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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전당대회: 이 풍경은 누가 만들었고, 누구를 위한 것인가

 

민주당의 8·17 전당대회는 여러 의미로 역대급이다. 민주당 역사상 최초로 ‘1인 1표제’와 ‘선호투표제’가 동시에 적용된다. 지난해 8월 이재명 대통령의 당대표직 사퇴로 치러진 보궐 전당대회에 이어,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리는 정기 전당대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낯선 풍경들이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 낯선 풍경을 이해하려면, 먼저 익숙한 풍경부터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익숙한 풍경: 감별사들의 등장

 

권력이 가장 강할 때, 사람들은 저마다 권력자의 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앞다투어 권력자를 지키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는 정치의 오래된 법칙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이 아직은 높게 유지되고 있고 임기 초반인 만큼, 여당의 전당대회가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을 뽑는 경쟁으로 흐르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그리고 누군가 갑자기 등장해서 누가 누가 더 친명인지를 감별하기 시작한다. 이것도 흔히 있는 풍경이다.

 

가까운 과거를 돌아보자. 윤석열 시대에는 친윤, 찐윤, 멀윤, 반윤이라는 용어로 권력과의 거리를 측정했다. 박근혜 시대에는 ‘친박 감별사’가 있었고, ‘진박 인증’이 공천의 통행증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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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링크)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도 다르지 않았다. ‘친문이냐 아니냐’를 놓고 지지자들 사이의 갈등이 치열했다. 권력과의 거리가 곧 권력의 크기를 의미하기에, 그 거리를 재려는 감별사가 등장하는 것은 어느 정권에서나 반복됐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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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링크)

 

여기까지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지금부터 써 내려갈 ‘낯선 풍경들’이다.

 

 

낯선 풍경: 달리는 와중에 바뀌는 규칙

 

이번 전당대회에서 이상한 일은 따로 있다. 레이스가 이미 시작됐음에도, 경기 규칙을 바꾸려는 시도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시도는 ‘선호투표제’ 도입이었다. 결선투표제 대신 선호투표제를 도입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룰은 전격 개정되었다. 유권자가 후보별 선호 순위를 매긴 뒤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최하위 후보의 표를 2순위 선호에 따라 재배분하는 방식이다. 제도 자체의 장단점을 떠나, 경선을 코앞에 두고 승부의 계산법 자체를 뒤엎는 개정이었다. 당연히 당 전체가 극심한 내홍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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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링크)

 

두 번째는 청년최고위원 선출 문제였다. 청년최고위원 도입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이어졌고, 경선 도중 청년 후보의 기탁금 기준을 갑작스럽게 하향 조정했다. 특정 후보의 출마 환경이 경선 중에 달라진 셈이다.

 

세 번째는 후보 자격 논란이었다. 송영길, 김용 두 후보의 출마 자격을 둘러싸고 격렬한 다툼이 벌어졌다. 그리고 선거가 이미 시작된 상황에서, 투표 기회를 놓친 당원들에게 추가 투표의 기회를 주자는 요구까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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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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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링크)

 

경기 도중에 골대를 옮기는 선수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하물며 한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그것도 당원들이 지켜보는 공개된 경기장에서 이런 일들이 버젓이 반복됐다. 모든 당원이 동일한 규칙 아래 동일한 무게의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는 대원칙, 즉 ‘룰의 사전 확정’이라는 민주주의 절차의 최소한마저 흔들리고 말았다.

