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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을 맞이한 조국

 

1945년 11월, 임시정부 요인들을 태운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해방이 된 조국으로 환국하는 김구 선생을 비롯한 그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미군정이 임시정부를 한국의 공식 정부 기관으로 인정하지 않아 개인의 자격으로 입국했기 때문이다. 

 

나라를 잃은 설움은 나라를 되찾는다고 즉시 회복되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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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을 위해

1945년 11월 5일 충칭을 떠나

상하이에 도착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

©김구문화재단

 

임정의 인사 중에는 김구와 이시영뿐만 아니라 훗날 반민특위 위원장에 임명되는 문화부장 김상덕도 포함되어 있었다.

 

김상덕은 와세다 대학에서 유학하던 중 조선독립청년단을 이끌었고, 1919년 2월 8일 일본의 심장 도쿄에서 2.8 독립 선언을 외쳤다. 2.8 독립 선언은 일본의 대조선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는 3.1 만세운동의 결정적 도화선이 되었던 사건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당시 2.8 독립선언서 작성에 주요 역할을 한 인물 중엔 이광수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이후 변절하여 민족반역자 - 본 기사에서는 친일파보다 민족반역자란 표현을 쓰겠다 - 가 됐기 때문에 한 인간의 항일, 친일 문장을 모두 볼 수 있게 한 사건이기도 했다. (당시의 김상덕, 이광수 두 젊은이는 중년이 되어 만나고 싶지 않은 장소에서 다시 재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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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덕 선생

©김상덕선생기념사업회

 

이후 중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김상덕은 김원봉과 함께 의열단 활동을 비롯한 무장투쟁을 하다 194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 후 조국의 해방을 맞이했다. 민족반역자를 응징하기에 떳떳한 이력과 담대함을 고루 갖춘 안성맞춤의 인물이었다.

 

“심판의 날이 다가왔다. 그동안 네 놈들이 호의호식하고 있을 때 우리 백성들은 헐벗었고, 독립투사들은 네 놈들에게 쫓겨야 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받은 만큼만 돌려주겠다. 그리해도 네 놈들은 한시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기대와 다른 현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1947년 간행된 수도 경찰 발달사의 기록을 보면, 친일 경찰이야말로 치안기술자라고 헛소리를 떠든 악질 고문 경찰 장택상이 총감이었고, 뒤를 이어 고문관 최연과 관방장 노덕술까지 경찰 고위직 상당수가 친일 경찰 출신이었다. (장택상은 독립운동을 했지만, 광복 후 이승만을 지지하며 친일 경찰 채용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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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택상

©위키미디어

 

이뿐만 아니었다. 

 

경위 이상의 간부 중 약 80%, 하급 경찰의 약 30%가 친일 경찰이었으며, 서울의 10개 경찰서장 중 과반수가 친일 경찰이었다. 

 

해방 직후 경찰은 21세기 대한민국 검찰의 힘을 뛰어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조직이었다. 일제의 개가 되어 독립군을 체포하고 고문하여 죽인 대가로 악취가 진동하는 권력을 손에 쥔 집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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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군정경찰 창립식(1945.10.21.)

©통일뉴스

 

군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만주군 출신 원용덕이 초대 헌병사령관, 일본 육사 49기 채병덕이 육군 참모총장이 되는 판국이니 광복군 출신 군인들은 진급은 물론이고, 오히려 차별을 받아야 하는 웃을 수 없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어이없는 병폐는 광복 후 3년간 실시된 미군정에서 비롯되었는데, 미국의 하지 군정 장관의 말에서 의문이 풀린다. 

 

“일본을 위해 일한 사람은 미국을 위해서도 일을 잘할 것입니다.”

 

미군정은 사적 복수로 치안이 어지러워질 수 있다며 민족반역자들에 대한 처벌을 단호히 거절했다. 

 

“일제 치하 36년 동안 우리 국민을 괴롭힌 놈들을 그냥 두는 것도 모자라 그자들의 지배를 또다시 받으라는 것이 말이나 되오?”

 

“말이 안 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건 당신네 정부가 세워지면 당신들이 알아서 하시오.” 

 

우리의 역사를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이들에 의해 이 땅의 정의를 세우는 일이 미루어졌다. 

 

지옥문 앞에 일렬종대로 줄 세워져 있던 민족반역자들은 미군정 덕분에 피 묻은 자리를 보존할 수 있었지만, 미군정의 통치가 끝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며 뜨거운 살기에 마주 서게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1948년 제헌헌법이 공포되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헌법 101조에 의거해 반민족행위 처벌법이 마침내 제정되었다.

