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이후 끊임없이 추락하는 한국 축구
당연히 2026 월드컵은 끝났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면 2026 한국의 월드컵은 너무 일찍 끝났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한국은 첫 경기 체코를 잡으며 나쁘지 않은 출발을 알렸다. 하지만 멕시코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연달아 패했고, 결국 조별리그 1승 2패. 이번 대회부터 32강까지 문이 넓어졌지만, 한국은 그 문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대한민국 공식 슬로건
©풋볼리스트
월드컵에서 떨어지는 것까지야 그럴 수 있다. 축구라는 게 늘 이기는 스포츠였다면 브라질 사람들도 가끔 울 일이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한국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탈락한 뒤, 이상하게도 한국 축구는 경기장 밖에서 더 빠르게 추락하기 시작했다.
대한축구협회에 일어난 일
6월 29일. 홍명보 감독이 사퇴했다. 월드컵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월드컵에서 성적이 나쁘면 감독이 물러난다. 세계 어디서든 벌어지는 일이다.

국가대표팀 감독 사퇴하는 홍명보
그런데 공교롭게도 바로 그날,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특별감사를 선언했다. 단순히 “이번 월드컵에서 왜 졌는지 알아보겠다”라는 게 아니었다. 대표팀 감독 선임 문제를 비롯해 그동안 축구협회를 둘러싸고 쌓여온 각종 논란과 행정 전반을 다시 들여다보겠다는 것이었다.
2024년에도 문체부 감사에서 감독 선임 절차와 축구종합센터, 축구인 사면 등 여러 문제가 지적됐는데, 월드컵 실패가 그동안 덮여 있던 문제들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 셈이다.
이때부터 사건의 성격이 달라졌다. 월드컵 실패가 아니라 대한축구협회 실패의 문제가 되었다.

대한축구협회장 사퇴하는 정몽규
일주일 뒤. 7월 6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사퇴했다. 2013년부터 이어진 13년 넘는 정몽규 체제가 그렇게 끝났다. 대한축구협회 역사에서 한 시대가 끝난 셈이다.
같은 날, 재미있는 장면이 하나 더 등장했다. 박지성을 전면에 내세운 ‘K-축구 혁신위원회’가 출범했다. 정몽규는 나갔고, 박지성이 들어왔다. 그림만 놓고 보면 제법 상징적이었다.

K-축구 혁신위원회의 박지성
한국 축구에서 가장 많은 비판을 받던 행정가가 퇴장하고, 한국 축구에서 가장 많은 신뢰를 받는 선수 출신 인물이 개혁의 얼굴로 등장했다. 많은 사람들은 아마 이때쯤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 이제 뭔가 바뀌겠구나!”
하지만 한국 축구의 여름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았다. 7월 30일, 국회에서 대한축구협회 관련 청문회가 열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정몽규와 홍명보가 나란히 앉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 사람은 대한축구협회장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다. 이제는 국회의원들의 질문을 받는 증인이 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월드컵 결과에 대해 사과했지만, 감독 선임 특혜나 축구협회의 이른바 ‘카르텔’ 의혹 등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 부인했다. 그렇다고 청문회가 모든 의혹을 시원하게 풀어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국민 입장에서는 한국 축구가 경기 결과 때문에 비판받는 것인지, 조직 운영 때문에 심판받는 것인지 헷갈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청문회에서 취지와 방향에 맞게 잘 질문한 청문위원 중에는 이재정 의원이 기억남는다.

홍명보 전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
대한축구협회 임원 등의 부당한 개입이 있었는지
경찰이 대한축구협회를 압수수색한 후 주차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8월이 되자, 또 장소가 바뀌었다. 이번에는 국회가 아니라 경찰이었다. 2024년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과 관련된 고발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홍명보 전 감독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고, 8월 6일 경찰은 대한축구협회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대한축구협회가 경찰의 강제수사를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수사가 진행된다는 것이 곧 범죄가 확정됐다는 뜻은 아니다. 홍명보 전 감독과 당시 협회 관계자들은 부당한 개입이나 특혜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그래도 장면이 주는 충격은 적지 않았다. 한 달 전까지 월드컵에 참가했던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이 피의자 조사를 받고, 대한민국 축구를 대표하는 기관에 경찰 수사관들이 들어갔다.
월드컵 탈락 → 감독 사퇴 → 협회장 사퇴 → 특별감사 → 국회 청문회 → 경찰 압수수색
이것이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다. 보통의 조직이라면 이 정도에서도 충분히 정신이 혼미해질 만하다. 그런데 대한축구협회와 한국 축구의 추락은 그치지 않는다. 뜻밖에도 십수 년 전의 과거사까지 튀어나왔다.

