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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것은 가라앉고 가벼운 것은 떠오릅니다. 휘저어놓을 수는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드러나게 되죠. 무리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 무리한 행동이 뒤따릅니다. 행동을 참더라도 마음이 그대로라면 결국 드러나게 됩니다. 그렇게 민주당 티비, 줄여서 ‘민티’라는 또 하나의 무리한 행동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 무리한 행동에 대해 우려 섞인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정준희 교수의 분석과 비평은 언론 전문가로서의 견해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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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정준희의 해시티비(링크)

 

그 외에도 정치적, 역사적 관점 등 다양한 논거를 바탕으로 한 의견들이 이어지는 중입니다.

 

이 글에서는 조금 큰 틀에서 이 사안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민티를 바라보며 제가 가장 먼저 떠올린 단어는 ‘오만함’입니다.

 

 

허상의 안과 밖

 

전편에서 이 연재를 회고하며 ‘밀가루로 만든 세상’을 언급했습니다. 그 비유로 든 것이 온라인 게임 속 가상 세계였죠. 우리는 게임 속 세계가 허구인 것을 알면서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분석합니다. 허상이라고 해서 분석이 무의미해지는 건 아닙니다. 우리가 인지하는 이 ‘현실’도 극단적인 기준으로 보면 모두 허상이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분별하고 분석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은, 어디까지나 허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 사실을 깜빡하면 곤란한 일이 벌어집니다. 스트리트 파이터를 잘했다고 현실에서도 격투를 잘할 수 있다고 여기거나, 포커 천재를 연기한 배우가 실제 카지노에서도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여긴다면, 아주 곤란한 결과를 맞닥뜨리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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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오락실 게임 중 흔한 현피

©유튜브 일권아놀자(링크)

 

‘금융’이라는 세계를 예로 들어보죠. 금융은 지극히 현실적인 활동이지만, 그 안의 개념과 절차는 절대적인 법칙이 아니라 사회적인 합의의 결과입니다. 한 국가에서 자연스러운 금융 정책이 다른 국가에서는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기도 하죠. 금융기관의 전문가들은 그 원리 안에서 더 많은 이익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고민하고, 그렇게 막대한 자본을 다루는 영향력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그 능력과 영향력은 어디까지나 금융이라는 세계 안에서 통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깜빡하면, 자본을 쥐락펴락하는 사람이 금융 밖의 세계까지 쥐락펴락할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어떤 은행은 자사 앱에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 기능을 넣기도 하고, 어떤 금융기관은 쇼핑몰 기능을 만들었다가 아무런 영향력을 갖지 못한 채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금융의 세계에서 통하는 능력이 다른 세계에서도 통할 것이라는 생각은 대체로 틀립니다. 전혀 다른 능력인 것이죠.

 

 

여러 개의 게임

 

경제, 외교, 정치 같은 사회적 영역이나 가족관계, 친목 같은 사적 영역은 각각 서로 다른 장르의 게임과 비슷합니다. 각각의 맥락에는 고유한 원칙과 세계관이 있습니다. 테트리스의 세계는 깊고 심오하지만, 스타크래프트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상한 도형들일 뿐입니다. 스타크래프트를 아무리 잘해도 테트리스를 잘한다는 보장은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에서는 문제아지만 사회에 나가 혁신적인 사업가가 된다거나, 만인에게 존경받는 학자가 가족 내에서는 최악의 부모가 되는 사례가 수없이 많은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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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자크 루소 (1712-1778).

자기 자녀 다섯을 모두 고아원에 보낸 아동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한 계몽주의 철학자.

©Maurice-Quentin de La Tour, 1753(링크)

 

어느 한 게임을 현실이라 착각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그 게임에서 통하는 원리가 게임 밖에서도 통할 것이라 여긴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착각에는 두 가지 부작용이 따릅니다.

 

먼저 다른 게임들을 ―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 무시하게 됩니다. 현실에는 무수히 많은 게임이 있으므로, 권위자 또한 무수히 많이 있겠죠. 본인이 정한 게임만 현실로 착각한다는 건, 다른 게임을 다른 차원에 놓는 것입니다. ‘모두 허상이지만 내 게임만 현실’이라는 왜곡된 인식이죠. 또 하나는 본인 스스로에 대한 부작용입니다. 한 게임의 원리가 다른 게임에서 통할 리 없습니다. 철권 2의 달인이라고 해서 철권 3를 잘하는 건 아니며, 수도쿠나 슈퍼마리오는 완전히 또 다른 원리가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본인이 잘하는 게임이 현실이란 착각이 강할수록 그에 비례하는 큰 실패를 겪게 됩니다.

