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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가 언론과 시민사회의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에 들어간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원한다는 건 미국 언론과 미국 시민사회가 아니다. 유럽이다.

 

이 이슈는 유럽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대해, 프랑스의 장노엘 바로 외무장관은 이렇게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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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노엘 바로 프랑스 외무장관

 

“어느 나라든 유럽의 선거 과정에 개입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

 

여기까지만 보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이 이슈가 우리나라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그려내기 쉽지 않다.

 

그래서 지금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깊게, 그러나 쉽게 디벼보려 한다.

 

 

로이터의 보도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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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링크)

 

지난 9월 1일 로이터가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유럽의 언론 및 시민사회 활동 등에 최소 2,500만 달러를 지원하려고 한다.

 

프랑스는 이 계획이 알려지기 시작할 때부터 경계했다. 조금 낯선 장면이다. 언론탄압이라면 언론사를 폐간하고 기자를 잡아가거나 방송 면허를 빼앗는 모습을 먼저 떠올린다.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을 수사와 규제로 압박하는 방법도 있다. 이번에는 정반대다. 돈을 준다.

 

언론을 도와주는 것도 언론의 자유를 해칠 수 있을까. 취재비를 주고, 기자들을 연결하고, 더 많은 기사를 만들 수 있게 하는 일이 왜 문제가 되는가.

 

“트럼프가 유럽 극우 언론 및 시민 사회에 돈을 뿌린다.”

 

이 한 마디면, 답은 간단해진다. 

 

아직 확정적으로 말할 순 없다. 지원받을 언론사나 기자가 지금 정해진 건 아니다. 특정 정당에 돈을 주는 사업도 아니다. 미국 국무부는 독립저널리즘과 민주적 회복력을 내걸었고, 사실에 근거한 비당파적 보도를 요구한다.

 

그러니 문제를 ‘누가 돈을 받느냐’에서 찾으면 아직 이르다. 더 먼저 봐야 할 것이 있다. 

 

미국 정부는 그 돈으로 무엇을 취재하게 하려는가?

 

 

질문을 고르는 권력

 

공모 문서를 보면 답은 꽤 구체적이다. 

 

‘대규모 이민이 치안과 공공서비스에 어떤 부담을 주는가’

 

‘유럽연합의 정책이 회원국의 주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종교의 자유와 국가정체성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출산율 하락과 가족의 변화는 무엇을 가져오는가’ 

 

등을 취재하라고 되어 있다. 모두 지금 유럽 정치에서 치열하게 다투는 문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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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기사의 결론까지 정해놓은 것은 아니다. “이민은 나쁘다고 써라”, “EU는 회원국의 주권을 빼앗는다고 써라”는 지시는 없다. 다만 어떤 질문에 돈을 댈지는 이미 정해졌다. 이민의 비용을 조사하고, EU 정책이 국가주권에 미치는 영향을 취재하는 데 미국 정부가 돈을 댄다.

 

핵심은 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답을 정하지 않아도, 무엇을 계속 묻게 할지는 고를 수 있다.

 

한 동네에 외국인이 갑자기 많이 들어온 현상에 대해 기자는 여러 가지를 물을 수 있다. 

 

“사람이 늘면서 상권이 얼마나 살아났습니까?”

 

“부족하던 일손을 얼마나 채웠습니까?”

 

반면, 이렇게도 물어볼 수 있다.

 

“학교와 병원의 부담이 얼마나 늘었습니까?”

 

“범죄율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어느 쪽도 그 자체로 잘못된 질문은 아니다. 모두 확인할 가치가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정부가 그중 특정한 질문에만 2년 동안 취재비를 대고, 기자들을 연결하고, 여러 나라에 기사를 퍼뜨릴 네트워크까지 만들어준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거짓말을 하라고 시킨 적은 없다. 다른 질문을 금지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특정 방향의 질문만을 사람들이 반복해서 접하고 중요하게 느끼게 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언론의 힘은 거짓을 진실처럼 만드는 데만 있지 않다. 수많은 사실 가운데 무엇을 먼저 꺼내고 계속 반복하느냐에 따라서도 현실의 모습은 달라진다. 사람들에게 무엇을 생각하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무엇을 중요한 문제로 생각하게 만들 수는 있다. 흔히 말하는 ‘의제 설정의 힘’이다.

