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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튀르키예의 판돈 : 보스포루스 해협   

튀르키예 이스탄불 한복판을 가르는 좁은 물길, 보스포루스 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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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는 보이지 않지만 흑해(Black Sea)에서 시작된
연한 하늘색 선의 대각선 오른쪽 위를 쭈욱 따라가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있다

©Port Economics, Management and Policy(링크)

 

폭이 좁은 곳은 700m 남짓, 이 좁은 수로가 흑해와 마르마라해, 그리고 다르다넬스 해협을 거쳐 에게해∙지중해까지 이어지는 유일한 통로다. 우크라이나, 조지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그리고 튀르키예와 러시아까지, 흑해 연안국들이 지중해와 대양으로 나가려면 무조건 이 해협을 지나야 한다(러시아에는 발트, 북극, 태평양 항구도 있지만 당연히 배가  그리 돌아가는 건 너무나 비효율적이다).  

 

즉, 러시아 흑해 함대가 지중해로 나가려 해도, 우크라이나가 곡물을 수출하려 해도 예외는 없다. 튀르키예는 유럽·중동·중앙아시아를 잇는 해상 물류의 '목'을 정확히 틀어쥐고 있다.

 

 

9. 튀르키예의 판돈 2: 러시아도 눈치를 본다   

러시아처럼 힘 센 나라는 어물쩡 넘어갈 수 있지 않냐고? 아니다. 1936년에 체결된 몽트뢰 협약(Montreux Convention)의 기본 원칙은 평시에는 어느 나라의 상선이든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다. 허나 군함, 그리고 튀르키예의 상황에 한해선 적용 조항이 완전히 달라진다. 

 

“어? 울 나라(튀르키예) 전쟁에 휘말릴 것 같은데? 지금부터 군함 통과는 내가 판단한다!”

“어라? 너 흑해 연안국도 아닌데 왜 군함을 이리 많이 끌고 와? 톤수 제한! 체류 기간 제한(3주)!”

 

실제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튀르키예는 몽트뢰 협약 19조를 적용했다. 전쟁 당사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군함이 해협을 통과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막은 거다. 즉, 러시아 같은 지역 최강국조차 튀르키예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이뿐인가. 튀르키예는 몽트뢰 협약에 근거해 등대, 구조, 검역 등 해협 항행 안전 서비스의 대가로 비용을 청구하고 있다. 말이 ‘서비스 비용’이지 실제론 ‘통행료’에 가깝다(해협을 건너려면 이 요금을 피할 길이 없으니!). 여기에 영감을 받은 모양인지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들에게 

 

“내 앞바다 지나가니 돈 내!!”

 

라고 통행료를 부과하겠다고 나섰다 난리가 났었지만 아직까지 국제 사회의 반발에 부딪혀 다투는 중이다(트럼프가 가만히 있을리가…). 튀르키예의 경우, ‘몽트뢰 협약에 근거한 정당한 서비스 이용료’라는 형태가 이미 90여년 동안 이어져 온 지라 합법적루다가 조용히 급전을 땡길 수 있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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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포루스 해협 항공사진

©X/Civixplorer(링크)

 

게다가 오랫동안 묶여 있던 이 ‘서비스 이용료’는 39년간 사실상 고정되어 있었는데 2022년 에르도안 정부의 지시로 크게 현실화(?!)되어 계속 오르는 중이다. 2026년 7월 기준 단가가 순톤당 6.70달러로 조정되었으니 튀르키예 정부의 연간 수입 예상액은 2억 5,400만 달러 되겠다. 국가 전체 예산을 좌지우지할 정도는 아니나, 해협의 지정학적 가치를 현금화한다는 점에서 똘똘하고도 쏠쏠한 외화 수입이다. ‘거대한 체스판’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한국인으로선 꽤나 부러운 지점이고.  

 

 

10. 에르도안 이야기 라이징: 튀르키예의 푸틴?     

자, 1편에 이어 이 정도면 튀르키예의 지정학적 위치와 국제 정치에서의 비중을 대략 파악할 수 있었을 게다. 그렇다면 유럽·중동·중앙아시아의 목줄을 쥔 나라의 지도자. 에르도안은 어떻게 튀르키예를 이끌고 있는지 살펴보자.

 

서방 언론의 뉴스를 중점적으로 보는 우리에게 에르도안의 이미지는 아마도「튀르키예의 푸틴」정도라 말할 수 있다. 장기 집권과 카리스마적인 직접 통치, 그리고 과거의 영광을 현재의 정치 자원으로 활용하는 점에서 그렇다(푸틴은 제정 러시아와 소련 강대국의 기억을, 에르도안은 오스만의 기억을 소환한다). 두 지도자 모두 ‘퇴폐적 서구’와 대비시켜 보수적 가치로 핵심 지지층을 결집시킨다. 

