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반역자 노덕술
반민특위가 드디어 노덕술을 체포했다.

반민특위에 의해 체포돼
법정에 들어서는 노덕술.
좌측 고개 돌린 사람이 노덕술이다.
©오마이뉴스
고문 귀신이라 불리던 노덕술이 체포되던 날에는 그를 맞이하기 위해 수많은 군중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선생님! 저놈은 나에게 주시오. 저놈은 내 손으로 쳐 죽여 될 놈입니다!”
“에라이! 일본 놈보다 더한 악귀 같은 놈아! 우리 아들 살려내라. 네가 그러고도 멀쩡히 살아갈 거라고 생각했냐!”
“이놈아! 이 개만도 못한 놈아! 우리 누이 살려내라.”
당시 항간에는 일제 치하 독립군에 가한 고문 기술 대부분이 노덕술에 의해 개발되었다는 이야기가 떠돌았으며, 노덕술에게 고문을 당한 생존자들은 제일 고통스러웠던 건 자신이 고문을 당하는 순간보다 순서를 기다리거나 고문당하는 동료를 지켜보는 것이었다며 당시를 고통스럽게 회고한다.

민족반역자의 대명사인 노덕술(앞줄 왼쪽에서 첫 번째)과
최난수(앞줄 오른쪽 양복 입은 인물).
두 인물 모두 일제에 부역하며
경찰로 활동했던 고문 기술자다.
위 사진은 한국전쟁 당시
노덕술이 헌병사령부에 근무하던 모습이다.
©노컷뉴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노덕술은 3.1 운동 이듬해에 말단 순사가 됐다. 모두가 가난했지만, 모두가 노덕술처럼 살지는 않았다. 그보다 더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 놓인 사람들도 만세 운동에 동참했다. 노덕술은 현실을 부정하고 민족을 외면하며 자신만을 위해 타인의 삶을 갈취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다 일본이 패망하며 광복이 되었다.
당시 평양경찰서장이었던 노덕술은 명백한 일제 부역 행적으로 소련군에게 체포된 후 구금되었다. 몇 달의 구금 뒤 풀려나자, 그는 주저 없이 38선을 넘어 내려왔다.

노덕술
“칙쇼.... 아니, 젠장! 빨갱이 새끼들하고는 같이 일을 못 하겠구먼.”
당시까지 희미했던 선 아래 남한의 수도경찰청장 장택상은 고문 기술자 노덕술을 두 손 벌려 환영했다.
“아이고! 이게 누군가! 그동안 참으로 고생이 많았소. 이제 여기서 자네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해 보게. 해야 할 일이 많아.”

장택상은 독립운동을 했지만,
광복 후 이승만을 지지하며
친일 경찰 채용을 추진했다.
대한민국 제3대 국무총리이기도 하다.
©오마이뉴스
이념, 사상과 각자의 생각이 격돌하던 시절이었다. 권력자와 다른 생각을 품는 것만으로도 죄 없는 사람들을 마구 잡아들이던 암흑의 시기였다. 그래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이, 꿈에서도 마주치기 싫은 장면이 현실이 되었다.
매국 경찰이 해방된 나라에서 독립투사를 체포하는 망령된 일이 벌어졌다.
김원봉을 체포한 노덕술
1947년 노덕술이 독립운동가이자 일제를 벌벌 떨게 했던 의열단장 김원봉을 체포했다.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가 주도한 총파업의 배후 조종 혐의’가 명분이었다. (이후 김원봉은 무혐의를 받았다)

약산 김원봉
©위키피디아
노덕술은 김원봉에게 모욕감을 주기 위해 체포 당시 화장실에 있던 김원봉에게 옷을 여밀 시간도 주지 않았다.
“어이! 김원봉! 그 유명한 의열단의 김원봉 맞지? 낄낄낄. 이렇게 만나게 되니 반갑네.”
“네 이놈! 일제의 앞잡이로 살아온 놈이 감히 내가 누구라고!!”
“이 양반이 아직도 사태 파악이 안 되나 보네. 나 여전히 경찰 노덕술이야. 당신은 체포되어 온 용의자이고! 해방이 된다고 세상이 휙 바뀔 것 같아! 이 양반이 세상 물정을 몰라도 이렇게 몰라서야 원...."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도망갈 이유도 없고 그러지도 않을 것이다. 바로 나갈 것이니 잠시만 기다려라.”
“지랄하고 있네. 뭐 하느냐! 당장 끌어내지 않고!”
화장실에서 끌려 나온 김원봉에게 수갑이 채워졌고, 일본군조차 떨게 하던 의열단의 김원봉이 해방된 나라의 매국 경찰 앞에 무릎이 끓여졌다. 의열단 동료의 증언에 따르면, 김원봉은 매국 경찰 노덕술에 당한 수모에 울음을 터트렸다고 한다. 이것이 어찌 김원봉 한 사람만의 눈물이었겠는가.
“내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중국 땅에서 일본 놈들과 싸울 때도 이런 수모를 당한 적이 없네. 그런데 해방된 우리 땅에서 저 민족반역자 놈에게 수갑이 채워지고 뺨까지 맞다니, 이럴 수가 있는가! 원통하다 원통해!!”