 

그래서 이번 일을 단순한 언론지원이라고만 부르기 어렵다. 미국 정부가 기사 한 줄을 대신 써주는 것은 없다. 하지만 유럽의 공론장에서 어떤 질문이 더 자주, 더 크게 제기되도록 할 것인지는 선택한다. 문제는 답을 통제하는 데 있지 않다. 질문의 목록을 권력이 고른다는 데 있다.

 

 

우파 미디어라는 이름

 

미국 국무부의 공모문서 어디에도 ‘우파 미디어를 지원한다’는 표현은 없다. 그렇게 규정한 것은 로이터다. 공식적으로는 미국 국무부는 이렇게 말한다.

 

“독립저널리즘과 민주적 회복력을 지원하는 사업이며, 특정 정당이나 이념을 지지하지 않는 비당파적 보도를 요구한다.”

 

그런데 지원 대상으로 제시된 의제들을 보면 로이터가 왜 그렇게 이름 붙였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대규모 이민, 국가주권, 유럽연합의 초국가적 권한, 종교의 자유, 국가정체성, 가족과 출산율 같은 문제들이다.

 

어느 하나 우파만 다룰 수 있는 주제는 아니다. 다만 지금 유럽에서 이런 문제들을 하나의 묶음으로 가장 강하게 제기하는 쪽은 보수·주권주의 정치 세력이다.

 

공모문서만 놓고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지원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까지 함께 보면 정치적 방향은 더 선명해진다. 이 문서는 유럽의 위기를 방위비 부족이나 저성장만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규모 이민과 국가정체성의 약화, 초국가적 기구의 영향력 확대, 이른바 ‘문명적 자신감’의 쇠퇴를 함께 문제 삼는다. 유럽 내부에서 이런 흐름에 저항하는 정치세력이 커지는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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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문명적 유대,

민주주의 회복력 및 법치주의 발전을 위한

자금 지원 기회 공고 (NOFO) 페이지

©미 국무부(링크)

 

따라서 이 사업을 우파 정당에 대한 직접 지원이라고 부를 수는 당연히 없다. 그렇다고 아무런 정치적 방향도 없는 일반적인 언론지원사업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특정 정당을 지원하지는 않지만, 미국 정부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정치적 의제에 공적 자원을 집중한다. 문제는 어느 정당에 돈을 주느냐보다 어떤 문제를 더 크게 말하게 하느냐에 있다.

 

 

돈만 주고 끝나는 것은 아니다

 

미 국무부가 돈만 건네고 물러나는 구조도 아니다. 이번 사업은 단순 보조금이 아니라 정부의 상당한 관여를 전제로 하는 협력협정이다. 국무부는 사업계획과 핵심인력, 하위 지원대상, 조사방법 등을 승인하거나 검토할 수 있고, 사업을 연장하거나 끝낼지 판단하는 권한도 가진다.

 

그렇다고 미국 정부가 기사 제목을 고치거나 문장을 사전 검열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증거도 없다. 공개된 문서에서도 국무부가 개별 기사의 제목이나 문장을 최종 승인한다는 조항은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누가 취재할 수 있는지, 어떤 문제를 취재할지, 그 취재를 얼마나 오래 이어갈 수 있는지에 돈을 대는 것만으로도 차이가 생긴다. 기사를 직접 쓰지 않아도 기사가 만들어지는 조건에는 손을 댈 수 있다.

 

광장에 열 사람이 서 있고 누구에게나 말할 자유가 있다. 아홉 사람은 맨목소리로 말하고, 한 사람에게만 정부가 마이크와 스피커, 방송차량까지 빌려준다. 누구의 입도 막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목소리가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는 광장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비판하는 입을 막는 것이 가장 거친 언론통제라면, 어떤 입에 확성기를 쥐여줄지를 정하는 것은 훨씬 세련된 공론장 개입이다.

 

 

공공지원과 공론장 개입 사이

 

물론 공공자금으로 언론을 지원하는 일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지역신문이나 공영방송, 돈이 많이 들고 수익은 적은 탐사보도를 시장에만 맡기면 필요한 언론부터 사라진다. 민주주의를 위해 오히려 공적 지원이 필요한 영역도 있다.