 

다만 이런 대외적인 이미지로 에르도안을 푸틴과 닮은꼴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려운 게 에르도안의 외교적 행보를 보면, 메시의 현란한 드리블을 보는 느낌이다.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보이는 행보는 외교 천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이는 차차 살펴보자). 일단 확실한 건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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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15일, 군부 쿠데타 저지10주년을 맞이해
기념 행사에 참석 중인 대통령 에르도안 

©딴지일보 김창규
 

“현재 튀르키예의 대통령은 에르도안이다. 2003년 총리에 취임했고, 2014년 대통령이 된 뒤 지금까지 20년 넘게 튀르키예 정치의 중심을 장악하고 있다”

 

 

11. 에르도안 이야기 라이징 2: ‘아타튀르크’와 ‘케말 파샤’ 사이 그리고 세속주의  

 

“튀르키예란 나라는 한 마디로 말해서 아타튀르크란 ‘영웅’이 설계한 세속주의 국가다.” 

 

물론 이 한 문장만으로도 튀르키예 사람들 사이에선 입장이 갈릴 수 있다. 

 

일단 ‘아타튀르크’란 이름 자체가 “튀르크인의 아버지”란 뜻으로 1934년 튀르키예 의회가 나라를 구하고 세운   “무스타파 케말”에게 부여한 성씨이자 칭호다. 즉, ‘아타튀르크’란 명칭에서 공화국의 창건자이자 세속주의 국가의 설계자란 이미지가 강조된다.
 

또 다른 명칭, “케말 파샤”는 “아타튀르크”와 동일 인물이다. “케말”은 이름, “파샤”는 오스만 제국의 고위 군관·관료에게 붙던 경칭인데 이를 붙이면 대략 한국어로 “케말 장군”, “케말 각하” 정도의 뉘앙스로 이해하면 된다. “아타튀르크”대신 “케말 파샤”라는 이름을 쓰면 독립 전쟁의 군사 지도자이자 민족 해방 영웅의 이미지가 강조된다. 

 

물론, 이 호칭 하나만으로 그 사람이 세속주의를 얼마나 지지하는지 판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슬람 보수 주의자들도 세속주의는 맘에 들지 않지만, 존중의 의미로 ‘아타튀르크’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있기에 이 분류가 딱 맞아 떨어지진 않는다는 말이다. 

 

어쨌든 “아타튀르크”대신 “케말 파샤”라 부르는 쪽은 세속화 개혁의 전면적 계승에는 거리를 두지만 조국을 구한 독립전쟁 지도자의 위상은 인정한다, 라는 경향성이 있다로 이해하면 되겠다.

 

아. 그전에. 

 

한국인이라면 이슬람 문화권을 설명할 때마다 등장하는 그놈의 ‘세속주의’란 게 정밀히 뭐냐! 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데, 짧은 지식으로나마 러프하게 요약하면 ‘정교분리’다. 좀 더 정밀히 하면, 한국인이 생각하는 ‘국가와 종교가 선을 긋는다’라는 느낌보다 훨씬 강력하다. 

 

튀르키예식 세속주의(라이클리크 laiklik)는 국가가 종교를 통치의 근거로 삼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국가가 종교를 공적 영역에서 관리하고 통제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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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초, 아타튀르크의 전국 순회 중 한 장면.

서구식 정장과 모자 차림은 오스만 제국 시대의 복식과 이별,  

세속주의로 나아가겠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튀르키예 국가교육부(MEB)

 

한국인 맞춤용으로 설명하자면, 우리에게 ‘종교청’이란 곳이 있어서 목사·신부·스님의 활동을 국가가 관리하고, 설교의 큰 방향까지 국가 행정 안에서 조율한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전광훈 목사 같은 사람이 광화문에서 큰 집회를 열고 정치권을 배후에서 움직이려 한다면? 국가가 조지는 것도 조지는 거지만, 애초에 종교가 국가 관리망 바깥에서 그렇게 커지기 어렵다는 느낌이다.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이슬람은 단순한 종교를 넘어, 1,400년 동안 이슬람권의 정치, 법, 생활 문화와 얽혀온 질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튀르키예 땅에 사는 이들과 천 년 이상 깊숙이 결합해 왔기에 한국적인 사고 방식으로 ‘현대 사회에서 정교 분리는 당연한 거 아냐!? 그걸 옹호하는 사람이 바보 아냐?’라는 느낌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는 뜻이다.        

 

 

 12. 에르도안 이야기 라이징 3: 세속주의 국가, 튀르키예 
 

“튀르키예란 나라는 한 마디로 말해서 아타튀르크란 ‘영웅’이 설계한 세속주의 국가다.”

 

이 한 문장을 제대로 설명하는데도 이리 많은 글이 필요하니 참으로 갈 길이 멀다. 자 계속 가보자. 