8월 초 공개된 과거 대한축구협회 비위 조사 자료에서 2011~2012년 당시 외국인 심판과 축구 관계자들에게 부적절한 향응, 이른바 ‘성접대’를 제공했다는 내용이 다시 알려졌다. 법인카드를 사용하고도 다른 용도로 쓴 것처럼 처리했다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이 2026년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10년도 훨씬 전의 사건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현재의 문제가 너무 커지다 보니 과거의 먼지까지 함께 날리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당시 접대를 받은 인사 가운데 중국축구협회 관계자가 포함됐다는 보도가 나오자, 중국축구협회도 조사에 나섰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에서 탈락했는데, 어느 순간 중국축구협회까지 등장했다. 이 정도면 축구공이 어디까지 굴러가는지 따라가기도 어렵다.
이 모든 일이 두 달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벌어졌다. 여기까지 오면 단순히 “월드컵 성적이 나빴다”라는 것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반대로 봐야 한다. 월드컵은 한국 축구 위기의 원인이 아니었다. 월드컵은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문제를 한꺼번에 터뜨린 도화선에 가까웠다.
그래서 이제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홍명보 감독이 잘했느냐 못했느냐. 정몽규 회장이 물러나야 했느냐. 그 질문만으로는 지금 벌어지는 일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감독도 떠났고, 회장도 떠났다. 그런데 왜 한국 축구의 위기는 끝나지 않는가.
그리고 조금 더 불편하게 묻자. 도대체 대한축구협회와 한국 축구는 어디까지 추락하고 있는가.
사람 자체보다 기이한 제도가 문제다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은 처음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정몽규 회장 역시 클린스만 선임부터 축구인 사면, 홍명보 감독 선임, 축구종합센터 문제까지 숱한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특히 13년 넘게 대한축구협회를 이끌었던 만큼 그 기간에 벌어진 일에 대해 회장이 져야 할 책임 역시 작다고 할 수 없다.

그러니 갑자기 “사실 사람은 아무 문제가 없었고 제도만 문제였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람도 문제였다. 그런데 정몽규가 떠난 뒤 대한축구협회 정관을 찬찬히 읽어보니, 조금 더 불편한 문제가 눈에 들어왔다.
대한축구협회에는 생각보다 제도가 많았다. 이사회가 있다. 감사도 있다.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가 있고, 공정위원회와 윤리위원회도 있다. 심지어 2025년에는 국민과 언론의 신뢰를 높이고 ‘열린 행정’을 구현한다는 소통위원회까지 만들었다.
그러니까 문제를 겪을 때마다 흔히 하는 말 ‘시스템이 없어서 그렇다’ 대한축구협회에는 적어도 이 말이 잘 맞지 않는다. 시스템은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정관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한축구협회의 ‘최고집행기관’이다. 사업계획과 예산, 규정의 변경, 주요 임원과 분과위원회 업무까지 협회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심의하고 의결한다. 쉽게 말하면 회장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중요한 결정을 함께 검토하는 곳이다.
그런데 그 이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부회장과 이사는 기본적으로 회장이 추천한다.
전무이사는 회장이 임면한다.
상근 임원도 회장이 임면한다.
분과위원은 회장이 위촉한다.
협회 행정을 총괄하는 사무총장 역시 회장이 임명한다.
뭔가 조금 이상하다. 회장을 견제해야 할 장치는 있다. 그런데 그 견제 장치를 구성하는 데 회장이 상당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국가대표 감독 선임을 전문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전력강화위원회를 만들어 놓았는데, 분과위원을 위촉하는 사람도 결국 회장이다. 이사회가 회장을 견제해야 하지만 이사 후보를 추천하는 데에도 회장의 영향력이 크다.
결국 가장 큰 문제는 왜 제도가 한 사람의 성향에 이렇게 많이 의존하도록 만들어져 있느냐는 것이다. 전문가의 판단을 존중하는 회장이 오면 전력강화위원회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이사회 토론을 중시하는 회장이 오면 이사회가 활발하게 움직일 수도 있다. 그런데 반대로 자기 판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회장이 오면? 똑같은 정관 아래에서도 위원회는 ‘자문기구’가 되고, 이사회는 이미 결정된 일을 승인하는 곳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정몽규는 왜 그렇게 했을까가 아니라, 왜 대한축구협회는 정몽규 한 사람의 리더십 방식이 조직 전체의 의사결정 방식에 그렇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조였을까.
여기서 대한축구협회의 진짜 문제가 모습을 드러낸다. 없는 것은 ‘견제 장치’가 아니었다. 부족했던 것은 견제 장치의 독립성이었다.
더구나 대한축구협회의 최고 의결기관인 대의원총회 역시 시도축구협회, 전국연맹, 프로 1부 구단 대표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선수와 지도자, 심판도 대한축구협회의 회원이지만 최고 의결기관에서 직접 대표권을 행사하는 구조는 아니다. 기존 회장선거인단도 정관상 100명 이상 300명 이하로 제한되어 있다.

