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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특위 체포 대상 1호 

 

1948년 10월 12일, 드디어 전 국민의 기대를 업은 반민특위가 출범했다. 

 

그리고 곧 제1호로 반민특위에 끌려온 인물은 악질 순사가 아닌 조선 최고의 기업가 박흥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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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식

©국사편찬위원회

 

박흥식은 종로 한가운데 위치한 우리나라 최초의 백화점인 화신 백화점의 소유주이자 일본 제국주의의 든든한 돈줄이었다.

 

“총독 각하! 여기 약소하지만 제가 돈을 좀 마련했습니다. 대(大)일본제국의 병사들이 몸을 던져 싸우는데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아니! 이렇게나 많이? 대일본제국은 공의 노고와 마음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제가 이렇게 악착같이 돈을 버는 이유가 다 대일본 제국의 번영을 위한 것인데요. 아, 그리고 그 옆의 작은 가방은 총독님께 드리는 제 마음입니다.”

 

박흥식은 일제가 우리의 토지와 자원을 수탈할 목적으로 설치한 동양척식회사의 감사를 역임한 것은 물론,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든 1944년에는 조선비행기 공업을 설립하여 일본의 마지막 발악에 최선을 다해 지원했다.

 

“이봐! 어떨 거 같나? 일본이 지면 큰일인데? 설마 지지 않겠지? 일본이 어떤 나라인데. 그럼 잘될 거야! 엉! 내가 또 이 돈 냄새는 귀신같이 맡으니까 말이야! 전쟁이 길어지면 결국에는 우리 일본이 이길 거야. 아니. 반드시 그렇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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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경성(서울)에 있었던

동양척식주식회사 

©위키피디아

 

박흥식은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일본으로 도주하기 위해 사라졌으나 며칠 후 발각되어 반민특위 특경대에 붙잡혔다. 그리고 논리에 맞지도 않는 궤변을 토해냈다.

 

“야! 이 손 안 치워? 내가 무슨 친일파야? 나는 그저 사업가라고 사업가. 그리고 감히 니들이 날 재판할 수 있을 거 같아? 두고 보자고. 내 오늘은 일단 따라가 준다.” 

 

 

최린도 체포되다

 

1949년 1월에는 최린이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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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특위 활동 당시 체포된 최린(오른쪽).

최린의 왼쪽 사람은

민족반역자이자 현 동아일보 창립자이며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을 지낸

인촌 김성수의 동생 ‘김연수 경성방직 공장 사장’이다.

김연수는 삼양그룹 초대 회장이기도 하다.

©링크

 

수사를 받은 그가 특별재판장에 들어서자 장내가 술렁였다. 

 

“저 사람은 어쩌다 여기에 왔데?”

 

“원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워서 이기려는 인간은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면 쉽게 변절하는 법이여!”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 양반은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 아냐?”

 

민족반역자 최린이 들어선 재판장의 뒤에는 3.1 운동 당시의 독립선언문이 걸려있었는데, 최린이 포함된 33인의 이름이 선명히 적혀 있었다. 

 

최린은 줄줄이 소환되는 민족반역자를 통틀어 거의 유일하게 자신의 죄를 인정했다.

 

"나를 여기서 재판하는 데 시간 낭비하지 말고 광화문 사거리로 끌고 가 황소 네 마리로 나의 사지를 찢어 죽이시오."

 

최린의 변절은 일제의 치밀한 공작에 의한 것이었다. 시간은 돌려 1921년 12월로 가보자.

 

수감되어 있던 민족 대표 중 일부가 가석방되었다.

 

“최린 선생님? 날이 많이 춥습니다. 일단 저희와 함께 가서 잠시 몸을 녹이시지요.”

 

“당신 누구요?”

 

“선생을 해칠 작정이었으면 가석방도 없었을 것입니다. 안심하시고 가셔서 잠시 저희 이야기를 들어보시지요.”

 

1910년대 무단통치로 조선 백성을 억누르던 일제는 1919년 3.1 만세 운동으로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조선 3대 총독으로 부임한 사이토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방식은 온화해 보이지만, 영속적인 지배를 위해서는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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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3대 총독 사이토 마코토

©위키피디아

 

“총통 각하! 저 악질 33인을 갈아 마셔도 모자랄 판에 가석방이라니요? 문명이랄 것도 없던 것들에게 근대화까지 시켜주며 살기 좋게 만들어줬건만, 폭동이나 일으키는 배은망덕한 놈들입니다! 조센징들은 이럴 때일수록 본때를 보여줘야 감히 다시는 기어오를 생각을 못 할 것입니다!”

 

“일단 거기 좀 앉게. 자네는 조선이 왜 망했다고 생각하나? 다수의 백성이 몽매해서? 아니야. 소수의 지도층이 부패했기 때문이야. 반도에 사는 민초들은 왕이 자기들을 버리고 강화도로, 의주로 줄행랑을 쳐도 자기들이 사는 땅을 스스로 지켜냈어. 임진년에 왜 우리가 실패한 줄 아나?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바빴던 명나라군 때문에? 전쟁을 예측하지도 못한 조선 조정이 느닷없이 각성해서? 이순신과 의병들 때문이지. 이번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되네. 조선을 대일본제국에 갖다 바친 것이 누구인가? 소수의 조정 대신들 아닌가?”