 

 

무리수의 이유: ‘공천권’이라는 절대 반지

 

상식을 벗어난 무리수의 배경은 명확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당권을 쥐어야만 하는 명확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차기 총선의 ‘공천권’이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선출될 당대표는 2028년 4월에 있을 제23대 총선을 지휘하게 된다. 공천권은 차기 국회의 지형을 통째로 바꿀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이다. 누가 살아남고 누가 잘려 나가는지, 그 생살여탈권이 이번 당대표의 손에 쥐어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23대 국회 구성은 차기 대권 구도를 결정지을 핵심적인 변수가 될 수 있다. 당권을 잡은 세력이 총선 공천을 통해 자기 세력을 확장하면, 그 힘은 차기 대선 경선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이 판돈의 가치를, 그 크기를 이해해야 룰을 둘러싼 이전투구가 왜 이토록 격렬한지 비로소 알 수 있다. 걸린 판돈이 클수록 규칙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려는 유혹도 커지기 마련이다. 단, 그 사정이 ‘이해되는 것’과 ‘정당화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집안싸움만 남은 정치

 

이처럼 전당대회가 과열된 데에는 외적 요인도 한몫하고 있다. 바로 제1야당인 ‘국민의힘의 실종’이다.

 

국민의힘은 지금 한국 정치에서 아무런 변수가 되지 못하고 있다. 정당 지지율은 10%대에 머물러 있고, 윤석열의 1심 유죄 판결로 397억 원에 달하는 선거 보전금 반환 위기에 빠졌으며, 내부 분열까지 겹쳐 여당 견제는커녕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처지다. 여아 간 건강한 긴장 구도가 사라진 것이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정치 풍경은 여야의 경쟁이 아닌, 각자의 ‘집안싸움’만 남은 꼴이다. 국민의힘은 계파 갈등에 정신이 팔려 있고, 민주당은 전당대회 주도권 싸움에 혈안이다. 견제할 상대가 없으니, 모든 에너지가 내부로 향하는 것이다. 민주당 전당대회가 이토록 뜨거운 이유 중 하나는, 역설적이게도 바깥에 싸울 상대가 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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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링크)

 

 

친명과 반명이라는 ‘자기 파괴적 프레임’

 

이번 전당대회에서 가장 기이한 대목이 바로 이 지점이다. 어쩌다 보니 김민석 후보는 ‘친명’이 됐고, 정청래 후보는 ‘반명’이 됐다. 대체 누가 어떤 기준으로 이런 낙인을 찍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청래 후보가 반명이라는 근거는 무엇인가. ‘보완수사권 폐지’를 강하게 주장했다는 점인가. 그렇다면 이상한 일이다. 김민석 후보 역시 국무총리 시절 “보완수사권 폐지가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고 직접 발표했던 인물이다. 같은 말을 한 두 사람 중, 왜 한 사람은 친명이 되고 다른 한 사람은 반명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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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링크)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은 이재명 대통령 본인이 지론이라고 밝혀온 사안이다. 그러나 정청래 후보가 대표 시절 합당을 추진했다는 사실이 갑자기 ‘반명’의 근거로 거론된다. 대통령의 지론을 실행에 옮기려 한 것이 어떻게 대통령에 반하는 행위가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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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링크)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대통령 스스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상품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신속한 보완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하지만 같은 문제의식을 제기하면 그 또한 ‘반명’이다. 대통령과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반명이 되는 기형적인 프레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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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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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링크)

 

정리하자면 이렇다. 대통령이 발표한 정책을 외쳐도 반명, 대통령의 지론을 추진해도 반명, 대통령과 같은 문제의식으로 지적해도 반명이다. 이 프레임에는 논리가 없다. 실제 권력과의 거리나 정책적 일치 여부와 무관하게, 누군가를 반명으로 몰아세워 이득을 얻으려는 쪽의 필요에 따라 낙인이 찍히고 있을 뿐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 프레임이 가져올 결말이다. 현재 판세를 보자. 4개 권역 순회 경선 누적 결과 김민석 46.01%, 정청래 44.53%로 양측의 격차는 3,086표, 단 1.48% 포인트에 불과하다. 어느 쪽도 압도적이지 않은 초박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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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링크)

 

이 상황을 ‘친명 대 반명’이라는 프레임으로 보면 어떻게 되겠는가. 먼저 김민석 후보가 당선된다고 가정해 보자. ‘친명’을 자청한 후보가 과반도 얻지 못하고 신승한다면, 역설적으로 친명의 힘이, 대통령의 당내 구심력이 생각보다 약하다는 방증이 된다.