체육관 선거를 떠올리게 하는 대한축구협회 회장 선거
©위키리스크한국
그러니 제도를 모두 정관대로 운영한다고 해서 곧바로 국민들이 원하는 ‘열린 축구협회’가 되는 것도 아니다. 이 지점에서 두 가지 정당성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제도적 정당성과 사회적 정당성.
말은 거창하지만 뜻은 어렵지 않다. 대한축구협회에는 분명 제도적 정당성이 있다. 정관이 있다. 선거를 한다. 총회가 있다. 이사회가 있다. 감사를 받고 예산과 결산을 공개한다. FIFA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축구협회로 인정하고 있다. 누군가 길거리에서 갑자기 만든 조직이 아니다.
그런데 국민들은 그 제도를 통해 나온 결정을 믿지 않았다. 감독을 뽑았는데 왜 그 사람이 뽑혔는지 납득하지 못했고, 이사회가 있는데도 정말 견제가 이루어졌는지 의심했고, 각종 위원회가 존재하는 데도 중요한 순간마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반복됐다. 즉 제도적으로는 정당한데 사회적으로는 신뢰받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것이 지금 대한축구협회의 가장 심각한 위기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두 종류의 정당성은 지금 아주 상징적인 모습으로 마주 보고 있다.
한쪽에는 대한축구협회가 있다. 정관과 총회, 이사회, FIFA가 인정하는 공식적인 권한을 가진 조직이다. 다른 한쪽에는 박지성을 앞세운 K-축구 혁신위원회(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임시 위원회)가 있다. 혁신위는 대한축구협회의 상급 기관도 아니고 협회장을 해임하거나 규정을 강제로 바꿀 권한도 없다. 그러나 월드컵 이후 폭발한 국민적 불신과 축구계의 개혁 요구를 등에 업고 있다.
대한축구협회가 제도적 정당성을 대표한다면, 혁신위는 지금 한국 축구에서 부족해진 사회적 정당성을 상징하는 셈이다. 둘은 그래서 싸우기만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완전히 한 몸이 될 수도 없다. 협회가 혁신위의 말을 무조건 따라간다면 ‘외부에서 독립된 축구협회가 맞느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고, 반대로 협회가 ‘우리는 정관대로 움직이는 민간단체’라며 혁신위의 요구를 무시한다면 국민은 다시 묻게 된다.
좋은 회장을 기다리는 한국 축구?
여기까지 오면 혁신위가 해야 할 일도 조금 분명해진다. 대한축구협회를 대신해 감독을 뽑고, 대신 회장을 고르고, 대신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정몽규라는 한 사람에게 몰렸던 권력을 이번에는 박지성과 혁신위에 옮겨놓는 것에 불과하다. 사람만 바뀌었지, 구조는 그대로다.
혁신위가 해야 할 일은 오히려 그 반대다.
누가 회장이 되더라도 그 사람 혼자서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축구협회를 만드는 것.
이사회가 실질적으로 회장을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대표 감독을 뽑는 위원회라면 회장의 의중보다 전문적인 판단이 먼저 작동해야 한다. 선수와 지도자, 심판처럼 실제 한국 축구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지금보다 훨씬 더 의사결정에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
현재 대한축구협회와 혁신위원회의 관계를 단순한 대립으로만 보는 것도 그래서 적절하지 않다. 앞서 살펴봤듯 대한축구협회에는 정관과 선거, 총회와 이사회라는 제도적 권한이 있고, 혁신위에는 월드컵 이후 폭발한 개혁 요구와 국민적 기대라는 사회적 힘이 있다.
둘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없애는 것이 답은 아니다. 대한축구협회는 스스로 결정할 권한을 가져야 한다. 동시에 혁신위는 그 권한이 다시 몇 사람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정몽규는 떠났다. 홍명보도 떠났다. 그리고 언젠가는 혁신위도 사라질 것이다. 그때 또다시 새로운 회장을 보면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이번에는 괜찮은 사람이겠지.’
하지만 한국 축구가 여기서 끝난다면 지난 몇 년간 겪었던 일을 또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좋은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기대에 가깝다. 한국 축구의 미래를 또 한 사람의 선의에 맡길 것인가. 아니면 그 사람이 누구든 일정한 원칙과 견제 속에서 움직이게 만들 것인가. 이제는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
한국 축구에 필요한 건 좋은 회장이 아니다. 별로인 회장이 와도 멀쩡하게 돌아가는 축구협회다.

편집: 임권산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kuy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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