1942년 임시정부 요인들 사진.
오른쪽 동그라미 속 인물이 김원봉 선생,
왼쪽 동그라미 속 인물이 김구 선생이다.
김원봉 선생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에게 가장 위험한 인물이었다.
김구 선생보다도 위험한 인물로 취급되어
현상금 1위의 인물이기도 했다.
©영남일보
민족반역자 중에서도 특히 일제 순사에 대한 민심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민족의 염원을 담고 순항할 것만 같던 반민특위는 사실 출항 전부터 커다란 암초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민족반역자들의 반격
"대한민국 법정에서는 반공주의자를 처단할 수 없다! 나 같은 애국자가 어디에 있는가. 나는 밀정이 아니라 반공주의자다."
밀정 혐의로 체포된 이종형이 목소리를 높인 데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이종형
이종형은 이후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된다.
반민특위 출범을 20여 일 앞둔 날,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반공 구국 총궐기 정권 이양 대 축하 국민대회’라는 명칭도 요상한 대규모 집회가 개최되었다.
시위대의 구호를 들어보자.
“친일 청산은 나라를 분열시킨다!”
“친일파 척결을 주장하는 이는 모두 공산주의자다!”
이 대회는 과격 우익단체의 우발적 행동이 아니었다. 내무부 장관의 허가를 받고 국무총리와 대통령이 축사를 전달한 집회였다.
이런 식의 반공 대회는 반민특위 출범 후에도 이어졌다.
“민족을 분열하는 반민족 안을 철폐하라! 민족 처단을 주장하는 놈은 공산당의 주구다.”
파고다 공원에서 펼쳐진 반공 대회를 주도한 인물은 놀랍게도 서울시경의 사찰과장 최운하로 밝혀졌고, 그는 즉시 구속되었다. 그러자 매국 경찰들이 최운하 과장의 구속에 집단 사표를 제출하며 실력 행사에 나섰다.

최운하
반민특위에 의해 자신들의 자리가 위태로워진 민족반역자들은 천인공노할 암살 계획도 수립했다.
“박 사장님! 이대로 우리가 죽어서 되겠소? 좋은 생각이 있기는 한데.”
“돈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말만 하시오. 그나저나 믿을만한 자는 있소? 아무래도 경찰 내부에서 움직이기는 부담스러울 텐데.”
“백민태라고 쓸 만한 자로 이미 준비 해났소.”
“어찌할 작정이오? 계획이나 들어봅시다.”
“역시 빨갱이로 모는 게 제일 쉽지 않겠소? 반민특위 간부 놈들을 싹 잡아다 38선 근처로 끌고 가 죽여 버리고, 월북하려던 빨갱이 놈들을 잡으려다 우발적으로 죽였다고 하면 될 것이오.”
“역시! 잘 알아서 하시오. 이런 일은 당신이 전문가이니.”
그러나 이 민족반역자들의 반민특위 위원 암살 계획은 백민태의 자수로 물거품이 되었다. 백민태의 진술에 따르면, 암살 계획은 노덕술의 주도로 대한일보 박흥식 화신백화점 사장 등이 계획했다고 한다.
반민특위를 향한 공세는 지지 세력 제거로 이어졌다. 반민법을 앞장서 제정한 소장파 국회의원들(독립군 출신 의원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긴급체포 되었다.
“공산주의자들이 국회에도 암약하고 있는 것이 최근 조사에서 발각되었습니다. 이들은 남로당의 빨갱이 프락치들로서 엄중한 조사가 필요합니다. 이들이 국회의원이긴 하지만, 변호인의 접견을 금지하고 헌병사령부에 수감하여 철저한 조사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반민법을 통과시킨 국회의원들을 고문한 것은 여전히 고개 떳떳이 살아 숨 쉬는 민족반역자들이었다. 3차례에 걸쳐 15명의 국회의원이 구속되었다.
반민특위 공격을 명령한 이승만
1949년 6월 6일은 반민특위를 향한 총공세가 이루어진 날로 현충일만큼이나 무겁고 슬픈 날이다.