 

유럽 역시 여러 나라에서 공영방송을 운영하고 지역언론과 비영리 저널리즘을 지원한다. 그러니 미국 정부 돈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번 사업을 부당하다고 비판하면 논리가 맞지 않는다. 경계는 돈의 출처가 공공이냐 민간이냐에서 갈리지 않는다.

 

누가 지원대상을 정하는가. 기준은 미리 공개되고 정치적 관점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가. 돈을 받은 뒤에도 편집권은 실제로 독립되어 있는가. 공적 지원이 언론의 자유를 넓힐지, 정치권력이 원하는 방향으로 공론장을 기울일지는 이 조건들이 결정한다.

 

지원대상은 정치권력과 떨어진 기관이 정하고, 기준은 투명하고 관점에 중립적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에 불편한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다음 지원을 걱정하지 않아도 돼야 한다. 돈을 받았다는 사실이 판단의 빚으로 돌아오는 순간, 언론을 살리는 돈은 독립성을 갉아먹는 돈으로 바뀐다.

 

그리고 미국이 이런 사업을 확장한다면, 한국도 그 대상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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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편 언론’이라는 착각

 

현재 미국 사업에서 지원받을 언론에 정치적 충성을 요구했다는 증거는 없다. 아직 지원대상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정치권력이 자신과 친화적인 의제와 언론 생태계를 골라 장기간 지원하기 시작하면, 지원이 어디까지 지원이고 언제부터 정치적 채무가 되는지는 반드시 물어야 한다.

 

보수 정부가 보수 언론을 좋아할 수 있고, 진보 정부가 진보 언론을 반길 수도 있다. 자신과 비슷한 목소리에 호감을 갖는 것까지 문제 삼을 수는 없다. 문제는 ‘우리와 생각이 비슷하다’가 ‘우리 것이다’로 바뀌는 순간 시작된다.

 

그 차이는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자신에게 우호적이던 언론이 어느 날 정부를 세게 비판할 때 비로소 드러난다. 그때도 그 언론이 자기 판단에 따라 말할 권리가 있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아니면 우리가 얼마나 도와줬는데 저럴 수 있느냐는 생각이 먼저 드는가.

 

정부 지원에 붙는 가장 위험한 대가는 계약서에 적혀 있지 않을 때가 많다. 감사와 의리, 같은 진영이라는 소속감, 그리고 그 선을 벗어났을 때 따라오는 배신이라는 말이다. 권력이 언론에 이런 정치적 채무를 기대하기 시작하면 공적 지원의 성격도 달라진다. 언론을 돕는 돈이 관계를 묶는 돈으로 바뀐다.

 

정치적으로 가까운 언론이 권력에 할 수 있는 일도 힘을 실어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권력이 자신이 내걸었던 가치와 다른 길로 들어설 때 먼저 간극을 지적하는 일도 지지의 일부다. 사람이나 조직을 지지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실현하겠다고 약속한 가치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독립언론은 권력과 같은 편일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의 소유물일 수는 없다. 지지는 동의이지 소유권 이전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견뎌야 하는 언론

 

권력이 자신에게 적대적인 언론을 견뎌야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아무리 불편한 비판이라도 권력의 힘으로 입을 막아서는 안 된다.

 

더 어려운 시험은 자신을 지지했던 언론이 비판할 때 찾아온다. 처음부터 반대하던 언론의 공격보다 같은 편이라 생각했던 언론의 비판이 더 아프게 들린다. 그러나 독립언론의 판단권은 지지를 보낼 때와 비판을 시작한 뒤가 다르지 않다.

 

권력은 그 비판이 틀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공개적으로 반박해도 된다. 권력에게 있는 것은 반박할 권리이지, 비판하지 말라고 요구할 권리는 아니다. 같은 방향을 걸었던 언론이 다른 판단을 내렸다는 이유만으로 그 판단권까지 부정해서는 안 된다.

 

언론의 독립성이란 권력의 적일 자유만을 뜻하지 않는다. 권력의 친구일 의무로부터 자유로운 것까지 포함한다. 민주주의가 지켜야 할 것은 권력이 고른 ‘좋은 언론’이 아니다. 무엇이 좋은 언론인지 권력이 결정하지 못하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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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임권산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임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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