 

「단기 4278년(1945)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행위자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한 김구 선생은 정치활동에 나서지 않았지만, 임시정부의 주요 인물들이 무소속으로 국회에 진출하였다. 소장파로 분류되는 독립군 출신의 의원들이 주축이 되어 반민법 통과가 가능했다. 

 

한편, 한민당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독립운동가 출신 이승만 대통령은 거부할 수 없는 시류에 편승할 것인지 대의를 물리적인 힘으로 거부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1948년 10월 12일 반민특위가 공식적으로 출범하였다. 반민특위는 특별재판부, 특별검찰부, 특별경찰대로 구성되었는데, 행정부와 별도로 조사권, 기소권, 체포권, 판결권까지 가지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출범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의미 있는 출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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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출범 기념사진

©KBS1

 

“위원장님! 이 정도면 충분히 싸울 만합니다. 여전히 고문 경찰과 만주군 출신이 경검을 장악하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국민들의 지지가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끼니도 못 먹어가며 독립운동 했는데 이 정도면 너무 호사스럽습니다. 잠자는 시간도 아껴서 민족반역자 놈들을 하루속히 법정에 세우겠습니다.”

 

“다들 의욕은 높이 사지만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되오. 저 버러지 같은 놈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김상덕 위원장을 비롯한 반민특위 조사위원 자격은 독립운동 경력이 있거나 절개를 견수하고 애국의 성심이 있는 자로 정의하였다. 

 

특별재판부에는 독립운동가 출신이자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특별검찰부에는 역시 독립운동가 출신 검찰총장인 근암 권승렬이 임명되었다. 김상덕 위원장의 직속으로는 40명의 특경대가 조직되었는데, 이들은 친일매국 세력이 장악한 경찰 소속이 아닌 내무부에서 차출되었다. 

 

민족반역자는 서울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9개 도의 조사부에서도 지역의 민족반역자를 검거하기 위한 만반의 채비를 갖추었다. 드디어 독립군과 민족 반역 세력 간 제2라운드의 서막이 올랐다. 

 

“위원장님! 우선 검거 대상자는 친일파군상(親日派群像)에 명시된 263명을 기초로 하여 작성했습니다.”

 

“좋소이다.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놈들도 있을 터이니 국민들의 적극적인 신고 접수도 받도록 하시오.”

 

반민특위 출범 전부터 시중에는 마치 시험 족보처럼 악질 민족반역자 명단이 돌았는데, 이는 임시정부 국무위원이었던 김승학에 의해서 작성된 ‘친일파군상’이었다. 또한 각 지역에 신고함을 설치하였는데, 목포에서는 한 명의 민족반역자에 대한 진정서가 무려 6천 통이 접수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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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특위 투서함

©네이버 지식백과

 

반민특위 전남 조사관이었던 백재호 선생의 증언은 짧지만, 당시 민심을 여실히 보여준다. 

 

“절대적이었죠. 절대적이었습니다.”

 

반민특위 사무실로 먹을 것을 가져오고 박수를 치는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언론까지 동참하니 반민특위는 웅대한 꿈을 꾸었다.

 

“여러분 마음 저희도 잘 압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잡아 처단하고 싶지만, 법 절차를 따라야겠지요. 저 들이 일제에 빌붙어 모은 재산도 환수하고, 죄가 있는 놈들은 반민족 행위 처벌법에 따라 엄하게 벌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제 심판의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반민족 행위 처벌법의 주요 조항은 아래와 같았다.

 

1조 : 한일합병 협력, 주권침해조약 조인 또는 모의한 자에게 사형 또는 무기징역과 재산몰수.

 

2조 : 일본으로부터 작을 받거나 일본제국 의원이 되었던 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과 재산몰수.

 

3조 : 일제 고등경찰로서 독립운동자와 가족을 살상, 박해, 이를 지휘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과 재산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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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반민특위 재판 광경

©민족문제연구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대한민국 국회에서 제정한 특별법에 따라 민족반역자가 처단된다면, 독립운동하다 죽어간 독립투사들과 죽지 못해 살아남은 국민들의 다친 마음을 조금은 보듬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모두가 기대했다. 

 

<계속>

 

 

추신.

 

필자가 신간을 출간했다. 

 

잘 알려진 사건을 반복 설명하는 대신, 기록 속에서 잊히거나 의도적으로 지워진 이야기, 지금까지도 논쟁이 이어지는 사건, 역사와 전설의 경계에 놓인 이야기를 치밀하게 추적하는 책이라고!

 

우리가 알고 있던 전혀 다른 한국사의 얼굴을 마주해보고 싶은 독자께 권한다.

 

아, 참! 슈퍼팩토리공장장이 꼭 좀 전해달라 했다.

 

"형님, 누님, 동생 여러분, 책 한 권 사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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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임권산

마빡 디자인 : 꾸물

기사 : 슈퍼팩토리공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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