반민특위 청사
©오마이뉴스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기 위해
출동하는 매국 경찰들.
윤기병 중부경찰서장 지휘로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여
특위 위원들을 무차별 폭행하며 연행했다.
©오마이뉴스
대한민국의 경찰이 반민특위 본부를 습격하여 특경 대원들의 총기를 압수하고, 반민특위 전원을 연행했다. 반민특위에서 검거한 반민족행위자 688명 중 1/3이 매국 경찰이었다. 즉, 반민특위의 척결 대상이 가장 큰 무력을 가지고 있는 상대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한들 당시 경찰 그 윗선의 비호가 없었다면, 매국 경찰들이 무력을 동원하여 반민특위를 습격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대한민국 경찰을 움직여 반민특위라는 헌법기관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틀 후인 6월 8일, 반민특위의 해체를 자신이 지시했다고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스스로 자백했다.
“내가 (반민특위의) 특별경찰대를 해산시키라고 경찰에게 명령한 것이다. 현재 특위에 의한 체포의 위협은 국립경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승만이 AP 기자에게
특경대 해산은
자신이 명령한 것이라고
말한 내용을 다룬
6월 8일 자 경향신문 기사
백범 김구 서거와 반민특위 해체
같은 달 26일, 일명 6월 총공세의 정점을 찍는 사건이 발생한다. 백범 김구가 안두희에 의해서 암살당한 것이다. 배후로 만주군 출신 장군 장은산이 지목되었고, 일본 헌병 출신 민족반역자들이 그의 뒤를 봐주었다고 하나 누구도 처벌되지 않았고, 진실은 끝내 규명되지 않았다. (장은산의 경우, 아직도 의혹일 뿐 확실히 단정난 건 아니다)
당시의 대한민국 권력층에게는 밝혀질 필요 없는 사건을 파고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김구를 쏜 자들은 세월이 지나면 미스터리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것을 알고 있었다. 세월이 그들 편에 서서 고맙게 흐를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김구 선생 서거 직후의 사진
1949년 7월 초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KOREA: Death of a Tiger’라는 제목으로
김구 선생의 죽음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1949년, 대한민국 정부는 반민특위법의 공소시효를 1950년에서 1949년 7월로 단축시키는 법 개정을 실시하였다. 한 달 동안 반민특위 위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결국 9월 5일, 반민특위는 기념 사진 한 장만을 남기고 대한민국 역사에서 사라졌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했을 당시 기념사진
©KBS1
반민특위 특별재판부에 소환된 680여 명의 민족반역자 중 재판에 회부된 인물은 고작 41명이었고, 그마저도 대부분 무죄로 풀려났다. 치욕의 역사에 기여한 인간들의 완벽한 부활이었다.
아직 살아있는 박중양
민족반역자 중 가장 눈에 들어온 인물 하나는 이토 히로부미의 양자로 불렸던 박중양이다.
그는 3.1 운동 때 만세를 자제하자고 ‘자제단’ 단장으로 활동하며 총독부의 훈장을 받았고, 일본이 벌이는 각종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조선 임전보국단에서 최선을 다하더니, 마침내 단 7명의 조선인에게 그 자리를 허용한 일본 제국의회 귀족원에 입성하였다.

박중양
그는 일제 치하 높은 자리에 있으며 뇌물을 받지 않는 청백리로도 이름을 떨쳤는데, 조선인의 몸에 일본인의 영혼이 인식된 완벽한 일본인이었다. 생전 그가 남긴 말을 통해 그의 생각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존경하는 가쓰라 수상에게, 하루라도 빨리 일본은 한국을 합병하여 이를 행할지라도, 한인은 이에 반항할 실력이 없으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나는 친일은 하였으나, 민족 반역자는 아니다.“
"그렇소! 나 친일파요. 그러나 조선보다 문명국인 일본의 통치가 훨씬 좋은 것이오. 이완용은 매국노가 아니라 백성을 구한 사람이오. 친일이 곧 애국이오.“
그의 말보다도 충격적인 건 이러한 그의 매국적 유산이 아직도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이다. 나라를 되찾은 지 70년이 지났음에도 말이다. 해방 후 민족 반역자들에 대한 처단의 역사를 제대로 갖지 못한 탓이다.
아래의 말 중 하나는 박중양의 회고록에서 나온 말이고, 다른 하나는 21세기 대한민국 중진 정치인의 말이다. 누구의 말인지 구별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일제 시대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는 정치의 연혁을 모르고 일본인을 적대시하는 헛소리이다.“
"해방 후에 반민특위로 인해서 국민이 무척 분열했던 것 모두 기억하실 겁니다.“

대한민국은 민족반역자에 대한 물리적 처벌에도 실패했고, 민족반역자와 정신적 단절도 이루지 못했다.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린 독립운동가들을 무슨 낯짝으로 대할 수 있을까. 후손으로서 부끄럽기만 할 뿐이다.
이는 단순한 과거의 회한이 아니다. 독도가 지워지고 있고, 독립운동가의 흔적이 희미해지고 있는 실재하는 위기이다.
대한민국의 독립 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반민특위가 반드시 부활하여 조사관의 임명장을 보는 날을 꿈꾼다.

반민특위 조사관 임명장
©민들레
추신.
필자가 신간을 출간했다.
잘 알려진 사건을 반복 설명하는 대신, 기록 속에서 잊히거나 의도적으로 지워진 이야기, 지금까지도 논쟁이 이어지는 사건, 역사와 전설의 경계에 놓인 이야기를 치밀하게 추적하는 책이라고!
우리가 알고 있던 전혀 다른 한국사의 얼굴을 마주해보고 싶은 독자께 권한다.
아, 참! 슈퍼팩토리공장장이 꼭 좀 전해달라 했다.
"형님, 누님, 동생 여러분, 책 한 권 사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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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 슈퍼팩토리공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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