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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의 대자연에서 프랑스 도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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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데드 리뎀션 Ⅱ 키아트

©Rockstar Games, 게임 홍보용 이미지

 

누군가 나에게 제일 좋아하는 게임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나는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 <레드 데드 리뎀션 Ⅱ>. 제일 좋아하는 게임 캐릭터를 꼽으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 게임의 주인공, 아서 모건(형님). 플레이했던 친구들끼리 아서 모건을 부를 때 뒤에 무조건 '형님'을 붙이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막상 이 게임을 조사하려고 하니 어려웠다. 게임이 풍부하기도 하고, 그 풍부함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제일 정직한 방법을 떠올렸다. 이야기의 흐름대로, 나에게 인상 깊었던 장면과 배경들을 소개하기로 했다.

 

게임의 무대는 1899년, 서부 무법자들의 시대가 저물어가던 무렵의 미국이다. 무법자들이 이제 막 미국이라는 국가의 법 아래 하나둘 사냥당하기 시작하고, 아서가 몸담은 '반 더 린드' 갱단도 그 표적이 되었다. 게임은 서부에서 쫓긴 갱단이 동부로 도망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갱단의 리더, 더치 반 더 린드는 마지막 한탕만 하고 어디 외딴곳으로 떠나 은퇴하자고 계속 비전을 제시한다. 그 "마지막 한탕"이라는 것이 좀처럼 오지 않는다는 걸,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체감하게 된다.

 

이 게임의 지도는 "미국 전역의 압축본"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다. 광활한 미국의 자연환경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눈 덮인 산맥에서 시작해 대평원, 늪지, 문명화된 항구도시, 아직 덜 발전한 서부 도시, 사막까지 한 게임 안에 다 들어 있다. 사냥을 하면 가죽을 직접 벗기고, 약초를 캐면 손질해 주머니에 넣는다. 그 느린 템포가 답답하다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점이 진입장벽이지만, 나는 그 덕분에 이 세계를 '체험한다'기보다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2018년에 나온 게임인데 아직 이를 뛰어넘는 오픈 월드가 없다고 생각한다(물론 GTAⅥ가 나오면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오늘은 그 압축된 미국 대륙. 게임 속 지도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훑으며 따라가 보자.

 

빅 밸리 : 눈밭을 벗어나 처음 만난 초록 빛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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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빅 밸리

<레드 데드 리뎀션 Ⅱ> © Rockstar Games, 게임 화면 직접 캡처

 

맵 서쪽에서는 '빅 밸리(Big Valley)'라는 광활한 골짜기가 나타난다. 스트로베리라는 작은 마을 근처, 거대한 바위 절벽이 골짜기를 감싸고 그 아래로 강이 흐른다. 하얗게 얼어 있던 세계를 지나온 뒤라 그런지, 나에게는 이 커다란 골짜기가 '아 이제 숨이 좀 트이려나?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인가?' 싶었던 장소로 기억된다.

 

이 골짜기는 '요세미티 밸리(Yosemite Valley)'를 닮았다. 수백만 년에 걸쳐 빙하가 단단한 화강암을 깎아 만든 U자 협곡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화강암 단일 암벽이라는 엘 캐피탄, 반쪽이 잘려 나간 듯한 하프돔이 이 골짜기를 지킨다. 게임에서는 이 협곡 사이사이에 비밀을 숨겨두었다. 다른 갱단원이 숨겨둔 보물, 암각화, 화석 등 모험 거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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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세미티 밸리

Valley View Yosemite August 2013 002 © King of Hearts, Wikimedia Commons, CC BY 3.0

 

글레이셔 포인트라는 전망대에 서면 이 골짜기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사진으로만 봐도 아득한데, 실제로 그 앞에 서면 사람이 얼마나 작아지는 기분일지 잘 상상이 되질 않는다. 아서가 눈밭에서 내려와 처음 이 골짜기의 웅장함을 봤을 때도 아마 비슷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혹은 이미 지겹게 본 풍경일지도. 아직 쫓기는 신세이긴 해도, 세상은 이토록 넓고, 광활하다. 도망자와 무법자에게 그 넓은 세상은 곧 등쳐먹을 사람이 아직 수없이 남아 있다는 뜻이던 시절이다.

