에 대한 기대가 믿음의 방향을 바꾸어 전용해에게 옮겨져야 했다. 오래된 신도들 사이에선 전정예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전용해의 능력을 의심하거나 세습의 정당성에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었다.
선출된 지도자는 자신의 성과를 통해 평가받고 임기가 끝나면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다. 그러나 혈통을 통해 얻은 권력에 대한 평가는 도전이 되어, 비판은 배신으로, 의심은 불신앙으로, 탈퇴는 반역으로 규정된다. 그래서 지도자의 무리한 요구가 있거나 지도자가 이해되지 않는 판단을 내려도 쉽게 공동체를 떠나지 못한다. 특히 시간과 재산을 바친 신도들에게 자신이 헌신한 공동체를 떠난다는 건 단순히 종교를 바꾸는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자기 선택과 희생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 된다. 그래서 결국 그 자리에 남아 이상하다고 느낄수록 순종하고, 상처받으면서 더 깊이 헌신하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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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기독교회에서 벌어지는 갈등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교회 세습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교회 재정과 헌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투명하게 공개해 달라고 요구하거나, 지도자의 결정에 공개적인 토론을 요청하는 일을 '교회를 분열하는 행위'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다. 백백교는 살인과 암매장, 조직적 착취로 이어진 극단적인 범죄임으로 오늘날 교회의 모습과 동일 선상에 놓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공정하지 않다. 그러나 권력이 자신을 보호하는 방식만큼은 시대를 넘어 비슷한 구조를 공유한다.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던진 문제 제기는 공동체를 공격하는 행위로 낙인찍히니 말이다.
세습은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한 선택으로 설명된다. 창립자 정신을 이어간다던가, 분열을 막고 교회 공동체의 안정을 위해서라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세습은 지도자를 검증할 기회를 줄여 공동체를 더 위험에 빠뜨린다는 사실을. 건강한 공동체에 투명성과 책임은 필수다.
신도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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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가장 큰 문제는 살아 있을 때가 아니라 죽은 뒤에 시작된다고 보았다. 카리스마는 본래 특정 개인에게 귀속되는 권위다. 창시자가 죽으면 공동체는 그 권위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하는데, 베버는 이러한 과정을 카리스마의 일상화로 설명한다. 처음에는 한 개인에게 집중되었던 특별한 권위가 시간이 지나면서 혈통이나 제도, 직책과 같은, 보다 안정된 형태로 옮겨 간다는 것이다. 전정예의 죽음 이후, 그의 아들들이 자연스럽게 후계자로 거론된 것도 바로 이러한 사회학적 현상의 한 사례로 이해할 수 있다. 사이비, 정통 할 거 없이 너도나도 세습에 뛰어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회학적 이론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인간은 자신의 믿음과 현실이 충돌할 때 극심한 심리적 불안함을 경험한다. 흔히 알고 있는 '인지부조화'다. 이미 오랜 시간 교주를 믿고 헌금을 바치며 자신의 삶을 공동체에 헌신한 사람이 어느 날 "우리가 잘못 믿었다"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창시자의 죽음을 인정하기보다 후계자를 받아들이는 편을 선택한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믿음과 희생이 무너지지 않게 만드는 가장 덜 고통스러운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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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결정 연구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어빙 재니스는 '집단사고'라는 개념을 통해 응집력이 강한 집단일수록 비판적인 의견이 점차 사라지고 만장일치의 환상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몇몇 사람만 후계자를 지지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반대 의견은 공동체의 화합을 깨뜨리는 행동으로 여겨지고, 침묵은 곧 동의로 해석된다. 결국 많은 사람은 정말로 찬성해서가 아니라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 동조하게 된다.
여기엔 공동체를 잃고 싶지 않은 인간의 심리도 작용한다. 경제학자이자 사회 사상가인 앨버트 허시먼은 조직에 불만이 생겼을 때 사람은 떠나거나(Exit), 목소리를 내거나(Voice), 남아서 충성하는(Loyalty) 세 가지 선택을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폐쇄적인 종교 공동체에서는 이 세 가지 선택이 균형을 이루기 어렵다. 떠나면 가족과 친구를 잃을 수 있고, 목소리를 내면 불순종하거나 믿음이 부족한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결국 많은 사람은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침묵 속에서 공동체에 남는 길을 택한다. 충성은 신앙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공동체를 잃지 않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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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자기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교회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단순히 내가 소속된 교회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를 흔드는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공동체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공격처럼 느끼고, 지도자를 향한 질문을 공동체 전체를 향한 공격으로 해석한다. 즉, 신도들에게 세습을 인정하는 일은 내가 일궈놓은 헌신과 노력의 대가를 부정당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움직임이다.
백백교가 남긴 가장 큰 교훈은 이것이다. 어떤 공동체든 질문을 두려워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 공동체는 가장 위험한 길 위에 서 있다는 것. 백백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세습의 유산은 현재 진행형이다. 공동체가 지키려는 것은 신앙인가, 권력인가. 백백교가 우리 사회에 남긴 상흔을 치유하려면 이 질문에 대한 정직한 대답이 필요하다.
<계속>

편집 : 금성무스케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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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 BR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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