 

이 두 가지 부작용을 종합하면, 게임과 현실이라는 허상의 안과 밖을 구분하지 못하는 착각은 결국 ‘오만함’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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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링크)

 

 

게임과 페르소나, 그리고 자아

 

게임에 깊이 빠져든 플레이어를 상상해 보죠.

 

어두컴컴한 방, 빈 컵라면 용기가 나뒹구는 책상, 바쁘게 움직이는 손, 마이크가 달린 헤드셋에 다급히 쏟아내는 비속어와 욕설. 게임을 마친 그가 끼니를 때우러 식당에 갔을 때, 그는 그 말투를 똑같이 사용했을까요? 아닐 겁니다. 게임과 현실은 다르니까요. 그 게임 플레이어는 칼 융이 말한 ‘페르소나’, 즉 그 상황에 맞는 사회적 가면을 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페르소나를 바꿔 씁니다. 칼 융을 비롯한 정신건강의학계에서는 사회적 가면인 ‘페르소나’와 내면의 ‘진정한 자아(ego)’를 동일시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특정 페르소나를 자아라고 착각하는 순간, 가면 뒤의 진정한 자아는 고립되고 소외되어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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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융의 심리구조 모델

©REVERIE(링크)

 

직장에서, 슈퍼마켓에서, 친구 앞에서, 가족 앞에서 보이는 수많은 페르소나를 모두 제외한 ‘진정한 자아’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스스로가 인지하는 참된 자아를 찾았다 하더라도, 그 모습이 ‘진정한 자아’인지, 혼자만의 또 다른 페르소나인지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쉽게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진정한 자아를 콕 집는 대신, 일단 인정하는 것이죠. 그 모든 것이 다 페르소나, 즉 가면일 뿐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진정한 자아는 다양한 가면을 바꿔 쓰는 바로 그 사람일 뿐, 가면 중 하나가 그 사람 자체는 아닙니다. 게임이 허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듯, 우리는 가면인 것을 알면서도 더 적절한 가면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어쩌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서로의 가면을 보며 벌어지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이 허상이라고 해서 의미 없지 않듯이, 내 얼굴 위에 가면이 씌워져 있다고 해서 그 가면이 무의미한 것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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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 페르소나의 작동 메커니즘

©AsimovLab(링크)

 

지금 이 가면이 진정한 나의 모습이라 여긴다면, 그것은 그 가면이 어울리는 게임이 현실이라고 착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가면이 그들의 전부라 여기는 오만함이고, 그 가면 뒤에 있는 자신의 얼굴을 무시하는 서글픈 자의식이기도 합니다.

 

 

오만함의 서글픈 끝

 

정치에서도 이런 착각과 오만함을 종종 발견합니다. 정치가 현실에 끼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린아이가 기어가는 벌레를 짓눌러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닫는 순간, 본인의 영향력에 도취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벌레를 짓눌렀어도, 떼 지어 날아오는 말벌 무리를 피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매우 곤란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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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링크)

 

하나의 게임에서 잠시 얻은 권위에 심취하면, 어느 순간 그 세계가 절대적인 현실이라 착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게임 밖 현실까지 좌우할 수 있을 것이라 믿게 되죠. 한때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까지 올랐다가 이제는 수감실과 법정을 오가는 신세가 된 이들이 그 예입니다. 그런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는 노력해야 합니다.

 

당장 피해가 생기지 않았다고 해서 오만함이 괜찮은 것은 아닙니다.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 해도 오만함은 반드시 곤란한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 섞인 분석을 내놓는 것은 그런 마음에서입니다. 맹자가 말한, 물가로 기어가는 어린아이를 조건 없이 구하려는 마음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듣는 이가 그 마음을 모른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휘저어 놓아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본질이 드러나는 마음 챙김의 이치를 되새기며, 이번에도 함께 지켜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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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춘심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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