 

그런데 게임 속 스트로베리는 단순한 산골 마을이 아니라, 관광객이 찾아오는 휴양지로 그려진다. 나는 이게 고증이 맞나 싶어서 찾아보았다. 놀랍게도 게임의 배경인 바로 그해, 1899년 여름에 요세미티 밸리에는 '캠프 커리(Camp Curry)'가 문을 열었다.

 

교사 부부였던 데이비드와 제니 커리가 세운, 밸리 최초의 텐트 숙소였다. 그전까지 요세미티 여행은 1인당 100달러가 넘고 사흘 이상 걸리는, 웬만한 미국인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커리 부부는 그 문턱을 낮췄다. 재미있는 점은 이 부부가 요세미티에 오기 전, 옐로스톤에서 이동식 캠프로 관광객을 안내하던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뒤에 나올 옐로스톤과 지금의 요세미티가 한 부부의 발자취로 이어진다. 그러니 아서가 말을 달리던 1899년, 실제 이 골짜기에는 이미 마차를 타고 온 관광객들이 모닥불 앞에 앉아 있었다. 게임 속 스트로베리의 그 한가로우면서도 어수선한 관광 마을 풍경은 시대를 꽤 정확히 옮겨 놓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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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커리 엽서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톨 트리 : 화면으로 다 담기지 못하는 나무

 

웨스트 엘리자베스, 스트로베리에서 남쪽으로 강을 건너면 '톨 트리(Tall Trees)'라는 이름 그대로의 숲이 있다. 말을 타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나무 꼭대기가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카메라를 아무리 위로 꺾어도 끝이 안 보인다. 안개가 낮게 깔린 아침에 그 사이를 지날 때면, 세상에서 제일 조용한 성당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게임 안에서는 이 고요를 마음 편히 누리기 어렵다. 이 숲에는 '스키너 브라더즈(Skinner Brothers)'라는 갱단이 숨어 산다. 사람 가죽을 벗긴다는 악명이 붙은 자들이라, 나무 사이를 달리다 보면 어디선가 여행자의 비명이 들려온다. 나는 그 소리가 들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말을 몰아 달려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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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톨 트리. 화면 위로 나무 끝이 잘려 나간다

<레드 데드 리뎀션 Ⅱ> ©Rockstar Games, 게임 화면 직접 캡처

 

이 숲의 실제 모델은 캘리포니아의 '레드우드 국립공원(Redwood National and State Parks)'이다. 이곳에서 자라는 코스트 레드우드(세쿼이아)는 지구에서 가장 키 큰 나무다. 그중 이곳에 있는 '하이페리온(Hyperion)'이라는 이름의 나무는 키가 115m가 넘는다. 아파트 40층쯤 되는 나무가 사람 손이 거의 닿지 않은 숲속에 그냥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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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우드 국립공원

Redwood National and State Parks © Yoshio Kohara, Wikimedia Commons, CC BY 3.0

 

흥미로운 점은, 이 하이페리온이 지금은 '방문하면 안 되는' 나무가 되었다는 것이다. 정확한 위치가 알려지자 이를 보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나무 밑동 주변의 흙과 이끼가 밟혀 상하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오버 투어리즘의 폐해다. 결국 공원 측은 2022년부터 하이페리온으로 가는 걸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벌금까지 물리기로 했다. 세상에서 가장 키 큰 나무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그 나무를 가장 위협하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나도 이야기를 듣고 궁금해져서 가보고 싶어질 정도니까). 관광은 늘 이 점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과도한 방문이 주변 자연환경을 해치지는 않는지, 생활권을 방해하지는 않는지 말이다.

 

사실 하이페리온 한 그루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 레드우드는 네 개의 공원(국립공원 하나와 주립공원 셋)을 1994년부터 하나처럼 묶어서 운영하는데, 이를 다 합치면 서울 면적에 가깝다. 원래 이 해안을 뒤덮었던 원시림의 96%는 이미 벌목으로 사라졌고, 캘리포니아에 남은 고목림의 45%가 여기 모여 있다. 남은 것을 근근이 지켜낸 숲이다.

 

이 나무들은 물의 40%를 비가 아니라 여름 안개에서 얻고, 키가 115m인데도 뿌리는 고작 3~4m 깊이로 얕게, 대신 옆으로 넓게 뻗어 옆 나무뿌리와 얽힌다. 숲 전체가 서로 붙잡고 버티며 2,000년을 산다. 그렇게 버틴 숲이라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의 숲 행성 엔도어를 여기서 찍었고, <쥬라기 공원 2>의 공룡 정글도 이 안의 고사리 협곡이었다.