 

반대로 정청래 후보가 당선된다면 어떨까. ‘반명’이라고 규정된 후보가 승리했으니, 임기 초반 높은 국정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당내 기반이 취약하다는 점이 증명되는 셈이다.

 

결국 어느 쪽이 이기든 이재명 정부에 득 될 것이 없다. ‘친명 대 반명’ 프레임은 승패와 무관하게 대통령을 패자로 만드는 자해적 구조다. 이러한 자기 파괴적 프레임을 누가 만들었는가. 그리고 이 프레임으로 끝내 이득을 얻는 것은 누구인가.

 

 

최악의 시나리오

 

여기에 ‘선호투표제’가 결합하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완성된다. 1차 집계에서 정청래 후보가 과반에 미달하는 1위를 하고 김민석 후보가 2위를 기록했다고 가정해 보자. 과반 득표자가 없으므로 선호투표제 룰에 따라 3위 송영길 후보의 표가 2순위 선호대로 재배분된다. 그 결과 순위가 뒤집혀 김민석 후보가 최종 당대표로 당선되는 상황이다.

 

제도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선호투표제는 본래 그렇게 설계된 제도이고, 규칙에 따라 계산한 결과다. 그러나 정치는 제도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1순위 투표에서 승리한 후보가 2순위 재배분으로 뒤집혀 최종 집계에서 패배하는 그림을, 정청래 후보를 지지한 절반 가까운 당원들이 과연 순순히 승복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그 선호투표제가 경선 직전에 급조된 룰이라면?

 

지금도 양측 지지자들은 서로를 향해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의 공격을 퍼붓고 있다. 이 상태에서 역전 당선이 현실화된다면, 결과의 정당성 자체가 흔들리는 사태를 맞닥뜨릴 수도 있다. 250만 당원의 절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당대표, 그것은 누가 당선되든 온전한 승리는 아닐 것이다.

 

 

세 가지 질문

 

8월 15일 호남, 16일 경기·서울 경선이 남았다. 전체 권리당원의 70%가 집중된 최대 승부처다. 승패는 아직 안개 속이다. 그러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번 전당대회는 우리 정치권에 세 가지 질문을 남긴다.

 

첫째, 전당대회 이후 민주당은 어디로 갈 것인가. 새로 출범할 지도부는 철저히 갈라진 당원들의 마음을 수습하고 거대 여당을 이끌어야 한다. 경선 과정에서 새겨진 상처, 기습적인 룰 변경의 후유증, 프레임 전쟁이 남긴 감정의 골을 치유하지 못한다면, 그 비용은 2028년 총선에서 청구될 것이다. 아니, 거기까지 갈 것도 없다. 오세훈 시장의 당선무효형 확정 여부에 따라 당장 내년에 치러질지도 모르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어떻게 치를 것인가.

 

둘째, 이 비정상적인 판은 누가 만들었는가. 경기 도중 룰을 바꾸려 한 것은 누구이며, ‘친명 대 반명’이라는 자해적 무논리 프레임을 유포한 것은 누구인가. 후보 본인인가, 후보 주변의 세력인가, 아니면 이를 중계하며 판을 키운 언론과 유튜버들인가.

 

셋째, 이 파국에 가까운 상황을 보며 웃는 자는 누구인가. 여당이 전당대회 후유증으로 분열하고, 승자의 정당성이 흔들리며, 대통령이 어느 결과에서도 손해를 보는 구조. 이 판국에서 실질적인 이득을 얻는 자는 민주당 내에 없다.

 

낯선 풍경일수록 그 풍경을 그려낸 ‘손’의 정체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오는 8월 17일 전당대회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이 질문만큼은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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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보좌관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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