 

그럼 튀르키예 건국 초기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세속주의 엘리트와 보수적· 이슬람주의적 정치세력 사이에는 오랫동안 긴장이 이어졌다. 다만 한국의 역사가 그러하듯(우리도 한국의 좌파vs우파로 현대사를 설명할 수 없듯), 튀르키예 현대 정치를 ‘세속주의 대 이슬람주의’의 한 판 승부로 보는 건 지나친 단순화다. 좌우 대립, 쿠르드 문제, 경제 위기, 군부의 정치개입, 냉전기의 반공주의까지 전부 뒤엉켜 있다. 

 

(오죽하면 1932년에는 아잔 -튀르키예는 물론, 이슬람권에 여행가면 동네 골목마다 울리는 그것. 하루 다섯 번 기도 시간을 알리는 외침- 을 아랍어 대신 튀르키예어로 하게 했고, 아랍어 아잔은 1950년에야 다시 허용됐다. 이슬람 예배 전체에서 아랍어를 전면 금지했다기보다, 국가가 종교의 언어와 의례까지 국민국가의 틀 안에 넣어 관리하려 했던 상징적인 사례인 게다)  

 

해서 튀르키예인에게 이슬람교란 너무나 뿌리 깊은 문화와 사상이기에 국가가 이걸 완전히 끊어내는 건 불가능하다. 공화국 초기에는 강하게 통제되고 주변으로 밀려났지만, 다당제와 도시화, 보수정당의 성장 속에서 언제든 전면에 부상할 수 있는 상황이 이어진 게다.

 

바로 이런 긴장이 켜켜이 쌓일 때마다, 등장한 게 우리가 이따금 외신에서 접하는 튀르키예 군부 세력의 쿠데타, 혹은 쿠데타 경고다. 즉, 군부는 오랜 기간, 아타튀르크가 세운 공화국과 세속주의의 수호자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한 게다(물론 큰 틀에서 이렇게 이해하라는 것이지, 이를 ‘이슬람주의를 막기 위해서’라는 하나의 틀로만 설명하면 틀린다. 좌우 대립, 정치·경제 위기의 폭발 그리고 당연히 군부 자신들의 권력 의지도 포함한 쿠데타도 있으므로).

실제로 1980년 군부 쿠데타는 이슬람 세력들만 자근자근 밟은 게 아니라, 좌파·우파·노동운동·쿠르드 운동·이슬람주의 세력까지 가리지 않고 강하게 밟아(?!)버렸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슬람에 대해선 좌파를 누르고 사회를 통합한다는 명분 아래 ‘튀르크-이슬람 종합’이라는 이념을 밀어줬다.

응? 이게 무슨 종합선물세트같은 말이냐고?

1982년 헌법 아래 초·중등 교육과정의 종교·윤리 과목이 의무화됐는데, 실제로는 수니 이슬람 중심의 교육이었다. 우리가 수니파, 시아파 할 때 그 수니다. 즉 군부는 ‘통제되지 않는 이슬람 정치’는 경계하지만, 국가가 관리하는 수니 이슬람은 오히려 국가 이념의 일부로 끌어들인 셈이다. 

이쯤되면 지금의 튀르키예는 이슬람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나라인 동시에 이슬람을 국가의 통제 아래 두는 세속주의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나라란 걸 확실히 알거다. 다만 그 세속주의는 종교를 완전히 밀어낸 체제가 아니라(애초에 밀어낼 수도 없다), 국가가 종교를 관리하고 필요할 때 정치적으로 동원한 체제다.

그런데 에르도안 집권 이후, 이 균형은 크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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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생,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해안 경비원의 아들로 태어나 10대 시절부터 이스탄불 시내에서 음료와 튀르키예 전통빵인 시밋을 팔며 생활비를 보탰다. 청소년기에는 축구선수로 기량이 뛰어나 축구팀에서 영입을 제안한 일화가 있다. 마흔살에 이스탄불 시장으로 당선되어 행정 능력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으며 어릴 때부터 이슬람 학교에서 배우고 성장한 철저한 이슬람 주의자다. 
©VOA(링크)

<3편에 계속>

 

마빡 디자인 : 꾸물

감수 : 성공회대 석좌교수 이희수

딴지 국방전문 이성주(펜더)


기사 : 김창규(죽지않는돌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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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수배 중인 살인범과 교섭하거나 영업 중인 불법 도박 조직의 내부를 실시간 보도하는 등 조금 흥미로운 일을 했습니다. '필리핀 연쇄 납치 사건(홍석동 납치 사건)', '김규열 선장사건', '도박 묵시록' 등을 썼고 운 좋게 몇몇 범죄자를 검거하는데 일조한 동네 아저씨입니다.

"평화 일직선, 키나 쇼키치를 만나다", "공익제보 하지마세요(공저)", "범인은 이 안에 없다" 등을 냈고 오디오 매거진 "이마까라니홍고"를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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