 

이 숲은 처음부터 누군가의 집이었다. 유록(Yurok), 톨로와, 카룩, 위요트. 이 해안에는 여러 부족이 살았고, 유록족만 해도 강과 바다를 따라 70개가 넘는 마을을 이뤘다. 이들에게 레드우드는 목재가 아니었다. 쓰러진 나무의 몸통을 파내 카누를 만들고 널을 쪼개 집을 지었지만, 나무 자체는 살아 있는 존재로 여겼다. 2024년, 공원의 남쪽 관문 땅 약 50만 제곱미터가 유록족에게 반환되기로 결정되었다. 국립공원 역사상 부족 소유의 땅이 공원의 정식 입구가 되는 첫 사례다.

 

코토라 스프링스 : 땅이 숨을 쉬는 장소

 

지도 북쪽, 그리즐리스 산맥 어딘가에 '코토라 스프링스(Cotorra Springs)'가 있다. 땅에서 하얀 김이 뿜어져 나오고, 바닥은 유황 때문에 노랗고 붉게 물들어 있다. 게임에서 보면 약간 무지갯빛으로 보인다. 사실 스토리만 따라가면 이곳에 올 일은 없다. 나는 '전설의 늑대'를 쫓다가 이 근처까지 왔고, "와... 이런 간헐천까지 구현했네" 하며 한참을 구경했다(혹시 플레이하게 된다면 간헐천을 꼭 조사해 보자. 그 중엔 금괴를 숨겨둔 곳도 있다).

 

이 게임에서는 가끔 이렇게 멈춰 서서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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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코토라 스프링스

<레드 데드 리뎀션 Ⅱ> © Rockstar Games, 게임 화면 직접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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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스톤 데이지 가이저

Daisy Geyser in Yellowstone National Park © Brocken Inaglory, Wikimedia Commons, CC BY 3.0

 

실제 모델은 '옐로스톤 국립공원(Yellowstone National Park)'이다. 1872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국립공원'이라는 이름을 얻은 땅이다. 그 아래에는 거대한 화산 칼데라가 있고, 그 열이 땅을 데워 간헐천을 뿜어 올린다. 캐슬 가이저, 데이지 가이저 같은 이름 붙은 간헐천들이 정해진 리듬으로 하늘을 향해 물을 쏘아 올린다.

 

바닥을 붉고 노랗게 물들이는 저 색은 단순한 광물이 아니라, 끓는 물에서도 살아가는 미생물 군집이 만들어내는 색이다. 뜨겁고 지독한 냄새가 나는 물속에서도 무언가는 기어이 살아간다는 뜻이다.

 

이 공원은 숫자로만 봐도 비현실적이다. 넓이가 로드아일랜드주와 델라웨어주를 합친 것보다 크고, 그 안에 열수 지형이 1만 개가 넘는다. 특히 활동하는 간헐천이 500개 이상인데, 이건 전 세계 간헐천의 절반을 넘는 숫자다. 지구에서 땅이 이렇게 자주 끓어 넘치는 곳이 여기 말고는 거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정작 내가 오래 들여다본 건 다른 숫자였다. 공원 안에서 확인된 고고학 유적이 2,000곳이 넘는데, 그마저도 전체 면적의 3%도 조사되지 않은 결과라는 것. 사람이 1만 년 넘게 밟아온 땅이고, 그중 대부분은 아직 읽히지 않았다.

 

이 공원에는 독특한 생명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바이슨(들소)이다. 게임에서는 코토라 스프링스가 아닌 좀 더 남쪽 지대에서 무리 지어 생활하는데, 소들의 제왕인 것 같은 포스에 압도되어 꽤나 인상 깊게 봤던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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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바이슨

American bison in Yellowstone National Park ©Frank Schulenburg, Wikimedia Commons, CC BY 4.0

 

여기까지가 이 게임이 그려낸 미국의 자연이다. 화면 밖으로 사라지는 나무, 숨 쉬는 땅, 빙하가 깎은 골짜기. 갱단은 이런 자연에 천막을 치고 옮겨 다니며 버텼다. 넓은 땅이 곧 은신처였다. 그 은신처를 포기하게 만든 사건이 하나 있다.