 

“그렇다면 어떤 방도로?” 

 

“조센징들은 천한 것들조차 아무리 밟아도 다시 일어나는 묘한 족속이야. 장터에 나와 만세를 부르는 기생들을 보았나? 이제는 다른 방법을 써야 해. 스스로가 귀하다고 여기는 자들이 오히려 포섭하기 쉽다네. 그리고 그런 자들이 대일본제국의 편에 선다면 이 땅의 백성들이 받을 정신적 충격이 얼마나 클지 짐작이 가나? 지금 조선을 대표하는 자들이 33인 아닌가. 그들 중에 우리에게 협조할 만한 자 대여섯을 데려오게. 한 명 정도만 넘어와도 우리는 남는 장사야.”  

 

최린은 그렇게 유다가 되었고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사장 자리에 올라 전국을 돌며 학도병 참여를 독려하는 연설을 했다.

 

“사장님! 오늘 연설도 감동적이었습니다. 특히 ‘조선과 일본은 하나다!’라고 외치실 때는 마흔이 넘은 저마저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1926년 최린이 일본인 아베에게 쓴 편지를 보면 그의 변절 이유가 명확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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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의 최린

©링크

 

“오늘날 조선의 독립이 불가능하다는데 확신하고 있으며, 조선 의회 설치가 조선 민심의 안정을 꾀하는데 가장 긴요합니다.”

 

최린은 자신의 얄팍한 지식으로 독립이 불가능하므로 자치권이라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린이 호의호식하며 냉철한 판단을 내렸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던 순간에도 자신의 삶과 목숨은 버렸지만, 독립은 포기하지 않은 독립투사들이 있었다. 

 

독립투사들이 승산이 적은 싸움을 이어 나간 이유는 무엇일까? 

 

독립, 민주화 혹은 개인의 사회적 성공 등 무언가를 반드시 쟁취하거나 상대방과 싸워 꼭 이겨야만 하는 사람들은 불리하다고 여기면 쉽게 포기하거나 심지어 변절한다. 

 

그러나 승리나 목표 달성에 의의를 두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불의에 항거하기 위해, 그저 마음이 불편해서 일어난 사람들은 더 단단하게 오래 버틴다. 우리는 그것을 양심이라고 한다. 

 

전자에 속하는 자들은 소위 말하는 기득권층이 경우가 많다. 2009년,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당시 1,005명의 친일파 중 무려 313명이 일체 치하 최고위 직인 중추원 참의였음이 밝혀졌다.

 

 

이광수, 체포되다

 

문인 이광수가 체포되기 전날 반민특위 사무실은 평소와 달리 무거운 기류가 흘렀다.

 

“정철용 조사관! 내일은 누구를 연행하기로 했소?”

 

“저.... 세금정 자택에 있는 작가 이광수 차례입니다.”

 

“.... ....”

 

반민특위 위원장 김상덕은 한 살 아래였던 이광수에 대해서 복잡한 심정이었다. 두 사람은 혈기 왕성한 20대 시절 ‘조선 독립’이라는 꿈을 향해 함께 달려가던 친구이자 동료였다. 

 

천재적인 글솜씨로 적진의 심장 도쿄에서 2.8 독립선언의 초안을 작성하던 그가 어찌하여 반민특위의 법정에 서게 되었는지 김상덕은 알 수 없었다.

 

“알겠소. 오늘도 수고들 하셨고, 내일도 힘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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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 이광수 

©서울신문

 

이광수 체포에 참여했던 정철용 조사관은 이광수의 입에서 회한이나 후회의 말이 나오길 기대했다. 최소한 변명이라도 나오길 바랐다. 그러나 이광수는 그의 기대를 저버렸다.

 

이광수가 자택에서 끌려 나오며 쏟아낸 말은 통탄이 서린 탄식이었다. 

 

“아! 해방이 일 년만 늦었어도 우리는 모두 황국신민이 되었을 것인데, 참으로 안타깝구나....”

 

화가 난 정철용 조사관이 창씨개명을 한 이광수를 향해 그의 일본 이름을 부르자 이광수는 ‘하이’라고 대답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드러냈다.

 

"성전의 용사로 부름 받은 그대 조선의 학도여! 지원하였는가. 무엇으로 주저하는가, 부모 때문인가, 충 없는 효 어디 있으랴?“ 

 

-1943년 매일신보 이광수 사설 中-

 

이광수에 이어 독립운동가들에게 공포의 존재였으며, 고문 귀신이라 불리던 그자가 체포되었다. 

 

<계속>

 

 

추신.

 

필자가 신간을 출간했다. 

 

잘 알려진 사건을 반복 설명하는 대신, 기록 속에서 잊히거나 의도적으로 지워진 이야기, 지금까지도 논쟁이 이어지는 사건, 역사와 전설의 경계에 놓인 이야기를 치밀하게 추적하는 책이라고!

 

우리가 알고 있던 전혀 다른 한국사의 얼굴을 마주해보고 싶은 독자께 권한다.

 

아, 참! 슈퍼팩토리공장장이 꼭 좀 전해달라 했다.

 

"형님, 누님, 동생 여러분, 책 한 권 사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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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임권산

마빡 디자인 : 꾸물

기사 : 슈퍼팩토리공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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