 

갱단에는 한 가족도 섞여 있다. 존 마스턴의 아들, 잭. 갱단 전체가 삼촌처럼 끼고 키운 아이다. 게임을 하다 보면 아서가 삼촌으로 잭과 놀아주는 미션도 나온다. 그 아이가 사라진다. 데려간 건 인근의 늙은 대농장 가문, 브레이스웨이트가였다. 갱단이 지역 유지들 사이를 이간질해 돈 벌 궁리를 하다 들킨 대가였다.

 

소식을 듣자마자 갱단의 모든 삼촌이 모인다.

 

"야, 우리 잭이 납치당했대. 다들 총 쥐고 말 끌고 나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션이다. 어린아이 하나를 되찾겠다고 갱단 전체가 출동한다(참으로 갱단답지 못한 모먼트여서 더 좋다).

 

그렇게 도착한 저택. 해 질 녘의 고요함, 저택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 왜 왔냐고 소리치는 경비. 횡대로 걸어 들어가는 갱단에게서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게임 속 최고의 장면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이내 더치가 소리친다. 우리도 딱히 좋은 놈들은 아니지만, 어린애는 건드리지 않는다고. 자칭 문명인이라는 자들이 할 짓이냐고. 그리고 총격전이 시작된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갱단의 압승. 지역 유지 브레이스웨이트는 아이 하나를 잘못 건드린 대가로 하루 만에 몰락한다. 불길 속에서 저택의 안주인이 마지막 말을 남긴다. 잭을 팔아넘겼다고. 생 드니의 안젤로 브론테라는 자에게. 그리고 그녀는 불타는 집으로 다시 걸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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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브레이스웨이트 저택

<레드 데드 리뎀션 Ⅱ> © Rockstar Games, 게임 화면 직접 캡처

 

오크 앨리 : 나무 스물여덟, 기둥 스물여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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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 앨리 플랜테이션 정면

Oak alley - view from front © Emily Richardson, Wikimedia Commons, CC BY 3.0

 

브레이스웨이트 저택의 모티브는 '오크 앨리 플랜테이션'이다. 1837년에서 1839년 사이에 지어진 그리스 부흥 양식 저택이다. 미시시피강에서 집까지 약 240미터, 스물여덟 그루의 라이브 오크가 터널처럼 길을 덮는다. 저택 기둥도 스물여덟 개. 나무 수와 기둥 수를 맞춰 세운 집이다. 나무는 저택보다 백 년쯤 먼저, 1700년대 초에 심어졌다. 지금은 삼백 살이 넘었다.

 

아름다운 길이다. 그 아름다움 아래에는 노예 노동으로 굴러간 대농장의 역사가 있다. 게임 속 브레이스웨이트 가문도 정확히 그런 집안이다. 오래된 대농장, 낡은 부, 그 속에 감춘 잔인함. 락스타는 저 오크 터널의 아름다움과 그 밑의 어둠을 저택 하나에 함께 담았다.

 

오크 앨리는 지금 재단이 운영하는 박물관이자 국가 사적지다. 시대 의상을 입은 안내인을 따라 빅 하우스(대저택) 내부를 도는 가이드 투어가 중심이고, 재현해 둔 노예 숙소에서 이곳에 살았던 이들의 삶을 다룬 '오크 앨리의 노예제(Slavery at Oak Alley)' 전시를 함께 볼 수 있다. 사탕수수 극장, 대장간, 두 시대의 정원까지 반나절은 잡아야 다 볼 수 있다. 저 오크 터널은 루이지애나에서 가장 많이 카메라에 담긴 길이라, 영화와 드라마 배경으로도 숱하게 등장했다.

 

실제 위치도 생 드니, 그러니까 현실의 뉴올리언스와 굉장히 가깝다. 도심에서 리버로드를 따라 서쪽으로 한 시간이면 닿아서 당일 여행지로 인기다. 뒤에 나올 늪 투어와 묶은 반나절 코스도 흔하다.

 

생 드니 : 서부극에 끼어든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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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생 드니

<레드 데드 리뎀션 Ⅱ> © Rockstar Games, 게임 화면 직접 캡처

 

그렇게 생 드니에 첫발을 내디디면 조금 이질감이 든다. 나는 서부 시대에 들어왔는데, 눈앞에 전차가 다니고 등이 화려하게 켜진 대도시가 펼쳐진다. '서부 배경에 왜 유럽식 도시가 있지? 여기 미국 아니었나? 애초에 생 드니라는 단어도 미국식은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이 설정 또한 현실 뉴올리언스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뉴올리언스의 본래 이름은 라 누벨오를레앙(La Nouvelle-Orléans)이다. 1718년 프랑스인들이 세웠고, 당시 프랑스 섭정이던 오를레앙 공작의 이름을 붙였다. 이후 1763년 스페인으로, 다시 잠깐 프랑스로 넘어갔다가, 1803년 루이지애나 매입으로 미국 땅이 되었다. 40년 넘는 스페인 통치기에도 이 도시는 끝내 프랑스로 남았다. 학교는 프랑스어로 가르쳤고, 신문도 프랑스어로 찍었다.

 

그러니까 뉴올리언스는 앵글로·개신교 남부 한복판에 박힌 프랑스계 가톨릭 도시다. 게임은 이 300년의 내력을 '생 드니'라는 프랑스식 이름 하나로 압축해, 플레이어에게 "이 도시는 뭐지?" 하는 낯선 위화감으로 되돌려준다. 게임에서도 NPC 밀도가 높은 곳이라 별의별 사건과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다. 환경을 생각하는 과학자, 사업가, 미술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라는 점에서 즐겁게 돌아다닐 수 있다.

 

다시 현실 도시로 넘어오면, 프랑스의 흔적이 지금도 도시 한복판에 남아 있다. 세인트루이스 대성당. 뾰족한 세 개의 첨탑이 잭슨 스퀘어를 내려다본다. 미국에서 지금까지 미사가 끊이지 않은 가장 오래된 가톨릭 대성당이다. 이름은 프랑스 왕 루이 9세에게서 따왔다. 흰 벽에 프랑스 왕의 이름을 얹은 성당이 미국 남부 하늘 아래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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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루이스 대성당과 잭슨 스퀘어

Jackson Square by Clark Mills,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성당에선 지금도 매일 미사가 열리고, 관람은 무료다. 성당 양옆으로는 카빌도와 프레스비테르라는 옛 스페인 식민지 관청 건물이 붙어 있는데, 그중 카빌도는 1803년 루이지애나 매입 문서가 넘겨진 바로 그 자리다. 성당 옆 좁은 골목 '파이러츠 앨리(해적들의 거리)'를 끼고 도는 워킹 투어나, 밤의 고스트 투어도 이 근처에서 출발한다.

 

성당 앞 광장은 원래 '플라스 다름(Place d'Armes)', 프랑스식 연병장이었다. 1815년 뉴올리언스 전투를 승리로 이끈 앤드루 잭슨의 이름을 따 잭슨 스퀘어가 됐고, 광장 한가운데엔 말을 탄 그의 동상이 서 있다. 프랑스가 이름 짓고 미국이 이름을 바꾼 광장이다. 도시의 내력이 땅 이름에 층층이 쌓여 있다. 게임 속에서 갱단이 찾아 헤매는 잭, 그 아이를 데리고 있는 안젤로 브론테의 저택도 이 광장 언저리에 있다.

 

밤이 되면 도시는 다른 얼굴을 한다. 버번가. 프랑스 구역(비외 카레)의 좁은 길을 따라 발코니가 늘어서고, 밤새 음악과 술이 흐른다. 게임 속 생 드니의 밤거리를 걷다 보면, 락스타가 이 골목의 공기를 꽤 성실히 옮겨 담았다는 걸 알게 된다.

 

죽은 자들의 도시 : 이번엔 관광객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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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생 드니 공동묘지

<레드 데드 리뎀션 Ⅱ> © Rockstar Games, 게임 화면 직접 캡처

 

게임 속 아서는 이 도시에서 브론테의 부탁으로 공동묘지의 도굴꾼들을 처리한다. 그 무대가 된 실제 장소가 세인트루이스 공동묘지다. 이곳의 무덤은 죄다 땅 위에 올라앉아 있다. 물 많은 저지대 지형과 프랑스·스페인식 매장 전통이 겹친 결과다. 관들이 지상에 늘어선 풍경 때문에 '죽은 자들의 도시'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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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루이스 공동묘지 1번

St. Louis Cemetery No 1 New Orleans, 27 August 2022 ©Tom Hilton, Wikimedia Commons, CC BY 2.0

 

재밌는 건, 이곳은 이제 아무나 못 들어간다. 2015년부터 세인트루이스 공동묘지 1번은 일반 관람이 막혔고, 허가받은 가이드를 따라야만 들어갈 수 있다. 이유가 공교롭다. 이곳에 잠든 '부두 여왕' 마리 라보의 무덤에 소원을 빌겠다며 관광객들이 벽에 X 표시를 긁고 무덤을 훼손하는 일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에서 하이페리온의 밑동 흙이 밟혀 나갔다면, 여기서는 무덤 벽이 긁혀 나갔다. 게임에서는 도굴꾼 때문에 문제였다면, 현실에서는 관광객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지금은 55분짜리 투어를 따라 마리 라보의 무덤과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가 미리 사둔 새하얀 피라미드 무덤을 함께 본다.

 

라그라스 : 꿀섬이라 불리는 늪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게임 속 또 다른 장소가 기다린다. 라그라스. 생 드니 외곽 늪지대의 낚시 마을이고, 갱단이 뱃사공 토마스의 배를 얻어 타고 브론테를 치러 들어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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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라그라스의 물길

<레드 데드 리뎀션 Ⅱ> © Rockstar Games, 게임 화면 직접 캡처

 

이 늪의 현실판이 뉴올리언스 북쪽 허니 아일랜드 스왐프다. '꿀섬'이라는 단어 선택이 참 안 어울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늪과 악어 떼가 가득한데 왜 꿀섬인 것일까. 살펴보자면 또 프랑스어다. 마레 드 릴드미엘(Marais de l'Île-de-Miel), 꿀섬의 늪. 버번가에서 차로 45분이면 닿는데, 미국에 몇 남지 않은 손대지 않은 강 늪으로 꼽힌다. 사이프러스 나무에 스페인 이끼가 늘어지고, 통나무 위에 악어가 볕을 쬔다. 바닥이 납작한 배를 타고 좁은 물길을 미끄러져 들어가면, 물고기를 잡는 케이준 어부들의 마을을 지난다. 게임 속 라그라스에서 본 그 풍경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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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 아일랜드 스왐프의 악어

Honey Island Swamp Tour by Daniel Lobo,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맨 vs 와일드>의 베어 그릴스를 보면 이런 장면이 자주 나오곤 하는데, 게임에서도 꽤 비슷하게 구현되어 있다. 말을 타고 늪지대를 돌아다니다 보면 말이 지레 겁먹고 나를 버리고 도망간다. 주변에 악어가 있다는 뜻이다.

 

이런 늪지대가 많아서 그런지 뉴올리언스에는 특이한 음식이 있다. 바로 악어 고기다. 악어 튀김, 버거 등등 많은데 악어고기에서 보통 닭고기 맛이 난다고 한다. 베어 그릴스가 뱀이나 악어를 먹을 때마다 맛이 궁금했다(물론 벌레 종류는 질색이다). 나중에 먹어볼 기회가 있다면 제일 먼저 시도해 볼 것이다.

 

생 드니는 갱단에게 도시이자 덫이다. 탁 트인 서부에서 살던 이들이, 벽과 골목과 법이 촘촘한 도시로 걸어 들어온다. 여기서부터 이들의 세계는 조금씩 죄어든다. 그 죄어드는 기척이, 프랑스어 이름을 단 이 아름다운 도시 위에 깔린다.

 

톨 트리에서는 카메라를 아무리 위로 꺾어도 나무 끝이 보이지 않고, 생 드니에서는 어느 골목으로 꺾어도 벽이 나온다. 1899년의 미국은 넓었다. 이 게임이 하는 이야기는, 그 넓이가 줄어드는 과정이다.

 

※ 본문에 언급된 게임에 관한 모든 권리는 각 저작권자(Rockstar Games)에게 있습니다. 사진은 자유 이용이 허락된 위키미디어 커먼즈·퍼블릭 도메인 이미지를 사용했으며, 각 사진에 출처를 표기했습니다.

 

<계속>

 

비정기 저기압청춘.jpg

 

편집 : 금성무스케잌

마빡 디자인 : 꾸물

기사 : 저기압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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